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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왕의 나라>(글/임지희_안동대 국문과 겸임교수)

<왕의 나라>가 추석연휴에 안동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었다. 9월 19일에서 21일까지 삼일동안 공연된 이 작품은 올해 3회째이다. 1,2회 공연은 안동댐 민속촌 드라마세트장에 있는 성벽을 무대의 중심으로 활용하였다. 그런데 올해 이 성벽이 철거되고 <왕의 나라>는 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왕의 나라>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온 것을 테마로 하여 만든 뮤지컬이다. 공민왕의 안동 몽진은 안동지역의 큰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홍건적을 피해 온 몽진이긴 하지만 몇 달 정도를 함께한 경험은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국가적인 전란으로 인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왕이 몽진하였다는 사실은 안동지역에 커다란 자부심과 함께 설화적 상상력을 높여 주는 촉매제가 되었을 것이다.

'왕'이 없는 <왕의 나라>
<왕의 나라>는 작년보다 이야기가 많이 정리되었고 세련된 군무는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왕의 나라>는 분명 공민왕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다. 그러나 왕은 부각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왕의 부하인 홍언박과 여랑의 사랑 그리고 여랑의 전사이후 안동에서 노국공주의 호위무사를 맡은 만옥과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처럼 느껴진다. <왕의 나라>에서 이러한 사랑의 이야기를 주된 테마로 삼는 것은 공연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랑이야기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관념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 왕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공민왕은 고려가 원의 속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고 고민했던 왕이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까지 피난을 온 것도 원의 지원을 받지 않고 고려의 힘으로 이 난을 해결해 보려는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왕의 고민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홍언박과 그의 여인들의 사랑이야기에 왕의 이야기는 묻혀 버리고 말았다.

<왕의 나라>에는 왕의 고민과 당대 안동 백성들이 왕을 도와 이룬 노력이 줄거리 속에 첨예하게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왕과 백성들이 '소통'하는 이야기가 축조적으로 쌓인 다음, 왕과 백성들이 함께 홍건적을 물리쳐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이 주 줄거리가 되어야 한다.
공민왕과 안동백성들의 소통의 문제는 손홍량이라는 인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손홍량이라는 인물은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에 낙향하여 살던 중 공민왕의 몽진을 받아들였고 왕이 개성을 수복할 때 왕을 보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왕의 나라>에서 손홍량은 아주 미미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왕의 나라>에 등장하는 인물군 중에서 손홍량은 안동의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왕과 안동백성들의 소통을 담아내야 할 것이다. 공민왕, 손홍량, 안동백성들이라는 인물군의 연계체계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왕과 백성 간 소통의 부재
우리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기억한다. 이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왕인 '광해'를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왕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애가 넘쳐나는 광해의 모습을 통해 왕과 백성들의 소통을 담아냈기 때문에 광해는 성공할 수 있었다. <왕의 나라>에서는 공민왕을 현재적인 의미에 맞추어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왕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랑의 테마로만 대중적인 코드를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어불성설인 장면도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홍건적과의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싸운 인물은 여랑과 만옥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홍언박과 이 여성들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사랑의 애절함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해석해 본다. 나약한 여성만이 남아 혈혈단신 싸운다는 것은 왕과 고려군사들의 나약함을 부각시키는 것이 된다. 공민왕은 싸움의 장면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왕의 나라>에서는 안동에 몽진 온 공민왕을 헐뜯는 백성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왕과 백성의 공감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가 백성들이 홍건적의 활을 맞아 모두 죽는 장면이 아주 길게 그려진다. 이 장면은 애절함과 절박함보다는 왕에게 버려진 백성이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이때 왕과 군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안동의 백성들이 모두 죽자 갑자기 고려의 군사들이 와서 홍건적을 물리치고 승리한다. 그리고 공민왕이 등장하여 ‘나의 자랑스런 백성이여 축복된 땅 안동이여’ 하며 노래를 부른다.
왕과 백성들의 소통의 부재 속에 갑자기 맞이한 승리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안동이 왜 축복된 땅인지도 드러나 있지 않다. 줄거리의 축조 없이 안동을 ‘축복의 땅’으로 단지 노래 속에 미화시켜 놓아서 참 뜬금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 버렸다.

<왕의 나라>의 관객은 물론 안동 지역민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그래서 안동이 평화의 땅이며 축복된 땅이라는 노래는 안동지역민에게는 자부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은 공연을 보고 공연에 몰입하여 느끼는 자부심과는 거리가 있다. 연극을 통하여 안동이라는 땅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조명하여야 한다. 현재적 의미망 속에서 과거를 짚어보고 그 과거가 말해 주는 현재를 제대로 포착해 낼 때 비로소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왕의 나라>는 뮤지컬이라는 연극을 통하여 ‘어떻게’ 관객들을 만나며 또한 관객들에게 ‘어떠한’ 현재적 의미를 제공할 것인가? 에 대한 첨예한 고민을 해야 한다. 공민왕의 이야기가 역사 소재주의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왕의 나라’인 안동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부각시키기 어렵다.

글을 마무리하며
<왕의 나라>는 실내공연을 하면서 스타마케팅을 시도했다. 가수 ‘적우’가 노국공주 역을 맡아 공연한 것이다. 그러나 적우라는 가수는 연기력도 없었고 그녀의 노래는 노국공주 역할과는 음색이 맡지 않았다. 몇 줄의 대사는 그야말로 책을 읽는 듯 하였으며 그녀의 독특한 음색인 저음은 노국공주의 색깔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노국공주를 굳이 적우라는 가수로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스토리의 허술함을 스타를 캐스팅하여 메우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실내공연에서의 <왕의 나라>는 무대배경과 그 전환이 아주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무대배경의 전환은 감탄사가 흐를 정도였다. 무대의 장경은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이 생명력을 지닌 연극이 되려면 스토리에 대한 고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스토리가 탄탄하지 못하면 뮤지컬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인 노래도 살릴 수 없다. 뮤지컬은 핵심적인 대사가 노래로 불려진다. 뮤지컬에서 노래는 강조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노래는 관객들의 감정선을 고조시키는데 용이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극에서는 노래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왕의 나라>는 실외공연이 실내공연으로 들어왔을 때 변화되는 공연원리를 간과하고 있다. 실외공연에서의 스펙터클한 면은 축소하여 실내로 끌어들여 왔다. 그러나 실내에서는 관객들의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간과해 버린 것이다. 실내에서의 공연은 장광보다는 연극의 시간 속에서 관객들이 지적 활동을 통하여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하여야 한다. 야외에서 하던 공연을 실내로 옮겨 놓고 인지도 높은 스타를 캐스팅한다고 대중적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왕의 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공연원리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내년에는 <왕의 나라>와 진한 감동으로 만나고 싶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