′안개도시에서 봄비를 기다린다′ 두 번째 시집 낸 김윤한 시인
시인과 공무원
시를 읽고 시인을 만나도 시인을 만나고 시를 읽어도 시를 온전히 알기란 쉽지 않다. 시는 가슴에 뭔가 다른 장치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고, 시인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 그리고 동경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호 ‘이달에 만난 사람’은 시인이면서 올해로 서른 두 해째 공직에 있는 공무원이다. 한 사람을 그가 가진 직업과 호칭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필자에게 부러움을 갖게 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59년생으로 안동 토박이인 그의 이름은 ‘김윤한’ 이다. 물론 그는 공무원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를 김윤한 시인으로 부르겠다.
염색한 머리에 희끗한 머리카락 몇 올은 딱딱하고 점잖은 공무원에 대한 인상을 쉬이 느끼게 했고, 따뜻한 생강차를 대접하는 소탈한 모습과 살짝 긴장한 탓인지 볼펜을 딸깍거리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순수한 시인의 인상이 느껴졌다. 서로간의 바쁜 일과 중에 겹치는 부분을 찾자니 공교롭게도 이른 아침 그의 일터인 시청 사무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민원이나 보려고 다녔던 시청에 누군가를 만나러 가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구제역 광풍에 선 김윤한 축산진흥과장
2010년 가을은 안동에서 축산업을 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잊을 수 없는 때였다. 구제역 발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구제역 발생에 대한 많은 의문을 남겼지만 어쨌든 축산에 있어서 나름의 위상이 높았던 안동에 매우 치명적인 한해였다.
당시 도청이전지원단장직에 있던 김윤한 시인은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지 두 달 여 만에 축산진흥과로 발령이 났다. 살처분 된 가축의 무덤이 600여개가 있었고 축산진흥과 공무원들은 매일 아침 살생부를 받아 구제역 현장으로 출근하던 때였다. 어느 날 아침, 발령을 받고 집에 가니 등이 땅에 붙지 않고 붕 떠 있는 기분으로 보름 만에 살이 5kg이나 빠졌다고 한다.
매일, 습관처럼 장비와 방역복, 밧줄을 챙겨 조를 짜서 구제역 현장으로 출근을 했다. 마치 기계처럼, 습관처럼 힘든 것도 느낄 새 없이, 말 못하는 가엾은 짐승들을 빨리 쓰러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오로지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이야 헛헛하게나마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당시엔, 아침마다 장비를 나눠주는 회계과 앞에 맥주와 소주, 막걸리가 놓여 있었다. 맨 정신에 하루도 아닌 수십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살생을 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공무원이라는 마땅한 신분임에도 참으로 잔혹한 ‘업무’가 아닌가 싶다. 공무원 2명이 순직하고 농민들은 물론 살처분에 투입되었던 공무원들이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한다는 뉴스가 한창 나왔던 일이 스쳐지나갔다.
이미 살처분 된 가축의 무덤은 흘러내리는 곳도 많았다. 이 일의 끝이 어디인가 싶을 때 그는 삼십년 넘게 일해 온 공직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한다. 축산진흥과장으로 승진하고서는 승진했다는 기쁨보다 책임자 자리니 만큼, 어쩌면 이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할 때가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사정을 가족에게 미리 얘기해 두었다는 그의 심정은 당시에 어땠을까 싶었다. 공무원으로 있은 지 삼십년 만에 가장 힘든 일로,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시인 김윤한이기 이전에 공무원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먼저 엿봤던 탓인지 혹은 장소 탓인지, 그의 시와 시인 김윤한이 잘 매치되지는 않았다.
