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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가락에 신명 싣고 한평생 살아온 가송동제 풍물패 상쇠, 이일영(글/이미홍_객원기자)

가송동제 12진법 전수자 이일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가사리, 소두들, 올미재).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해마다 정월과 단오 때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지낸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정월대보름 하루 전인 열나흘날 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당산에 올라 공민왕 딸 신께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올렸다.

안동에는 공민왕과 그 가족을 모시는 동제가 여섯 곳이 있는데 도산면 가송리의 딸 당과 도산면 원천리의 왕모(공민왕 어머니)당, 예안면 신남리 정자골의 며느리당, 신남리 구티미의 딸당, 풍산읍 수리의 국신당, 그리고 안동시 용상동의 공민왕당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송리 당제는 좀 더 특별하다. 가송리 당제가 특별한 이유는 당주를 중심으로 풍물을 앞세우고 마을 사람 전체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참석하는 동제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새삼 주목하는 것은 가송리 당제에 함께하는 풍물 가락이 옛 장단과 풍물 노는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전통적인 기법 그대로의 풍물을 윗대에서 아랫대로 전수해주고 전수 받으면서 6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해방을 전후한 그 어수선한 시절 윗대 상쇠로부터 그 전통 가락을 고대로 전수받아 마을 사람들한테 되알려준 이가 가사리에 살고 있는 이일영(77) 씨다.

“만질라카면 소 한 마리 가져다놓고 만져라”
이일영 씨의 고향은 영양군 청기면이다. 영양에서 소학교 1학년을 마치고 여덟에 부모님을 따라 육로로 오십 리 길을 걸어서 이곳 가송리로 이사를 왔다. 해방 전후 무렵이었다. 식구들이 힘을 모아 산 아래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 가송리에 와서 자리를 잡고 소학교 2학년을 다시 다니고 있던 중에 부친이 다쳐서 몸져눕게 되었다. 농사일도 많았고 외동이라 모친을 도와 집안일을 건사해야 했던 지라 학교를 쉬게 되었는데, 그 뒤로 시절이 어수선하더니 난리가 나고 하는 바람에 학교와는 점점 인연이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어린 일영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게 있었다. 바로 동네 어른들이 치는 징과 장구 소리였다. 그 쇳소리가 좋아 일영은 풍물을 하는 어른들 곁을 맴돌았다. 징과 꽹과리와 장구 가락이 상쇠 어른의 손에 의해 신명나게 어우러질 때면 어린 일영은 징을 치고 싶어서, 꽹과리채를 잡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풍물 악기들이 귀하던 때인데다가 당제에 쓰일 귀물들인지라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은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게 하며 근처에 어리대면 멀리 쫓기 일쑤였다.
“만지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때는 다들 살기가 어려운 때라 마을에서 그런 악기들 한 번 장만하려고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큰맘을 먹고 십시일반 각출을 해서 어렵게 장만해서 두고두고 대물림 하면서 써야하는 거라 그랬는지 한 번 만지려면 소 한 마리 가져다 놓고 만지라고 어른들이 그랬어요. 그만큼 귀중하게 여겼고 안 쓸 때는 당집에 보관을 하면서 함부로 안했죠. 내가 하도 기웃기웃 하니까 그럼 너 한 번 배워봐라 해서 시작한 게 오늘까지 이래 오게 됐어요.”

“쇠 소리, 그게 그렇게 좋대요”
틈만 나면 풍물패를 쫓아다니는 그를 보고 상쇠어른이 발로 장단을 맞추는 진노법부터 하나 둘 풍물 장단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그 어른이 꽹과리를 치면서 진법을 선보이면 내가 따라하고 하는 식으로 진노법을 배웠어요. 어른은 옆에서 꽹과리로 장단 맞추고 나는 진노법으로 꽹과리 장단에 발맞추고. 그래 하다가 어느 정도 발맞춤이 되니까 이번에는 바꿔서 그 어른이 발맞춤을 하고 내가 꽹과리를 치고 하면서 꽹과리 치면서 발맞추는 걸 배웠어요. 남병학 어르신인데 그분이 한 오륙십년 상쇠를 하시다가 돌아가셨지요.”
그렇게 꽹과리를 다 배우고 징을 또 그렇게 배웠다. 풍물에서 게중 만만해 보이는 소고도 제대로 치려면 칠팔년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그렇게 배웠고 세월과 함께 그의 풍물 장단도 조금씩 익어가면서 나름대로 장단을 놀 수 있게 됐다.

