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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 퍼지면 나도 관둘동˝ 최고령 택시기사 권태규(글/이미홍_객원기자)

여든하나 안동 최고령 택시기사
어느 날, 안동시내에서 무심코 택시에 올라 행선지를 말하고 “네~” 하고 대답하시는 기사 분을 보았다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언뜻 봐도 연세가 많아 보이시는 할아버지 기사분이셨다. 칠십 세는 넘으신 거 같아 연세를 여쭤보니 여든하나라고 하신다. 혼자 속으로 ‘헉~’ 이랬다. 이번호 이웃이야기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이 나이까지 운전하고 사는 거 그거뿐인데 무슨 들을 이야기가 있다고요? 지금까지 밥벌이하고 살아온 거뿐인데…….”
집을 찾아간 우리에게 권태규 할아버지가 건네신 말씀이다.

“안동에 택시 하는 이 중에 내 또래가 있었는데 재작년에 하나 가고 작년에 또 하나 남은 친구가 가고 이제는 나밖에 없어. 내 밑에는 한참 아래 칠십대 초반도 몇 없고 육십 대가 많지.”
다음은 권태규 할아버지가 밥벌이 하며 살아오신 이야기다. 팔십을 넘기는 숫자가 말해주듯 할아버지의 밥 벌어먹고 살아오신 세월 속에는 만만치 않은 역사들이 녹아 있다.
자고로 남자의 밥벌이는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되는 순간부터가 진짜니까 먼저 결혼 이야기부터.
“웃을라구요? 웃지 마세요? 내가 외동이라서 아버지는 얼굴도 모르고 조부 밑에서 컸는데, 손이 귀하다 보니 조부가 저를 일찍 장가를 들이셨어요. 내가 열다섯, 저 양반이 열일곱 살 때 그래 만나서 결혼을 했어요.”
신부 집인 예안 녹전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하룻밤을 자고 신랑인 태규 할아버지는 집으로 왔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했지요. 녹전에 가서 니 신붓감 될 처자를 보고 왔다 해서 그런 줄 알았고, 날을 잡았다 해서 어른들 따라가서 혼례를 치르고, 혼례 올리고 신부는 처가집에 있고 학교 다니다가 주말이나 방학 때 녹전에 댕겨 오라 하면 갔다 오고 또 학교 다니고. 음력 사월에 혼례 올리고 그렇게 지내다가 저 사람이 시월에 안동 집으로 왔지요. 가서 인력거를 태워서 데리고 왔지요.

열다섯 열일곱 꼬마신랑과 신부
어른들이 장가들라 해서 뭣도 모르고 열다섯에 들었다던 장가, 하지만 고운 신부에 대한 연정이 어찌 없었을까? 아마도 신부가 진짜 시집으로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을까 싶다. 타고난 성정이기도 하시겠지만 그때 당시 상황을 할머니보다 더 잘 기억하고 계신 걸 보면 말이다. 사진첩을 들추시며 전쟁 통에 그나마 한두 장 있던 결혼사진도 다 타버렸다며 안타까워하시는 할아버지다.

당시만 해도 근동에서 알아주던 조부 권태두 옹의 손자 33년생인 권태규 할아버지와 녹전면에 살았던 광산김씨 설월당 집안의 딸 일곱 중 첫째 딸이었던 31년생인 김귀남 할머니 두 분은 집안 어른의 중매로 그렇게 만나 혼례식을 올렸다 한다. 그때가 6.25전쟁이 일어나기 삼년 전인 1947년이었다니 두 분이 함께 살아오신 세월이 그야말로 한 평생이시다.

“시집 와 보니 외동도 그냥 외동이 아니고 삼대독자에 어지간히 애지중지 키운 손자가 아니었어요. 아들 먼저 보내고 하나밖에 없는 손자인데 오직 귀하게 키우셨겠어요? 당신 생전에 증손자 보고 싶으신 마음에 장가도 일찍 들이신 거지요. 시어머님은 사랑어른이 군에 계시다가 시모 서른여덟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청상으로 조부 모시며 아들을 키우셨고요. 시집 왔을 때 집안에 일 거들고 밥 해 먹는 식모 여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오니까 그 어린 게 집안 살림을 다 하다시피 하고 있더라고요. 시어머니 일찍 돌아가시고 제가 데리고 있다가 열여덟에 우리 집에서 시집을 갔지요.”
그래도 시집살이 힘들었다 한 마디가 없으신 할머니시다.

