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포마을 이야기를 꺼내보며(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화평론가)
부포를 기억하는 일
삶의 기억을 전해 듣는 일에는 개인적인 삶이 마을 전체의 대표성을 띌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따라다닌다. 대표성 이전에 과연 그 기억의 정확성은 얼마일지도 미지수이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체험 아래 깔린 기억을 재구성 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오늘날의 생애사, 구술사는 지역의 살아있는 역사체험을 현장감 있게 전해준다. 부포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야기로 상처를 다독여야 하는 이 글에서 생애담은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그런데 그 마을경관과 산세와 물줄기를 말할 대상은 저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데 어떻게 공간을 들먹여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단 말인가. 부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간을 기억하고 공간에서 있었던 일상의 소중한 일화를 풀어놓는다. 그 기억이 부포라는 공간 없이 재생될 수 없기에 다시 장소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마을에 거주했던 사람이거나 현재 거주하는 사람을 망라해 발길 닿고 인연 닿는 대로 만나서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는 일에서 부포이야기는 시작한다. 최소한 부포 사람들이 살았던 삶이며 체험의 언어들이다. 특히나 안동댐이란 지축을 흔든 사건을 경계로 마을과 마을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매우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때 이들 이야기는 살아있는 문학현장이 된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생생한 언어를 듣는 일은 불편하다. 먼지 쌓이듯 켜켜이 가라앉아 이제는 큰 장마가 아니고는 그렇게 마음 흔들리지 않을 이야기쯤으로 여길 시간이 된 것도 같지만 언제나 수몰의 상처는 현재시각의 통증을 일으킨다. 없어진 고향, 사라진 고향을 두고 쓰는 짝사랑 연서는 부쳐도 받을 주소가 없이 떠도는 편지라는 사실을 부포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알아도 너무 정확히 알고 있다. 1975년 안동댐이 완공되면서 그 전후로부터 이제껏 떨리는 손으로 쓰다말다 그만 둔 애끓는 마음이 벌써 37년을 육박하고 있다.
부포마을 이야기를 듣다보면 두 부류의 부포사람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부포를 떠난 사람과 부포에 남은 사람이 그렇다. 부포를 떠나 살던 사람에게 사라진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늘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이유란 깊어진 그리움을 두고 제대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도록 차단당했기 때문이다. 가끔, 사라져가는 고향을 두고 탈향을 선택한 의지가 무모하지 않았을까를 묻는 물음도 고향 부재와 같은 밀도로 밀려드는 실향민의 비애를 감당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마음이다. 또 하나의 축으로 부포에 남은 실향민의 상처도 똑같이 깊다는 것이다. 마을에 물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던 그들은 떠날 수 있었던 실향민의 선택이 부러웠을지 모를 일이다. 떠나지 못한 아쉬움이 그런대로 위안이 되는 일은 고향울타리 안에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묻힌 고향이 현재적인 기억으로 머물 때만 가능하다.
부포사람들의 고향 사랑
조상을 추억하고 기리는 일을 자손의 도리로 알고 사는 이원정 씨는 어려서는 부모를 잃고 중년이 되어 고향마저 물에 잠겼다고 안타까워한다. 수리시설이 좋아 진밭에 벼를 심었고 사질양토 남강들에 수박, 참외, 우엉, 지황, 황기로 심었고 삼을 갈아 안동포도 짜낸 곳이다. 가름, 역동은 담배농사를 짓고, 사창거리에는 과수원이 많았다고 하니 부포들이 얼마나 풍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고향을 물에 묻었으니 그 마음이 어떨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많은 농사는 품앗이로 지었고 여름에는 풋굿잔치를 벌여 고된 노동을 쉬어가기도 했다. 그는 “고향도 어머니와 같다. 아무리 교통이 불편하고 땅이 척박하고 살아가기 힘든 고향이라도 고향은 내 고향이 제일이다. 한때는 고향에 등을 돌렸다가도 나이 들고 형편만 웬만하면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것을 환고라 한다.”<누구나 그리워하는 고향>(장지문 사이로 환한 햇살이, 좋은책만들기, 1999) 고 말한다. 그는 1958년에 <부포소년단노래>, 1960년에 <부포청년회가>를 작사했다. 또, 이원정의 글 선물 받은 고향사진에는 안동댐 공사가 확정되면서 마을이 수몰될 것을 두고 걱정하는 마을청년들이 부라원루에 모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자네는 물이 들어오면 어디로 떠날 생각인가?” “막연하지 뭐. 우리 같은 사람이야 배운 게 없으니 그저 막막하네. 우리같이 남의 논밭 붙여먹던 사람이야 보상 받을 돈이 있나 뛰도 걸도 못하게 생겼네.” 1960년대 중반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동렬 씨는 1966년 전공책 몇 권과 낡은 사전 한 권, 그리고 전 재산 60달러를 들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32년 넘도록 살다가 1999년의 우연한 전화 한통에 한국으로 돌아와 이화여대에서 재직한 사람이다. 유명한 서예가로 활동하는 그는 속기(俗氣)를 벗어나려는 욕심에서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청고개를 넘으면>(청고개를 넘으면, 선우미디어, 2010.)을 통해 부포리 역동, 고향가는 고갯길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에 자기 고향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람이 있으랴’ 라며 이중환의 택리지를 소개하며 그리운 고향 역동의 자연을 풀어낸다. “역동 집은 청고개를 넘으면 늘매 들판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면 바로 강가, 100년이 훨씬 넘는 소나무 군락 속에 있다. 예안초등학교를 다닐 때 늘매 사는 같은 친구와 함께 청고개를 넘어 다녔다. 봄이면 진달래를 꺾고, 여름에는 학교 가다가 신고 있던 고무신을 신작로 벽에 높이 던져 올리는 것이 우리 산골 아이들의 오락이었다. 그러나 나는 운동신경이 둔해서 한 번도 기록을 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이런 고향 사랑은 가곡 <청고개> 창작으로 이어진다.