“풍물 장단은 발맞춤이 기본이에요. 발맞춤으로 장단을 맞추는 진법을 잘 할 줄 알아야 풍물을 치면서 가락이 잘 어우러지게 할 수 있어요. 징만 잘 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발로 장단을 밟으면서 징을 치는 게 하나가 돼야 그때부터 장단을 가지고 놀 수가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신명이 있어야 돼요.”
시험 삼아 하나 둘 가르치다가 그가 제법 잘 따라한다 싶자 그때부터 정식으로 12채 전통풍물장단과 진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스무 살도 되기 전부터 동네에서 풍물을 할 때면 채를 잡고 풍물패 어른들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풍물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았고 풍물을 치며 가송리 일대와 청량산 일대 마을과 산자락을 타고 넘었으며 마을마을 집집이 넘나들며 지신을 밟아주고 액귀는 물러가고 복과 안녕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그럴 때면 그는 절로 신명이 났다.

“열일곱에 사십 리 길 걸어 장가갔지”
열일곱 살에 한 살 많은 박복남 할머니한테 장가를 들었다. 신부 집인 녹전까지 사십 리 길을 걸어서 장가를 들러 갔다. 가마꾼 둘을 사서 신부를 태우고 올 가마를 메고 가던 중간에 장에 들러 가마꾼에게 술 두 되에 고기 안주를 사주고 마을 입구까지 가마를 타고 갔다고 한다. 농사를 짓고 살았어도 촌에서 제법 밥술깨나 먹고 사는 집의 귀한 외동아들 티가 나는 대목이다. 신부 집에 가서 초례청에서 처음으로 신부의 얼굴을 봤다.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얼핏 본 복남 할머니의 얼굴이 밉지는 않았다고 했다. 무사히 초례를 치르고 다음 날 복남 할머니는 신랑이 가져온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다. 일영 할아버지가 외동아들이라 후사를 이을 손자를 하루 빨리 보기 위해 일찍 장가를 들이느라 어른들이 서두르셨다고 한다. 돌아기시기 전 손자를 보고 싶으신 그 마음이 간절하셨던 지 결혼한 지 세 해 만에 환갑을 20일 앞두고 부친이 돌아가셨다. 비록 손주를 안아보지는 못하셨지만 아들이 장가를 들어 일가를 이룬 모습을 보고 돌아가셨으니 그나마 걱정 없이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갑자년에 부친이 돌아가시고 이듬해인 을미년에 첫째 아들이 태어났다. 그 맏아들이 올해 쉰여덟이 된다.
그때는 배곯지 않고 밥 먹고 살만한 집으로 시집가면 시집을 잘 가는 거였다. 거기에다가 농촌에서 가마까지 타고 시집 왔으니 복남 할머니는 시집 하나는 정말 잘 오셨다 하니 할머니 왈,
“그 놈의 가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져. 평지에는 괜찮지만 오르막내리막에 산 넘어 오느라 산비탈 길에 가마 속에 들어앉아 있으니 이리 비틀 저리 쿵, 새신부가 뭐라 말도 못하고 재 넘어 올 때는 차라리 걸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배는 곯지 않았지. 그래도 그때만 해도 여기가 첩첩산중 오지에다, 물설고 낯설고, 시집살이가 다 그랬지 뭐. 올해로 시집 온 지 꼭 60년째라.”

위로 누님이 한 분 있다지만 귀한 외동아들에 외며느리라 시부모님이 아무리 좋으신 분들이라 한들 왜 시집살이가 없었을까? 거기에다 마을 앞은 강이요 뒤는 앞뒤 산에 가로막힌 첩첩산중이라 오가기는 둘째 치고 친정 소식 한 번 듣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가사리 마을이 얼마나 오지였냐 하는 걸 말해주는 복남 할머니의 기억 중 하나는 막내딸의 탄생과 관계된 것이라 잊히지 않는 것으로 가사리에 전기가 들어오던 날의 이야기다.
“올해 마흔 둘 드는 막내딸을 낳고 초칠일이 되기 전이었는데, 애를 놓고 방에 누워 있는데 윗집에서 뭐라고 와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마을이 대낮같이 환해지는 거라. 그때가 36년 전인데 그때 전기가 들어왔어. 그 전날까지만 해도 호롱불 심지 돋우느라 애썼는데, 딴 세상 같았지 뭐."

