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터전에서 새 삶을 살고 있는 의인정사(글/사진/ 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봄기운이 스며든 날 시작한 타향살이 건축순례
안동은 다른 지역보다 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문화유산은 갖가지 사연을 갖고 있다. 그 사연들은 마냥 즐겁고 기쁜 내용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살았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보다 더한 기구한 운명은 없을 것이다. 인근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먼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경우는 사연이 더욱 애절할 것이다. 그 발길이 영원히 돌아 올 수 없는 발길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안동댐 건설로 물속으로 사라져 돌아와도 갈 곳이 없는 경우, 용궁으로 변해버린 고향을 바라봐야 할 경우 마음은 더욱 착잡할 것이다. 이번 순례는 이들 건물들을 찾아 떠난다.
1961년부터 계획한 수자원개발사업을 착수하면서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 사대 강 유역 개발을 진행했고, 안동댐 건설은 낙동강유역개발사업의 하나로 계획 실시되었다. 안동댐은 공사에 앞서서 1966년 그 설계를 시작했고, 이후 1971년 4월 공사를 착공하여 1976년 10월 28일에 준공하여 5년 반 걸려 완성되었다. 안동댐 건설공사로 안동 일부지역은 지리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은 월곡면, 임하면, 와룡면, 예안면, 도산면, 녹전면 등 모두 6개면 49개 동리에 달하며, 만수 시 거대한 인공호수가 생겨 기후 및 환경 관련 생태학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낙동강 인근 지역 주민들은 가뭄과 홍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터전과 집이 물속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등을 돌려야만 했다. 물속으로 사라지는 집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건을 추진하였다.
이건 공사는 많은 노력과 예산이 소요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가옥들은 화목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나마 이건하여 살아남은 건물들은 다행이라고 한다. 이건 작업은 댐의 물이 만수되는 경계선 인근 지역으로 이전하여 옛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한 이건, 안동 내 다른 지역으로의 이건, 그리고 안동 밖의 다른 지역으로의 이건으로 나뉜다. 이건한 이들 건물은 기존 용도에 따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문화유산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들 건물이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사항으로 연구의 대상이다.
이런 취지하에 이번 순례는 1960년대부터 추진한 국토개발사업 중 낙동강 상류 안동댐 건설로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 문화유산을 찾아 떠난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시행된 안동댐 건설공사로 당시 안동시 일부와 이곳에 있던 많은 문화유산들은 물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모습은 안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댐 건설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인근 대학 연구소가 참여하는 조사단은 사라질 문화유산을 조사, 발굴,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오늘 순례길 위에 있는 영남대학교 박물관 민속원도 조사 발굴 이건의 결과물이 있는 곳으로, 박물관이 주관하여 안동의 수몰지역 건축문화유산을 이건한 곳이다.
나의 이번 순례는 아내와 대학원 제자가 동행했다. 우리는 차안에서 당시 상황과 최근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연 지난번 찾은 의촌리 번남댁이 이야기 대상이 되었다. 번남댁을 다녀온 후 그곳에 살았던 분들이 연락을 주셨고, 관련 자료를 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의촌리의 옛 모습을 보고 싶어 해서 관련 자료를 보내드렸다. 흐릿한 흑백 사진 속의 옛 터전과 옛 길, 그리고 그들이 살던 집을 보면서 사람들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자료를 보내드린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어렸을 때 이곳을 떠났는데, 옛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보내주신 사진은 의촌리에 살았던 이웃들과 나누어 보겠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순례를 통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나의 행보가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을 제공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며, 이를 생각하면서 건축문화유산 순례를 떠나려 한다. 그 첫걸음은 고향을 떠나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살림집, 영남대학교 민속원 내 살림집을 찾아가려 한다.
