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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교양의 원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글/이순구_안동대 교수)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공들여 읽었고 가장 좋아하는 책을 들라면 단연코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 1892-1979)가 1953년 출판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zial Geschchte der Kunst und Literatur)』다.
1974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그 현대편(자연주의,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이 백낙청, 염무웅 번역으로 창비신서 제1권으로 초판 발간되었고, 그 후 1976년에 고대 중세편(선사, 고대 오리엔트, 고대 그리스 로마, 중세)이, 그리고 염무웅, 반성완 번역으로 근세 상편(르네상스-매너리즘-바로크)이 1980년에, 근세 하편(로코코, 고전주의, 낭만주의)이 1981년에 간행되었다. 처음에는 백낙청 교수가 영역본(vintage판 1952)으로, 다음에는 염무웅, 반성완 교수가 독일어 원전(Beck社, 1953년 발간)을 대본으로, 일역본(1968, 高橋義孝)을 참조해서 번역했었는데, 그 원전인 독일어판도 1981년에서야 원본 출판사인 뮌헨의 Beck社로부터 독일대사관을 통해 번역권을 정식으로 취득하였다. 그전은 모두 국제저작권법을 무시한 해적판 번역 책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1999년에 다시 그 네 권의 책 개정판이 간행되어 그림 도판이 컬러로 제대로 들어간 훌륭한 책자로서 다시 재탄생한, 그런 책이다.

내가 ‘창작과 비평’ 계간잡지를 헌책방을 뒤져 다시 창간호부터 다시 샀던 이유도 알고 보면 그 창간호(1966년)에 현대편의 「영화의 시대」의 번역이 실렸었고 이어서 현대편의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19세기의 사회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잡지에 연재되었기에 그것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이 해방 후의 어수선함 속에서 한국전쟁의 참화, 그리고 50년대의 가난, 4·19학생 의거, 5·16 등을 겪으면서 제대로 간행된 우리말로 된 인문학 서적도 1970년대 초까지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70년대 대학생 시절을 서울과 수원, 부산에서 보내면서 항시 내 가난한 하숙집이나 자취방 혹은 기숙사 책상 위에는 늘 전공 책들 옆에 『창작과 비평』 잡지들이나 창비 신서가 널려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내 교양의 원천이 바로 그 잡지와 창비 신서들임을 고백하며 그 출판사를 고마워한다.

대학생 시절에만 그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 뒤에도 늘 내 곁에서 독서의 참고서가 되어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십여 년 전 어느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을 때 그 책을 한 질 모두 사서 다 읽었다. 그만큼 나는 도스토예프스키 애독자였다. 그때 다시 이 책의 현대편을 재독하였다. 내가 중고교 때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의 책들이 거의 모두 일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식민지를 겪었던 가난하고 열악한 나라에서의 염치없는 대학생이라니, 당시에는 거의 매 학기마다(1학년 1학기만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 학기 중 제대로 학기를 다 채운 학기는 한 번도 없었다) 휴교령이 내렸다. 모두가 데모 와중에서 어떻게 공부, 학문했는지 이해가 잘 안됐다. 물론 이 책도 일어판을 보고 많이 베낀 것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대학생 시절 교수들은 거의 일본 책과 영미 서적을 참고도서로 사용했던 것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우리말로 된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일본어를 잘 했던 내 후배 박철세 군은 학부학생 시절 자원식물학 일본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주고 그 교수로부터 등록금 정도의 장학금을 받았던 적도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그 책의 개정판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그 현대편과 고대중세편 그리고 근세편들을 다시 읽었다. 근세 하편은 1981년 책을 사놓고도 거의 읽지 않았던 것 이번에 알았다. 책에 밑줄 친 것도 없고 깨끗해서 책만 사놓고 읽지 않았던 나의 위선을 이번에 똑똑히 알았다. 1974년도 초판본에는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의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악동(惡童)은 맨 뒷줄의 의자에 앉아서”로 쓰여있다. 1999년 개정판에는 그 대목을 “불량 학생은 맨 뒷줄의 의자에 앉아서”로 인쇄되어 있다. 바로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랬다. 한창 문학적 열망에 심취했던 내 모습이 바로 그 악동이나 불량 학생이었다. 악동이란 말은 어딘지 일본 말 냄새가 난다. ‘제군들(諸君들)’이라고 일본인들은 지금도 말하고 글 쓴다. 우리는 그냥 ‘여러분’이라고 한다.

