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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소설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글/사진/이순구_안동대 교수)

Ⅰ.
2013년 9월 23일 거제.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소설 마지막 부분을 숨 막히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아껴가면서 다 읽고 나니 잠은 완전히 달아났다. 마음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안절부절 상태로 새벽이 밝아 오기만 꼬박 기다렸다. 처음 읽는 책도 아니건만 이토록 마지막 부분의 책 읽기가 초조하고 불안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병주의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이 40여 년 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불광동 기자촌 윤 선생 댁이었다. 소설가와 친구라면서 일독을 권했던 윤 선생은 당시 서울 모 신문의 편집국장이었고 나는 그 집의 외아들인 초등학교 6학년인 Y군의 가정 교사였다. 윤선생은 우리 외할머니의 친정조카로 어머니와 무척 친했었고 아버지와도 서로 아는 사이였다. 윤선생은 “농대 너거 학교 선배도 내가 신문사에서 잘 키워놨었다”는 말로 은근히 신문사에 들어오기를 권유한 것 같다. 그때 윤 선생님은 부산일보 사장으로 부임하게 됐다. 안동 출신으로 내 대학교 학과 후배인 K도 졸업 후 신문사에 기자로 들어갔는데 내가 안동에 이사 와서는 딱 한번 만났을 뿐이다. 하여튼 나도 그때 그 윤 선생님의 말씀대로 신문기자가 되었다면 지금 어찌 되었을꼬 골똘히 생각해 본다.

신문기자 출신의 작가로 가장 대표적인 소설가는 김훈 씨로, 나는 그의 문학 기행문을 고교-대학 재학 시절에 한국일보를 통해 많이 읽었었다. 그때 신문에서 읽었던 바로 그 문체로 지금도 <칼의 노래> <흑산> <공무도하> 등의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신문 편집기자, 주필 출신으로 늦깎이 작가로 변신한 분이 <관부연락선>을 쓰고 완전히 소설가로 변신한 이병주 선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그해 윤 선생님이 친구인 작가로부터 증정 받은 바로 그 단행본(1972년 신구문화사 출판)으로 관부연락선을 읽었던 것 같다. 대체로 이병주 소설가를 높이 칭찬하는 부류로서는 언론인 출신의 문인이 많다. 그 대표적인 인사로 송지영 선생과 남재희 선생을 들 수 있다. 내가 그 후 한참이나 지나 지금 다시 그 책을 읽으려고 집에서 아무리 찾고 뒤져도 없었다. 그 책을 그때 윤 선생님에게서 빌려서만 읽고, 그 후에 책은 사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인터넷 서점(교보문고)에서 책 소개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이병주는 프로페셔널리즘과 딜레탕티즘이 몸에 밴, 한국문학사에 보기 드문 대형 작가라는 평가를 얻었다. 식민지와 분단으로 점철된 역사 앞에서 지식인으로서 견뎌내야 할 깊은 상흔을 안고 마흔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언론사 주필을 거쳐 작가가 된 그는, 폭넓은 인문적 교양에 터 잡은 거침없는 글쓰기로 등단하자마자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 달 평균 원고지 1,000매, 즉 총 10만 장이 넘는 원고에 단행본 80여 권을 남기고 1992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있다. 작가로서의 그 분은 자칭타칭 ‘한국의 발자크’라고 하면서 승용차도 기사가 딸린 값비싼 외제차인 폭스바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관부연락선을 쓴 작가 이병주 선생의 말(1987년 6월, 중앙일보사 간행 <오늘의 역사 오늘의 문학> 제8권의 작가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나는 이 작품을 울면서 썼다. 그러면서도 눈물의 흔적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작품으로서의 성공 여부는 제쳐놓고 그런 뜻에서도 애달픈 작업이었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고칠 마음은 없다. 어느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어느 절대적인 시간의 의미를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 작품은 나의 청춘의 애상을 기록한 뜻에서 절실하다. 구한말 이래 근 백 년의 현대사를 배경에 깔고 이 소설이 취급한 시간의 스팬은 해방 전 5년, 해방 후 5년, 도합 10년이다. 이 스팬을 나의 나이로서 환산하면 20세로부터 30세에 이르는 기간이 된다. 일제 말기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 바꿔 말하면 한반도 지식인들이 친일親日을 강요당해 대부분이 친일로 경사傾斜, 또는 타락한 시기로부터 시작해서, 해방의 기쁨은 순식간이고 6.25의 참담한 상황에 빠져든 민족의 수난기까지를 시간의 무대로 삼았다. 이 시기를 어떻게 방황하고, 고민하고, 한숨짓고 통곡했는가 하는 지식인의 몸부림을 기록한 것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돌이켜 보면 경박한 판단, 설익은 반성으로 스스로를 망친 국면도 더러 있지만 그땐 그때대로 모두들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남은 것은 회한悔恨뿐이다. 지금은 ‘부관 페리’로 변신한 관부연락선은 그 역사적인 의미로서보다 상징적 의미에 더욱 무겁다. 그 연락선이 싣고 가고, 싣고 온 애환哀歡의 부피가 지금은 아득한 과거의 지평, 또는 수평水平 저 편으로 침몰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만난 것도 이 소설을 통해서였다. 이 소설을 안 읽었으면 정다산 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한창 많이 읽었던 최인훈의 <광장>의 프로타고니스트인 ‘이명준’보다, 내게는 이 소설의 그것인 ‘유태림’이 훨씬 더 남자답고 훨씬 박력 있는 지식인의 얼굴로 다가왔다. 소설가 이병주와 최인훈의 그 작가적 행로(말과 생각 등이 표출된 문학 작품들의 발표)도 한창이나 서로 다른 것이지만, 대학생 나이의 독자가 당시에는 가장 포플러 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라 할 수 있다. 뒷날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 그리고 <화두>라는 아주 중요한 대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의 그 첫 출발점이 <광장>이었던 것처럼, 이병주 선생도 <관부연락선>(1972)을 기점으로 <지리산>(1978), <바람과 구름과 비>(1978), <산하>(1979)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당대 최고 실권을 가진 정치가를 직접 가르치고, 기사 딸린 폭스바겐을 굴릴 정도로 당대에 명성을 누릴 만큼 누렸지만, 오히려 그 명성에 가려져 그의 문학은 최인훈 작가처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고 한다.

