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연못을 꿈꾸는 지호공방(글/사진/피재현_시인, 노암공방 운영)

민화작가 조진영
민화는 주로 조선시대 민중들에 의해서 그려졌던 생활 속 실용화를 일컫는다.
오랜 시간동안 민간에 전승되어 왔던 민담, 민요처럼 이름 없는 서민들에 의해 그려진 민속화, 밋밋한 벽면을 치장하기도 하고 장롱이나 문갑에 붙이기도 했던 민화는 우리 민중들의 샤머니즘의 가시적 표현이었고 소박하고 담백한 맛이 여간 아닌 민간 예술이었다. 일제강점기와 예술의 상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잊혀져가던 민화는 1970년대에 이르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되살아났다. 수 천점의 민화가 발굴, 복원되었으며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화가들도 생겨났다.
다행한 일이다.
화조, 산수, 민속, 교화 등으로 나뉘어 모란꽃도 원앙새도 규방이나 민간의 풍속도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새롭게 민화작업을 하는 분들에 의해서 우리 생활 속에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우리 안동에도 민화는 지난 십 수년 간 시민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예술로 복원되고 있다. 대학의 평생교육원과 개인 공방에서 강습을 하고 몇 차례 전시회도 열렸다. 민화를 그리는 분들도 많이 생겨났다. 특히 천연염색이나 한지 공예 등 생활 공예 속에서 민화는 빛을 발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민화가 가지고 있는 소재의 친숙성과 화려한 색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민화를 그리고 공예품으로 창조해가는 많은 분들 가운데 안동공예문화전시관에 자리 잡은 지호공방을 찾았다. 거기에는 민화를 닮은 화가 조진영(49)씨가 있다.



안동공예문화전시관에서 시작하는 꿈
지호(池浩)공방, 넓은 연못이 되라고 지인이 지어주었다는 공방 이름과 진영 씨는 잘 어울린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함께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지인의 뜻이자 집주인의 뜻이었다면 성공했다.
공방을 시작한 지 갓 2년을 넘겼다. 짧은 시간이지만 공방에는 천연염색이나 민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부터 진영 씨와 차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비록 너댓 평 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그 공간의 크기를 무한정으로 넓혀주는 진영 씨의 품 넓은 미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나도 그 틈에 끼여 몇 차례 지호공방을 드나들었다. 오늘도 공방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함께 공방을 찾았다.
평일 오후, 일하는 공방은 어수선하다. 작업공간과 판매용 전시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방의 특성상 한켠에는 한창 채색 중인 안동포 걸개가 펼쳐져 있고 한켠에는 화조도가 그려진 방석이며 색색이 곱게 물들인 머플러가 걸려 있다.
진영 씨는 2011년 말, 집 밖에 처음으로 작업실을 가졌다. 일찍 결혼해서 애들 다 키워놓고 그제야 마음이 시키는 대로 공방을 내고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온갖 꽃들과 나비와 새가 가득한 곳, 진영 씨의 꿈 터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이 더없이 달콤하다.



만학(晩學), 공부가 즐겁다
학교 다닐 때 그는 그림 잘 그리는 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그림 제일 잘 그리는 아이’였지만 미대는커녕 대학을 갈 형편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마치고 4년 여 지점토 공방을 운영한 적이 있었지만 그마나 결혼하고 첫 아기를 낳고는 그만 둬야 했다. 아이 둘을 낳아 다 키워갈 무렵 그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던 자신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6년 전, 용기를 내어 부산까지 동양화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방을 시작했지만 무엇을 만들어 팔거나 돈을 벌고 싶은 욕심보다 배우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공부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2012년, 그는 미대생이 되었다. 군대 간 아들이 제대하고 올 2학기에 복학을 하면 안동대학교에 모자지간에 나란히 2학년에 다니게 된다. 늦게 시작한 대학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억수로 재밌어요”하면서 눈이 빛난다.
그는 정말 재미있게 공부를 하는 것 같다. 단양의 사인암을 그리겠다고 몇 차례 답사를 다녀오는가 하면 지난 학기에는 용상동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닭 한 마리를 붙들고 한 학기 내내 닭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
나이가 많아서 다른 학생들보다 불리할 것 같았다. 체계적인 입시교육을 받지도 않았으니 학교 공부를 어떻게 따라갈까 싶다. 그러나 그의 말은 뜻밖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돌아와서도 저는 붓질을 계속하잖아요. 일상생활이 붓질을 하는 거니까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는 더 하는 셈이죠.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는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아요.”