문학과 예술이야말로 우리 인류 문명 혹은 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문학과 예술 지망생이었다. 내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 친구 엄마가 늘 전축에 까만 LP음반을 얹어놓고 서양 고전 음악을 들으시며 미술수첩(美術手帖) 일본 월간잡지를 보고 계신 것 보았다. 친구 엄마는 내가 다닌 중학이 아닌 다른 공립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셨다. 나도 그때 미술부원으로 사생대회에 거의 빠짐없이 나갔다. 그리고 그때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진주로 개천예술제에도 갔다. 문예부 아이들과 함께 가서 백일장과 사생대회 모두 참여했다. 그야말로 나의 중학시절은 화려했다. 우리 학교 미술 선생님의 사랑을 나만큼 많이 받은 학생도 드물 것이다. 그때부터 항시 내 책가방 속에는 시집과 소설이 들어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딜레탕트(dilettante) 혹은 댄디(dand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제비’가 딱 맞는 것 같다. 그런 제비의 원조는 보들레르나 랭보, 오스카 와일드 등이며 우리나라의 이상(李箱: 1910-1937)도 기생 금홍과 동거할 때 ‘제비’ 다방을 차린 것 알고 있다. 음악과 미술, 문학이 서로 친구 혹은 형제인 것을 나는 중학교 때부터 몸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대학을 그런 학문하는 인문대학에 갔었어야 했는데 그곳에 못 가고 다른 대학에 간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뉘우치지만 도로 물리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인문대학은 항상 나의 동경, 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처음으로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부산 서면 시립도서관에서 빌려보고서 얼마나 열심히 공들여서 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책을 샀다.

“현실을 양식화(樣式化)하는 예술 경향에 반대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예술적 노력으로서의 ‘자연주의’를 선사 시대의 벽화로부터, 발자크, 디킨즈, 톨스토이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서술했다”는 백낙청 교수의 이 책 요약이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자연과 현실을 양식화, 부호화, 상징화할 때 그 시대와 문화는 규격화되고 종속되며 억지로 기록 혹은 표현 되어 진다. 이 책에서 1830년대 발자크에 대한 내용을 인용한다. “(발자크에 의하면) 평등이란 한갓 망상으로서, 일찍이 세계 어디서도 실현된 적이 없다. 절도범은 갤리선(galley)으로 보내지지만, 사기적인 파산 선고로 수많은 가난을 파멸로 이끈 자는 거저 몇 개월 징역이다. …. 도둑을 재판하는 판사는 빈부 사이의 울타리를 지키는 거야. … 파산이란 건 기껏해야 재산을 이리저리 옮긴데 불과하다는 걸 그들은 잘 알 것이다(잃어버린 환상 1837-43).”

이 인용에서 작년 연말 영화로 본 뮤지컬 레미제라블(빅톨 위고 원작) 내용이 다시 연상된다. 갤리선에서 노역에 시달리는 영화의 첫 장면이 내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리얼리즘의 승리라 할 수 있는 발자크 소설을 해설하면서 “덕은 생활의 여유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며, 발자크와 맑스의 계급혁명, 발자크와 헤겔의 변증법 등의 설명은 지금도 내 가슴을 친다.

선사 시대의 동굴 벽화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이 책에 서술되어 있다. 대학생 시절부터 공들여 읽었던 이 책들을 이번에 다시 또 읽어도 역시 여전히 좋다. 이 책의 서술 내용이 내 천성과 이리도 잘 들어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은 이제 보통 시민 교육이 되어 이력서 스펙이나 짜는 곳, 취직 전선의 한 출발선상이나 된 요즘에도 이 책들을 껴 안고 있는 나는 무슨 바보인가, 아닌가. 아직도 나는 이 시대의 돈키호테인지 모르겠다. 1951년생인 서경식 일본 도쿄 게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교수는 나보다 두 살 위다. 최근에 나는 그의 책들(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읽었는데 나하고 동년배인데다 취미와 관심사가 매우 유사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일종의 독서 편력기인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1995)을 수상했는데 가장 아름다운 현대 일본어로 쓴 에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의 서양미술순례(1991년 일본에서 출간, 1992년 한국에서 번역본 출간, 창비)』, 『나의 서양음악순례(2011, 창비)』를 읽었다. 비슷한 성장 시절을 나는 한국 부산에서, 그는 일본 쿄토(京都)에서 보내었고, 그는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나와서 지금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 『교양 모든 것의 시작(노마드북스 2007)』이라는 책을 공저하였다. 학문과 교양, 문화재가 많은 일본 쿄토에서 자란 사람답게 미술관과 음악 연주 홀을 많이 다녔고 책도 많이 읽었다. 그의 미술, 음악, 문학의 교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모르겠다. 그는 강상중 동경대 교수와 더불어 당당하게 한국식 이름으로 일본에서 교수와 연구, 집필 생활을 하고 있다. 서경식 교수의 책들을 이 책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 함께 여러분들께 꼭 권하고 싶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