스무 살에 만난 시
김윤한 시인은 시를 쓰기 시작했던 때를 1979년도쯤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스무 살 무렵이었다. 1979년은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때이고,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했고 그 해 말엔 12.12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었다. 지금도 방영되고 있지만 필자 역시 좋아하는 일본 만화 도라에몽이 TV에 데뷔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외식사업을 도입한 롯데리아가 생겼던 때이다. 그리고 바로 두 해 전에는 안동댐 준공으로 인해 안동군 월곡면, 시인의 고향이 폐지되었다. 안동댐 준공으로 월곡면은 물론 인근 예안면과 도산면 등의 많은 자연 마을이 사라졌다. 고향을 잃은 것이다. 어쩌면 시인에게 부재는 하나의 숙명일까 싶을 만큼 김윤한 시인은 고향, 가난 그리고 쉰을 넘은 현재도 아픔으로 남은 어떤 부재들을 시로 위로 받는다며, 시와 함께한 그의 삶을 이야기 했다. 그간 써온 많은 시 속에 그 아픔들이 툭툭 던져져 있다고 하니 시인다운 말이다.
시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써 오던 그는 1995년 ‘서포일기’ 외 4편으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지난 해 펴낸 두 번째 시집 <무용총 벽화를 보며>로 제11회 계간 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은 2005년에 낸 첫 번째 시집 <세느 강 시대>를 포함해 통틀어 두 권을 냈다.
2집 ‘시인의 말’에도 썼듯이 그에게 시를 쓰도록 지속해준 또 다른 동력은 ‘글밭’ 동인회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시인은 물론이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 붙일 곳 하나 정도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마치 돌아갈 곳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밭’ 은 1969년 청포문학동인회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글밭’ 이라는 동인지로 1호를 창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동인지가 되어 이젠 동인지의 역사가 되고 있다. 김윤한 시인이 ‘글밭’ 동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5년이니 등단하기도 훨씬 전이다. 스무 살적부터 시를 써오며 많은 시인들과 교류를 하고 친분을 맺어오고 있던 터라 그에게 동인지 활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내 시의 원동력은 글밭 동인회”
학교 다닐 때는 백일장에 나가면 글로 곧잘 상을 탔고 문예반 활동도 했다. 어릴 때는 그림도 잘 그려서 한국일보 사장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재주가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詩想)을 갖기까지 그의 삶 전반에 있는 희노애락이 당연 쉬운 것은 아니었겠으나 그의 차분함과 때로는 인터뷰 내내 있었던 어떤 긴장감 탓인지 적어도 시작(詩作)을 하는데 있어서는 지극히도 편안하게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밭’ 동인 활동을 하기 훨씬 전에는 무크지로 활동을 했었고 등사판으로 만들던 ‘시대’ 동인지에도 글을 썼었다. 문예반 시절에는 주류를 제쳐 두고 ‘새벽’ 이라는 이름으로 동인지를 만들기도 했다. ‘글밭’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동인회는 늘 시를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 외롭지 않고 또 시를 쓸 수 있도록 게을러지지 않게 하는 동력이 된다고 하니 어쩌면 작가에게 동인지야 말로 글밭을 일궈내는 모판인 셈이다. 시인 스스로 동인지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김윤한 시인에게 동력이란 동인지에 대한 그의 열정이 아닌가 싶다.
‘글밭’은 물론이고 한국문인협회에 소속되어 있으니 시간이 나면 서울에 들러 친분이 있는 시인들과 술도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질펀하게 놀기도 한다. 들은 바에 의하면 상당한 주량가라고 하나 궁금증을 확인시켜 주지 않아 확언은 못하겠으나, 시인들이 술을 싫어한다면 왠지 어울릴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세느 강 시대를 사는 작가, 김윤한
시를 쓰면서 국문학에 대해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낮에는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만학도가 되었다.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 이어 안동대학교 대학원에도 진학하여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재미는 있었지만 막상 생각했던 것처럼 시를 쓰는 데에 크게 영향은 없었다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공직생활도 겸하면서 안동에서 글 쓸 일이 많아졌다. 특히 ‘안동’지에는 예전에 6년 가까이 콩트를 연재했었고 안동문화지킴이에서 발행하는 ‘사람과 문화’에는 ‘시 읽기’ 코너를 역시 수년간 연재했고 현재는 ‘추억 산책’ 이라는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사람과 문화’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써 내야 했기 때문에 꾸벅 꾸벅 졸면서도 원고를 마감하느라 애먹었지만 돌이켜 보니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들이 원고료가 생기는 일들은 아니지만 그에게 들어오는 일감이 적은 편도 아니다. 문득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면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시를 쓰고 싶은지 여부를 물었더니 ‘그럴 생각은 없다’ 고 답한다. 그에게 글을 쓰는 것을 굳이 어떤 수단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위로의 수단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여길 수 없을 만큼 이미 시는 그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그는 시인이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는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왜 꼭 직업과 연결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놓고도 필자의 생각의 한계가 물질이 우선되는 사회 밖으로 나가지 못해 씁쓸했다.
