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 신부를 맞이하다(글/정진영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장가가기와 시집가기
오늘날에는 결혼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혼인이나 혼례라고 했다. 그리고 혼인하는 것을 남자들은 ‘장가간다’고 하고, 여자들은 ‘시집간다’고 한다. 비록 사전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간다’는 말은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이동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여자가 혼인하여 남편의 집으로 가는 것을 ‘시집간다’고 한다면, ‘장가간다’는 것은 남자가 혼인하여 신부의 집으로 간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시집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남자들이 장가간다는 것은 그리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오랫동안 여자들이 시집가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장가가는 행위는 없어지고, 그 말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남자들의 ‘장가가기’는 우리의 잊혀진 전통이다. 우리의 혼인풍속에는 말만이 아니라 정말로 남자가 장가를 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뀌어서 여자가 시집을 가는 세상이 되었다. 이로써 딸이 아니라 이제 아들이 세상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서 딸 가진 성급한 부모들은 혼례를 ‘딸 치우는 과정’ 쯤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귀찮은 물건 치우듯이.
남자들의 ‘장가가기’와 여자들의 ‘시집가기’는 혼인하여 누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혼인풍속 또는 혼인제도는 그 시대의 아들딸에 대한 인식과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 따라서 그것의 변화는 다만 결혼제도가 바뀌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바뀜을 의미한다. 장가가기가 시집가기로 바뀐 것은 조선중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6세기를 거치면서 전개되고 있었다.
조선전기에는 대체로 남자들이 장가를 갔다. 이를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남자들이 장가를 가서 처가에서 아들 딸 낳아 기르면서 처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 말하자면 ‘처가살이’를 의미한다. 이 같은 풍속은 조선전기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우리 고유의 전통이었다. 반대로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시집가는 친영례親迎禮는 대체로 조선시대 중반기를 거치면서 점차 일반적인 혼인풍속으로 자리잡아갔다. 이것은 유학의 전래와 함께 들어온 중국의 풍속이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이 친영親迎하는 예식이 없으므로, 모두 처가를 내 집으로 삼아 처의 아비를 아비라고 부르고, 처의 어미를 어미라고 부르며, 평소에 부모의 일로 여기니, 이 또한 강상綱常입니다.” <<성종실록>> 권241, 성종 21년 6월 무신.
이 같은 이야기는 조선초기 세종-성종 연간의 실록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강상이란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말한다. 즉,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이 조선전기의 양반 사대부가문에서 당연시되었고, 여자가 시집을 가는 중국의 풍속은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행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정에서 삼남三南 각 고을 명문 양반가의 입향조入鄕祖 대부분은 다름 아닌 ‘누구의 사위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공통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각 본관지를 근거하여 존재하고 있던 토성土姓, 곧 토착성씨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남자가 장가를 가는 상황에서는 특정한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부계父系 혈통의 자손들이 폐쇄적인 혈연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아들이 없다고 조선후기와 같이 반드시 양자를 들일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오늘날 동성마을의 역사는 16세기 이전까지 소급될 수 없으며, 반대로 이 시기에는 친손이 아닌 외손에 의해서 제사가 받들어지는 외손봉사外孫奉祀 또한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장가를 가던 시절에는 적어도 가정적으로는 아들딸의 차별이 없었고, 또 아들에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남자들의 장가가기는 유교적인 가족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조선왕조에 있어서 점차 문제가 되었다. 유교적인 가족질서는 철저히 아들, 그것도 맏아들이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풍속을 버리고 중국의 친영례를 적극 시행해야만 할 일이었다. 법을 만들어서라도 이렇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에는 왕실 또는 유학자들 사이에서 일부 행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친영례는 16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대세를 이루어 17, 18세기에 마침내 보편적인 우리의 혼인 풍속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혼담과 혼례, 연줄혼과 낙혼
혼인을 하기 위해서는 혼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곧, 혼담婚談이 있어야 한다. 혼담은 적령기의 아들딸을 가진 부모와 가족들로부터 시작된다.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신랑 신부가 스스로 짝을 찾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의 혼인이란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며느리를 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혼담에서부터 혼례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은 어디까지나 부모들의 일이었다. 신랑 신부는 그저 결정된 것에 따를 뿐, 주체적인 역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조선후기 특히 영남의 양반들은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를 통해 줄기차게 관직에 나아가려 했다. 이것이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는 향교와 서원을 출입하고 향안鄕案에 이름을 올리는 한편 조상을 위한 사당을 건립하고 족보와 문집을 편찬하여 향촌사회에서 사회적 혹은 혈연적인 결속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통해 확보된 가문의 지위, 가격家格은 곧 어느 집안과 혼인할 수 있고 어느 가문과는 혼인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지를 사회 통념을 통해 스스로 명확하게 해 주었다.