II.
고등학교 독일어 수업시간으로 기억한다. 우리 반 학생 중에 한 명이 선생님께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 선생님(당시 부산대에 전강으로 있으면서 특별히 우리 학교에서 우리 반만 수업해 주었던 김천혜 교수, 수 년 전 부산대 독문과 정년퇴임)은 조금 멈칫하시더니, 바로 이렇게 대답하셨다.
“우리 할아버지 고향은 중국이고, 우리 아버지 고향은 일본이고, 우리 고향은 미국이나 서유럽입니다.”
그 말씀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쟁쟁 울리고 있다. 어린 우리들 학생의 물음은 단지 우리가 출생했던 고장을 물었던 반면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고향은 한 개인의 노스탤지어가 지향하는 고향, 가장 가고 싶고, 있고 싶으며, 거기에서 자신의 학문을 배우고 연마할 수 있는 나라, 바로 그 나라이다. 우리 아버지 고향은 일본이라는 그 말씀은 확실히 정답이다. 우리 세대에서 미국이나 서유럽이 학문의 고향이 아닌 자는 대학교에서 거의 멸종된 상태다. 우리를 가르친 교수들도 그 학문적 고향은 거의 미국이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들 보다 조금 이른 세대들은 거의가 일본이다. 그 일본은 바로 관부연락선을 통해서 기차 철도로 연결된다. 공맹을 추종하며 성리학만 학문으로 여겼던 우리 할아버지들, 조선 5백 년 내내 양반과 노예(노비와 상민)가 교묘하게 서로 공존하며 살아왔던, 그래서 하늘 천 따지 하는 사이에 왕실은 국권을 상실해버리고, 뼛속까지 충효에 물든 우리 할아버지들은 자결하거나…… 집을 떠났다.

