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팬덤 이야기 <키사라기 미키짱>, <드림걸스>(글/임지희_안동대 국문과 겸임교수)
산업사회에서 대중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스타와 팬이라는 존재가 대중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는 스타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스타를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을 우상으로 삼고 환호하는 팬들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가하면 연예오락산업의 주변에는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스타와 팬의 이야기,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11월 15-16일 안동예술의 전당 백조홀 공연)은 미키짱이라는 스타를 사랑하는 팬덤의 이야기이고 뮤지컬 <드림걸스>(12월 8일 안동시민회관 소강당 공연)는 스타를 꿈꾸는 여가수의 이야기이다.
반전의 즐거움과 동일시의 즐거움
<키사라기 미키짱>과 <드림걸스>는 재미있는 연극이다. 그러나 두 연극이 관객들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요소는 다르다. <키사라기 미키짱>은 반전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키짱의 1주년 추도식을 다섯 명의 삼촌 팬들이 준비하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이에모토, 스네이크, 키무라타쿠야, 야스오, 딸기소녀는 삼촌 팬들의 팬 카페 닉네임이다. 이렇게 다섯 명이 건물의 한 옥상을 빌려 추도식을 하려고 만난다. 건물의 옥상을 빌린 이유는 하늘에 있는 미키짱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첫 번째 반전은 딸기공주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딸기공주라는 닉네임은 귀엽고 앙증맞은 여성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전이었다. 딸기공주는 다섯 명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어설픈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그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던 중 미키짱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미키짱의 죽음을 파헤치는 추리를 시작한다. 추리가 진행되는 동안 비가 내리고 번개와 천둥이 치고 날씨는 점점 험악해진다. 그러나 이 극은 추리를 긴장되게 진행하지 않는다. 사이사이 희극적인 요소를 담아내어 부담 없이 웃으며 즐기는 추리가 진행된다. 특히 야스오 역의 배우는 익살광대처럼 재미의 요소를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추도식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바지를 입고 왔다고 다른 삼촌 팬들에게 질타를 당할 때 묘한 표정을 짓는다든가, 파이를 먹고 배가 아파 괴로워하는 몸짓이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묘하게 이를 무마하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진지해야할 죽음에 대한 추리를 이렇게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반전구성이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미키짱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는 동안 인물들이 모두 미키짱과 아주 가깝게 밀착된 인간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딸기공주는 미키짱의 아버지이고 스네이크는 남자친구, 키무라타쿠야는 매니저, 야스오는 어릴 때의 소꿉친구라는 것이 밝혀진다. 미키짱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야기와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성은 아주 잘 맞물려 있다. 예를 들어 딸기공주가 미키짱의 집 주위를 서성였다는 것이 다른 인물의 목격담에 의해 밝혀지고, 딸기공주가 미키짱의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시작된다. 딸기공주에 대한 취조가 시작되고 딸기공주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취조가 계속되다가 딸기공주가 끝끝내 내몰리게 되면 자신의 정체가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흐느낀다. 다른 인물들은 딸기공주의 신분증을 가지고 신분조회를 한다. 결국 딸기공주는 미키짱의 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인물들의 정체도 릴레이 형식으로 밝혀진다. 이런 릴레이 형식은 빠르게 진행되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내린 결론은 미키짱이 집에서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약을 뿌렸는데, 통이 헷갈려 바퀴약이 아니라 인화성 세제를 뿌렸다는 것이다. 그때 지진이 일어나서 인화성 세제가 허브초에 옮겨 붙어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추리는 자신들이 미키짱과 통화한 내용과 그녀의 집을 방문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꽤 신빙성 있게 느껴진다. 삼촌 팬의 나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철없어 보이는 이들의 행동이 엉뚱하기도 하고 발랄하게도 느껴지고 순수해보이기도 한다. 삼촌 팬들의 나이답지 않는 이러한 모습도 반전인가? 십대 여성팬덤의 ‘오빠부대’를 생각해 본다면 삼촌 팬들이 벌이는 이러한 해프닝이 반전이기는 하다.
젊은이들의 꿈과 우정, 드림걸스
<키사라기 미키짱>이 기성극단의 공연이었다면 <드림걸스>는 아마추어 배우들이 꾸미는 무대였다. KT&G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상상유니브라는 활동프로그램을 운영한단다. 전국을 지역별로 나누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번에 공연된 <드림걸스>는 안동지역 문화예술분과의 뮤지컬 클래스 학생들의 공연이었다. <드림걸스>는 1960년대 미국 뉴욕에서 디트로이트 출신의 흑인 여성 트리오가 스타가 되기 위해 겪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원작 <드림걸스>는 대형 LED를 사용한 무대배경과 1500여벌이 넘는 의상으로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 중에서도 최고의 규모와 화려함으로 유명한 공연이다.
