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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경 신부님이 살던 집을 찾아가는 길(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1.
가을햇살이 따사로운 길, 아직 단풍은 제대로 들지 않았으나 살금살금 단풍무늬가 살짝 묻어서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산 능선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무덥던 여름에 나무들은 어떻게 더위를 나고 또 겨울을 맞을 준비를 서서히 하는지 자연의 흐름 앞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이란 그저 감탄하는 일이다. 결과를 두고 받아들이는 일이 전부이지 않은가. 가을 들판이 노랗게 황금물결이다. 벼들이 익을대로 익어서 알알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있고 추수하는 풍경도 더러 보인다. 벌써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걸 들판을 보면서도 실감한다. 이런 철이면 늘, 나는 뭘 거둬들여야 하나 하고 마음만 바빠진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은 봉화 비나리 마을로 길을 나선다. 비나리는 몇 번 지나다녀 봐도 마을로 들어가 본적은 없어서 초행길이나 다름없다. 입구에 마을을 알리는 입간판이 높은 키를 하고 서 있다. 얼마 가지 않아 고추밭에서 한창 붉게 익은 고추를 따는 일손이 분주하다. 유독 고추 키가 낮다는 느낌이 든다. 무릎을 접고 주저앉은 자세로 오래 일을 하셔야 할테니. 아예 흙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는 게 좋을 정도다. 대체로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다. 틀니를 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발음이 불편한 할머니가 정호경 신부님 댁을 알려주신다. 자주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시면서.
비나리 마을 집들은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다. 새로 지은 집이 많이 보인다. 도시사람들이 귀농하면서 농사짓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내다보니 산뜻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마을의 희망을 잃지 않은 뜻있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모여 산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와보니 그 흔적이 보인다. 신부님이 사셨다는 집은 도로 입구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아담한 뒷산과 도랑물도 제법 흘러서 개울의 물소리가 듣기 좋은 괜찮은 곳이다.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대로 얼마 안 가니 키가 나지막한 나무집이 보인다. 신부님이 직접 지으셨다는 집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던 집처럼 땅과 맞붙을 정도로 처마가 낮다. 아마도 더 높은 하늘을 마당에 들여놓을 생각이셨을까. 아니면 집조차 낮은대로 임하며 사실 요량이셨을까. 성직을 수행하며 한 생을 살아가는 일의 진지함을 느낀다. 이미 집이 비어 있은지 오래되어 사람손이 닿거나 정갈한 느낌은 별로 없다. 집이 닫히거나 잠겨 있을 것을 예상하고 집 내부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집열쇠를 가지고 관리하는 분과 연결이 되긴 했다. 그러나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나중을 기약하고 그냥 혼자 집 구경을 나서기로 했다. 집 안을 전혀 모르고도 집에 살았던 사람을 읽어낼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는 답 할 자신이 없다.

정호경(루도비꼬) 신부(1941-2012)
사진: <더불어 살기운동> 한길사1986

1941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1968년 서울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44년간 천주교 안동교구에서 사제로 헌신했으며 1974년 천주교 안동교구 지학순 주교 구속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에 참여하고 두 번의 옥고를 치르는 등 군사독재정권 아래 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94년부터는 ‘입품 그만 팔고 몸으로 살련다’고 작심하고는 일체 출입을 마다하고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풍락산 자락에서 농사짓고 글 쓰며 생활하다 지난 4월 27일 숙환인 폐섬유화증으로 선종하였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 <비나리 마을의 달이네 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
낙엽송으로 지은 통나무집은 정호경 신부님의 설계와 제작, 그러니까 손수 지은 집이다. 그 과정이 <손수 우리집 짓는 이야기>로 잘 묶여 있다. 새들도 자신들의 집을 직접 짓는데, 인간은 스스로 집을 짓지 못한다, 아니 못하게 되었다. 농사짓는 생활이 멀어지고, 석유문명이 일으킨 생산의 대량화가 이뤄지면서 인간노동의 자리에 기계가 들어섰다. 생활방식의 차이도 집의 구조를 많이 바꿔놓았다. 집이 투자대상이 되어버린 시대가치 안에서 집의 원래 의미를 다시 일깨우는 정호경 신부님 글이 빛난다. 농사짓던 시절에는 두레로 집을 지었다. 김용택 시인의 시에도 잘 나오듯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함께 땀흘리며 살 공간을 마련했던 집, 집 지을 재목, 흙, 돌 등 각종 자재가 모두 동네 안에서 구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시가 되어 있지, 현실과는 먼 거리에 있다. 도시생활의 건조함에 싫증이 늘어가는 나이는 중년쯤인가. 아파트 현관과 베란다가 답답해질 그때, 시골로 떠나기는 이미 좀 늦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부님은 ‘너무 늙기 전에 농사짓고 살다 죽고 싶다’며 노동이 가능한 몸으로 귀촌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집 짓기 전에 전우익 선생님의 소개로 목공일을 배웠던 신부님은 나무뿌리나 버려진 나무로 책상, 찻상, 등경, 촛대 등을 만들어 나누기를 즐겼다. 신부님은 아파트를 도시의 공중감옥으로 부르면서 집은 어머니의 자궁이나 품과 같고, 자연과 어울려야 하고, 튼튼하고 쓸모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작고 단순하게 직접 짓는 것을 원칙으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책에 보이는 집 평면도는 넓은 방(공동방)이 중앙에 있고 그 방을 중심으로 부엌, 작은방들, 화장실이 있는 구조이다. <손수 우리집 짓는 이야기>에 쓴 내용은 집짓기 견본이라고 봐도 된다. 준비, 설계, 집터닦기, 재료마련, 연장에서 도배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혹, 집을 직접 짓겠다는 분에게 요긴한 책이다.

