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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두 자루와 서울대학병원(글/권재인_안동시청)

어매와 낫 두 자루
5년 전 여든일곱에 돌아가신 우리 어매는 이 세상에서 막내이가 제일 불쌍타꼬 살아생전에 육남매의 막내인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셨다.
형님, 누님, 조카들한테 받은 용돈을 나한테는 비밀로 하시고 고스란히 막내며느리인 집사람 손에 꼬깃꼬깃 딱지처럼 접어 꼭 쥐어 주시곤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마누라는 명절이나 집안에 행사가 있어 일가친척들이 다녀가신 후에는 어김없이 “여주아빠! 어머님 목욕시켜 드릴 때가 됐는데 촌에 큰집에 가서 어머님 좀 모시고 오지요” 했다.
목욕탕에 모시고 가 때를 밀어 드릴 때마다 봉사료를 듬뿍 주시는 시어머니. 눈에 보이는 얄팍한 수작이 얄밉기도 하지만 공무원 마누라로 없이 살다보니 궁해서 그러려니, 어쨌든 그래서라도 시어머니를 잘만 모시면 된다싶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저 시키는 대로 하곤 했다.

가끔은 서울 누님도 번히 알면서 뭐라카시는지 전화를 걸어설랑 떠보곤 했다.
“어매, 내가 경로당에 가서 맨날천날 얻어 자시지만 말고 우리 최실이가 주드라 카고 한턱 쏘시라고 용돈을 드렸는데 어디다 다 썼는공, 여주 어마이한테 또 몽땅 다 조뿌랬는거 아이라”
그러면 어매는 이렇게 반응하시곤 했다.
“야야 내 돈 내가 내 맘대로 쓰는데 니가 왜 가이(간섭)하노. 나도 다 쓸 데가 있다. 니는 몰라도 된다고마, 여주 어마이한테는 입도 뻥긋하지 마래이, 가가 내한테 얼매나 잘 하는동 아나, 못된 시누이 소리 듣지 말고 고마 가만 있거라,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전화세 마이 나온다 고마 끊어라.”
이렇게 정이 많으신 어매는 또 철이면 철마다 나물이며 과일을 까만 비닐 봉다리에 담아서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날라다 주셨다.

한번은 우리 집에 며칠 계실 요량으로 오셨는데 하룻밤만 주무시고는 그만 아파트가 감옥 같다고 하시면서 큰집으로 가신다고 투정을 하셨다. 내가 차로 모셔드린다고 하니 기어코 장날이라 이웃 할매도 탔을 터이니 친구해서 굳이 버스로 가신단다.
하도 완강하셔서 버스로 태워 드리려고 승강장으로 나가니 마침 수업을 파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중학생들이 소복이 앉아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시골 큰집 가는 77번 버스는 도무지 보이지를 않았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걱정이 되시는지 큰소리로 “야들아 낫 두 자루 길랬는 차 안 지나갔나, 오거든 좀 붙들어 다게이” 하시는 게 아닌가.
“어매요! 낫 두 자루 길랬는 차가 뭐이껴” 카니까, “야야 77번이 낫 두 가락 아이라, 니 시가(니 형이) 날 보고 글 모른다꼬 무조건 낫 두 가락 길랬는 차가 오면 타라꼬 일러 주더라.”
그 야그를 듣고 옆에 있던 학생들도 나도 요절복통 배꼽을 잡은 일이 있었다.
혼자 웃기엔 아까운 생각에 이 이바구를 옆방에 계시는 문화예술과장님께 해드렸더니만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어이 권주사! 낫 두 자루 어른 잘 계시는가?” 하고 돌아가신 분 안부를 아직도 물어주신다.

각후아재와 서울대학병원
한번은 또 어매로부터 오촌 당숙 어른에 관한 우스갯소리를 듣고 배꼽을 쥔 적도 있다.
지금은 여든이 넘으신 당숙 어른은 당숙모가 와룡 가구에서 시집을 왔다고 해서 가구가 각후로 변해 동네 사람들은 택호를 ‘각후아재’라고 불렀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칠남매를 둔 각후아재는 당숙모가 암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 손으로 아이들을 키우느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늘 마음 아파하셨는데 한번은 안동장날 대폿집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 분은 눈치코치도 없이 아는 사람만 만나면 붙잡고 자식자랑이 늘어졌다고 한다.
“잔네 아는 어느 핵교 댕기는동 몰따마는 우리 아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댕기는데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도 타고 남의 아를 갈채는 아르바이또도 해서 돈을 도로 벌면서 댕긴다.”

아재는 참다못해 “거가 하도 재랑하길래 한마디 싸발라 뿌랬지. 야이 이 사람아 우리 아도 서울대학병원에 까부다 다쳐 가주고 4년째 입원 해 있다 왜 이눔아 오야 니 잘나고 너 아 잘났다 이눔아, 그이까네 오늘 술값은 잘난 니가 다 내라 이눔아” 하고 휑하니 나와 버렸다고 한다.

팔십이 넘은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경운기를 몰고 농사를 지으시는 당숙 어른이나, 형수나 시누이 눈치코치 안보시고 오로지 불쌍한 막내자식, 우리 내외만 편애하신 당신, 오늘따라 미치도록 우리 어매가 보고 싶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