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혼탁한 사회의 ′자각의 꽃′으로 피워나가자(글/손상락_안동시청 문화예술과 세계문화유산담당)
안동은 누구나 묵향(墨香) 그윽한 유향(儒鄕)의 이미지를 떠올릴 만큼 수 백 년 동안 유학적 이념과 가치를 올곧게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안동의 이미지는 그동안 수많은 세계적 석학과 진객들이 다녀간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지난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안동방문은 전 세계인들에게 안동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때만 해도 세계의 진객이라 불리던 여왕의 안동 방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무엇 때문에 여왕이 안동이라는 곳을 방문하는지에 대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0년에 하회마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안동이 보듬고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하고 이어가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영국여왕의 안동방문에 대한 세인들의 의문에 답하는 준거가 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초 한겨울의 매섭던 한파도 물러가고 봄기운이 언 땅을 녹이며 모두에게 새봄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던 날, 안동은 또 다른 세계의 진객을 맞이했다. 바로 공자와 맹자의 종손들이 안동을 찾은 것이다. 유교의 주창자인 공자와 맹자의 후손들이 유림의 고장 안동을 찾고 도산서원의 퇴계 선생 사당에 알묘하고 향사에 참여했다는 것은 전 세계인들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고 본격적인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 때에 유교의 주창자인 공자와 맹자의 후손들이 유림의 고장 안동을 찾았다는 것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안동문화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마침표를 찍은 것과도 같다. 이는 안동사람들이 오롯이 이어가고 있는 전통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안동사람들의 문화역량을 전 세계인들에게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자와 맹자 종손의 안동방문은 언론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공자, 맹자의 종손이 왜 중국이 아닌 대만에서 왔느냐하는 물음과 불혹의 나이를 앞둔 39세의 공자 79대 종손과 맹자 76대 종손이 무엇 때문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찾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안동과 공자 가(家)와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경신년(1980)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 박사가 도산서원의 원장으로 추대되어 도산서원을 찾고 퇴계 선생 사당에 참배했다. 이때 선생은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휘호와 퇴계 선생을 흠모하는 마음을 글로 남겼다. 이 휘호는 아담한 빗돌에 새겨져 서원 입구에 세워둠으로써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동이라는 곳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해주고 있다. 추로지향이라 함은 공자와 맹자와 같이 학문과 교화가 남아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안동은 공자와 맹자와 같은 성현이 태어난 고향과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후 2001년 “퇴계탄신 500주년 기념” 행사시에는 공덕무 여사가 참석해 인연을 이어 갔다. 그 후 2008년 공덕성 박사가 타계하자 안동시와 박약회에서 대만으로 가 조문하고 퇴계 종가에서는 선생과의 인연을 기리며 이별의 아쉬움을 제문으로 지어서 보내기도 했다. 또 지난 2010년 이동은 퇴계 선생 15대 종손이 타계하자 대북에서 조문할 만큼 두 집안의 인연은 남달랐다. 이러한 인연이 임진년 봄, 공자 종손 부부와 맹자 종손이 함께 안동을 찾게 되는 디딤돌이 되었으며 두 가문의 인연은 유교사적으로도 초유의 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연은 공자 - 맹자 - 주자 - 퇴계로 이어지는 유향의 향취로 2500년이나 지속해 오고 있다. 옛 성현들은 사상적 이론을 논하고 집대성하였다면 오늘을 사는 후세들은 그 학문적 성취를 토대로 현실적이고 실천적 행동규범으로 접목해나가는 전도사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유학은 공자가 창시한 인(仁)의 사상에 맹자의 의(義)가 더해지고, 주자를 거처 퇴계 선생의 경(敬) 사상으로 이어지면서 학문적 성취를 일구어낸다. 이러한 유향의 향기는 1570년 퇴계 선생께서 역책하신 이후 442년 만에 인, 의, 경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이는 유가사상을 새로운 발전의 장으로 올려놓게 된 것이다.
공자, 맹자 종손들의 안동방문의 피날레는 47개 동성마을에 88개의 종가를 대표하는 안동의 종손 종부와의 만남의 자리였다. 봉제사와 접빈을 소중한 가치로 삼고 종가의 혼을 지켜가고 있는 안동의 종손종부와의 만남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자리였다.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유교적 향념은 끈끈한 학문적 맥락으로 소통하며 서로의 가슴을 적시고도 남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공자 종손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한국 유가문화의 발원지”라 높이 칭했다. 종손은 처음 안동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언론의 쏟아지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어 놓지 못할 만큼 조신했다. 그러나 도산서원을 방문해서 성학십도의 심오함을 통해 군자의 법도와 성인들의 학문의 뜻을 헤아렸고, 향사례에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 지닌 유향의 깊이를 느끼며 조금씩 안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불혹도 안 된 젊은 나이인 공자와 맹자 종손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공자와 맹자만 존재했지 해동주자로 존숭되는 퇴계 선생의 학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퇴계 선생에 대한 언론의 쏟아지는 질문에 잘 알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로 대신하는 겸양지심의 마음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들의 행동도 눈빛도 달라졌다.
공덕성 박사가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명했던 유향의 본향! 30여년이 지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을 중시하며 공동체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고을에 걸맞게 공수장 종손은 인민애물(人民愛物)이란 휘호를 남겼다. 종가 방문시마다 전통을 중시하며 화목하고 단합된 가족들의 모습에서 진정 유학적 덕목이 무엇인가를 헤아렸을 것이다. 공자 79대 공수장 종손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종가문화는 가족과 가족 구성원을 견인하는 “가장 세계적인 문화”라고 평가했다. 또한 유림과 종가 그리고 시민과 공무원 모두가 예와 의를 통해 유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데 감탄했다고 방문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들은 귀국 보고에서 ‘안동은 무력이 아닌 향약의 자율의 힘으로 유가의 도를 실천해 나가는 곳’이라 밝히며 불천위 종손, 종부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권영세 안동시장의 축하 인사를 “해와 달이 동시에 빛나는 기쁨”이라고 전하면서 공자, 맹자와 퇴계선생 등 성현들의 학문적 업적과 성취를 높이 기렸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문화혁명을 겪으며 유교적 전통이 사라져 버렸다. 유학의 발현지이면서도 유교적 전통과 제향을 비롯한 모든 덕목들이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학의 종주인 공자와 맹자의 후손들의 눈에 비친 안동은 250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뚝심과 옹고집 하나로 지켜 온 유향의 향취가 동방의 아늑한 고을에서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데 감격해 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적 덕목은 21세기 물질만능으로 혼탁해져가는 사회를 바로 세울 “자각의 꽃”으로 피어나야 한다. 이번 해와 달이 동시에 빛나는 기쁨과 같은 양국 종손들의 교류는 유학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다름을 추구하고(以同求異),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협력을 모색하는(以異求同) 계기가 될 것이다. 추로지향(鄒魯之鄕)과 인민애물(人民愛物)이란 휘호의 변천과 같이 유향의 향취 또한 변할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집성촌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는 종손, 종부에 의해서일 것이다. 변화의 거센 파고 속에서의 이러한 만남은 유학의 인간존엄정신을 통해 21세기 지구촌을 건강하게 지켜 낼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도학 연원”으로 영원히 빛나게 할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