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찌개, 포실한 햇감자와 차돌양지의 조우(글/권준호_임동 팔도식당 주인장)

농사란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수확을 할 때 그 맛이란 게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라 힘들었던 파종과 김매기 등 작업행위의 수고로움을 홀라당 망각하고 갓 따낸 그 열매의 단맛에 취해 희희덕대기 일쑤다. 그러다가 이듬해가 오면 다시 흙밭 근처를 기웃거리며 ‘올해도 또 이렇게 힘든 농사를 어찌 짓누?’ 하며 시작하기도 전에 고개를 주억거리곤 한다.
그 여럿 농사들 중 햇감자를 캘 때가 그러한데 예전 같으면 힘든 겨울 지나 유일하게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첫 수확물이 산나물 빼고는 감자였는지라 이 햇감자가 나올 때 즈음이면 시골 촌놈들 얼굴에 겨우내 희끗희끗 붙어 있던 버짐 같은 것들이 사라지는 때도 아마 이때쯤인 것이다.


요즘엔 해당 관청에서 씨감자를 따로 개발 및 판매를 하는지라 종자가 감자의 맛이나 거의 비슷비슷 하지만 예전에 유난히 포슬포슬한 감자를 캐서 파는 집의 그것은 순식간에 동이 나게 마련이었다. 요즘도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감자의 미덕은 크기도 아니고 색깔도 아닌 바로 ‘분이 나느냐 아니 나느냐’ 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익은 감자를 젓가락 따위로 찔렀을 때 힘없이 쌀가루처럼 얼마나 잘 부셔지는가에 따라서 그 우위를 정한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쌀이 귀했던 시절 떡을 만들어 먹던 쌀가루의 대체제로서의 그것을 감자에서 대리만족하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감자이야기를 왜 이렇게 늘어놓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 먹었던 찐 감자의 추억은 나쁘지 않았으나 어른이 돼서는 사카린나트륨과 소금으로 밑간을 해서 먹었던 달짝짭조름 했던 그 추억의 감자가 굳이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음도 이상하지 않고, 그렇게 좋아했었던 고추장과 마늘로 양념장을 해서 먹었던 감자볶음도 별로 젓가락이 안 가는 것이 여삿일이다. 또 이 지방 명물인 안동찜닭에 들어있는 왕감자에 눈길조차 주지 않음은 어쩌면 변한 입맛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허릿살에 탄수화물이 독약이란 말을 들은 바가 있어 괜히 녹말덩어리인 감자를 무의식중에 멀리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쉽게 말해 내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각설하고 맛이 없다!!


예전엔 예쁜 새댁을 보면 몸이 먼저 반응을 했지만 이젠 ‘아, 여자 사람이란 것이 이렇게 예술작품일 수도 있구나’ 라며 뇌가 먼저 반응을 한다는 슬픈 현실. 맑은 소주 한 잔 칼로리나 감자 한 알 열량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굳이 살찜의 원인을 감자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애주가의 독특한 셈법이니 더 이상 토를 달지 말고 이해하시길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손님에게 드릴 국거리를 썰다가, 차돌양지에 붙은 자잘한 하얀 차돌지방이 붉은 가슴팍고기에 자잘하게 좁쌀처럼 퍼져있는 부위를, 약간 길쭉길쭉하게 한 줌 썰어 점심 때 요리해 먹을 요량으로 덜어 두었다.


재미있는 것이 소의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다른 허접한 부위도 의외로 좋은 향미와 풍미를 내기도 하는데 바로 요놈이 그러한 것이다. 가끔씩 판매를 하다가 정말로 맛있어 보여서 남겨둔 부위가 영 섭섭한 맛을 낼 때도 있거니와 자투리가 남아서 팔지도 못하고 술안주나 할까 해서 먹은 고기가 한우의 진정한 풍미를 낼 때의 그 느낌은 먹는 행위(食 )에 대해서, 혹은 소고기의 맛(味)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할 때가 있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오늘 점심에 먹은 한우찌개 -차돌양지 한줌과 깍둑썰기한 포실한 감자의 만남- 가 의외로 인상적이어서 후텁지근한 초여름의 날씨와 어울릴 것 같아 몇 자 끼적여 보는 것이다.
먼저 매콤한 청량고춧가루와 일반 고춧가루를 조금 준비해서 차돌양지 한줌과 마늘이랑 넣어서 센 불에 볶는다.
얼추 양지에서 나오는 지방과 고추붉은색이 어우러지면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굵은 소금을 넣는다. 기호에 따라서 육수와 조미료를 넣으시던지 말던지 그대의 뜻대로 하시고 물을 넣어서 감자가 익을 때까지 센 불에 끓인 후 어느 정도 익으면 파를 팍팍 넣은 후 국물이 자작할 때까지 중불로 끓여내면 완성!


햇감자의 노란색과 금방 넣어 아직 죽지 않은 푸릇푸릇한 대파의 신록색과 어떤 더위도 나보다는 매웁지 못하리라. 청양고추의 붉은색에서 나오는 이 강렬한 기(氣)와 색(色)들을 한 몸에 빨아들여 보기에도 쫄깃하고 씹으면 육즙이 금방 붉은 혓바닥을 감싸버릴 것만 같은 차돌양지 한 점의 그 맛은 과연 여름에 잘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웬만한 여름보양식을 저 뒤로 줄 세울 법한 기세다.
뜨겁고 붉은 국물을 먼저 뜰 것인가, 굵은 천일염에서 나온 짭잘한 단맛이 깃든 차돌 양지 한 점을 먼저 씹을 것인가, 아니면 입에 넣자마자 부서져 버릴 것 만 같은 포실포실한 감자를 먼저 취할 것인가, 그 요량은 이제 그대에게 달렸다.
단 한 가지. 칙칙폭폭 압력밥솥에 지은 윤기 나는 밥을 잊으면 절대 안 되는 것은 그대도 잘 알고 있을터!
- 장마가 지 할 도리 할 요량으로 다시 날이 꾸물꾸물 해지는 초여름 오후.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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