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水墨)의 세상 꿈꾸는 한국화가 남군석의 작업실(글/사진/피재현_시인, 노암공방)

하루 종일 헛헛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을 차마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고 작업실을 서성거렸다. 이것저것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청소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먼 산을 오래도록 응시했을 뿐. 어쩌면 지금 나는 핍진한 내 존재를 대면할 자신이 없어 자주 서성거리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또 하루해가 저물고서야 잠시 칼을 들고 작업을 했다. 때 아닌 겨울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문천초등학교
저녁을 먹고 아내와 길을 나섰다. 잠시 어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종이컵에 든 커피 한 잔 하자는 듯. 비오는 겨울밤을 아내도 나도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화가 남군석의 작업실로 가는 길은 낯설지 않다. 금속공예를 하는 친구를 만나러, 도자기를 만드는 선배를 만나러 이렇듯 가슴 허전한 날이면 들락거리다가 어느새 길이 익어버린 이하역 가는 길로 차를 몰았다.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고 10년 넘는 세월동안 안동의 숱한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고 더러는 타향으로 직장을 찾아 떠나고 더러는 다른 작업실로 옮겨간 폐교된 문천초등학교.
남군석은 여기서 10년을 넘게 머물러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동경해마지 않으며 이 방 저 방 작가들을 기웃거렸던 그 순간에도 그는 여기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진작 만날 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그의 작업실 문을 두드리지 못했던 것일까?


희뿌연 이슬비 속으로 두어 칸 불이 켜진 문천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오면서 그의 개인전에 갔던 생각이 난다. 이태 전 가을이었다. 예술의전당 전시실을 가득 채운 산수화. 얼핏 보아 사람은 작고 연약해 보이는데 족히 한 면이 2미터는 넘어 보이는 대작들이 셀 수 없이 걸려있는 그의 개인전을 나는 넋을 잃고 둘러보았었다.
도대체 몇 년을 그린거야?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그의 졸업작품인 “청량전도” (한지에 수묵담채, 690×167cm, 2000)


 


화단을 놀라게 했던 첫 개인전
대뜸 개인전 이야기를 꺼냈다.
2008년부터 2년 동안 그린 그림 중에서 77점을 골라 2010년 10월에 연 개인전이 내가 본 전람회였던 것이다. 2008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동양화 새천년 기획전에 참가한 그가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더도 덜도 아닌 2년만의 작업. 실경을 찾아 사생을 다니고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해야 하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부지런함을 넘어서서 죽기 살기로 그렸구나 하는 생각에 좀 질린다.


그 전에 그는 미술학원에서 입시생들을 가르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사이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대학 조교를 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지만 전업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2008년의 일이라고 하니, 첫 개인전을 제대로 보여 준 것이다.


“대학졸업작품전(2000년)에 청량전도를 출품했어요. 청량산 구석구석을 한 달 정도 답사를 다니고 사생을 거쳐 그린 첫 대작이었는데 뭔가 뿌듯함이 있었어요. 몰입했으니까요. 가로가 690cm 세로가 167cm니까 졸업작품 치고는 크지요?”


수줍은 듯 웃는 그는 1975년생. 이제 적잖은 나이다.
개인전에도 대작을 많이 출품했는데 한국화의 스케일을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스승 권기윤 화백(안동대 교수)은 그를 두고 ‘성품이 청신(淸新)하다’고 했다. 맑고 산뜻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가 스승을 닮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전 출품작 “원촌리”(한지에 수묵담채, 35.5×58.5cm, 2004)


 


그림욕심만 내고 살겠다
2006년에 결혼을 했으니 첫째가 태어나고 한참 현실적인 생활문제로 고민이 많았을 때 그는 오히려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선언을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림을 통해 가고 싶은 길이 있고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그런데 다른 것들까지 욕심을 내면 그건 정말 욕심일 것 같아요. 그림 욕심만 내야죠.”


아내가 같은 미술 전공자로 이해를 하고 내조를 잘 한다지만 내가 갖지 못한 미덕인 듯하여 부러워진다. 모름지기 작가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작가의 강단이자 생명줄이다. 그림을 잘 그려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명하고자 하는 정신. 그것이 작가정신일 터다.
그래도 현실은 엄혹하다. 그래서 그도 벽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에서 5년째 수묵화를 가르치는 부업을 한다. 직장 다니는 남동생도 그의 든든한 후견자가 되어 고흐의 동생 테오처럼 형의 작업을 응원해준다.