“우리 고향이 저기 사진에 있는 북후면이에요. 저 사진 속 솔밭아래 집이 우리 고향집이래요. 그 아래 기와집이 도계서원이에요. 어릴 때 멋도 모르고 동무들하고 저 서원에서 뛰놀며 자랐지요. 조부 살아계실 때만 해도 도계서원이 안동선비들이 만든 임계라는 계모임의 모임 장소가 되는 경우가 많아 안동의 각 문중 어른들이 모이던 모습이 선해요. 덕분에 우리 집에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어요. 조부가 학문도 깊으시고 두루두루 인맥도 넓으셔서 교류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지요.”
방송국에서 ‘임계’를 취재하면서 도계서원 일대를 원경에서 촬영한 사진이 있었다. 방송국에 있는 지인에게 따로 부탁을 해 구해서 거실 벽에 크게 확대해서 걸어놓은 북후면 고향 마을 사진이다. 정확하게 고향집과 도계서원을 가리키며 설명하시는 그 눈길에 조부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마을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느껴진다. 맘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그곳에 가서 살고 싶지만, 옛날 기와집이다 보니 개보수가 만만한 게 아니고 혼자 맘대로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 고향집에 딸린 텃밭에 농사를 지으러 다니며 그 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돌볼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는 눈치시다. 언젠가는, 안되면 자식 대에서라도 누군가가 꼭 그 집에 가서 살며 고향집 터전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권태규 할아버지의 마음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그때 당시 시댁이 안동 광석동에 대안극장 뒤쪽에 집이 있었는데 시집을 와 보니 집 안에 목욕탕이 따로 있었어요.”
밥 많이 굶던 그 시절에도 집안형편은 좋았다.
“목욕실에 물을 데우면 조부가 먼저 목욕을 하고 그 다음에 제가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당시 다름 사람들은 가마 타고 시집오거나 걸어서 오거나 하던 시절이었는데, 저 양반은 인력거 타고 시집을 왔어요. 아마 주위에 그 당시에 인력거 타고 시집온 이는 찾기 힘들 거예요.”
그러나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서 시조부, 시모 모시고 한 삼년 살다가 6.25 사변이 나서 피난을 갔어요. 피난 갔다 오니 집이 불타고 아무것도 안 남았어요. 그야말로 숟가락 세 개 가지고 고향집으로 들어가서 다시 살림을 살기 시작했어요.”
“장가를 들었던 그때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제가 서부초등학교 5회 졸업생이에요. 당시만 해도 우리 집안 형편이 좋아서 부자 소리 들으면서 먹고 사는 거 걱정하지 않고 살았지요. 그런데 해방되고 조봉암 씨가 토지개혁을 하면서 50마지기 되던 토지의 대부분을 그냥 뺏기다시피 해버리면서 내 대에 와서 살림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할아버지의 말에 보태어 잠깐 여기서 조봉암의 토지개혁이 뭔고 껍데기만이라도 짚고 넘어가자면, 해방 후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초대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취임한 그때 제헌의원으로 당선되어 초대농림부 장관이 된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조봉암이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지주-소작인 관계를 청산하고 농민들의 경제적인 안정을 꾀하고자 실시했던 제도였는데, 당시로선 정말 혁명에 가까울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자 아마도 전국의 지주, 소작인들이 들끓었던, 그리고 실질적으로 많은 이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던 조치였다고 한다.
그리고 6.25가 일어났다. 온 식구가 보따리 짐을 싸서 피난을 갔다. 폭격소리를 피해 가다가다 보니 청도까지 피난을 갔다. 어른들은 전쟁 통에 귀한 손자가 군에 징집되거나 혹여 잘못될까 청도의 자인이라는 마을에서 난리가 지나갈 때까지 식구들이 함께 지내다가 잠잠해지고 나서야 안동으로 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집이 불타고 없어져 버렸다.

