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하회마을 우체부 김태원(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연이은 비가 한 차례 지나가고,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7월의 마지막 주는 유난히도 더웠다. 46번 버스가, 그것도 평일에 북적일 일은 잘 없는데 버스 계단을 올라서고는 발 디딜 자리가 없을 만큼 북적이는 걸 보니 휴가철이구나 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슬쩍 둘러보니 거의 배낭족들이다. 휴가나 주말과 같은 공휴일엔 한산한 서울과 달리 안동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안동역에서 시내를 지나 풍천면을 가로질러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46번 버스가 붐비는 일은 평일엔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다. 장날이면 모를까.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서 휴가철이면 하회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도 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하회마을은 지역민에게도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승객들로 꽉 들어찬 46번 버스가 하회마을 정류장에 들어서자 그 많은 승객들은 쏟아지듯,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회마을에서 내렸다. 하회마을까지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잠시 그늘에 몸을 맡겼다. 더위가 머리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처럼 7월의 무더위가 실감났다.


21세기 하회마을의 구한말 복장의 우체부 김태원
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21세기를 사는 하회마을에는 우리나라의 근대우편제도가 도입된 직후의 구한말 시대의 우체부 복장을 한 우체부가 있다. 바로 우편집배원 김태원 씨다.
풍산우체국 우편집배원 김태원 씨에게 매주 수요일은 특별한 날이다. 유니폼을 입고 우편물을 배달하는 오전 업무를 끝내고 오후가 되면 ‘변신’을 하기 때문이다. 풍산우체국 내 관할인 하회마을우체국에서 일을 맡고 있는 그는 매주 수요일이면 다른 동료들과는 조금 다른 복장을 하고 일을 한다. 바로 구한말 시대의 우체부 복장이다.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하얀 고무신 안에 흰 양말을 매치해, 구한말의 우체부 복장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가방 또한 한쪽 어깨에 둘러매는 연한 갈색의 가죽 가방으로 그 시대에 쓰던 모양 그대로라고 한다. 이렇게 세심하게 소품 하나에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는 김태원 씨가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같이 배달을 하는 곳이긴 하나 하회마을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나 지역민에게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계승하자는 차원에서 매주 수요일이면, 하나의 이벤트를 하고 있는 셈이다.


김태원 씨가 구한말 시대의 우체부 복장을 입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이다. 어느 덧 1년하고도 반이 다 되어간다. 처음 시작하고는 반응이 좋아서 관광객이 많은 8월부터 하회마을을 들어올 때마다 매일 두루마기를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회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매일 입자니 그가 일을 하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많았을 듯하다. 다시 올해 들어서는 주 1회인 수요일로 정해놓고 입고 있다. 오히려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보다 한정된 시간이 볼 수 있다는 희소성도 있으니 왠지 더 명물답게 느껴졌다.


김태원 씨의 하루 업무는 오전에 풍산우체국으로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편물을 정리해 배달할 곳들을 파악한 뒤 오전엔 풍천의 다른 지역을 배달하고 오후에 하회마을로 들어온다. 현재 하회마을에 거주가구가 123가구 정도인데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은 90가구가 넘는다고 한다. 작고 외진데다, 관광명소인지라 우편집배업무가 많은 곳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게다가 편지는 줄었지만 각종 고지서에 택배물량은 배로 늘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일이 더 많아 졌단다. 사실 김태원 씨의 첫 인상은 서글서글한 인정많은 모습이기도 했지만 수줍음도 많이 탈 것 같은 소박함도 느껴졌다. 그런 그가 눈에 띄는 두루마기 복장을 하고 관광객도 많고 매일 같이 보는 주민들 사이를 어떻게 다녔을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많이 쑥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런 복장을 하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인사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색했던 일은 사진을 찍자고 부탁받는 일이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덤비는(?) 나이어린 여학생들이 팔짱을 끼며 달려들 때는 어찌할 줄 몰랐다니, 수줍음 많은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하지만 벌써 구한말 우체부 모델 경력도 햇수로 2년차 아니던가. 이제는 포즈며 표정까지 베테랑이다. 주위에서 얼굴도 딱 하회탈 이라며 두루마기가 천상 잘 어울린다는 칭찬도 곧잘 듣는 다며 은근슬쩍 자랑도 한다.