시집을 두 권 내면서 시집 제목 모두 김 시인이 아닌 지인이 꼽아 준 것이라고 한다. ‘안동’지 편집위원 한경희 교수가 1집 평론을 쓰면서, ‘세느강 시대’로 하자는 권유에서, 2집 역시 평을 쓴, 동리·목월문학관 장윤익 관장이 2집에서 가장 좋은 시라며 ‘무용총 벽화를 보며’를 제목으로 추천한 것이다. 김윤한 시인이 꼽아놓은 제목이 있었지만 촌스럽다며 애당초 탈락했다. 사실 그는 그런 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제목이 꼭 뭐가 되어야 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고집하기보다 옆에 사람이 이거 괜찮다, 좋다 하여 그리 생각되면 흔쾌히 수긍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같다.
시집에 제목이 정해진 이야기를 하면서 1집의 제목으로 붙여진 ‘세느 강 시대’의 세느 강이 안동의 복개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밤이 되면 더러울수록 별빛이 아름답게 비춰져 복개천가 포장마차에서 많은 시인들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는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였다. 그에게 추억이지만 복개천의 추억이 없는 필자에게도 운치가 느껴졌다.
서울에 가면 지하철 벽면에 시를 써 놓은 액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금도 있는지는 서울에 안가본지 오래돼서 모르겠지만 재밌는 시들 덕에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김윤한 시인의 시도 그 중에 하나 있다. ‘낮술은 오래 취하고’ 라는 제목의 시이다. 서울의 3호선 매봉역과 2호선 양천구청역에 갈 일이 있다면 찾아보는 재미도 있겠다.
길 위에서 선 시인, 나그네처럼 훌쩍 떠난다
공무원으로서의 인상 탓도 있겠지만 필자의 얄팍한 고정관념 속에 있는 시인과는 거리가 있을 만큼 김윤한 시인은 참으로 점잖았다. 특이하고 괴짜 같은 면보다는 오히려 자기 관리에 매우 철저해 보였다. 일부러 시를 쓰기 위해 용쓰면 더 안 써진다는 김윤한 시인에게는 정말 부러운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메모다. 심지어 목욕탕에 갈 때로 가지고 다닌다는 그는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늘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어쩌다 시상이 떠올랐는데 수첩이 없어 못 적을 때도 있냐고 물으니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녀서 그런 일이 절대 없다고 한다. 요즘엔 핸드폰에 메모 기능이 있어 그것을 활용해도 되겠지만 그에게 수첩이 오히려 핸드폰 보다 더 가까운 모양이었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든다.
용쓰지 않고 시를 어떻게 쓸까, 시상은 어찌 찾아낼까 궁금하니 그에게는 걷기 취미도 있었다. 안동에서 영주까지, 영주에서 봉화까지, 안동에서 의성까지. 봇짐 하나 메고 물 한 병에 계란 한줄 꾸려 나그네처럼 길을 나선다. 일 년에 대 여섯 번씩 따로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걸음을 나선다. 평소에 잘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을 발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그에게 또 하나의 습관이었다. 혼자 걸으니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니 외려 둘이 걸으면 챙겨주기도 하고 말도 섞어야 하니 혼자가 편하다고. 주로 일 년 치 시상의 대부분은 그의 걷기 좋아하는 일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곡에서 영주 가는 구길은 아스팔트 길이지만 차가 10분에 한 대도 안 오기에 걷기에 매우 좋다며 김윤한 시인이 걷기 좋은 길로 추천해준 곳이다. 사진으로도 그 감동이 절대 표현되지 않는다며 계절마다의 그 길이 담고 있는 장면들에 잠시 김 시인은 빠져든 듯 했다.