스스로를 학구파라고 하는 진영 씨. 공부 맛을 제대로 들인 것 같다.




지호공방 
지호공방의 주 수입원은 주문 제작이다.
병풍이나, 가리개, 커튼, 이불, 방석 등등 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장식품이나 생필품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고객들이다. 시집가는 딸에게 모란이나 연꽃이 들어간 가리개를 맞춰주는 어머니는 시집간 딸이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잘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리개를 주문한다. 모란은 꽃 중에서도 그 자태의 화려함으로 인해 ‘부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민화가 갖고 있는 민간신앙적 성격 때문에 민간의 수호신이었던 호랑이나 용그림이 들어간 작품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대게는 꽃이나 나비, 새 그림이 들어간 장식용 생활용품을 많이 찾는다.
그 다음 지호공방의 수입원은 민화강습과 체험이다.
현재 10여명의 회원들이 민화를 배우고 있고 주말이나 방학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체험도 이루어진다. 천연염색과 민화를 병행하거나 연계하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 공간이 좁아서 염색을 하기에는 적당하지가 않다.
여느 공방처럼 그도 외부 수업을 다닌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너무 바빠서 일정을 많이 줄이고 있지만 돈을 안 벌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나중에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진영 씨는 지호공방이 만족스럽다. 아직은 사업적이기보다는 공부가 중심이 되어야 할 생활이라는 것을 아니까 이 정도 규모에서 이 정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일이다.
안동공예문화전시관 2층에 입주해 있는 지호공방은 안동댐 문화경관을 찾는 관광객들과 공예관 방문객들에게 항상 열려있는 공간이다. 사전에 예약을 하면 공예체험을 할 수도 있고 다양한 작품들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도 있다.



진영 씨의 민화 사랑, 민화 자랑
요즘 진영 씨는 ‘민화’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지난 봄 일산 킨덱스에서 열린 공예페어에서 우연히 참여하게 되면서 그는 민화의 가능성과 자부심을 한꺼번에 맛보았다.
민화는 일반 서민들이 좋아하는 그림이다. 게다가 그림으로 생활공간을 장식한다거나 민속적인 관습으로 제작되었던 실용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공예적인 회화로서 일상생활과 함께 할 여지가 많은 분야인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린 민화가 들어간 작품들을 사 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요즘은 선과 여백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어떻게 선을 더 많이 생략하고 여백미를 살릴 수 있을지 붓을 들 때마다 고민하지요. 채색에 대한 고민도 많은데 민화는 한국화 중에 채색화잖아요. 색을 만들고 적절하게 입히는 일이 고민이 많이 돼죠.”


민화의 화면은 대개 커다란 여백 없이 하나하나의 소재로 채워져 있으며, 좌우는 분명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는 민화가 벽면의 치장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균형 있는 장식을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었다.
여백이라던가 선이라던가 하는 고민은 그가 동양화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으면서 생기는 고민이다. 동양화의 미적 가치를 어떻게 민화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제 머지않아 그만의 민화작품이 나오리라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니 진영 씨는 민화를 닮았다.
민화에는 꿈과 믿음이 있고 따뜻하고 조용하며 소박한 멋을 지닌 한국인들의 고상한 품격에 종합되는 도덕성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표현이 순박하고 기교가 없다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진영 씨가 그렇다.
남편의 무관심(?)이 오히려 고마울 만큼 그림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는 소박하고 정직한 민중성을 가지고 있다. 일상 속에서 따뜻하고 조용하지만 그림에 대한 꿈과 믿음, 그리고 단순함에서 나오는 불굴의 용기를 함께 지니고 있다.




소박하고 따뜻한 민화, 그 정직함의 미학
본격적인 동양화 공부를 하면 민화가 좀 우습게 보이지 않겠냐는 질문에 진영 씨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사람들이 민화를 본(本)에 채색이나 하는 하찮은 그림으로 여기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민화는 분명히 가치 있는 그림예술장르예요.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어요.”


진영 씨는 세간의 민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민화를 현대에 되살리고자 대중들에게 가르치는 과정에서 쉽게 접근한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민화 고유의 예술적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것에 대해서 분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감히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하여 부담스럽고 두려워하면서도 민화에 대한 애정만큼은 숨기지 않는다.
지금 진영 씨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진영 씨의 공부 속에서 조금씩 답이 구해지고 좀 더 분명해지는 날, 민화의 현재적 재해석과 정착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넓은 연못, 지호공방에서 힘차게 도약하는 한 마리 잉어 같은 진영 씨의 그림 공부를 응원한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