서로를 의지하며 민속원에 모여 사는 건축문화유산들
영남대학교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안동지역 고택 4채를 대학 내 2만여 평에 달하는 야외박물관민속원 일부를 조성한 후 이곳에 이건하였다. 민속원에는 이들 건물 외에 봉화와 경주에 있던 고택 2채도 이건해 놓았다. 안동지역에서 이건한 건물은 월곡면 미질동 구계서원(龜溪書院) 강당 1채, 예안면 오천동 별당인 일휴당(日休堂) 1채, 월곡면 도목동의 민가인 까치구멍집 1채, 도산면 의촌동에 있었던 의인정사(宜仁精舍(眞寶宅)) 1채이고, 봉화에서 이건한 건물은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별당인 쌍송정(雙松亭) 1채, 경주에서 이건한 건물은 구황동 황룡사지에 있던 민가 1채가 있다. 이들 건물은 대학 내 학생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수시로 방문하여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건물은 본연의 용도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처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있다.
안동댐 건설로 인한 이전복원 사업은 크게 중요한 문화재 이전, 주민 거주이전, 서원 주택 등 고가 이전 등이 있었다. 이들 이전복원 사업은 건물이 타지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가급적 안동지역에 이전 복원하여 후세에 문화유산으로 남기고자 하였다. 그래서 많은 문화유산들은 인근지역으로 이건하거나 안동민속경관지와 영남대학교 민속원을 조성하여 이건하였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은 당시 관장인 김택규 교수의 노력으로 경산 캠퍼스 남쪽에 약 3만평의 옥외전시장을 1974년 4월을 기하여 개설했다. 이 옥외전시공간은 전통민가와 살림살이 등 민속자료를 이건 전시하여 이를 민속원이라 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민속원은 법학전문도서관 동측 나지막한 야산 자락에 조성하였다. 이 야산에는 많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이들 소나무가 건축물들을 품고 있다. 민속원 비포장 길을 따라가면 구계서원과 의인정사가 있고, 의인정사 북측에 까치구멍집이 있고, 의인정사 남측 야산에 쌍송정과 일휴정이 있다. 까치구멍집은 소나무숲 맞은편 논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일휴정과 쌍송정은 사면이 소나무로 감싸여 있다. 의인정사와 구계서원은 앞의 논과 논 건너의 대학본부를 바라보고 있다. 아스콘 도로에서 진입로를 따라 구계서원와 의인정사를 지나면 북측에 해우소와 놀이마당이 있으며, 산자락에 의성김씨 정려문이 있다. 놀이마당 동측에는 화산서당과 경주 맞배집이 나란히 있고, 안쪽에 경주 인왕동 고분군 복원지가 있다. 이와 같이 정리된 현재 모습은 전통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인식한 영남대학교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안동의 문화유산을 아껴주시는 것에 대해 안동살이를 하고 있는 안동시민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민속원 이건 사업은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는 1974년 단양(丹陽) 우씨문중(禹氏門中)이 기증한 구계서원의 건물 독역재(讀易齋)와 모현사유지비(慕賢祠遺址碑) 등의 이건과 예안면 오천동의 봉성 금씨문중의 일휴당 이건이다. 2차는 1975년 봉화군 쌍송정과 안동 월곡면 도목동 영양남씨촌 까치구멍집 이건이다. 3차는 안동 도산면 의촌동 도산서원 건너편의 ‘의인마을’ 이동엽(李東燁)의 ‘ㅁ’자형 기와집 이건이다. 4차는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 발굴조사를 위해 해당 부지의 허영식씨 목조기와집 1동 이건이다.