급작스런 입대, 그때 배운 운전이 평생업일줄이야
“6.25가 일어나고 살던 집이 불타버리고 하면서 우선 먹고 사는 게 문제였어요. 다행히 서원에 딸린 시골집이 있으니까 할아버지께서 거기 들어가 살자 하셨죠. 서원 옆에 있는 고향집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군대를 끌려가게 되었어요. 그때 다행인지 군대에서 운전을 배웠는데 그 운전으로 평생을 벌어먹고 살줄은 몰랐죠.”
삼대독자였지만 호적이 잘못돼서 할아버지는 결혼을 하고서 늦게 군대에 가야했다. 남편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귀남이 할머니는 조부를 봉양하며 농사를 지어 아이들을 공부시켰다. 나중에 남편이 운전을 시작하고도 할머니는 이십여 년 넘게 농사를 지었다.

“큰 아들을 서울에 중학교에 보냈는데 그러다 보니 학비가 많이 들었어요. 촌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농사만 지어서는 도저히 서울서 공부하는 아들 뒷바라지 하고 애들 키우고 하는 게 안 되겠더라고요. 아이들 제대로 공부시키고 살려면 농사만 지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안동으로 다시 나와서 저 양반이 운전을 하기 시작한 게 오늘까지 이르게 된 거지요. 처음에는 군대에서 운전을 배운 걸 살려서 개인화물을 하다가 대한통운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개인택시를 하게 된 거지요.”
할아버지는 안동에 개인택시가 나오고 4회째에 택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다는 할아버지.

개인택시 받은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 갈 정도
“그때 내 택시번호가 3045였어요. 개인택시 면허를 내줄 때 1회 차에는 신청자를 받아서 그 중 다섯 대를 내줬는데 신청자들 중에서 뺑뺑이를 돌려서 추첨을 했어요. 그러다가 말이 많아서 나중에는 신청자 중에서 경력자 순으로 허가를 내주게 되어서 내가 4차 순으로 받게 됐는데 그때는 개인택시를 받는 게 참 대단한 일이었어요. 허가 내주는 대수도 많지 않았고 그만큼 벌이가 좋았다는 말도 되지요. 그때 같이 개인택시를 받게 된 안동 영주 기사들이 기념으로 부부동반으로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왔으
니까요. 그 당시 제주도 택시 기사들은 정원초과도 안 하고 승차거부도 안한다고 해서 우리 기사 다섯 명이 밤에 한 번 시험을 해 봤는데 정말 정원초과라서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멤버들하고 모임이 지금도 이어져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모여 식사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은 여행도 하고 그래요.”
그때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조용히 하시는 한마디,
“그때 모처럼 제주도 여행 간다고 며느리가 잠옷을 새로 사 줬는데 한 번도 못 입어보고 왔어요.” 하신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슬쩍 건너다보더니 “그 잠옷 그때 제주도에 내버리고 왔지요.” 하신다. 할머니더러 왜 안 입으셨나 했더니 그냥 웃으신다. 그리고는 두 분 다 이렇다 할 다른 말이 없으시다. 그때 그날 밤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천상 안동 양반이시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일명 납득이 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밤 할머니는 어쩌면 조금 우셨을 지도.

“조부님이 아흔 네 살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신문 보시고 천상 선비셨지요. 돌아가실 때도 정갈하게 하시고 글씨 쓰고 하시다가 곱게 그렇게 가셨어요. 내가 열여덟, 저 사람 스물에 첫 딸아이를 놓고 중간에 아들 셋을 낳고 막내딸을 낳았어요. 오남매인데 다들 부산이다 서울이다 나가 살고 안동에 있는 애가 하나도 없어요. 첫딸이 벌써 환갑이 지났어요. 내앞 의성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는데 독립유공자를 낸 집안으로 가서 자식 낳고 키우더니 어느새 환갑이 됐네요. 우리 애들은 다들 중매를 해서 선을 보고 결혼을 했어요. 집안을 따진다고 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살면서 조부나 집안 가풍이나 영향을 받긴 했겠지요. 그래도 부부연이 돼서 혼인이 되는 거지 부모가 억지로 하란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행히 다들 큰 탈 없이 살아주니 고맙지요.”

앞차 쫓아갑시다? 벌 돈이 있고 안 벌 돈이 있다
택시기사 권태규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기억에 남는 손님들 이야기다.
택시 운전을 하려면 가장 곤란한 손님이 만취해서 무조건 우리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손님이라고. 한 번은 대취해서 우리 집만 외치는 손님을 태우고 낯선 골목을 돌다 돌다 결국은 파출소에 내려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조건 택시 잡아타고 앞차 따라잡아 달라고 하는 손님도 난감하다. 아침 출퇴근길에 차를 놓쳤다고 앞에 가는 버스 잡아달라고 하는 손님 급한 마음이야 이해가 가지만 차선이고 신호고 무시해가며 무리해서라도 저 차만 잡아달라는 막무가내인 손님, 복잡한 도로에서 위반해가며 달아나는 앞차를 따라잡아 가로질러 막아세워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어 되도록이면 사양하고 싶은 손님이란다.

