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 그들이 품고자 했던 자연(글/사진/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병산서원을 구성하는 건축물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인근에 있는 병산서원도 포함되었다. 병산서원은 류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지은 서원이다. 이 서원의 주향 인물은 류성룡(1542～1607)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류성룡은 자字가 이견而見이고 호가 서애西厓이며 풍산인豊山人이다. 병산서원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 그 전신으로, 풍산류씨 집안의 교육기관이었다.
병산서원은 1572년(선조 5) 류성룡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겨 놓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소실되었다. 그 뒤 서원은 1604년(선조 37) 류성룡이 죽자 제자 정경세를 비롯한 지방 유림의 뜻으로 1614년(광해군 6) 존덕사를 세고 그의 위패를 모신 후 병산서원으로 개칭했다. 류성룡의 위패는 1620년(광해군 12) 여강서원으로 잠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겨와 모셔졌다. 병산서원은 1629년 류성룡의 셋째 아들 류진(柳袗, 1582～1635)을 배향했다. 류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계화季華요 호는 수암修巖이다. 병산서원은 1863년(철종 14)에 ‘병산’으로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병산서원은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지금 병산서원은 세계문화유산 신청 대상 서원 9개소 중 한 곳이다.
현재 병산서원의 건물들은 화산花山을 등지고 앉아 병산屛山을 바라보고 있다. 하회마을을 감싸 흐르고 있는 화천이 병산 앞을 돌아들어와 U자형으로 빠져나가는 오목한 지대에 서원이 터를 잡고 있다. 병산서원 좌측에는 너들대벽이 있고, 우측에는 마늘봉이 있다. 주산인 화산 너머에는 하회마을이 자리한다. 즉, 화산을 중심으로 한쪽에 하회마을, 한쪽에 병산서원, 다른 한쪽에 풍산들이 있다.
병산서원은 경사면을 이용한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서원 내에는 제향 공간인 존덕사尊德祠, 강학 공간인 입교당入敎堂, 신문神門, 전사청典祀廳, 장판각藏板閣, 동재東齋, 서재西齋, 만대루晩對樓, 복례문卜禮門,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서원은 외삼문 안쪽의 강학 공간과 그 후면 우측으로 이어지는 제향 공간, 그리고 강당 우측 담장 너머에 고직사로 구성되어 있다. 강학 영역에는 강당인 입교당과 동서재, 그리고 문루가 그 전면에 배치해 있다. 제향 영역은 강당 좌측을 돌아 비스듬히 들어가면 내삼문이 나오고 그 영역 안에 사당인 존덕사가 나타난다. 관리인 숙소인 고직사는 안동 지방의 전형적인 口자형 뜰집 구조로 되어 있다.
묘우廟宇인 존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채색되어 있다. 기단 앞의 양측에는 8각 석주 위에 반원구의 돌을 얹어 놓은 대석臺石이 있는데 이는 자정에 제사를 지낼 때 관솔불을 켜놓는 자리라 한다. 존덕사에는 주향인 류성룡 선생과 배향인 류진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강당인 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내부 평면은 중앙의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 양측에 온돌방이 있다. 강당은 서원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 장소로 사용했다. 전사청은 향사 때 제물을 장만하여 두는 곳이며, 장판각은 책판과 유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강당 정면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동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동서재 아래 단에는 문루인 만대루가 있는데,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식 건물로써 서원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향사 때에는 고지기가 개좌開座 또는 파좌罷座를 아뢰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누각 앞에는 서원 주 출입문인 복례문이 있다.