집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 시작해 본다. 집은 두 채인데 하나는 생활공간, 다른 건물은 창고로 쓴 것 같다. 건물의 이름표를 달아두어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주 활동공간이었을 문 앞에는 자주 집안에서 신고 다녔을 슬리퍼 두 켤레 보인다. 시골 아줌마들이 주로 신는 뒤가 트인 신을 신부님도 애용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붕이 낮은 집채를 길게 덮고 있어서 해가 들어갈까 싶었다. 지금은 닫혀 있지만 창을 열면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질 거란 기대는 있다. 닫힌 집이 열린 집으로 변할 것 같은 기대를 직접 확인해 볼 시간을 꼭 마련해야겠다.

화장실은 유일하게 열린 공간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볼 일 보며 읽을 잡지도 있고 똥의 소중함을 혼자 앉아서 깨우치는 글귀도 나무에 새겨져 있다. 신부님이 서각을 하셔서 걸어놓은 것 같다. 화장실 벽에 걸린 글 내용을 옮겨본다. “홀로 있는 시간은 축복입니다. 똥 오줌은 흙과 하나 되어 온갖 생명을 낳아 키우는 어머니입니다. 똥오줌이 싫어하는 기저귀, 생리대는 앞 나무통에...”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화장실 안쪽기둥에 몽당 빗자루가 더 이상 닳을 수 없는 몸이 되어 기대 있다. 제 소임을 즐거워하는 빗자루가 정겹게 보인다. 여름에 엄청났을 모기를 쫒기 위해 화장실 안에는 전자모기향까지 갖춰져 있었고, 사용한 사람은 전원을 뽑고 나가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화장실 문은 한지를 바르는 문이어서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손이 많이 가는 자리쪽으로 세로로 구멍이 뚫려 있다. 수돗가는 비를 피하기 위해 기둥을 4면에 세우고 지붕을 올려서 옛 우물가나 샘터와 풍경이 흡사하다. 세숫비누며, 퐁퐁이며 여러 그릇들이 물기 없이 바짝 말라 한 귀퉁이 다소곳이 앉았다. 주인 없는 공간이 뻐근하게 느껴진다. 분홍색 바가지, 스테인레스 냄비, 양은대야 등 그릇이 제법 나와 있다. 신부님의 살림살이 속살이 드러나 있다.

<정호경 신부와 오랜 인연을 함께 했던 권정생 선생과 두봉 주교 -사진:(재)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시골집 풍경이 좀더 푸근한 것은 마당의 풀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체로 도시 집들은 정원이 있으면 말끔하게 정리를 하고 계절마다 달리 피는 꽃들을 잘 배치해두고 수석도 인테리어 수준으로 감각있게 손봐두는 게 보통이지만. 시골집들은 자연스레 돋아나는 풀을 그냥 둬서 잔디를 가꾼 것과 달리 풀밭이 만들어진다. 그 풀밭은 편안함이 맛이다.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아 푸른 들판과 다를 게 없는 집 마당이 보인다. 사람의 정서와 취향에 따라 집 분위기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신부님의 취향은 이 마당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간다. 마당에 자그마한 들꽃이 이쁘다. 이름을 찾아보려고 근접촬영으로 찍어 담는다.