김태원 씨와 함께 하회마을의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오후 일정을 동행했다. 일반인 출입금지라고 쓰여진 고택의 안채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가는 그가 하회마을에서 만큼은 유일하게 출입금지 구역이 없는 사람이었다. 반바지에 반팔 차림을 한 필자도 더워서 등줄기며 이마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물며 겉만 두루마기를 입은 것이 아니라 속옷까지 모두 한복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그는 어떨까 싶었다. 다행히도 시원한 모시 재질의 한복이었지만 35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는 흐르는 땀을 이겨낼 장사가 없다. 그의 이마며 콧등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덥지 않냐는 질문에 쥘 부채를 꺼내며 오히려 필자에게 건네준다.
더울 땐 더위로 고생, 추울 땐 또 어떨까 싶었다. 물으니 다행히도 동절기인 12월에서 1월과 2월 까지는 하회마을 구한말 우체부도 휴가라고 한다. 추위도 추위지만 무엇보다 겨울엔 하회마을에도 사람이 뜸해서란다. 때문에 구한말 우체부 복장차림은 하지 않고 일상 근무복을 입는다.


쥘 부채을 촤-악 펴서 손에 휘이휘이 바람을 일으키며 걷는 그의 뒷모습이 100여 년 전의 우체부가 하회마을을 걷고 있는 듯 보였다. 부용대를 곁에 두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나무 그늘을 듬성듬성 지나니 더위도 잠시나마 잊게 되었다.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나서는 예전에는 풍천 우체국이었던 것이 하회마을우체국으로 우체국명도 변경이 되었다. 그만큼 하회마을은 관광객도 많아졌고 이곳을 살고 있는 지역민들에게는 또한 자긍심이 높아졌다.
그를 뒤따라가던 중 마당 한 가득 옹기가 놓여 있고 시원한 물을 파는 한 집 앞에 푯말이 눈에 띄었다. ‘아이스크림 파니더. 얼음물, 음료수 있니더. 만물상 봤니껴.’
세계문화유산 21세기 하회마을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유산이다. 그 안에는 21세기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체전부’도 있다.
오전과 오후, 100년을 넘나드는 체전부 김태원 씨는 오늘 같은 날은 때에 따라서 다른 동료들이 배달 업무량이 많기도 하다며 동료에게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체부 인생 30년
지난해 구한말의 우체부 복장을 입는 행사 첫날, 아내가 왔었다. 이제 ‘유명인사의 아내가 됐다’며 우스갯말을 전했다는 아내의 말에서 은근히 남편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묻어났다. 김태원 씨가 우편집배업무를 시작하게 된 것은 스물한 살 때였다. 197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엔 전배라고 하는 전보 배달이 있었고 그는 전배원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전배원을 하다 군대를 다녀온 그는 제대 후인 1983년부터 우체국에 정식으로 입사를 했다. 그리고 두해가 지난 1985년 지금의 아내인 남혜경(51) 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의 아내와는 중매로 만났다. 두어 번 만나고 마음에 들어 결혼을 하려고 했다는 김태원 씨와 달리 아내는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고 야야, 내가 보니께네 서글서글하니 좋아보이더라.’라며, 친정 엄마의 등살에 떠밀려 결혼을 했다며 속내를 털어놨단다. 장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결혼한 김태원 씨는 새초롬한 새색시의 얘기에 외려 장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던 듯 했다.


일직면에서 나고 자라 평생 안동을 떠난 적이 없는 그가 맞은 아내 역시 일직면의 이웃 동네 처자였다. 원리와 망호리에서 살던 두 남녀가 중매를 봐 단박에 결혼했지만 그는 아내만한 여자가 없다며 고마움을 대신했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에도 불만을 내색한 적 없고 늘 한결 같이 아이들 건사 잘하며 내조를 해오고 있는 아내이다. 쉬는 날이라고 해야 주말이 다지만 그 날도 온전히 쉬지는 못한다. 가끔 아내와 등산도 다니지만 처가와 본가를 드나들며 결혼이다 뭐다, 집안의 대소사를 보고 다닐 일이 많을 때인지라 막상 휴일이 없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다복하게 두고 있는 그는 현재 아내와 큰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올해 대학교 4학년인 아들은 대구에 나가 있다. 내년이면 벌써 우체국에 근무한 지도 30년인 그는 딸아이는 안동대 작곡과를 졸업시키고 아들내미도 하고싶은 공부를 시키느라 대구에 내보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침에 자는 모습을 보고 나갔다가 들어와서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다였다.