민속원으로 이건한 건축물이 있었던 안동지역은 안동댐 수몰지역으로 조선시대의 역사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지역으로 퇴계 이황의 성리학 학맥을 이어온 영남학파의 근원지다. 도산의 진성이씨, 오천의 광산김씨와 봉성금씨, 도목동의 영흥배씨와 영양남씨 등은 한 곳에 세거하여 학문과 덕행을 세세대대로 계승하여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여 유학문화를 꽃피웠다. 따라서 안동 수몰지역은 유학적인 사상과 행동을 펼치기에 적합한 주거 및 인문환경이 형성되어 있었다. 학식과 인품이 높은 선생과 학문을 할 수 있는 장소 등이 두루 갖추어진 곳이었다. 특히 고택은 정침, 가묘, 별업으로 구성된 주생활영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일반 살림집은 초가와 두투마리집, 까치구멍집 등 특수한 구조양식의 주택도 있다. 이들 건축물은 일반적인 유가적 삶을 담고 있지만 경상도 북부지방의 독자적인 구조와 독특한 양식을 이루고 있어 역사적으로 민속학적으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타향살이하고 있는 안동의 건축문화유산 새살림
구계서원(龜溪書院)
월곡면 미질동 구계서원은 전신인 도동서원(道東書院)에서 시작되었으며, 미질동의 구릉 산록에 터를 잡고 앞에 흐르고 있는 하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동서원은 1696년 창건되어 고려 우탁을 배향하고 있다. 도동서원이 구계서원으로 개칭된 시기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서원 철폐령에 의해 역동서원과 더불어 훼철되고 오랫동안 유적으로 남아 있었다. 1896년 9월 17일에 후손과 사림의 후학들이 모며 구계서원 강당인 독역재(讀易齋)를 건립하였다. 이후 구계서원은 독역재의 뒤편 모현사(慕賢祠) 자리에 단을 꾸미고 ‘모현사유지(慕賢祠遺址)’라고 음각한 자그마한 비를 건립하고 향사를 이어왔다.
안동댐 건립으로 구계서원은 물에 잠기게 되어 이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1971년 2월 7일 역동서원에서 구계당회를 열어 이건 계획을 논했으나 결론을 내리 못하였다. 다시 1974년 5월 10일 오십인위원(五十人委員)를 선출하여 위원회를 통해 1974년 6월 영남대학교로 이건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민속원으로 이건하게 되었다. 이건 당시 건물로는 강당인 독역재뿐이었는데, 2000년 11월 27일 묘우 모현사, 모현사 내삼문, 동재 일신재(日新齋), 서재 시습재(時習齋), 서원의 대문인 진덕문(進德門)을 지어 서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영남대학교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잘 관리되는 모습을 보니 순례자인 나는 기분은 좋았다. 한편으로 이 건물이 안동에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욕심일까? 문득 우탁선생을 모시고 있는 안동대학교 내 역동서원이 생각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 건물이 안동 그 자리에 있었으면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었을 것이다. 호박돌을 쌓은 담장과 기단은 현대건축의 외장재 패널을 붙여 놓은 듯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어쨌든 안동에 있는 것보다 잘 있어서 마음은 놓인다. 발걸음을 맞은편에 있는 까치구멍집으로 옮겼다.
남석기(南錫基) 까치구멍집
민속원의 까치구멍집은 영양남씨들이 모여 살던 안동 월곡면 도목동 남석기 씨 까치구멍집을 1975년 이건한 건물이다. 이 까치구멍집은 경북 북부지역 산간마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구조를 한 살림집으로, 추운 겨울날 실내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외양간을 비롯한 모든 편의시설을 집안에 꾸민 살림집을 말한다. 그리고 까치구멍집은 내부 공간이 닫혀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발생하는 연기 및 오염된 공기의 배출이 용이하도록 지붕 양측면에 배출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모양이 까치집처럼 생겼다 해서 이런 모양의 살림집을 까치구멍집이라 한다.
원래 까치구멍집이 있었던 도목동에는 이건한 까치구멍집과 같은 살림집이 많았으며, 도목동은 낙동강 주변이 높은 산악지형으로 산림이 울창한 곳이었는데, 도목 1구는 영양남씨가, 도목 2구는 경주김씨가 세거를 하면서 살았다. 도목 1구는 고려말 영양남씨가 마을에 입향하여 약 500여 년간을 살아왔다. 안동댐으로 수몰 당시 도목동은 약 90여 가구 약 650여 명이 살고 있었다.