따라서 양반가문에서는 혼인할 대상 가문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집안의 사회적 지위가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나은 가문이어야만 했다. 명문집안은 명문과 그렇지 못한 양반가문은 또 그들끼리 혼인을 주고받았다. 명문이라는 것은 조상 가운데 학문으로나 정치적으로 이름난 분, 곧 현조顯祖을 두고 있느냐 아니야 하는 것으로 판가름된다. 가령 경주의 회재 이언적 선생이나 안동의 퇴계 이황 선생 같은 분을 조상으로 둔 가문이라면 명문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명문가와의 혼인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가격이 비슷한 가문끼리 혼인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다를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부부가 장수하여 많은 자녀를 두고 또 훌륭하게 길러 높은 벼슬에 오르거나 글을 잘하여 가문에 영광을 가져왔지만, 그러하지 못한 경우도 있게 마련이었다. 혼담은 자연히 결과가 좋았던 가문과 오고갔다. 따라서 대상 가문은 그리 넓을 수가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같은 집안과 혼인하는 경우가 잦아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숙모가 조카의 배필을 친정 쪽에서 물색하게 됨으로써 숙모와 질부는 친정이나 시댁 양쪽으로 친척이 되는 셈이었다. 이런 경우를 연줄혼이라고 하였다. 연줄로 혼인이 이루어지다 보니 특정 가문과 가문 사이에는 중첩적인 혼인관계가 형성되게 되었다. 결국 영남의 명문 양반가는 대체로 30-50여 가문끼리 상호 혼인이 이루어졌다.
양반 명문가에서는 동격의 가문끼리 혼인관계를 맺는 것을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적 또는 사회적 이해관계에서 서로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혼인도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즉, 격이 높다고 생각하는 가문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격이 낮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지체가 낮은 집안에서는 딸을 출가시키면서 논밭전지 수십 마지기를 함께 보냈다. 이로써 가난한 양반가문은 일정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었고, 지체가 낮은 양반가문은 명문집안과 혼인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이런 경우 전자는 낙혼落婚이 되겠고, 후자는 앙혼仰婚이 된다. 이렇게 부유한 집안에 장가든 신랑을 ‘치마양반’이라 부르기도 했다.
흔히들 옛날에는 아주 이른 나이에 혼인(조혼早婚)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 나이란 대체로 10대의 나이를 말한다. 조선 후기 18세기 초반의 평균적인 혼인 연령은 대체로 남녀 모두 20세를 넘어서고 있었으니, 전체적으로는 조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일부 양반들의 경우는 좀 더 이른 시기에 혼례를 치렀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손자보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농민들의 경우에 딸 가진 쪽에서는 입 한술 덜기 위해, 며느리를 보는 쪽에서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혼인을 서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말의 박영효는 국정 개혁안에서 유년기(10여 세) 아이들의 혼인을 법으로 금할 것을 주장하였고, 1894년 갑오개혁에서는 남자는 20세, 여자는 16세 이상이 되어야 혼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1950, 60년대를 사셨던 우리 할머니들의 옛날이야기나 빛바랜 사진을 통해서도 이 같은 조혼의 풍속은 확인된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조혼의 풍속은 아마도 19세기쯤에 이르러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말 일제하의 이른 혼인 풍속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사회가 어렵고 혼란스러우면 아들이나 딸 가진 부모들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빨리 혼인을 시켜 손자를 봐야 한다는 종족보존의 본능이 크게 작동했던 것이다. 한말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전쟁, 일제하의 정신대와 강제징집 등 정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아주 늦은 나이에 혼인한다. 남녀 모두 교육기간이 길어졌고, 특히 여성들의 자아실현과 자립의 욕구가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군복무라는 또 다른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더구나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생활비와 자녀 양육비의 부담, 혼자 살기에 편리한 생활환경 등은 차라리 혼인의 욕구조차 봉쇄해 버리고 있다.