그래도 부부 금슬이 나쁘지 않아 4남 2녀를 낳고 살면서 큰 소리 낼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지난 달 서울에 가서 무릎 관절 수술을 하고 한 달간 병원에 있다가 퇴원해서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복남 할머니는 아직은 이부자리를 깔고 방안에 누워 있다가 우리를 보고 일어나 앉으셨다. 가만 보니 아직 다리도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불편한 데다 요즘 날씨마저 봄답지 않게 쌀쌀맞아 방문 열고 콧바람 쐬기도 쉽지 않아서 이래저래 답답하신 모양이다. 물 한 잔을 마시려고 해도 할아버지 손을 빌려야 할 판인데 복남 할머니 답답한 그 마음을 일영 할아버지는 아는 듯 우리를 굳이 할머니 있는 안방으로 데려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중간 중간 할머니 먹으라고 음료수며 휴지며 손앞에 놓아주는 것도 그렇고 별 말은 없지만 투박한 그 손길에 복남 할머니에 대한 정이 저절로 느껴진다.

육남매 키우느라 한창때는 농사만 만여평
예안으로 피난 갔던 때를 빼고 가사리 마을을 떠나본 적 없이 농사하고 풍물만 알던 일영 할아버지가 몇 년 전 잠깐 집 짓는 일에 재미를 붙여 콧바람을 쐰 적이 있다고 한다. 농사 일이 없는 농한기에 건축 일 하는 지인을 따라 다니면서 고택 짓는 일을 했다고 한다. 고택 지붕 이는 일을 했는데 제법 눈썰미와 재주가 있어, 구미, 선산으로, 대구 팔공산으로, 영천, 문경 세트장 일도 하고 퇴계 종택, 영양 주실 마을 고택 증축 등 일거리를 따라 보름이나 한 달, 일이 많을 때는 두 달 여를 집을 떠나 있기도 했는데, 그때 일영 할아버지는 어찌 보면 가사리를 떠나 나름 일탈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일영 할아버지의 결론은 가사리 마을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한 번씩 상쇠가 되어 징 채 잡고 신명나게 풍물을 노는 촌부의 자리가 더 편하더라는 것이다.

고택 지으러 다녀 보면, 젊은 사람들은 몇 날 며칠을 구슬땀을 흘리면서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돈 받자마자 술 먹고 유흥업소 가고 하는 데에 다 써버렸다. 그도 몸 힘들고 날 궂은 날이면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번 돈인데 허투루 쓰나 싶어 한 번도 같이 어울리지 않고 번 돈 그대로 복남 할머니한테 갔다 줬다고 한다.
“나도 술도 먹고 싶고 놀고 싶기도 했지만 가장인데 집에서 나만 보고 기다리는 사람 생각하면 못 그러지. 아무리 내가 번 돈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뒷생각 안하고 흥청망청 맘껏 돈 한 번 못 써 보고 살았지. 생떼 같은 자식들이 돈 달라고 입 벌리고 있는데 그게 되나?”
하는 일영 할아버지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다인 소박한 촌부다.

육남매 중 다섯이 모두 결혼해서 서울 경기도 쪽에 살고 막내만 사업을 한다고 울릉도에 들어가 있는데 뭐가 바쁜 지 아직 장가를 안 가고 있어 그게 걱정이다. 한창 때는 만여 평 농사를 짓느라 일손이 딸려 일꾼들을 사서 농사를 지어야 했지만 이제는 농사일도 예전만큼 많지 않다.
“자식들 학교 보내면서 한 뙈기 팔고, 결혼 시킨다고 한 뙈기 팔고, 사업한다고 한 뙈기 팔고 그렇게 하다 보니 남은 농토도 이제 몇 백 평 밖에 안 돼.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 농사일도 많이 하지도 못해서 지금이 딱 적당하지 뭐. 시간 나면 풍물도 치고. 더러 시내 풍물 하는 사람들이 장단 좀 가르쳐 달라 하면 가서 가르쳐 주기도 하고.”