한 번은 아주머니 한 분이 타고 저기 앞에 가는 승용차를 뒤따라가자고 하더란다. 사연을 들어보니 애기 아빠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계속 거짓말을 해서 오늘 만나는 현장을 잡아서 이혼을 하든지 말든지 결단을 내리려고 하니 무조건 저 차를 따라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 남편의 차는 댐으로 향했는데 속으로 난감해진 할아버지는 생각 끝에 아주머니에게 지금 여기에서 남편을 잡아 족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고 만에 하나 남편을 잡았는데 남편이 정분이 난 그 여자 앞에서 부인 체면을 안 세워주고 적반하장 격으로 화를 내며 창피를 주거나 하면 아주머니만 손해니까 내가 알고 있다는 것만 알려주고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다고 설득을 하고 그 차 옆으로 차를 가까이 대고는 창문을 열어 운전석의 남편이 택시 조수석에 타고 있는 부인 얼굴을 확인할 시간을 주고 창문을 닫고 그 부인을 집으로 태워다 주었단다. 후에 우연히 그 부인이 할아버지 택시를 또 타게 되었는데 그때는 고마웠다고, 남편이 그 후에 곧바로 집으로 따라 들어와 싹싹 빌더라고 그러더라고. 잘한 일이었는지 판단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좋은 일도 아니고 남의 뒤를 미행해 한 가정이 파탄 나는 데 한 몫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 할아버지의 변이다.

“나는 기억도 못하는데 고마웠다며 그때 기본요금이 팔백 원이었는데 차비를 만 원을 주고 내리더라고요. 그래 다행이다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다 했지요. 돈도 벌 돈이 있고 안 벌 돈이 있지 안 그래요?”
“복은 지은 대로 온다고 이 양반이 평소에도 경우에 어긋난 일 안하고 하니 그게 또 돌아오더라고요. 한 번은 시골 길에서 우리 차가 빠졌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와서 차를 빼게 도와주더라고요. 고맙다고 하니까 자기가 도리어 고마워해야 한다며 이 차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그러더라고요. 농고 학생이었는데 언젠가 친구와 둘이서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차비도 없고 빗속에서 아무리 손을 들어도 세워주는 차가 없었는데 우리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 태워주셨다고 꼭 기억했다가 언제고 기회가 되면 갚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더러는 도착해서 줄행랑, 차비 떼인적도 있죠
그래도 사노라면 작정하고 덤비는 데야 당할 밖에 도리가 없는 일도 더러는 있는 법.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남자 손님 한 분이 택시를 타고는 요금은 섭섭지 않게 줄 테니 부산을 가자고 하더란다. 부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도착을 했는데, 도착해서는 손님이 이리저리 골목길을 돌더니 차를 어느 골목길에 세우더니 세탁소에 들러 세탁물을 찾아야 한다고 세우더니 세탁소 들어갔다 와서는 차비를 가지고 나오기로 한 사람이 안 나온다고 휴대폰을 좀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자 밖에 서서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골목길 안으로 뛰어서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마침 지나가던 순찰차가 다가와서 번호판을 보니 다른 지방 택시 같은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해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했더니 경찰관이 신고 접수를 대신 해주고 휴대폰은 정지시키고 조사해서 연락을 주겠다 했다.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후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기를 조사를 해 보니 그 손님은 근처에 사는 유명한 건달로 빈털터리 백수 처지로 택시비를 낼 돈도 없다고 했다. 까짓 거 공짜로 차 한 번 태워줬다 생각했다.

