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사람을 만드는 사람 -조각가 권오준의 작업실(글/사진/피재현_시인, 노암공방 대표)

어려서부터 나는 물가에서 살았다. 크고 작은 돌들이 깔린 강변. 해를 품으면 따뜻해지고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돌. 물이 묻으면 짙은 속내를 내보이는 돌. 그 돌을 들어 수제비를 뜨고 유리병에 잔돌들을 넣어 어항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법 미끈한 돌이 있으면 집에까지 데려와 우물가에 놓곤 했다.
사람의 느낌은 쉬 지워지지 않는 법이어서 지금도 내 공방 곳곳에는 돌이 있다. 공방 우물가에는 적잖은 돌들이 어우러져 어릴 적 동무들과 놀던 강변을 추억하곤 한다.
돌을 깎아 사람의 얼굴을 만드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친구의 공방 마당 한 켠에서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쪼그려 앉아 연신 그라인더질을 해대는 사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사람이 부여잡고 응시하는 그곳에는 이제 막 이목구비를 드러내기 시작한 석인(石人)이 갓 태어난 아기처럼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몇 해 전의 일이다. 그때 만난 석공이 권오준 씨다.



돌로 만든 집에서 대식구를 거느리고 살다
취재를 한다는 것은 쓸 데 없이 많은 이야기를 요구한다. 늘상 그를 만나고 그의 작품을 봐 오면서도 별 말이 없었는데 취재에 맞닥뜨려 다시 찾은 그의 집에서는 그도 나도 말이 많다. 사실 그의 돌작품을 본다는 것은 강변에 나가 무수하게 널려있는 돌을 만나는 것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맘에 든다고 불쑥 집어올 수는 없지만 그의 작품은 강변에 놓여있는 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감과 자연석의 질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하기가 참 편하다.
송천초등학교 옆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7년 여 전에 손수 지은 돌집이다. 20년 넘는 세월을 돌작업을 해 온 이력답게 그는 건물의 외부를 돌로 쌓아올렸다. 특허까지 받은 쌓기 공법은 마치 옛 목조건물이 취했던 방법처럼 가로축과 세로축을 엇대어 쌓고 동(銅)고리를 이용하여 돌과 돌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이 집에서 그는 그가 탄생시킨 백 명도 넘어 보이는 돌사람들을 데리고 산다.
1층 거실에서부터 2층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빼곡하게 그의 자식들이 들어차 있다. 어떤 놈은 비스듬하게 누워 있고 어떤 놈은 벽에 올라가 있고 어떤 놈은 구석 바닥에 쭈그리고 있지만 한결 같이 말이 없다. 돌의 물성답게 입이 무겁다.



손가락을 다치다
권오준 씨가 돌작업을 하게 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규승 화백의 제자로 회화를 하기도 했지만 그를 매료시킨 것은 돌이었다.
군 제대 후 단양에서 옥 가공을 하는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은 가끔 흙이나 철물을 이용한 작업도 있지만 주로 돌 조각으로 정착되었다. 오랜 작업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작품을 내
놓기 시작한 것은 최근 3년이다. 늦깎이라면 늦깎이인 셈인데 혼자만의 작업 시간이 길어진 만큼 예사롭지 않은  내공으로 등장해 단박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작업을 하던 도중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끝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그의 작품 “3월의 기억”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우연찮은 사고로 병원에 있으면서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창작에 불이 붙었을 때 찾아온 사고는 그에게 엄청난 좌절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러나 그는 더 이를 악물고 작업을 했다. 세상에 내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고 이제야 비로소 돌 속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대로 좌절할 수는 없었다. 수술로 손가락을 봉합하고 그는 지난 3년간 작업실과 전시실을 오가며 자신의 창조물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다치는 사고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생업인 집 짓는 일보다 돌작업에 더 빠져서 산다. 집을 지을 때도 어떻게 하면 돌을 사용할 수 있을까 연구한다. 그런 그의 노력이 평단에 인정을 받게 만들었다.


“돌과의 친연성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에의 희구를 떠올려주는 권오준의 조각은 인간의 살과 흙, 돌의 구분을 지워나갔던 선인들의 지혜를 새삼 환기시켜주고 있다. 또한 그의 작업은 허물어져가는 자연에 대한 아쉬움이 얼굴로 탄생된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그의 작업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평 중에서


서울, 대구, 제주도 등지에서 활발한 전시회를 열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최근의 활발한 작업 속에서 그의 작품세계의 지평도 넓혀가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2인전 “smile”에 출품된 웃음 연작들은 그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성숙시킨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업은 ‘스마일시리즈’로 유명한 이목을 화백과의 인연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목을 화백의 스마일 연작에 큰 감명을 받았고 조각을 통해 스마일시리즈의 변용을 시도했다. 두 사람의 작업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두 영역에서 서로 보완적인 표현의 확장을 가져왔고 권오준이 돌과 나무에 조각한 웃는 얼굴은 다시 한 번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 작업은 2인전 이전에 이미 지난 6월 안동에서 한달간의 전시회를 통해 지역에 소개된 바 있다.