안동에서 공연된 <드림걸스>는 뮤지컬 갈라쇼라는 이름으로 대폭 축소된 공연이었다. 줄거리는 그대로 유지하되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 위주로 50분가량 공연되었다. 에피, 디나, 로렐이는 스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뉴욕에 와서 오디션을 보게 된다. 오디션에는 떨어지지만 커티스라는 중고자동차 딜러를 만나게 되는데 커티스는 이들에게 당대 최고의 가수인 제임스의 코러스를 하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 커티스는 제임스와 에피, 디나 로렐이의 매니저 일을 맡게 되며 이들의 동행이 시작된다. 제임스의 코러스를 어느 정도 했을 때 커티스는 여성트리오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노래를 잘 하는 에피보다는 얼굴이 예쁜 디나를 리더로 내세우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 때문에 에피와 디나는 갈등을 겪게 된다. 원작 <드림걸스>는 커티스를 통하여 스타시스템에 대한 문제점과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안동에서 공연된 <드림걸스>는 이러한 커티스의 모습은 아주 짧게 그려진다.
커티스가 트리오의 성공을 위해 노래 잘하는 에피보다는 디나를 리더로 하자는 제안에서 그의 야망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에피와 디나는 화해하게 되고 그녀들이 내린 결론은 커티스와 헤어져서 자신들이 스스로 꿈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드림걸스>는 원작에서 보여지는 많은 갈등과 이야기를 제거하고 에피와 디나의 꿈과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대학생 뮤지컬 클래스의 역량을 고려한 각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각색은 대학생 관객들에게는 꿈을 한번 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꿈꾸지 않는 자는 이루지 못 한다’는 말이 있듯이 꿈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공연은 배우들의 지인들이 관객석을 많이 차지했는데 대부분 20대 대학생관객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갈등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꿈과 도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커티스의 계획에 동조하지 않고 우정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꿈을 위해 스스로 개척하는 에피와 디나의 모습에 공감했을 수도 있다.
<드림걸스>공연에 참여한 배우들과 관객들은 친분관계를 가진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에 가지는 즐거움도 배제할 수 없다. 나와 친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배우가 되어 공연을 한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공연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꿈과 우정에 대해 생각하는 즐거운 시간 여행이었다.
배우라는 아름다운 이름
연극은 희곡, 무대, 배우, 연출 등 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배우들에게 집중된다. 그러니 만큼 연극공연에서 중요한 부분이 배우들의 연기라고 할 수 있다. <키사라기 미키짱>의 다섯 명의 배우의 연기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또한 다섯 명의 호흡도 잘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암전이 없었는데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연기하는 모습에서 공력이 느껴졌다. <키사라기 미키짱>은 앉아서 하는 연기는 거의 없다. 배우들은 2층으로 된 무대를 다니면서 연기를 했고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역동적인 춤을 소화해내야 했다. 이 연극은 배우들을 부지런히 뛰어다니게 하는 연극이다. 연극 도중에 야스오라는 역을 맡은 배우가 애드립을 쳤는데 이것이 다른 배우들을 당황시키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자 다른 배우가 너가 그렇게 하면 동선이 꼬인다고 하면서 연습한 대로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객석에 인사를 하고 다시 연극을 진행해 나갔다. 관객들은 박장대소 했다. 이러한 배우들의 노련함은 많은 노력과 경험에서 나온다. <키사라기 미키짱>에 참여한 배우들은 노련한 배우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림걸스>에 참여한 배우들은 대학생 배우여서 그런지 연기의 미숙함이 그대로 들어난 배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몇 몇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내는 기염을 토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배우가 되어 연기에 참여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들 배우들 중에는 미래에 프로 배우를 꿈꾸는 사람도 있을 지도 모른다. 장래에 배우가 되느냐 배우가 되지 않느냐는 <드림걸스> 공연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연극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공동으로 작품을 하면서 그들은 공동체 사회에 편입했을 것이고, 공동으로 만들어 낸 작품에서 성취감을 가졌을 것이다. 한 작품이 완성되면 어떤 작품이든지 그 작품에 대해 성취감을 가진다. 그러나 그 작품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라면 성취감은 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드림걸스>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은 분명 인생의 소중한 경험으로 각인되어 그들의 마음에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글을 마무리 하며
<키사라기 미키짱>과 <드림걸스>는 즐거운 연극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시 걸리는 것은 주제의 문제이다. <키사라기 미키짱>의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는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극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연극은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관객을 겨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십대, 이십대 관객들은 시각적이고 감성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관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맞춘 연극이 <키사라기 미키짱>이다. <키사라기 미키짱>이 제공하는 즐거움은 이 사회를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은 아니다. 즉 이 연극은 팬덤문화의 문제를 해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작품은 아니다. 이 연극은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만화를 읽는 것 같다. 재미는 있지만 약간 유치하다는 느낌이 드는 만화 말이다.
<드림걸스>는 원작이 커티스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지 않다. 원작 <드림걸스>는 커티스를 통해 스타시스템의 여러 가지 모습과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드림걸스>는 이러한 부분을 제거하여 관객들을 탈사회화하고 있다. 뮤지컬 갈라쇼이기는 하지만 커티스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사회의 모순을 짧게라도 짚을 수 있었다면 더 의미 있는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 신세대들은 정치와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신세대들이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한 것은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생산 층에서 어떠한 모습의 문화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연극의 강점 중의 하나는 메시지의 전달력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연극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써 힘을 발휘해야 한다. 연극은 인간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닌 다양한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 연극의 효용성을 들먹이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연극이 많이 창작되길 기대한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