한 번은 서울까지도 공짜배기 손님을 태워줬다. 가는 내내 자는 척하다가 잠실대교 건너 군자교 막 넘어서서 세우라고 해서 차를 세우는데 후다닥 뛰어 골목으로 달려 들어가 버렸다. 따라 들어가 봤지만 복잡한 골목길에다 길에 차를 세워두고서야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래 강도나 뭐 그런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그 돈 안 벌었다 생각하고 그 뒤로는 장거리 손님을 태울 때도 좀 더 조심을 하고 무리한 장거리는 피한다는 할아버지다.
이제는 겉으로 보기에도 연배가 들어 보이니까 젊은 사람들 중에는 장거리를 가려고 탔다가 걱정이 되는지 주저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솔직하게 먼저 급하게 빨리 달려야 되면 다른 차를 타시라고 한다. 평생을 해 온 일이라 운전에는 자신이 있지만 손님이 불안해하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도 무리한 장거리는 다른 기사들에게 양보하고 웬만하면 안전운전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삼시 세끼 집에서 해결, “마누라 미안해”
“내가 삼 시 세끼 집에서 밥을 먹으니까 저 사람이 어디 가지를 못해. 그러니까 나더러 제발 가끔 밖에서 밥 좀 사 먹고 오라고 그러지. 나 때문에 꼼짝도 못하니까 미안도 하지. 그런데 식당이라는 데가 밥만 먹으면 일어나 나와야 돼. 집에 오면 밥 먹고 한 숨 돌리고 잠시라도 편하게 쉬다 나갈 수 있고 하니까. 집 밥이 좋은 게 그런 거지요.”
아침 다섯 시 삼십분이나 여섯 시쯤 일어나 일찌감치 나가 등교하는 학생이나 출근하는 손님들 태우고 나서 들어와서 아침 먹고 나가고 점심 먹고 잠깐 쉬었다가 나가서 학생들 하교 시간이나 직장니들 퇴근 시간이 끝나는 저녁 일곱 시쯤이면 할아버지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거의 변함이 없는 규칙적인 생활이다.

“대한통운 때부터 개인택시까지 같이 운전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기사 열두 명이 만든 모임이 있는데 일 년에 두 번 친목여행을 가요. 그런데 다들 운전이 직업이라 운전에 대해서는 일체 신경을 끄고 그냥 버스기사가 가는 대로 내버려둬요. 어디 가고 뭐 먹고 이런 거 짜는 거 없어요. 이번에 이박삼일로 저기 전라도 나들 쪽으로 가고 싶다 이러면 기사가 어디로 해서 어떻게 가든 관여를 안 해요. 신경 끄고 기사가 데려다 부려 놓는 대로 먹고 놀고 구경하고 그러다 안동에만 갖다 놓으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하고 가는 기사는 본인이 가고 싶은 길로 보여주고 싶은 곳으로 끌고 다니지요. 지도 편하고 우리도 편하고 서로 재미나지요 뭐.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은 모이지요.”
운전하시는 분들만의 독특한 여행문화라는데 보통 사람들도 한 번쯤 이런 여행 해봐도 좋을 거 같다. 운짱의 여행 내공에 따라 참으로 천차만별의 여행이 되겠지만 그것 또한 이런 여행의 묘미일 거 같다.
그전에 밤에 운전을 할 때 사람들은 밤에 나쁜 일 당할까 봐 걱정을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걱정 때문에 사람을 겁내거나 밤 운전을 꺼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밤 열 한 두시까지도 했는데 운전하면서 나쁜 일이래 봐야 돈 뺏거나 그런 건데 그런 일 생기면 그냥 그 날 번 돈, 내가 가진 거 다 가져가라 하면 그뿐인데 그런 생각으로 운전을 했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어요. 내가 욕심을 버리니까 되더라고요. 남들은 운전수들이 바람 많이 피운다고들 하던데 나는 삼십 년을 넘게 운전을 해도 한 눈 한 번 판 적 없어요. 내가 살림살이 때문에 잔소리를 해서 힘들면 모를까?”
하시며 할머니를 건네다 보시는 게 꼼꼼한 할아버지와 무던한 할머니가 무슨 일로 티격태격 하며 사시는 지 알 것도 같다. 꼼꼼하신 본인 때문에 할머니가 힘드신 걸 할아버지가 좀은 아시는 듯하다. 냉장고에 먹을 게 가득한 데도 또 뭘 사들고 들어온다는 할아버지와 오늘 먹을 거 따로 있고 철철이 미리 사서 준비해 좋아야 할 거 따로 있고 장만해 두었다가 자식들 줄 거 따로 있고 한 할머니 사정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떠리미 나물 사주곤 먼길 걸어오던 착한 아내
그런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미안해하는 건 따로 있다. 학교 다닐 때 형편이 되는 데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어려서 자랄 때부터 조부 그늘에서 오냐오냐 귀하게 자라서 세상 어려운 걸 모르고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했어요. 운전사 마누라로 사느라 우리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래 우리 애들은 일찍부터 서울로 유학을 시키고 공부를 시켰지요.”할아버지 말에 할머니 잠시 옛 생각에 잠기신다.
“그 토지 다 뺏기고,그집 불 타 버리고 그래서살림살이 하나 남지 않은 상태에서도살았는데요즘은 이제 그때 비하면 어려운 거 하나 없지요. 그때 그릇 하나 변변한 게 없는 데도 손님들 오시면 국수라도 정갈하게 내놓아야 되니 안에서 살림하는 입장에서는 바깥어른이 모르는 어려움도 많았지요. 김치 하나를 담그려고 해도 이웃에 빌려서 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빌려서도 쓰고 만들어서도 쓰고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씩 장만해 가면서 살았지요.”