혼인 연령의 높고 낮음은 한 시대의 발전, 퇴보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졌다고도 한다. 늦은 혼인의 시대에는 젊은이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도전적 기회를 제공해 준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 혼인은 어린나이부터 안정을 추구하게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꿈을 실험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아니 미래를 꿈꿔 볼 시간조차 가져 보지 못한 채 책임져야 할 가족을 가지게 된 셈이다. 조선 양반사회가 5백년이나 장기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보다 이른 나이의 아들들에게 기성세대의 두툼한 옷을 입혀 놓은 때문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신행길에 오르다
자녀가 적령기에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혼사婚事가 거론되게 마련이다. 서로 격에 맞지 않는 혼처를 거론한다는 것은 모욕이나 마찬가지니 잘 살피고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까운 친척이 아니면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저런 혼처 가운데 부모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상대편의 의사를 먼저 타진해 봐야 한다. 성사되지 못했는데도 혼담이 오갔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서로가 난처해지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고도 은밀하게 추진된다. 이러한 과정은 주로 상대 집안을 잘 아는 친척이나 중매쟁이가 담당한다. 혼담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대개 신랑 측에서 신부될 당사자를 간접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작 부모나 신랑이 며느리나 신부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19세기 이후 중매쟁이 역할은 주로 방물장수가 담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방물장수란 가정의 부녀자들이 필요로 하는 가사잡물이나 패물 등을 파는 여자 행상이다. 함부로 드나들기 어려운 양반집 안방이 그들의 시장인 셈이다. 그래서 인근 양반집 속사정에 정통했다. 신분은 미천했지만, 양반집 마나님으로서도 함부로 박대할 수가 없었다. 슬쩍슬쩍 이곳저곳에 정보를 흘릴 수도 있었고, 반대로 남의 집 속사정도 이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 가운데 혹 쓸 만한 것이 있다면 곧장 남편에게 전달된다. 한 고을 또는 이웃고을 비슷비슷한 양반가문들 상호 간에는 은근한 대립과 갈등이 항상 살얼음처럼 녹고 얼기를 반복하던 시대였다. 아무튼 양반가 마님으로서는 방물장수를 통해 안에서 안으로 연결되는 소리 소문 없는 정보망을 구축해 두는 것이 필요했다.
적령기의 자녀를 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아들딸의 혼사를 가능하면 자신의 참여와 주관 하에 치르고 싶은 마음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깥세상의 내밀한 정보는 기껏 친정식구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친정이 가까울 때의 이야기다. 이래저래 방물장수가 제격이었다. 혼사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간단히 무시할 수도 있다. 천한 방물장수가 어찌 양반집 혼사에 끼어들 수 있느냐고 하면 그것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방물장수도 양반집 혼사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급정보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혼사가 성사된다면 내놓고 자랑이야 할 수 없지만, 혼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패물이나 옷감 등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기회삼아 시집간 딸에게도 접근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확실한 새로운 단골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또 시집간 딸과 친정집을 정기적으로 드나들 수도 있게 된다. 딸의 안부가 궁금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긴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방물장수를 빈 입으로 돌려보내진 못한다. 그저 적당한 물건을 구입해 줌으로써 다음을 기약해 둘 필요가 있었다. 이렇듯 양반가 안방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사돈 간에 주고받는 편지가, 은밀하게는 방물장수가 통신망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혼담을 통해 혼인이 합의되면, 신랑 집에서는 신랑의 사주단자와 청혼서를 보낸다. 사주단자란 신랑의 출생 연,월,일,시를 적은 종이를 말한다. 이로써 신부와 궁합이 맞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신부 집에서 사주단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결혼을 승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 신부 집에서는 공식적인 혼인 허락서(허혼서許婚書)와 혼인날을 잡아서(연길涓吉) 보낸다. 그러면 신랑 집에서는 초행에 앞서 함진아비나 어미를 통해 함을 보낸다. 함에는 대개 약간의 패물이나 신부의 치마저고리 감을 넣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씨나 고추, 수수 등을 넣어 부귀와 많은 아들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신랑은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치른 다음 처가에서 여러 날을 머문 후에 신부와 함께 본가로 돌아온다. 신부가 친정을 떠나 시집으로 가는 것을 신행新行이라고 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3일 신행’이 일반적이었지만, 조선후기에는 석 달 혹은 그 이상을 처가에서 머물렀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들딸 낳은 후에야 비로소 신행길에 오르기도 했다.
혼례가 신부집에서 이루어진다거나 신랑이 이후 오랫동안 신부집에 머물렀다는 것은 조선의 혼인풍속이 유교적인 친영례를 행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형적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혼인풍속을 유교적 친영례라기 보다는 차라리 조선적인 것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조선적인 특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생활문화의 곳곳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유학 · 유교 그 또한 조선적 유학 · 유교임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신랑은 처가에서 오랫동안 머물기를 원했다. 우선 부모의 엄한 통제에서 벗어나 더할 나위 없는 ‘손님’으로서 최상의 대접을 받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동안에는 지긋지긋한 공부로부터도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랑의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이 처가에 오래 머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철딱서니 없이 처나 처가에 홀딱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글공부나 집안의 대소사를 핑계 하여 속히 돌아오기를 독촉하기도 했다. 아들 가진 부모와 딸 가진 부모의 입장은 이렇게 달랐다.