가송리 동제가 알려지고, 전통적인 12채 풍물장단을 칠 줄 안다는 이유로 간혹 방송국에서도 찾아오고 신문사에서도 찾아오고 민속학과 학생들도 찾아오지만, 그 중에서 가장 반기는 이는 전통 풍물장단을 배우고 싶어 찾아주는 이들이다.
“이 나이에도 무언가 남에게 가르쳐 줄 게 있다는 게 좋지요. 나는 동제를 지내지만 당신을 받들고 섬긴다기보다 우리네 민속이고 우리 동네 윗대 어르신들로부터 이어져 오는 풍속이니까 지켜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풍물을 하는 건 그냥 좋으니까 해 온 거예요. 쇳소리가 좋고 그 장단이 좋아서 했지요. 그러이 후회는 없지요. 팔 힘이 빠지고 장단을 밟는 다리 힘이 약해지면 채를 놓으며 그뿐이지요.”

마을 안녕 빌어주니 어딜 가도 대접 받았지요
풍물 장단에는 12채가 있다. 건립은 당집 수리라든가 신당을 위한 큰 일이 있을 때 마을과 인근을 돌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지신밟기를 해 주면 빈손으로 그냥 보내는 법이 드물어 풍물꾼들은 어딜 가나 섭섭지 않게 대접을 잘 받았다. 때론 먹을거리를 내놓기도 했고 곡식이나 노잣돈을 들려주기도 했다. 가송 마을에서도 공민왕 딸 신당인 부인당 수리를 위해 가송리 마을에서부터 청량산 자락을 타고 왕모산성 동네까지 마을마다 들러 지신 밟기를 해주는 건립을 해서 당집을 새로 보수하고 당제를 올렸다. 그때도 쌀이 귀해 주로 콩이나 팥, 서숙, 겉보리 같은 곡식을 내놓는 집이 많았는데, 그걸로 무사히 당집을 중수할 수 있었다.

“청량산 두들 마을을 거쳐 산성리까지 일주일여에 걸쳐 마을마다 풍물을 놀면서 건립을 했는데, 공민왕 어머니를 모신 왕모당이 있는 산성리 마을에 건립을 갔을 때는 정말 대접을 잘 받았어요. 우리 마을 부인당이 공민왕 따님을 모신 당인데 그 당집 수리를 위해 딸이 엄마를 찾아왔다고, 우리 일행이 풍물 하는 사람이 열다섯 정도 되고, 심부름 하는 사람과 보조 등 다해서 한 스무 명 남짓 되요. 그런데 인원이 꽤 많은 데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정말반갑게 맞아주더라고요. 지신밟기를 하고 그 마을 분들이랑 같이 풍물도 한마당 놀고, 마을 사람들이 술에 음식에 뜨뜻한 잠자리까지 마치 한 식구처럼 잘 대해주던 게 생각나요. 당시만 해도 사람 사는 정이 있었어요. 풍물을 하면서 어딜 가도 푸대접을 받은 기억이 없어요.”

가송리와 강을 중심으로 강 건너 동쪽에 위치한 가사리는, 퇴계선생이 청량산 일대를 오가던 중 강가에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아름다워 ‘가송(佳松)’이라 하고, 강 건너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가사리라 하였다 한다. 퇴계선생의 제자 금난수가 이곳에 고산정을 짓자 두고두고 퇴계선생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면서 나무도 돈이 되는 시대가 되면서 가송이라는 이름을 있게 한 오백여 그루가 넘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가송리에 들어서면서 첫 번째 만나는 마을인 소두들은 마을 앞 낙동강 물이 ‘올미’라는 절벽에 부딪쳐서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이 소의 언덕 부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산정과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농암종택이 있는 올미재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천마산의 끝부분으로 말의 꼬리에 해당되는 오미산을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하니 가송리 골골마다 주저리주저리 사연이 얽혀 있다.

가송리 정월 동제로 말하자면, 정월 초이틀이 되면 당주를 정하고 동제 준비를 한다. 당주는 마을 사람들 중 흉사가 없는 이들 중에서 정하게 되는데 당주가 된 사람은 목욕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아침저녁으로 신당에 인사를 드리며 한편으로 마을사람들과 제물 준비를 한다. 신당인 부인당에 딸린 토지가 논밭이 300여 평 있는데 그 해 당주를 맡은 이가 농사를 지어 수확을 가진다.

