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제비 북카페′로 개방될 나의 서재(글/사진/이순구_안동대 교수)
책들이 있는 방을 ‘서재’라고 부른다면, 직장인 학교에 있는 것과 집에 있는 것을 더해 나의 서재는 두 개인 셈이다. 대학교 다닐 때 보던 내 책들이 부산의 동생 집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내 책들이 부산의 형님 집 대학생 조카의 책장에 꽂혀 있었던 것을 보고 내 놓으라고 말하지 못했다. 십 수 년 전에는 수원의 어느 고등학교 도서관에 내 책들을 기증한 적이 있다. 내가 애지중지한 책들 중에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세계의문학』 등 3개의 계간 잡지를 창간호부터 모두 사 모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두 그 고교 도서관에 기증해버렸다. 나의 책에 대한 미련은 거의 정신병 수준이어서 내 자신 그런 편집증 환자가 아닌가 여기기도 한다.
대학시절, 나는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운동권 학생이 읽는 책들은 그들보다 더 철저하게 많이 읽었다. 그중에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있는데, 1학년 겨울 방학 때 처음 부산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그 책에 매료되어 나중에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그 책을 모두 다 사서 읽었었다. 누가 내게 여태 읽었던 책 중 어느 책을 가장 열심히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책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 전공인 농학책 보다 그런 문학서적, 문학잡지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낮에는 농사일 연구하고 밤에는 문학 책 읽겠다(주경야독; 晝耕夜讀)”고 농대를 갔다.
올해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지 꼭 40년 되는 해라서 지난 10월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 모임이 열린 해운대 어느 호텔에 갔었다. 고3때 반 친구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졸업하고 40년 만에 보는 서울의 어느 사립대학 수학과 교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아직도 시(詩)를 쓰느냐고. 자연계 이과반인데도 나는 고등학교 때도 문학소년 티를 아주 많이 냈던 것 같다. 4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문학소년인 것을 고백한다. 그에게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고교 졸업하고 전혀 발전 진화되지 않은 고교 원시인으로 볼 것 같고, 안 그렇다고 대답하면 자기 본성을 배반하고 영혼을 내버린 속물로 볼 것 같아서 대답을 못했다. 고백하건데 내 서재는 아직도 여전히 공책에다 시를 쓰는 나의 밀실 공간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다닌 학교의 도서관이 나의 서재였다. 중학교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도 그랬으며 대학교 때도 그랬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의 지역 도서관도 일종의 나의 서재라고 생각한다. 일본 츄쿠바에서 1년 연구년으로 살 때도 그랬다. 그 도시의 시립도서관은 토,일요일의 나의 휴일 순례지였다. 특히나 도서관이 미술관과 같은 건물 안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나는 어릴 적부터 미술도 문학 못지않게 좋아했다. 1985년 2월에 박사학위를 있는 힘을 다해 땄었는데 다녔던 연구소에서 바로 선임연구원으로 승진시켜주었다. 그리고 월급이 많이 올라서 처음으로 내 오디오를 겨우 장만할 수 있었다. 내 서재에는 그때부터 LP음반이 책보다 더 많아지고, 나중에 나온 CD음반들이 책과의 권력 투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목말라 듣고 싶었던 클래식 음악들을 어떤 때는 밤을 세워서 듣기도 하는 광적인 음악 팬이 된 것이다. 츄쿠바 시립도서관이나 런던 교외의 지역 도서관은 그런 음악 CD들을 개인이 사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빌려주는 체계를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일본의 도서관 직원들은 “책을 이렇게 많이 빌려가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자세로 친철 봉사 하는 반면 우리나라 지역 도서관 직원은 마치 책 도둑놈 취급하면서 빌려주기 싫은 것 억지로 빌려주는 태도다. 그런 점도 바로 시정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이 희망 있고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도서관 직원들의 친절이 ‘억수로’ 요망된다고 나는 큰 소리로 외친다.
서재인(書齋人)은 서재에만 박혀있어 세상물정에 어둡거나 교제가 적은 사람이며, 보통 학자나 문필가가 그렇다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그것을 보고 나 같은 마마보이가 그런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한다. 여태까지 옷은 내 손으로 산 적이 없다. 내 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책과 음반, 그리고 오디오 및 카메라 부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머지는 결혼 전에는 엄마가 사주었고, 결혼 후에는 마눌님이 사주었다. 최근 5~6년 동안 나는 그런 마마보이 혹은 서재인에서 탈피하려고 무지무지하게 노력하여, 내 스스로 ‘제비’라고 칭하고 호(號)도 스스로 지어 ‘숨은 제비(우라 츄바메; 裏燕)’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여러 사람과 함께 등산도 하고 사진도 함께 찍는다.
앞으로 나의 서재를 제비 카페로 개방할 작정이다. 이 다음 퇴직하고 나면 커피나 녹차 같은 걸 손님에게 대접하면서 살기 위해서, 옛날 법상동에서 살던 조그만 집을 내부 리모델링해서 제비 카페로 만들 것이다. 거기에 내 책들과 오디오, 음반들을 갖다 놓고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열심히 혹은 태만하게 읽느니 마느니 하면서 좋은 친구들과 담소 나누며 살아가는 그런 문화 공간 혹은 북 카페로 개방할 것을 꿈꾸고 있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