신부가 친정에 머무는 동안이라 해도 신랑이 오직 처가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다. 친가의 부모에게 문안인사도 드려야 했고, 집안의 제사나 이런저런 행사에도 참석해야 했다. 신랑은 친가와 처가를 오가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영원히 처가에 머물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신행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신행잔치가 있게 마련이다. 이제 본격적인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셈이다. 시집살이와 함께 이제 신부는 친정 나들이조차도 자유롭지 않게 된다. 물론 근친覲親이라는 이름으로 친정의 부모님을 뵐 기회는 있지만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친정이 먼 곳에 있다면 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교통편이나 숙박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양반집 부녀자들의 행차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신행길은 어쩌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마지막 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신행길에 오르는 딸이나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슬프고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청상과부와 열녀
여자들의 시집살이는 아주 고달픈 일상이었다. 낯설고 물 설은 타향에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누구하나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있으나 글 읽어 과거 준비를 해야 했으니 아내가 거처하는 방으로 출입하는 것도 자유로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손자 보는 일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래서 음양의 이치를 살펴 좋은 날을 잡아 아들과 며느리의 합방을 허락하기도 했다. 좋은 날이란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날을 의미한다. 양반가의 족보에서 출생이 특정한 달에 상대적으로 많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에서 이 같은 사정을 살필 수 있다.
남편이 아내의 방을 자주 출입하는 것도 아내에게는 큰 흉이 될 수 있었다. 철없는 남편의 잘못은 곧 며느리의 책임이 된다. 혹시나 시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거나 기다리는 손자 소식이라도 없다면 시집살이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부부간의 금슬이 비록 좋다하더라도 남편은 언제나 아내 편이 될 수 없었다. 며느리는 외로운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자들의 시집살이는 ‘고초 당초보다 맵다’고 했고, 또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봉사 삼년’이라고 표현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여자들의 시집살이는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고, 19세기나 식민지시기의 사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전기 남자들이 장가가던 것에 비해 가정에서 여자들의 지위와 권리가 크게 축소된 것만은 분명하다. 후대에 남존여비 사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아내는 점차 남편의 예속적인 존재로 전락되어 갔다.
16세기 말 안동의 ‘원이 엄마’는 젊은 나이에 죽은 남편과 영원히 이별하면서 쓴 편지에서 남편을 ‘자네’라고 불렀다. 서로 머리 희어지도록 사랑하면서 살자고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떠난 남편을 애절하게 그리워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인격체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정재 유치명(定齋 柳致明, 1777-1861)은 혼인한 아들에게 부부간에 서로 공경해야 하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시기에는 사대부가에서도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교적 사회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조선왕조에서는 여자들에게 불평등한 많은 요구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었다. 이것은 여자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이름으로 권장되었다. 즉,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혼인하여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주체적인 삶이란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설사 혼례가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죽는다 하더라도 청상과부로서 늙을 수밖에 없었다. 요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서 죽는 것을 열녀烈女라 하여 여성의 최고 미덕으로 권장했다.
열녀!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고을에서도 칭송해 마지않았으며, 나라에서는 열녀문(혹은 정려旌閭, 정문旌門이라고도 했다.)을 세워 충신 · 효자와 동격으로 표창하였다. 표창이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권장만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렇게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남편의 죽음과 3년 상을 치른 며느리는 시집에서 감싸주지 않는다면, 심신이 지쳐 병약해 질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도 져야만 했다. 더구나 이웃고을에 열녀 났다는 소문을 시댁 식구들이 입에 담는다면, 이것은 “너는 왜 열녀도 못 되냐?”고 추궁하는 소리로 들리게 마련이다.
많은 며느리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많은 경우 열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죽음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열녀로 포장하는 일 뿐이다. 이것은 친척들이 앞장설 일이고, 오직 가문의 능력에 달린 문제다. 인근의 선비들을 모아 청원도 하고 상소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은 이렇게 가문의 영광으로 왜곡된다.
남자들에게 충과 효가 요구된 반면에 여성들에게는 남자에 대한 복종과 순종이 강요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아내들은 삶이 늘 큰 죄악이었다. 스스로도 죄인이라 표현했다. 조선후기의 여성들은 분명 사회적 약자였다. 양반사회는 이들의 목숨까지도 요구한 셈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어디 조선시대뿐인가? 오늘날에도 재개발이란 미명으로, 혹은 공공의 질서란 이름으로, 더욱 심하게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생존과 생명을 마구 유린한다. 그러고는 빌딩을 세우고, 전승비를 세운다. 다르다면 어쩔 수 없는 죽음을 조선시대엔 열녀로 잘 포장했다면, 오늘날엔 폭도로 마구 짓밟는다. 아, 너무 잔인한 세상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