당주는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당제를 준비할 때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을에서는 아녀자들은 신당 안 출입을 금한다. 당제를 올릴 때는 다 같이 참석을 하지만 당집 출입은 당주를 비롯해서 제사나 풍물과 관련된 남자들만 출입을 한다. 요즘은 가송리 동제가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민속학 공부를 위해서 학생들이 찾아오는 일도 많아서 당집도 전처럼 금녀구역을 고집할 수 없게 됐지만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 몸에 익은 습관이 있는지라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되도록 신당과 관련해서는 금기를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정월 열나흘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풍물을 앞세워 신당으로 향한다. 다른 곳에서는 정월 보름에 당제를 지내는 곳도 많지만 가송리에서는 열나흘 밤부터 당제를 시작해서 보통 날을 넘겨 보름날이 시작되는 한 시에서 두 시까지 당제를 지낸다. 당제는 크게 제사와 풍물이 같이 있는 게 특징인데, 당주를 비롯한 제관이 앞에 서고 풍물과 마을 사람들이 뒤따라서 길굿을 하며 당집으로 가는 것으로 당제가 시작된다. 제관들이 당 신에게 제를 먼저 올린다. 제를 올리고 난 후 당제에 참석한 사람들 중 그 날 신이 내린 이가 대를 잡고 앞서서 서낭당에서 당산나무 사이를 돌며 당 신에게 축원을 기원한다. 이때 풍물을 잡은 이들은 당산나무와 서낭당 사이를 앞뒤로 열두 번 전진과 후퇴를 하는 진법을 하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당 신 앞에서 한바탕 장단을 놀며 정성을 보인다. 이윽고 신이 흡족해 그 해 풍년과 마을의 무사 안녕을 내리며 대가 신당 쪽으로 기울면 꽹과리를 앞세운 풍물패가 성황당 주변을 돌며 성황당, 성황당, 하면서 당수를 친다. 그리고는 소지를 하며 술을 음복한다. 각 골 이름을 부르며 골 이름이 적힌 종이를 태우며 술 한 잔씩을 따른다. 가사리 하면서 한 잔, 소두들 부르면서 한 잔, 올미재 외치면서 한 잔, 진골, 큰 골, 버들골, 도장굴, 툇골, 학소대, 올미, 월명담, 귀티미 등등 그렇게 마을 이름, 계곡 이름, 산 이름, 물, 바위 이름까지 마을을 둘러싼 자연과 사람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술 한 잔씩을 따르며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당제는 끝이 난다.

농부의 고된 일상 견디려면 신명은 필수
모내기가 한창일 무렵에 지내는 5월 단오 동제는 한창 바쁜 농사철이라 제관도 좀 적고 정월동제에 비해서는 단촐하지만 풍물을 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신명이 나는 게 단오 동제다. 정월에는 날이 추워 동네를 돌며 풍물을 노는 길굿 과정이 아무래도 짧을 수밖에 없지만 오월동제는 마을 길, 들을 두루 돌며 풍년을 기원하는 길굿 과정에 절로신록과 더불어 풍물 소리에 절로 신명이 인다. 그럴 때면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도 잠시 고됨을 잊는다. 누구는 가락을 뽑고 누구는 꽹과리를 치고 누구는 소고춤을 추고, 상쇠가 되어 고깔을 쓰고 맨 앞에서 징을 치며 가락에 맞춰 춤메구를 맥일 때 일영 할아버지는 제일 신명이 난다.

신경림은 ‘농무’에서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할 때 꽹과리를 앞세워 징을 치며 장거리로 나서는 고단한 농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고달픈 현실을 잊으려고 오히려 더 신명나게 날라리를 불고 어깨춤을 추며 한바탕 장단에 설움을 풀어내는 우리네 촌부들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그건 일영 할아버지와 가사리 마을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아무리 좋아지고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네 농민들 사는 사정이야 거기서 거기이기 일쑤고, 고된 일상을 견디려면 신명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가송리 동제가 새마을운동이 한 차례 지나가고, 농촌이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자연이나 신적인 존재보다는 전기와 기계에 의지해 농사를 짓게 되면서 점점 변해가며 대부분의 농촌 마을에서 사라지다시피 하며 없어져 가는 현재에도 그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며 600여년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것과 관련해서 가사리가 첩첩산중 오지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혹자들의 어설픈 가송리 오지 설에 나도 한 표를 주고 싶다.