폐교된 문천초등학교는 두 동의 건물이 앞뒤로 서 있다. 그 중 뒷건물 왼편 2층이 그의 작업실이다. 그는 2001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곳에 입주했다. 폐교된 교사를 작업실로 쓰는 것이라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는 예천 천호예술원에 2년 여 머물렀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10년 넘게 이곳에서 작업을 했다.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송현 살림집과 와룡의 부모님 집을 오가며 작업하기에는 적당한 거리라서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러 작가들이 입주해 있으니 손님도 많을 테고 작가들끼리도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서로 자기 작업에 열중하기 때문에 1주일에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나기가 일쑤란다.
그는 여느 직장인처럼 아침에 도시락을 싸들고 이곳으로 나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해가 지면 퇴근을 한다. 해가 떠 있을 때 작업하는 것이 좋고 규칙적인 작업에 길을 들였다. 밤낮없이 ‘필’에만 의존하는 나와는 다르다.


“작업실에 들어오면 일단 밖의 일들을 다 잊어요. 나는 이 작업실이 편하고 집중이 잘 돼서 좋아요.”




스승 권기윤과 남군석
작업실에 없는 시간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사생을 다니는 시간이다.


“다른 도시로 나가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았어요. 1994년에 안동대에 진학하고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을 다녔는데 권기윤 선생님을 만났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졸업을 하고도 한 달에 한 두 번은 선생님과 사생을 다닙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살아있는 교육이지요. 저에게 선생님은 아버지보다 더 좋은 사람이에요.”


한국화단에서 실경산수의 대가로 우뚝한 권기윤 화백. 혹자는 남군석의 개인전을 보고 스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모필 수련기도 10년 20년 세월을 거쳐야 하는 것인데 당연하겠지요. 선생님 영향을 벗어나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조바심이 나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겸재 정선 같은 화가도 그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 같은 그림은 그의 나이 75세가 되어서 나온 것이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아직 젊은 거잖아요.”


기개가 있다. 내공이 있다. 그의 스승 권기윤도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남군석은 오늘의 감성으로 시대의 변화상과 전통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는 유능한 청년작가로서 대학원 재학 이후에도 줄곧 실경산수에 자신의 뜻을 맡겨왔다. 겸재 정선 이래의 진경산수의 전통을 올곧게 이어 가고자 함인 것이다. 안으로는 고법을 통해 예술정신의 순수성과 에술 양식의 품격을 명확히 익히고, 밖으로는 특히 현장 사생을 산수화 공부의 필수 과정으로 인식하여 10년 세월을 비바람과 함께 보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천품이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의 그림 한 점 한 점에 그의 개성과 기개가 넘친다. 선량한 터에 부지런함까지 보태어 가지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건강하고 성실한 그의 정신이, 스승으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내고 독자들로 하여금 기대를 갖게 하는 덕목이 아닐까?




그에게서 배운다
그는 대작 위주의 전시회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조건이 갖춰지면 우리는 올 연말쯤 그가 큰 화폭에 그려낸 기개 넘치는 폭포와 산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서양화가 득세하는 세상이지만 머지않아 수묵화가 대세가 될 날이 온다고 그는 믿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준비하고 꾸준히 그리고 있어야 한다. 그는 그럴 생각이다. 발품을 팔아 산천을 다니고, 실경이라는 전제된 자연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정신을 화폭에 불어넣으며 60이 되고 70이 되었을 때, 그는 우리 그림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그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할 일이 많다. 글씨도 한 10년 푹 빠져서 쓰고 싶고, 세상을 주유하며 다른 사람들의 그림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싶다. 좋은 종이를 찾아다니고 금강산처럼 거기서 그냥 살아버리고 싶은 자연을 찾아 부지런히 다녀도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실경을 해석하고 나만의 그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신적 수양과 정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몰입해서 하는 거죠. 자연도 사계절을 따라 혹은 바람과 구름을 따라 수시로 변하고 나의 느낌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늘상 새롭게 접근해보고 싶고 그렸던 것도 다시 그려보고 싶고…… 할 일이 많네요.”
  
내일은 또 아르바이트 벽화를 그리러 가야한다는 그를 두고 우리는 작업실을 나왔다. 안개인듯 내리는 비 속에서 들어갈 때 야속하게 짖어대던 개가 저만치 조용하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루 종일 헛헛했던 나는.
나는 어떤 위기나 역경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나태와 가벼운 우울을 견뎌내지 못해서 징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몰입과 치열, 그것은 초심이 아니라 작가에게 있어서 일상이어야 함을.
남군석. 그에게서 배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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