강동섭 씨는 어릴 때 부포를 떠나 인천에 살면서 1981년부터 부포분교가 폐교될 때까지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학용품과 운동기구를 보냈다. 예안초등학교 이교화 교장이 감사패를 드렸고 1995년에는 예안초등학교 학생과 전교직원이 인천에 초대받아 견학을 했다. 부포분교가 폐교된 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는 월곡초등 삼계분교가 폐교될 때까지 어린이날에 학용품을 후원했으며 현재는 월곡초등학교로 후원하고 있는 중이다. 강동섭 씨의 선행은 인천 자치단체로부터도 여러 차례 감사패와 표창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천에서도 청소년 보호활동을 하며 주변의 이웃을 보살피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부포사람들의 고향 사랑
조상을 추억하고 기리는 일을 자손의 도리로 알고 사는 이원정 씨는 어려서는 부모를 잃고 중년이 되어 고향마저 물에 잠겼다고 안타까워한다. 수리시설이 좋아 진밭에 벼를 심었고 사질양토 남강들에 수박, 참외, 우엉, 지황, 황기로 심었고 삼을 갈아 안동포도 짜낸 곳이다. 가름, 역동은 담배농사를 짓고, 사창거리에는 과수원이 많았다고 하니 부포들이 얼마나 풍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고향을 물에 묻었으니 그 마음이 어떨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많은 농사는 품앗이로 지었고 여름에는 풋굿잔치를 벌여 고된 노동을 쉬어가기도 했다. 그는 “고향도 어머니와 같다. 아무리 교통이 불편하고 땅이 척박하고 살아가기 힘든 고향이라도 고향은 내 고향이 제일이다. 한때는 고향에 등을 돌렸다가도 나이 들고 형편만 웬만하면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것을 환고라 한다.”<누구나 그리워하는 고향>(장지문 사이로 환한 햇살이, 좋은책만들기, 1999) 고 말한다. 그는 1958년에 <부포소년단노래>, 1960년에 <부포청년회가>를 작사했다. 또, 이원정의 글 선물 받은 고향사진에는 안동댐 공사가 확정되면서 마을이 수몰될 것을 두고 걱정하는 마을청년들이 부라원루에 모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자네는 물이 들어오면 어디로 떠날 생각인가?” “막연하지 뭐. 우리 같은 사람이야 배운 게 없으니 그저 막막하네. 우리같이 남의 논밭 붙여먹던 사람이야 보상 받을 돈이 있나 뛰도 걸도 못하게 생겼네.” 1960년대 중반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동렬 씨는 1966년 전공책 몇 권과 낡은 사전 한 권, 그리고 전 재산 60달러를 들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32년 넘도록 살다가 1999년의 우연한 전화 한통에 한국으로 돌아와 이화여대에서 재직한 사람이다. 유명한 서예가로 활동하는 그는 속기(俗氣)를 벗어나려는 욕심에서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청고개를 넘으면>(청고개를 넘으면, 선우미디어, 2010.)을 통해 부포리 역동, 고향가는 고갯길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에 자기 고향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람이 있으랴’ 라며 이중환의 택리지를 소개하며 그리운 고향 역동의 자연을 풀어낸다. “역동 집은 청고개를 넘으면 늘매 들판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면 바로 강가, 100년이 훨씬 넘는 소나무 군락 속에 있다. 예안초등학교를 다닐 때 늘매 사는 같은 친구와 함께 청고개를 넘어 다녔다. 봄이면 진달래를 꺾고, 여름에는 학교 가다가 신고 있던 고무신을 신작로 벽에 높이 던져 올리는 것이 우리 산골 아이들의 오락이었다. 그러나 나는 운동신경이 둔해서 한 번도 기록을 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이런 고향 사랑은 가곡 <청고개> 창작으로 이어진다.
강동섭 씨는 어릴 때 부포를 떠나 인천에 살면서 1981년부터 부포분교가 폐교될 때까지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학용품과 운동기구를 보냈다. 예안초등학교 이교화 교장이 감사패를 드렸고 1995년에는 예안초등학교 학생과 전교직원이 인천에 초대받아 견학을 했다. 부포분교가 폐교된 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는 월곡초등 삼계분교가 폐교될 때까지 어린이날에 학용품을 후원했으며 현재는 월곡초등학교로 후원하고 있는 중이다. 강동섭 씨의 선행은 인천 자치단체로부터도 여러 차례 감사패와 표창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천에서도 청소년 보호활동을 하며 주변의 이웃을 보살피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