그 옛날, 어두운 산길 자전거 달려 전했던 부음
그에게 30년의 집배원 삶이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가족을 성실하게 부양했다는 아버지로서의 안도도 있겠지만 30년을 되돌아볼 적에 무엇보다 하회마을의 우체부란 작은 테마가 그의 일에 긍지를 높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전배를 할 때의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 한 살 이었다. 그가 살던 일직면 전체를 담당하고 있었고 이른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전보는 그만큼 시간을 앞다투어 전달해야하는 일이었기에 365일 숙직실에서 자는 것이 당연
했다. 다행히도 자전거가 있어 걷는 일은 없었지만 주로 전보란 좋을 일보다 나쁜 일이 많았고, ‘아무개 아버지 사망’ 혹은 ‘ 아무개 긴급 상황 상경바람’ 이런 급박한 내용들이 많았기에 전달하는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일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개 한밤중이나 꼭두새벽에 그런 소식들을 전하면 다들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 일어났다. 배달을 하는 시간도 대중이 없어 전보가 들어오면 숙직실에 있다가도 바로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넘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노루며 토끼, 너구리가 튀어나오는 일은 예사고 한적한 시골길을 희미한 자전거 헤드라이트 하나에 의지하며 갈 때에는 머리끝이 쭈뼛쭈뼛 섰다고 한다. 지금은 자전거 헤드라이트에 건전지를 넣으면 건전지가 다할 때까지 환하지만 그때는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야 전력이 만들어져 자전거 헤드라이트에 불이 들어왔으니, 느리게 밟으면 그나마 불빛도 없었다. 있는 힘껏 자전거 패달을 돌려야 불이 껌뻑껌뻑 들어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두운 산길에 불도 없는데 자전거 펑크가 날 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1984년 들어서면서 그가 제대 후 우편집배 업무를 본격적으로 할 때는 다행히도 오토바이가 나왔다. 물론 요즘이라고 해서 예전보다 꼭 좋아진 것만은 아니다. 밤중에 머리가 쭈뼛쭈뼛 설 일도 없고 기동력도 훨씬 좋아졌지만 요즘은 개한테 물리거나 좁은 오솔길에 오토바이가 넘어져 우편물도 쏟기고 온 몸이 욱신욱신하게 멍드는 일도 있다. 그가 가장 질색해 하는 일은 개한테 물리는 일이었다. 빨간색 오토바이가 개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짓는 건 보통이고 사람을 물기도 일쑤다. 개한테 적잖이 물린다고 하니 충격이기도 했지만 그가 다니는 촌마을의 정황이 어떠한지 새삼 느껴졌다. 차로 삼심분이면 가까운 외곽에서 시내도 올 수 있는 안동도 시내는 도시와 가깝다. 도시에서 개는 집에서 품에 안고 기르는 애완견 정도로 생각하니 ‘개가 문다’라고 했던 그의 말에 이 좁은 동네에서도 우리가 다른 정서에 살고 있는가, 하는 오묘한 괴리감이 들었다. 아무튼 개한테 물린다는 그의 말에 놀랍기도 하고 상당히 걱정도 들었다. 개 주인들은 ‘우리 개는 안물어요.’ 한다지만 그건 개 주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우리 모두 수긍했다. 개한테 물리는 일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PDA를 손에 든 구한말 우체부
그의 고향인 일직면에는 형님네 가족과 모친이 살고 있다. 김태원 씨는 4형제 중 둘째다. 올해 여든 아홉이 되신 어머니는 요즘들어 딸 하나 없는 것을 부쩍 서운해 하신단다. 그에게 일직면, 풍천면은 모두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다. 다른 동료들처럼 시내로 나와서 지역을 바꿔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도시가 싫은 건 아니지만 사람냄새 나는 흙 길이 좋고 퇴비 냄새 나는 촌집이 더 좋단다. 앞으로도 시내로 나가고픈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촌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가 누구보다 정이 가득한 사람이 아니어서 일까 싶다. 지금은 도로가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엔 일직이나 풍천에 들어가는 길이 좋지도 않았거니와 시간도 오래 걸렸다. 매일 우편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우체부는 교통이 불편한 촌에 사는 어른들에게는 산타와도 같았다. 어제 ‘풀스타’ ‘끝내기’ 농약을 사가지고 들어갔으면 오늘은 경운기 부속품 하나를 또 사가지고 들어간다. 그가 흔쾌히 수락하는 잔심부름이나 작은 부탁도 어른들에게는 큰 고마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루는 결혼 예단인 이불이 택배물로 들어왔다. 커다란 비닐 팩으로 쌓여있고 손잡이가 달려있어 그는 오토바이 뒤에 예사로이 손잡이를 끼우고 덜덜덜, 촌 길을 달렸다. 이불을 배달할 집에 도착한 그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뒤를 돌아본 순간 놀라고 말았다. 오토바이 뒤에는 손잡이만 대롱대롱 걸려있고 이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온 길을 되돌아갔으나 떨어진 이불은 없었다. 급한 마음을 안고 물건을 받을 할아버지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집 어르신은 한사코 괜찮다며, 이불 받은 셈 치면 된다며 아무말 없이 그를 돌려보냈다.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했지만 수일이 지나도 마음속에 그 일이 남아있던 그는 결국 새 이불을 사 할아버지 댁에 가져다 드렸다. 한참 젊었을 때에는 결혼을 한 그였지만 ‘사위 삼고 싶다’는 말도 곧잘 들었을 만큼 살갑고 정 있는 그의 성격이 어른들 눈에는 꽤 미쁘게 보였을 것이다. 대문이 활짝 열린 집에 사람이 없으면 알아서 댓돌위에 우편물을 두고 나오곤 한다. 그래도 우편물이 분실되거나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오랜 시간, 서로간의 신뢰가 여전히 남아있는 시골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정 깊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하회마을에서 두루마기를 입고 유명세를 조금 타기 시작할 때에는 사기 아닌 사기도 당했었다. 정자라는 이름까지 정확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정자가 전화를 해서 아들이 잡지사 면접의 마지막 관문으로 잡지정기구독자를 모집해야 한다는 부탁을 하기에 자식 가진 부모 심정으로 선뜻 허락을 했더랬다. 하지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서 수소문을 해보니 그 정자는 초등학교 동창 정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나간 일이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가 왜 시내로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슬며시 공감이 되었다.