<관부연락선>은 1945년을 중심으로 1940년에서 1950년 6.25 동란 중에 소설의 영웅적인 주인공 유태림이 합천 해인사에서 게릴라들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 될 때까지의 시대의 역사적 풍경화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제각기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웅이든 속물이든 선생과 학생의 공부 목적은 모두가 출세지향이다. 출세를 위한 공부는 우리나라의 오랜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고 늘 동어반복이다. 공부의 목적의식 즉 그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출세지향이다. 하루아침에 생긴 습관이 아니다. 1940년대 한반도 출신의 동경 유학생의 70%-90%가 모두 법과 대학생이었다. 사법고시, 고등고시를 목적으로 한 대학생들 …….

“나는 가끔 유태림이 가르친 제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진다. 태림이 진주고등학교에서 맡은 바로 그 학급에서 박사가 셋, 대학교수가 여섯, 판사 검사가 각각 하나, 고급관리가 다섯, 은행지점장이 셋, 꽤 성공한 실업가가 둘, 음악가가 하나, 한국의 현 문단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학평론가가 하나, 일류신문의 중견급 논설위원이 하나, 국영기업체의 간부 하나, 의사가 하나, 중고등학교의 교사가 셋, 합해서 29명이 우리나라 사회에 진출해선 일류의 인물로서 활약하고 있다. 태림이 진주고등학교에서 그 학급을 맡을 때 33명이었고 그것을 고스란히 졸업시켰는데 이상 29명을 제외한 4명 가운데 한 명은 병으로 사망, 세 명은 6.25동란 중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관부연락선 에필로그에서)”
이 대목을 인상 깊게 읽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말하는 출세지향적 교육을 소설의 주인공이 고스란히 실행했던 것에 작가는 오히려 찬양조로 서술하고 있다. 내가 다녔던 부산의 그 고등학교 3학년 우리 반도 거의 비슷하다. 서울대 자연계 진학 특별반이었기에 서울대 진학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전문직으로 박사, 교수가 되었고, 서울대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은 서울 부산과 대구의 의과대학을 나와서 대부분이 의사가 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자식에게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 그대로다. 우리들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일본에서 온 것, Made in Japan이다. 소설가 이병주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않았다. 벗어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 이데올로기를 지켰던 것 같다.

“근대 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본은 서양의 문물제도를 도입했는데 헌법 및 육군 제도는 독일에서, 우편, 해군 등의 제도는 영국에서 도입했지요. 경찰 및 교육제도는 프랑스에서 도입했지요. ‘사람은 능히 그 재능 있음에 좇아 공부하고 이에 종사한 후 생을 다스리고 직업을 일으키며 이로써 학문은 입신하는 근본인바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프랑스의 경우 교육은 오랫동안 교회가 장악하고 있었던바, 근대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것이 큰 장애물이었지요. 국민국가와 교회의 사활을 건 싸움에서 마침내 국민국가 쪽이 이겼지요. 강력한 국가 통제 아래 교육이 놓일 수밖에. 사범학교 제도의 강화에서 비롯하여 모든 교육기관은 강력한 국가 통제 아래 놓였지요. 신분에 관계없이 학교 제도를 통해서만 입신출세가 가능하다는 원칙이 그것이지요. … (중략) 국가가 교육을 철저히 장악하여 이른바 학교라는 이름의 종교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교육 신화 = 입신출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해 냈다는 것, 그 최고의 기관이 이른바 육군사관학교와 제국대학이었지요. 그런데 이 입신출세주의가 신분 철폐 위에서 이루어져 있습니다그려. 누구나 머리만 뛰어나면 제국대학에도 육사에도 갈 수 있다는 이 평등주의만큼 사람을 고무시키는 것이 있을 것인가. (김윤식. 2009. 이병주 장편소설 <별이 차가운 밤이면>의 작품해설, 문학의 숲 출판에서 인용)”