고추와 배추 몇 포기가 보였다. 붉게 익은 고추는 거의 땅에 닿아 있고, 벌레 먹은 배추잎은 활짝 펼쳐진 꽃 같다. 그것도 땅으로 온몸을 대고 있다. 활짝 누워보고 싶어하는 아이처럼 유연해 보인다. 뒤 안으로 풀이 가득한데 늙은 호박이 누렇게 혼자 익어가고 있다. 주인 없는 집을 대신 지키는 셈이다. 뒤 안 폭도 매우 좁은데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 하다. 낮고 좁고 조용하고 없는 듯 살아가신 흔적이란 생각이 든다. 아직 낙엽지는 계절이 아니니 풀들이 무성하다.
본채 뒤로 군불을 땔 수 있는 큰 솥을 걸어뒀다. 양은솥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모여서 어울릴 때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처마 밑 말벌집이 두어군데 있다. 그러나 날아다니는 벌은 한 마리도 없다. 일교차가 심해서 낮에 햇살이 따뜻한데도 벌은 날아다닐 엄두를 못 내는가. 아니면 이미 빈 집이니 다른 곳으로 이사라도 했을까. 새집도 2층으로 예쁘게 만들어 두었다. 지붕 모서리에 달린 풍경이 고운 소리를 낸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마다 은은하게 소리를 들려준다. 풍경이 공중에 매달려 바람을 품어 소리를 가른다.

본채 입구 정면에 ‘정호경 루도비꼬 신부 살던자리’(1941-2012)라는 명패가 보인다. 그리고 주인없는 집에 우편물이 날아와 그릇에 앉아 있다. 아마도 여름날 신부님이 신었을 샌들이 말끔하게 문 앞에 놓여 있다. 먼지가 그리 두껍지 않게 살짝 얹혀 있다. 대문이나 담이 따로 없다보니 본채 입구에는 측백나무 두 그루를 나란히 심어두어 입구 표시를 한 것 같다. 농사를 짓느라 연장과 도구가 많이 필요했을 터다. 활용도를 잘 모를 물건들이 창고 밖에도 쌓여 있다. 일간, 헛간이란 명패가 붙은 집 앞으로 여러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겨울에 쓸 땔감도 마당 귀퉁이에 제법 쌓여 있고 헛간 뒷면에도 지게, 바지게가 걸려 있다. 빈병들도 가지런히 한곳에 모아두었고 농사에 필요한 잡다한 도구들은 마당에 칸을 질러 공간을 더 마련해서 따로 정리해 두었다. 소변용 남자 화장실로 썼을 공간이 용도 폐기되어 있다. 오줌통이 있었을 자리에 톱밥을 가득 채워 메워두었다. 명패가 떨어져 한쪽으로 기운 것을 보니 ‘남자요강’이라 쓰여 있다. 그러니 남자전용 화장실이었다. 그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창고의 창은 둥글게 유리를 붙여 두었는데 그곳에 얼굴을 갖다 대봐도 안은 보이지 않는다. 마당에는 단풍나무들이 곱게 단풍이 들어가고 산수유 알은 붉고 튼실하게 익어가고, 여러 풀들은 그 자체로 싱그럽다.

3.
권정생 선생님이 쓴 동화 <비나리 마을의 달이네 집>은 정호경 신부님과 강아지 이야기이다. 그런데 실제 신부님은 강아지를 키우셨고 이름도 ‘달이’였다. ‘통나무집 덜 굽힌 군고구마 같은 신부님’으로 익살스런 표현을 하는데 신부의 자리를 내놓고 시골로 들어가 농사꾼이 되어 산 신부님의 생각을 표현하느라 쓴 작품일 것 같다. 여기 등장하는 달이라는 강아지는 노루잡이 덫에 다리 하나를 잃고도 의연하게 잘 살아간다. 특히 사고 이후 더욱 생각이 깊어져 강아지가 아니라 거의 성직자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설정은 신부님의 삶을 강아지를 통해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덜 굽힌 고구마네, 하회탈이네 하더라도 실제 신부님 칭찬 좀 전하려고 동화까지 쓰신 것은 아닐까.