자연석의 맛
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나처럼, 그도 돌을 구하러 다닌다. 영양 입암이나 일월산 같은 산골에서부터 도산서원 근처 같은 낙동강 줄기를 따라 자연석을 구하러 다니는가 하면 수석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돌이 있으면 구입하기도 한다.
화강석이나 대리석은 구입하기는 쉬우나 전체 입자가 비슷하고 자연석의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우리나라 강돌은 석질이 각양각색 다양하다. 돌의 모양도 오랜 세월 물길에 다스려지고 풍파에 깎여 인공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멋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돌의 모양과 특성이 제각각이듯 그의 작업도각양각색이다. 그는 돌을 거스르지 않는다. 돌이 이웃집 곰보할매를 닮아 있으면 그는 곰보할매를 만든다. 그렇지 않고 돌이 얼굴이 긴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여인을 닮아 있으면 그는 그 선을 거스르지 않고 매혹적인 여인을 탄생시킨다. 자연석으로 하는 작업은 네모로 잘라놓은 대리석과는 달리 자연을 존중하고 순응하는 태도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놓은 인물이 코가 삐뚤어도 얼굴이 대문짝만 해도 마치, 강가에 놓인 돌들처럼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돌을 주우러 강가를 걸으면서 산길을 오르면서 돌을 만나는 순간 그 돌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손을 거쳐 태어날 지구상이 끝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을 깎으면서 투박해진 손으로 돌을 어루만지는 순간 돌의 내면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고, 자신은 다만 조금의 끌질을 통해 그 내면의 모습을 끄집어내놓는.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조각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 것 같은 동일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인물, 토템 그리고 사람
한 평론가는 ‘권오준의 조각은 돌이라는 물성과 사람의 얼굴이라는 회화적 이미지 사이에서 멈춰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웃음 연작도 큰 틀에서 사람의 얼굴이니 그의 작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왜 얼굴을 조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어요. 돌 속에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예수도 있고 갓 잉태한 태아가 있기도 하고, 성숙한 여인이 있기도 하죠. 요즘에는 돌의 토템성에도 주목하게 되는데 나의 새김질로 생명을 얻는 작업이 좋은 것 같아요.”


딱딱하고 무심하지만 돌은 수천 수만년을 살았고 작가는 그런 돌을 살아있는 것으로 느낀다. 그래서 사람의 내면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돌이 가지고 있는 토템성을 돌의 공간 밖으로 끄집어내려고도 하는 것이다.
외로워서일까? 어느 하루 외로웠던 내가 무단히 창고의 나무들을 작업실로 들여와 벽마다 세워 두었듯이, 아이들과 아내를 서울에 두고 혼자 있는 그도 외로워서 돌사람들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일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그래서 그의 집은 밤마다 돌사람들이 깨어나 왁자지껄 그의 외로운 생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일까?




갤러리 작업실 새 터를 꿈꾸다
송천동에 집과 함께 쓰는 작업실이 있지만 그의 작업은 많은 부분 한적한 야외에서 이루어진다. 선배의 작업실 마당 한 켠을 빌려서 쓰거나 고물상 같은 곳에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먼지와 소음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작품을 만들어 생계를 이을 수는 없는 일이자만, 그는 최근 몇 년의 작업과 전시를 거치면서 새로운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가 공간 욕심을 내는 데는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 지역 작가들이 교우하고 활동할 수 있는 갤러리의 필요성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같은 공간이 있긴 하지만 전용 갤러리가 있어서 박람회에 지역 작가들이 부담 없이 진출할 수 있기도 하고 경비부담 없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요즘 땅을 보러 다닌다. 작업실과 갤러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나서면 주저 없이 공사를 시작할 생각이다. 자신의 생업이 집 짓는 일이니 무모한 생각도 아니다. 부럽다. 그래서 그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 공간에서 지역의 작가들이 좀 더 오랜 기간 전시회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덜 힘들게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작더라도 게스트하우스도 하나 만들어 다른 지역 작가들이 와서 전시회도 하고 함께 쉬어갈 수도 있게 할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 못지않게 예술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이 많다. 관심이라기보다는 걱정일텐데……. 그래서 그는 누구든 작품이 잘 팔리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솔선해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형편 되는 대로 사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의 조각도 좀 대중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저렴하고 소장하기 쉬운 작품으로 만드는 고민도 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공간은 그 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설레게 만든다.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전업 작가가 되길 꿈꾼다. 그러나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의 말처럼 미술계 또한 사람 사는 곳이어서 그는 일종의 아웃사이더인 셈인데 몇 배의 노력과 작품성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조각만 하는 전업 작가가 아니어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업은 건축이다. “권오준의 집이야기”라는 상호로 그는 지난 10년간 집을 지어온 사람이기도 하다.
집만 한 예술이 또 있을까! 집만 한 작품이 또 있을까? 조각가가 만드는 집, 그 사람이야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은 또 다른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돌에서 생명을 찾듯이 집을 지으면서도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의 조각도 그가 짓는 집도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남을 것이다.


햇살 따스한 겨울 하루, 강가에 나가 돌밭을 걷고 싶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