‘관부연락선’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초상이다. 그 아버지는 1920년대 출생한 식민지 사람이다. 내가 잘못해서 조국을 상실한 사람들이 아니고 태어나 보니 식민지 조센진(朝鮮人)이었던, 바로 우리 못난 아버지들이다. 소설 속에는 “내게 죄가 있다면 조선 사람으로 태어난 죄 밖에 없다. 조선사람이란 단순한 그 사실만을 가지고도 피의자로서의 취급을 받아야 한다. 조선인(조센진; 朝鮮人)! 조선인이란 무엇인가?”라는 표현이 있다. 부산의 도항 검문소나 시모노세키의 도항 검문소에서의 일본 혹은 조선 경찰의 감시를 그렇게 우리 아버지들은 받고 일본에 다녀갔다. 지금 나는 해마다 그 아버지의 초상 앞에서 기제사를 지낸다. ‘관부연락선’을 읽는 것은 마치 아버지 제사 지내는 바로 그 행위와 의식과 똑같은 뉘앙스를 자아낸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태림은 당시(1940-1950)의 지식인, 동경유학생의 이상적인 한 프로타고니스트다. 소설가 자신의 실제 경험과 느낌이 그 전형적 인물에 투사된 소설, 소설가 자신도 처음으로 시도한 첫 새내기 장편 소설을 새로 창간된 월간잡지(월간 중앙)에 2년여 연재했던 바로 그 소설이다. 1920년대에 출생한 우리 부모 세대들은 젊어서는 일제 말기와 해방(8.15), 그리고 6.25를 체험하고, 중년에는 4.19와 5.16을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힘없는 민중의 한 사람 한 사람, 장삼이사張三李四였다. 자식들은 못 알아듣는 일본말로 부부 간에, 친구 간에 대화했던 그 세대, 더럽다고 ‘키타 나이네!’하며 뭐라캤던 우리 아버지, 조선 놈들은 모두가 도둑놈 아니면 사기꾼이라면서 이 땅에 도저히 살기 싫다면서 일본 가서 살자고 했던 우리 아버지…….

Ⅲ.
지난여름 방학 때 바로 그 관부연락선(지금은 부관 페리로 칭한다)을 타고 시모노세키(下關)와 키타 큐우슈우(北九州)를 다녀왔다. 다음은 그때 쓴 여행 후 감상 글과 일기다. 우리는 대한해협이라하고 일본은 겐까이나다(玄海灘)라고 부르는 그 바다를 갔다 왔다. 우리 학과 L교수님 정년을 두 학기 앞두고 정년 기념 수학여행을 학과 교수 가족 모두 해서 12명이 가장 저렴한 여행으로 시모노세끼, 벳푸, 후쿠오카, 키타큐슈, 우베 코스를 1인당 33만원으로 해서 잘 다녀왔다. 밤으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다 왔다. 마음은 계속 그 바다 위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새벽 여명 빛 속에서 배는 부산항 밖에서 입항대기를 하고 있다. 바로 오륙도 옆 그 바다 위에 닻을 내리고 오전 8시 제1부두 착항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고 있다. 여명, 미명 새벽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아직도 집에 가지 않고 캄캄한 바다 위에 떠 있다. 3박 4일 집을 떠나 배를 타고 차를 타고 호텔에서 잤건만 그 ‘풍경의 슬픔(Mal du Pay)’은 보지 못했다. 그 풍경의 기쁨만 생각했다. 어리석은 자기 모습만 차창 유리에 스친다. 졸업 여행인가 정년 여행인가. 맨 얼굴의 길거리와 시골 풍경, 풀과 나무, 산과 들, 있는 그대로 다 보고 왔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문화 유적, 명승고적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좋았다. 소탈하고 꾸미지 않은 풍경과 길과 건물, 사람을 보고 왔다. 이제 다시 또 뭍에 내려서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밉기만 하다. 그렇지만, 물론 그렇지만, 아무 사고 없이, 차질 없이, 무사히 잘 다녀 온 것 정말 고맙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맑음, 폭염: 아침부터재즈를듣는다. 처녀항해(Maiden Voyage).재즈 보컬 가수 다이앤 리브스가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처녀항해’를 노래한다. 오후 한 시경, L 교수님이 승용차를 가지고 우리 아파트로 오셨다. 중앙고속도로 칠곡 동명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계속 대구, 부산 쪽으로 신고속도로로 해서 양산 톨케이트로 빠져 나와 도시고속도로로 해운대(수영) 광안대교로 들어섰다, 시원한 바다와 도시 해변을 보았다. 용호동 이기대二妓臺 공원에 들려 차를 주차하고, 해변 둘레길을 잠시 내려가 보았다. 그리고 곧장 국제여객선터미널 쪽으로 향했다. 터미널 2층 승선 마루에 오후 5시 40분 도착, 10분 지각했다.
18:20 승선 대기
19:00 승선 완료; 114호실 (우리 일행 12명 군대 내무반식으로 일렬로 잠자기 해야 한다)
19:40 저녁 식사 배에서 먹는 개인 식판을 가지고 부페식으로 단체급식
20:20 갑판 위에서 부산 항구를 내려다본다. 음력 7월6일의 초승달이 시내 용두산 부산탑 위에 떠 있다.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관부연락선 도선장 그 장소 그대로 명칭만 국제여객선터미널이다. 그리고 큰 길 건너편에 있었던 구 부산역,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해에 큰 불이 나서 전소한 이후, 옛날 초량역을 다시 지어 부산역이 되었다. 구 부산역은 바로 관부연락선 도선장으로 철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부산은 내 고향이고 출생지다. 내 본적지 주소, 부산시 중구 동광동 2가 17번지, 바로 용두산 공원 밑이다. 우리 집 이층 창문으로 보면 멀리 오륙도, 그리고 항구의 수많은 배들이 거의 다 내려다 보였다. 또 당시 내가 다녔던 경남중학교는 그 교사가 부산 토성동에 있어서 교실에서 바로 부산 남항 항구가 남쪽 유리창으로 늘 보였다. 그런 바다와 항구가 보이는 교실에서 3년 동안의 중학교 생활을 했다. 바로 그 창문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그 어린 소년이 이제 나이 육십이 넘어서 그 창문 밖에서 자기 마음을 다시 내다보고 있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야 뱃고동 소리 울리며 “성희호”는 출항하기 시작한다.