남석기 씨 까치구멍집 이건은 1975년 4월 15일 해체하여 민속원 북측에 터를 잡고 서남쪽으로 향하도록 했으며, 그해 5월 24일 입주상량하고 6월 12일 공사를 마쳤다. 이건공사는 도목동 원래 배치대로 본채와 별채, 헛간 측간이 있는 헛간채를 옮겨 놓았다. 민속원 내 까치구멍집은 탱자나무 생울이 본채와 별채, 헛간채를 감싸고 있으며, 남측의 싸리대문을 통해 출입하고 있다. 이건 초기에는 원래 대문이나 담장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시설 없이 외부로 열려 있었다. 이 집의 배치는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중심으로 정면에 본채가 있고, 동측에 북측을 바라보고 있는 별채가 있고, 서측에 동측의 별채를 바라보고 있는 헛간채가 있다.
본채는 남측의 판자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마루가 있고, 좌측에 부엌과 안방이 있고, 우측에 외양간과 건넌방이 있다. 안동에 있을 때 그대로 마루 끝 디딤돌과 마루귀틀과 마룻널에는 세월의 흔적과 사람의 윤기가 그대로 흐르고 있어 남석기 씨와 그 가족의 채취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대청의 천장은 열려 있어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의 지붕재료가 그대로 보이며, 좌우 방은 고미반자를 하여 지붕구조와 분리되어 있다. 외양간에는 산비탈 밭에서 쟁기를 끌었던 소의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 냄새가 아직도 나고 있고, 금방이라도 워낭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또한 외양간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아침에 소죽을 끓이던 가마솥 뚜껑을 열었을 때 하얀 김과 함께 피어오르던 구수한 소죽냄새가 내 코끝을 움직이게 할 것 같다.
별채는 두 간의 온돌방과 디딜방앗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흙과 돌을 쌓아 외벽을 마감했다. 두꺼운 외벽은 자그마한 창문을 만들어 남측의 따뜻한 빛이 한지를 통해 들어와 실내를 밝히고 있다. 두꺼운 벽의 창호를 보면서 문득 나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 벽면을 구성하고 있는 빛의 창호가 생각난다. 별채의 빛은 직사광선이 아니라
직사광선을 한지로 한번 걸러낸 부드러운 순광이다. 이 순광은 내부 공간 이용자의 인성을 한결 부드럽게 만든다. 밖의 직사광선은 별채와 본채, 탱자나무 생울로 둘러싸인 장독대가 물씬 받고 있다.
우리는 작은 까치구멍집을 통해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았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으며, 자연이 제공하는 빛을 단순히 한 유형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상황을 고려해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지혜를 배운다. 특히 공간 이용자의 인성을 고려한 빛의 사용방법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의인마을 의인정사
의인정사는 도산면 의촌리에 있었던 진성이씨 이동엽 씨 가옥으로 경상도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 기와집이다. 의인마을은 조선시대 예안현에 귀속된 마을로 진성이씨의 세거지였다. 퇴계 이황의 조부인 이계양이 토계동 상계에 입향한 후 퇴계의 맏손자가 상계에, 셋째 손자 영도가 하계에, 둘째 손자 순도가 의인에 정착하면서 이들 진성이씨는 이곳에서 대대로 동족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ㅁ’자형 살림집은 ‘ㅁ’자형 중정을 중심으로 사면에 실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고 획일화된 느낌을 주지만, 살림집마다 실 배치 및 향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인 배치양식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평면의 공간 구성을 느낄 수 있다.
의인마을은 안동댐 건설로 철거 또는 이건하면서 옛모습이 사라졌는데, 주요 ‘ㅁ’자형 고택 중에서 이원필 소유의 번남댁은 그대로 보존하였고, 이필구 소유의 교리댁은 안동시 성곡동 민속경관지로 이건하였다. 이동엽 씨 고택은 영남대학교 민속원으로 이건 되었다. 이동엽 고택은 증조부인 이중철(李中喆)이 진사로 진보현감을 지내던 시기에 지었는데, 여러 차례에 걸쳐 완성하였다. 택호는 진보현감을 지낸 건축주를 따라 ‘진보택(眞寶宅)’이라고 불렸다. 이 진보댁은 약간의 경사를 이룬 평지에 자리를 잡고 서향을 하고 있으며, 북측에 분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남쪽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의인정사는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ㅁ’자형 본채와 부속건물 측간, 방간채가 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담장은 솟을대문간과 남측 협문을 연결하고 있고, 높낮이가 다른 지면 위에 쌓다보니 부정형을 이루고 있다. 본채와 담장사이에는 외부공간으로 안마당, 큰사랑마당, 작은사랑마당, 건너방마당, 뒷마당 등을 구획하여 실공간과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갖도록 하였다.