열일곱에 시집을 와서 그 많은 살림살이를 다 책임지다시피 했다. 6.25 사변이 나고 큰 흉년이 졌다. 집 뒤 소나무 숲에 동네사람들이 하나 가득 와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피죽을 끓여 먹었다. 그래도 할아버지 네는 배곯을 정도는 아니어서 찬 밥 남은 거나 감자 같은 거라도 쪄서 먹고 남은 게 있으면 마루에 송피 벗기러 온 아이들을 불러 그거라도 나누어 먹곤 했던 귀남 할머니다. 시내에 나갔다가 촌 할머니가 늦도록 푸성귀를 팔고 있으면 달랑 남은 차비로 그걸 팔아주고 집까지 그 먼 길을 걸어온 할머니였다고 할아버지가 은근 할머니 맘씨를 자랑하신다. 내친 김에 고왔던 젊었을 적 이야기 한토막 곁들이신다.
“지금은 저 사람이 나이가 들어 호박같이 늙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곱고 태가 좋아서 동네에서 집안에 혼인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면 신행 온 신부가 첫 상을 받을 때 동네 사람들 중에서 인품 있고 모범적인 부인이 상을 들여가는 대반 역할도 많이 맡아 했지요.”

시집 온 신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전히 받는 상인 첫 상. 귀남 할머니도 시집 온 첫 날, 잘 차려진 첫 상을 받았고 그 이후로 평생을 권 씨 집안사람이 되어 상을 차리고 계시다.
“친정에서 자랄 때 친정아버지가 딸들을 참 많이 아끼셨어요. 딸이지만 글도 가르치시고 제 몫 하도록 당당하게 키우셨지요. 그래도 요즘 사람들 대면 우리는 배움이 짧았지요. 암 것도 모르고 시집 와서 조부님하고 시모 모시고 살림하고 아이들 키운 거 밖에 없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 사는 거 하고는 다르지요.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자식들 공부시키고이 집도 사고 많지는 않지만 논밭도 우리 힘으로 조금씩 다시 장만하고 그러면서 살았네요. 그리고 우리는 아직 자식들한테 용돈을 안 받아요. 명절이나 생일 같은 무슨 날에는 받지만 평소에는 우리 벌어 우리 살지요. 결혼할 때 아이들 앉혀놓고 그랬어요. 너들 아버지가 벌 동안은 따로 매달 용돈 줄 필요 없으니까 부지런히 너들 벌어서 너들 돈 모으고 살라고 그랬어요.”
라며 할아버지 손을 들어주신다. 간혹 한 마디씩 거드시는 말씀이 티도 안 나게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시다.

택시도 호시절이 있었지요
“우리가 처음 개인택시를 시작하던 80년대만 해도 벌이가 정말 좋았어요. 택시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자가용도 적었고, 대구 장거리 손님이 없는 날이 거의 하루도 없었으니까요. 서울도 가고 부산도 가고 택시로 춘천까지 택시 대절해서 가고 그랬지요. 그러니 택시로 아이들 공부 시키고 시집 장가보내고 다 했지요.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지요. 33년 전 내가 개인택시를 시작할 때 노란 택시에 기본요금이 600원이었어요. 지금은 2800원이지요. 그런데도 자가용 늘어나고 마을버스 생기고 대리운전도 늘어나고 하니까 벌이가 예전에 비하면 턱도 없이 줄었지요. 사람들은 택시요금 올랐다고 하지만, 한 이십 년 전만 해도 택시 기본요금이 짜장면 한 그릇 값 이상은 되었는데 요즘은 한 끼 식사비용도 되지 않는 거는 생각 안 해요.”