내 어릴 적만 해도(1967년 중2까지, 전차가 다녔고) 영도다리가 아침 11시에 30분 동안 올라가는 것 보았는데, 이번에 북큐우슈우 모지(門司) 항구에서 영도다리 비슷한 혹은 그 다리 축소판 같은 것을 보았다(8월14일 오전 11시경). 거기서 내가 어릴 적 타고 다녔던 전차도 그대로 있는 것 보았다. 지금은 첫 항해 출발시점이고 또 석양 빛 항구 풍경이 좋아서 모두 상기된 기분으로 바람 시원한 갑판 위에 올라와 있다. 단체, 개인별로 사진을 찍다. 머-얼리 영도 쪽에서 아파트와 조선소 불빛들이 아름답다.

바다 위에서, 3등 선실(성희호 104호실)에서 우리 일행 모두 같이 잠을 잔다. 여자들 한 줄, 남자들 한 줄 해서, 두 줄지어 요와 얇은 이불을 덥고 잤다. 나는 ‘관부연락선’ 소설을 생각하면서 눈을 붙인다.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끝이 없다. 기관실 소음과 코고는 소음에 엎치락뒤치락, 겨우 눈을 붙인다. 이병주 씨의 ‘관부연락선’을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참 열심히 읽었다. 수많은 동경 유학생들과 어려운 사람들이 이 바다, 현해탄(玄海灘)을 건너갔던 그 배, 관부연락선, 창경호(昌慶丸)와 금강호(金剛丸).