그에게 걷는 일 외에도 메모습관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불교와 음악이다. 12년 째 아침 5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금강경 카세트 테잎을 틀어놓고 300회 정도 절을 하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매일 아침 3-40분 정도 절을 하고 참선 후에 용상동의 자택에서 시청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서 출근을 한다. 출근을 하고서는 FM의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비몽사몽간이지만 음악을 듣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다 보니 간혹 졸기도 한다는 우스개 소리이지만 사실 클래식을 들으면 누구의 작품인지 알만큼 되는 수준이다. 특히 요한 스트라우스에는 빠삭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업무에 들어가기 전 금강경 한 구절과 경전을 쓴다. 12년 째 지켜오고 있는 그의 룰이다. 몸이 찌푸둥한 어떤 날은 절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진다고 하니 1000번을 해도 여간해서는 피곤한 줄 모른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원고마감에 허덕이기도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쥐어짜는 것이 으레 작가의 일상이라면, 김윤한 시인은 시가 없어서 동인지에 시를 못낸 적도 없다.
가만히 보니, 그가 특이하지 않다고 했던 말은 취소다.
“문디는 문디끼리 만나야 안될리껴”
스무살 적에는 주로 부산에서 시 동인 활동을 하는 선배 시인들과 어울릴 일이 많았다. 그때 알게 된 선배 시인들을 따라 김윤한 시인은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그는 순례여행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에 가 차비가 떨어져 갈 곳이 없던 때는 마침 서울에 계시던 고등학교 문예반 선생님의 집에서 머물기도 했었다. 집에서 잔소리와 핀잔도 들었지만 딱 서울 갈 차비 만원만 손에 들고 돌아올 여비도 없이 집을 나서도 마음에 무리될 것이 없었다.
많은 선배 시인들과 어울리면서 웃지 못 할 많은 일들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자주 보던 임병호 선생, 김태수 선생과 함께 안동시내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녹전국민학교에서 선생으로 계시던 임영삼 선생댁으로 술을 얻어먹으러 나서기로 하고는 돈 한 푼 없이 택시를 탔다. 개학한 지 한 달이 지났으니 임영삼 선생이 학교의 사택에 있을 것이라고 여긴 데에는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택시비가 없어 김윤한 시인이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시계를 억지로 약국에 잡혀놓고는 돈을 받아 택시비를 내어주고 임영삼 선생 댁에 갔다. 그런데 임영삼 선생이 어딘가로 잠수를 해서 개학을 했는데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임영삼 선생의 부인이 남편 못 봤냐며 물어보는 낯에 돌아올 택시비는 녹전국민학교 교장으로 있던 임병호 선생의 아버지 이름을 대고 돈을 융통해 택시를 타고 결국은 여인숙으로 와 쓴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먹다 남은 소주로 세수를 했었더랬다.
재미있는 김 시인의 지난날의 이야기를 듣는 손님들은 달게 웃었으나 그 옛날 어울렸던 선배이자 벗이었던 이들과의 기억을 더듬는 그의 마음은 달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유고시집을 준비 중이라는 임병호 선생에 대한 그리움이 큰 듯 했다.
‘문디는 문디끼리 만나야 하지 않니껴.’
‘글밭’ 창간멤버였던 조병익 선생의 말이란다. 그래도 웃으면서 시 모임에 가면 본인이 가장 정상이라고 털털하게 웃는다.
“한경희나 안상학이처럼 발품 팔아 쓰는 건 못하겠어요. 앉아서 사기 치는 건 잘해요.”
글 쓰는 소재가 늘 풍부한 김윤한 시인의 유쾌한 겸손이다. 스무 살에 만난 시는 그에게 거대한 종교요 끊을 수 없는 알콜이라고 했다. 그에게 시가 종교이고 끊을 수 없는 알콜인 이유는 그의 시집 안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마도 그 시 안에 그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