하회마을을 한 바퀴 도니 시간이 금세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오늘의 일정 때문에 일부러 오전에 일정 물량을 벌써 돌리고 가벼운 우편물 몇 개만 남겨두었다는 그의 배려에 고마움이 느껴졌지만 부러 힘든 시간 일을 배로 하게 한 탓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니 하회마을의 우체통 앞에 다다랐다.
부모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대문 앞에서 연애편지를 기다리는 어느 집 아가씨는 이른 아침 벌써 우체국에 전화를 넣어 오늘 우체부 아저씨가 몇 시쯤 우리 동네를 지나는지 확인 전화까지 했을 것이다. 2012년, 김태원 씨는 600여 년의 역사가 살아있는 하회마을에서 구한말 우체부의 옷을 입고 1980년대 어느 날의 일화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하회마을 우체통을 여는 그의 손에는 익숙한 듯 PDA가 들려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 갓 아래 그을린 그의 모습은 어느 시대 사람인가 순간 헛갈렸다. 더위 탓인가 싶다.




숨은 이등공신
사실 하회마을에서 매주 수요일 두루마기 복장을 입어야 하는 김태원 씨에게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옷을 보관할 적절한 보관소도 편하게 옷을 갈아입을 장소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안내소 한 켠에서 미안함 반 눈치 반, 좁은 곳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에는, 자신의 물건을 제대로 놔둘 곳도 없이 서둘러 일을 하고 돌아오곤 했을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이고 처음에는 옷 하나 갈아입는 정도의 일이었으니 그런 불편한 상황은 누구라도 생각 못했을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던 중 하회마을 내 소방서와 인연이 되어 다행히도 요즘은 그곳에서 넉넉한 공간을 마련해 주어 구한말 복장의 한복도 잘 보관하고 잠시 쉼도 갖고 그의 물건과 옷도 보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배려를 받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하회마을 소방서에 고맙다는 말을 꼭 써달라고 이야기 했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하회마을 소방서의 장기인 씨는 김태원 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있는 듯이 걱정도 함께 해준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좋은 모습만 보니 잘 모르겠지만 구한말 우체부 복장을 하고 두 시간 여를 돌고 오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고 얼굴도 벌겋게 익어 있어 보여지는 것보다 고생이 많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되는 긴 시간 우편집배원으로서 봉사한 것도 그렇겠지만 그의 이러한 노고가 알려져 올 3월엔 재경부 장관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저렴하게 동료들에게 한 턱 샀다며 그는 수상한 일을 이야기 하는 것에 조금 쑥쓰러운 듯 했다. 그리곤 잊지 않고, 상을 받게 된 많은 덕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익히 유명한 문화유적지를 방문하면 사람이 사는 내보다는 보존되어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 경이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괴리감도 든다. 때문에 낯설지도 모르는 문화유적지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을 만나는 일은 매우 반가운 일이며 그곳에 잠시나마 동화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회마을에 구한말의 우체부가 다닐 수 있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아마도 그런 배경 탓이 클 것이다.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 




1884년 우리나라에 근대우편제도가 도입되면서 우편을 배달하는 직업도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엔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을 체전부, 우체군 등으로 불렀는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집배원이라는 명칭은 구한말, 1904년 을사조약 체결로 일본에 통신주권이 박탈되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적어도 구한말 시대까지는 우체부의 복장은 한복이었다. 이후에 현대식 복장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는데, 구한말까지는 적어도 우리나라의 의 문화에 서양의 영향이 덜 미친, 아직은 우리의 것이 더 보존되고 있던 때라고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600여 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하회마을에서 우리의 복장인 한복을 입은 우체부가 2012년 하회마을을 걷고 있다, 는 것은 단순한 하나의 이벤트를 넘어서는 일이 아닐까 싶다.
김태원 씨가 한 외국인과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깊은 해설은 없지만 하회탈 웃음을 얼굴에 머금은 김태원 우체부가 하회마을을 더 빛내주고 있는 것 만은 틀림없는 듯 했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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