지금은 강 건너 이쪽 소두들에서 가사리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져 있어 농암종택 가는 길에 건너다보노라면 그저 경치 좋고 평화로운 천혜의 마을로 보이지만 지금의 다리가 놓인 것은 불과 20여년도 안 된 1995년의 일이라고 한다. 지금의 다리가 놓이기 전 한 때 가송리는 낙동강 출렁다리로 유명했었다. 그 출렁다리가 놓이기 전인 1986년 이전까지만 해도 가사리 사람들은 배를 타지 않고는 안동이나 봉화로 나갈 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배를 타고 건너고 겨울에는 섶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 추운 겨울에 마을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섶다리를 놓는데, 봄이 되어 얼음이 녹아 물이 불어나면 섶다리가 떠내려가 마을이 섬이 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다가 1986년 마을회관을 지으려고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회관보다 더 급한 게 다리 놓는 거라고 그 돈으로 마을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 다리를 놓는 일에 매달렸다. 새마을운동 바람은 거셌지만 산골마을까지 그 혜택이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에서 다리 놓아주기 기다리느니 우리 손으로 놓자 하고 십시일반 더 각출을 해서 남들이 말도 안 된다고 하던 그 다리를 가송리 사람들이 놓았다. 철공소에 가서 철판을 잘라 원형으로 둥글게 만든 뒤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응고시킨 것을 철근과 나무로 연결을 시켜 만든 게 그 유명한 출렁다리였다. 건너면 물살에 출렁출렁 거리던 출렁다리, 가사리와 소두들을잇는 그 다리를 놓을 때 가송리 사람들은 다들 한 마음이었다. 그 출렁다리는 10여년을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10년 뒤의 어느 여름 날 큰 장마가 진 다음 날 아침 잔해만 남기고 떠내려가 버렸다. 그게 9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지금의 다리, 많은 게 변했지만 가송리 사람들은 그때의 그 마음들을, 모두 한 마음이 되었던 그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청량산 일대에 숨어든 빨치산, 인민군들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피난을 갔던 때도 고스란히 지켜왔던 당집 수호와 끊지 않고 이어온 당제의 정신이, 서낭당, 당산나무, 산신각, 그런 것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가송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구심점이 혹시 동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윗대 어른들이 계속 해오던 귀한 일 아닙니까
“6·25 당시에 한 1, 2년 중단이 되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때도 마을에 남아있던 이들이 정월과 단오에 당집에 물 한 그릇이라도 떠 놓고, 술 한 잔이라도 올리고 절을 했다고 해요. 피난 가 있어 형편이 넉넉지 않아도 밤에 뫼를 지어 와서 조용히 제를 지내고 간 사람도 있었고요. 그때를 빼고는 내가 알기로는 어렸을 때부터 이날 이태까지 우리 마을에서 동제를 거르는 법은 없었어요. 우리 할아버지 윗대 어르신들도 그랬다 하고 우리가 보고 자란 것도 그랬고요. 당연한 일로 알고 지키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우리 죽을 때까지는 그렇지 싶어요. 우리 아랫대에서는 또 어떻게 바뀔까 싶지만, 그래도 이 가송리 마을에 사는 한은 윗대에서 아랫대로 순차적으로 내려가는 게 맞지요. 나도 앞으로 얼마나 더 풍물 채를 잡을 수 있을지 몰라서 내가 아는 걸 사람들한테 되도록 많이 전해주고 싶어요. 한 마을에 사는 우리 생질도 오래 전부터 나한테 배워서 이제는 나보다 잘해요. 바로 당집 건너편에 사는데 앞으로는 이제 저들 세대가 이끌어 가야지요.”

실제로 생질 되는 금세연(59) 씨는 현재 도산면의 풍물대표를 맡고 있어 매년 도산면 대표로 안동민속축제 풍물경연대회에 참가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일영 할아버지가 그러했듯 세연 씨도 어려서부터 봐 온 동제와 익숙한 풍물 장단에다 외숙인 일영할아버지에게서 특별히 배운 풍물 실력을 지금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올해 안동시 가송리 마을의 동제가 안동시의 추천으로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을 받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매년 동제를 지낼 때마다 시에서 조금씩 지원을 받긴 했지만, 올해는 우리 가송리 동제가 전통을 잘 보존해 오고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문화재청의 특별지원금을 받게 되었어요. 앞으로 계속적인 지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이 지내오고 있는 동제가 인정을 받는 거 같아서 뿌듯하고 좋지요. 지원받은 돈으로 마을 사람들이 의논해서 제일 먼저 우선 낡고 오래된 징을 네 채 새로 구입했어요. 지금 신당에 고이 모셔 놨는데 이번 단오 때 제대로 신고식을 해야지요.”
말하시는 폼이 하루 빨리 채를 잡고 새 징을 길들여 한마당 신나게 놀고 싶은 표정이시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