흘러간 시간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다. 솔직히 33년생 권태규 할아버지에게는 조금 버거운 변화들도 많다. 택시 카드결제 시스템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할아버지 택시는 카드 결제가 안 된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미리 물어보고 다른 택시를 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총알택시 같은 걸 기대하는 손님들도 할아버지를 한 번 보고 다른 택시를 타기도 한다.
“그래도 운전 덕에 내가 이 나이까지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밥벌이하고 살 수 있으니까 된 거지요. 더 번다고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건강하게 일하며 산다는 게 좋은 거지요. 우리 친구들 중에도 일 안 하고 노는 친구들은 다들 골골거리고 여기저기 아프다 하고 병원 들락거리고 그러지요. 그럼 내가 그러지요. 나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돈 벌면 안 아프다고요.”

쉬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시골집 밭으로 간다.
“우리 할아버지가 집을 새로 고쳐 지으실 때 터를 넓게 잡고 담장을 둘렀는데 집 안 사방으로 텃밭이 있는데 그것만 해도 우리 둘이 짓기에 농사가 만만치 않아요. 솔밭 밑에 고구마도 심어 놓았고 깨도 심어 놓고. 노는 날 되면 촌에 들어가기 바빠요. 고추도 심어놓았고 오만 푸성귀 하며 농사 일이 많아요. 논은 남을 줬는데 그래도 세수 받으면 우리 먹을 양식은 되고요. 사 일 일하고 하루 쉬는 데 노는 날만 기다려요. 요즘은 누가 택시 운전하고 농사 일 중에 뭐 할래 하면 농사라고 할만치 농사짓는 재미가 있어요. 쉬는 날이면 한 시라도 빨리 촌에 가자고 서둘러요. 오늘도 가면 고추도 따고 깻잎도 따고 가지며 푸성귀도 장만하고 촌에 가면 뭐라도 먹을 게 있고 일을 해도 힘이 안 들고 마음이 푸근하고 좋아요.”

집 뒤에 600평에 이르는 솔밭은 조부의 자랑이셨고 지금은 권태규 할아버지의 자랑이시다. 윗대 어른들부터 가꾸어 오신 솔밭이며 규모 있게 잘 지은 집을, 사는 게 바빠 잘 건사하지 못한 게 늘 안타까운 할아버지다.
마당 입구에 큰 돌이 있는데 요지돌(원래 이름; 노둣돌)이라 불렀다. 옛날 손이 말을 타고 오시면 말을 타고 내릴 때 발돋움하여 디디고 내리라고 대문 앞에 놓은 큰 돌인데, 도계서원에서 서원에 갖다 두게 달라 했지만 마음먹은 바가 있어 끝내 거절하고 그냥 두고 있다. 할아버지 유산이기도 하거니와 언젠가는 이 집을 제대로 단장을 해서 고향집을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굳이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자신 대에 못하면 언젠가 자식 대에서 해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무언의 바람이 그 속에 숨어있다. 아마 아들들도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 것이다.

여섯 번째 바꾼 택시, 앞으로도 함께 달린다
“한 번은 내가 나이가 많아서 이제 택시 팔아치워 버려야겠다고 하니까 우리 아들이 웃으면서 그래요. 아부지, 택시 팔아 버리고 나면 우리 아버지 병나서 안 돼요 그래요. 돈은 안 버셔도 좋은데 건강 챙기시며 쉬엄쉬엄 하라고 하죠. 내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할 생각일 거 아니까 그러지요. 생각으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섯 번째 바꿔 타고 있는 지금 이 차가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만 하고 싶어요.”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 반 무렵까지 열 두 시간 정도 일해서 번 돈으로 가스비 제하고 남은 돈은 하루 삼 시 세 끼 차리느라 힘든 할머니를 갖다 드린다는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 택시 있는 곳으로 갔다. 더운 날이건만 반짝반짝 윤이 나게 세차를 해 놓은 택시 옆에 서서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보고 웃으신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