의인정사는 이건 후에도 솟을대문을 이용하여 출입하는데, 솟을대문의 위치와 향이 다르다. 이건 전 의인정사는 좌향을 서향하고 북측 담장에 있는 솟을대문으로 출입하였으며, 이건 이후는 좌향을 동북향으로 바꾸고, 서북측에 솟을대문을 이건하여 진입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의인정사는 중문간을 향한 진입방식에서 사랑채를 향한 진입방식으로 바뀌었다.
민속원 의인정사는 대문간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마루간 모서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랑채 정면에는 활짝 피어 만개한 목련이 있다. 사랑채영역은 모서리의 사랑마루를 중심으로 동측으로 큰사랑방과 중문간이 있고 서측으로 작은 사랑방이 있으며, 이들 사랑방과 사랑마루의 마당쪽으로 툇간을 구성하여 외부에서 출입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특히 작은 사랑방 정면의 툇마루 서측 끝에 누마루를 꾸며 독특한 실 구성을 하고 있다.
안채와 안마당으로의 출입은 큰사랑방 옆 중문간과 작은 사랑방 동측의 대문간을 이용한다. 특히 중문간은 두간의 실 공간을 이용하여 한번 꺾어서 출입하거나 이중의 대문을 이용하여 출입하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안마당 쪽의 판문은 내외담의 역할을 한다. 중문간을 들어서면, 순례자는 깔끔하게 정리된 마당과 안채의 안방과 대청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채는 동측부터 안부엌, 안방 2간, 대청마루 2간, 고방 1간이 있다. 고방 정면에는 건넌방과 대문간 있다.
안부엌 정면에는 광, 부엌, 방, 광이 있다. 안방과 대청, 고방 정면에는 일자로 툇마루를 꾸미고, 안부엌쪽에는 수장공간인 벽장을 달아 놓았다. 그리고 고방과 건넌방 사이에는 판문을 달고 기단 위쪽마루를 통해 건넌방 마당으로 출입하도록 하였다. 건넌방 마당은 이건하기 전 사면이 토석담장으로 감싸여 있어 독립된 외부공간을 구성했었는데, 현재는 배면쪽으로 트여 있어 예전만 못하다.
돌아오는 길, 자동차 창문 너머에 그려진 나의 심상
안동의 문화유산이었던 옛집을 찾아가는 순례길에는 날씨가 따뜻해 주변에는 이미 개나리와 목련, 벚꽃이 활짝 피었다. 봄나들이 나온 여인들의 가볍고 산뜻해 보이는 한복 맵시는 나의 눈을 맑게 하고, 작은 사랑방 문틈으로 솔솔 새어나오는 웃음소리가 나의 귀를 즐겁게 한 오늘 순례 길을 뒤돌아본다.
‘못내 아쉬웠다.
그때 여유가 있었더라면,
한번만 더 생각했더라면,
아니, 이런 모든 것이 모두 나의 욕심이겠지,
지금 잘 있는데, 더 바랄게 있을까?
그래도,
안동을 떠날 때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
했을꼬? 또한,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만약 이들이 안동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보다 못할까, 지금보다 좋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현재 안동에 있는 것은 이보다 나은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여러분,
또다시 우리 문화유산이 타향살이 행 고속도로에 몸을 싣도록 하겠습니까?
이제 여유를 갖고 되돌아보고, 여러분이 아껴주어야 할 때입니다.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데, 어찌 남에게 사랑을 바라겠습니까?
한 번만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준다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아준다면,
문화유산은 되려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감동을 되돌려 줄 거라고 봅니다.
봄이 지나기 전에 사랑을 주어 행복을 짓는 문화유산 순례에 동행하면 어떠할는지.’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