<비나리 마을의 달이네 집>에 나오는 그림도 실사이다. 신부님의 낙엽송 통나무집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권 선생님은 신부님을 ‘어정쩡한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아직 새파란 젊은이 같기도 하다’고 하고. ‘생긴 것도 그래요. 누구는 동글동글한 호떡처럼 생겼다 하고, 누구는 덜 굽힌 군고구마같이 생겼다 그러고, 또 누구는 어느 길가 비쩍 마른 장승처럼 생겼다고 하고, 누구는 남자인데도 하회탈 가운데 각시탈처럼 예쁘게 생겼다고 하거든요.’ 장난끼 가득한 권정생 선생님의 표현이 한결 재미를 보태고 있다. ‘아저씨는 비나리에 오고부터 하얗던 얼굴도 새까맣게 그을고 손바닥도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혔어요’에서 볼 수 있듯이. 강아지 이름이 달이라고 붙인 걸 두고 강아지는 사람들이 ‘짝짝이 신 같다’고 한다. 물론 이 동화도 전쟁없는 세상에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력하다.

또, 더불어 사는 일의 소중함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더불어살기운동>에는 사회의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했던 삶이 보인다. 신부님은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었을 때, 또 오원춘 씨 납치사고가 있었을 때 옥
고를 치렀다. 수감 중 1979년 11월 편지에서 ‘엄청난 사랑과 그렇게 많은 님들의 뜨거운 기도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더불어 살아가는 길 위에서 당하는 부당함도 주위분들의 격려로 이겨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원춘 사건 당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주위 분들이 마음으로 위로해준 이야기가 있다. 당시 농민회와 노동청년회 지도신부를 자임하며 정의로운 일에 앞장섰던 신부님을 마음으로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는 일은 어쩌면 당연했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신부님은 그 고마움을 담아 스스로 사람들에게 빚진 ‘빚꾸러기’라 쓰고 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으로 사회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신부의 의지는 아주 강력하다. “생명을 병들게 하고 죽이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싸움을 줄기차게 해가야 합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싸움은 미움의 싸움이 아니라, 함께 살자는 사랑의 싸움입니다. 우리 안의 소유욕, 지배욕과 싸워야 하고, 우리 밖의 착취구조악, 압제구조악과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은 말이나 이데올로기로써는 절대로 될 수 없는 싸움입니다. 삶은 싸움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랑의 싸움’을 통해서 비로소 사랑을 회복하자는 주장은 정의로운 사회 속에서 사랑도 건강해질 수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익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있는 삶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로 언급한 것이 싸움이다. 이때 싸움은 불의에 대한 희망적인 의지를 드러내는 방법이 된다.

농촌 속을 배우자는 글에는 초등6학년 아이의 글이 나온다. 바쁜 시골살이에서 아이들의 교육은 농사일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온갖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숙제할 시간조차 거의 없다. 집안일을 거든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일을 앞서 해야 한다. 숙제는 그 일에서 항상 맨 나중으로 밀린다. 교사는 그래도 공부를 시키느라 숙제를 내고 숙제 안한 친구에게 청소를 시키지만 아직 철이 덜 든 아이는 숙제 조금 내는 선생님이 그저 좋을 뿐이다. 이럴 때, 농촌현실을 알고 아이들에게 숙제를 덜 내거나 내지 않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일일까. 모를 일이다. 그래도 선생님은 숙제를 내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농촌 봉사활동을 ‘먹물들의 낭만’쯤으로 여겨 일하지 말라 당부하는 글도 있다. 도시와 농촌의 생활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농촌, 농민공부, 겨레, 인류, 현실을 읽는 공부를 해야 농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농촌활동을 위해 대학생들이 해야 할 일의 중요성을 열거하는데 “우리말 찾아 가꾸기, 농사말 수집연구, 민중의 넋이 담긴 소중한 말을 짓밟는 잡귀의 정체 밝히기, 우리의 가락과 장단과 몸짓 찾기, 건강한 노동문화, 공동체 문화의 회복과 창조를 위한 활동, 사라져가는 마을이름 및 마을역사 찾기, 새 대동놀이 연구”를 시도 하자고 제안한다.

아마도 정호경 신부님이 꿈 꾼 세상은 일상의 삶을 이웃과 더불어 함께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었을 거다. 그 분이 엄혹한 시절에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몸 사리지 않고, 농촌활동 더 나아가 농촌에 들어가 농부로 살아가면서 생활을 함께 나누는 길을 걸었던 것도 공동체의 삶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평생 그 분이 걸었던 길의 가치가 녹아든 말씀을 옮기며 명복을 빌어본다.
“생명운동은 이데올로기나 구호 따위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삶의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생활공동체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걷게 되면 길은 생기는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정호경 신부님의 명복을 빕니다.<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