1945년 8월 15일, 만주에서의 일본인들은 허급지급 도망가기에 바빠서 자식도 버리고 남녀 모두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만주에 남은 그 수많은 일본 고아들이 1990년 이후에야 나이 오십이 넘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신의주나 평양에서는 거의 야반도주로 조선인들을 아무도 만나지 않고 몰래 짐을 싸서 자식을 데리고 일본을 향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더러 얻어맞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거의 냉정하게 아무에게도 인사 없이 말없이, 귀국하였다. 대구 부산에서는 일본인 조선인 서로 손을 잡고 눈물 훌쩍거리며 ‘사요나라….’ 했다. 부산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은 그때, 돌아 간 일본사람들을 다시 오라고 하는 느낌 있는 것, 지울 수 없다. 그만큼 친일파가 가장 많은 곳이 부산 대구라고 할 수 있다. 1938년 시골인 김해 칠산에서, 부산으로 시집 온 우리 어머니, 시집에서는 모두가 일본말로 말하고 있었기에, 참 놀랍고 생소했다고 하신다. ‘나루호도(그렇구나!)’, 그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부산 좌천동 그 시집 동네는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같이 살아가면서도 서로 간에 내왕이나 상종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우리 어머니, 부산으로 시집 와서 생전 처음으로 전깃불을 보았고 전차를 봤다고 한다.
다음은 소설 속 한 대화 지문이다. “뿐인가, E군 이 부산의 거리에서 반도인 젊은 사람이면 아무라도 붙들고 얘기를 걸어보게, 내지의 시골 사람 이상으로 일본말을 유창하게 할 테니까. 말하자면 이곳에 사는 일본인은 일본에 사는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적이고 반도인은 또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말을 잘한다는 얘기다.”
“부두가 가까워짐에 따라 나는 바다 위에서 시모노세키를 보았을 때의 느낌과 이 부산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대조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모노세키는 푸른 산을 등에 지고 뚜렷한 윤곽으로 꿈을 안은 항구와 같고, 부산은 벌거벗은 산을 배경에 두고 이지러진 윤곽으로 거저 펼쳐져 있기만 한, 멋없는 항구이다. 시모노세키를 항구라고 말할 수 있다면, 부산은 부피만 큰 어촌이다. 그러니 높은 굴뚝을 가진 호화선이 부산에선 귀양 온 귀공자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소설 속의 한 대목인데 이번에 내가 본 풍경은 그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부산은 멀리 센텀시티의 높은 빌딩 숲으로 단장된 거대 국제 항만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면, 현재의 시모노세키는 겨우 일본국내 선박들이 기착하는 조그만 포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어릴 적에 한번 김해 칠산 외가 집에 갈려면 집에서 새벽에 출발, 구포에 오후 2-3시에 도착, 낙동강 구포 다리에서 김해읍 까지 가면 오후 5-6시, 거기서 다시 칠산까지는 걸어서 외가집 초가에 도착하면, 저녁 8-9시 캄캄한 밤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산 시내에서 김해 칠산 외가집까지 승용차로 1시간이면 닿는다.

이병주의 소설은 마치 거대한 심포니 같다. 그것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어야 한다. 피아노로 편곡해서 그 연주를 들으면 별로다(그의 단편소설을 읽은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그의 장편들에 질린 것은 그 거대한 소설의 길이와 폭과 이야기의 양이다. 내가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첫 번째 1번 교향곡을 가장 좋아하듯이, 그의 제일 첫 번째 장편소설인 이 <관부연락선>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다른 소설들은 거의 완독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싱그러운 젊은이의 풋풋한 사랑이 그 소설 속에 있고 젊은이의 울분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도회지 상것들!’이라고 하면서 내가 그런 집 아이들과 노는 것을 싫어했다. 반면 내가 엄마 몰래 그 집에 가면, 그 집 엄마는 광복동의 서울제과, 뉴욕제과에서 산, 사라다빵(요즘은 핫도그)을 자기 아이들과 똑같이 내게도 주시면서, “순구야, 어서 온나. 우리 종태하고 같이 놀다가 또 같이 공부 하거레이,…”하셨다.
우리 어머니 이제 연세가 구십이 넘었다. 집에 딸아이가 갖다 놓은 ‘어린 왕자’ 일본어 번역본이 있었다. 어린이용이라서 그림이 많고 책도 크고 글자도 커서 어머니가 히라카나-가다카나를 소리 내어 읽고 있다.
“어머니, 일본어는 언제 배우셨어요?”
“내 어릴 적에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이면 우리 동네에 와서 야학을 열었다. 거기서 대학생 오빠야들 한테서 히라카나, 가다카나 안 배웠나.”
지금도 우리 어머니는 일본인이라 하지 않고, 일본놈이라고 하고, 왜놈이라 하신다. 그리고 아주 작은 섬나라라서, 늘 우리 나라를 넘본다고 하신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