고직사는 ‘口’자형 평면을 가진 건물이다. 고직사는 실내를 서로 연결하기 위하여 지붕 구조가 독특하게 짜였는데, 맞배지붕 같은 팔작지붕에 길이가 긴 눈썹지붕을 붙여놓은 듯 한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구조는 이 지방 서원 고직사 건물뿐 아니라 ‘口’자형 살림집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현재 고직사는 고택 및 서원 체험프로그램을 운용하므로 일반 관광객들이 묵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화장실도 자그마하게 만들어 놓았다. 과거 고직사에 살던 사람들은 고직사 앞의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이 화장실은 달팽이처럼 토담으로 만들어 놓고 대문을 달지 않았다. 서원의 유생들은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병산서원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은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해 방문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산들을 지나는 진입로를 따라 자동차로 출입한다. 불행 중 다행은 진입로를 아스콘으로 포장하지 않은 점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더 찾으면 포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갈 수 있는 길로는 유교문화길이 있다. 이 길은 4km 조금 더 되는데 참으로 걷기에 호젓한데, 특히 봄에 걷기에 참으로 좋다. 하회마을의 풍산류씨 일가와 서애 선생 후손들은 이 길을 걸으면서 가까이에 있는 논과 논에 면한 초가, 초가로 둘러싸인 와가, 멀리 부용대, 푸른 하늘이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이면 병산서원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병산서원이 품고자하는 자연 경관
건축이 터를 잡을 때 산과 물, 들, 도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건축물은 등을 대고 있는 주산과 바라보는 안산, 그리고 앞을 흐르는 명당수와의 거리 및 높이를 통해 개별 건축공간을 만든다. 병산서원은 안산과 강물과 거리를 두고 건축물이 주산인 화산의 경사지에 올라타고 있다. 개별 건축물은 경사면에 마당을 만들기 위해서 단과 기단을 만들고 계단을 만들어 개별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마당은 가장 핵심 공간으로 병산서원과 병산의 여러 관계들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마당 중심에는 병산서원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그랬던가,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한없이 비울 수 있다면 한없이 채울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의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런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여백의 미학이라도 한다. 겉으로 끝없이 비우고 있어 끝없이 채울 수 있는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대표적인 공간은 건축물로 감싸인 외부 공간인 마당과 내부 공간인 마루가 있다. 병산서원에서 이와 같은 공간은 강당과 동서재, 만대루로 감싸인 마당이며, 다음이 마루 공간으로 만대루의 마루, 강당의 마루 공간이다. 손님의 눈으로 이들 공간은 여백의 공간으로 보이지만 이곳에 앉아 주인의 눈높이로 보면 끝없이 주변의 자연 요소들이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충만의 공간이 된다.
자연과 건축의 중간에 있는 건축 요소들은 자연과 인간의 두 관계의 성격을 정확히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간 이용자는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서원 건축공간은 지배적 위계가 아닌 상호 관계 속에서 예로 위계를 표현한다. 병산서원은 이와 같은 유가들의 아름다움, 질서를 완성했다. 병산서원은 만대루라는 하나의 투명한 건축요소를 가지고 있고, 서원의 전체 공간은 단과 계단으로 나누어 서로를 막지 않고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병산서원은 뛰어난 건축 기법을 자랑하는 서원 입구의 만대루에 오르면 반듯하게 다듬어 세운 열주와 열주 머리 위를 자연의 선을 그대로 살린 대들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다듬지 않은 대들보의 선은 넘실넘실 거리는 수많은 물결과 같다. 자연의 선과 인간의 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루에 앉아 기둥 사이를 보면, 병산사람들이 그리고 품고자한 병산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자리를 옮길 때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병산과 강물, 흰 모래, 그리고 하늘, 별, 달 등은 이를 보는 병산서원 사람의 심성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만대루에 올라앉는 순간 우리의 마음으로 화천과 함께 병풍처럼 강을 감싼 병산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런 풍광은 전국의 많은 건축가들을 병산서원으로 부르고 있다. 나는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닐 때 건축순례반과 함께 병산서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만대루에 대형 모기장을 치고 만대루 처마 끝에 걸린 병산 위 별들을 헤아린 적이 있었다. 그 이후 한참 시간이 흘렀다. 이제 선생이 되어 학생들을 데리고 병산서원 만대루에 올랐다. 나와 학생들은 만대루에서 병산서원 어른들의 강의를 들었다. 만대루晩對樓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 〈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인데, 해가 진 밤에는 낮에 보이지 않던 자연이 기둥사이로 들어온다. 눈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안으로 보는 맛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에서 내려와 마당에 서면, 사면이 건물로 감싸인 곳에 놓이는데, 책을 보다 지친 눈을 달래기 위해 마당을 거닐던 병산서원의 유생들이 문득 생각난다. 그리고 세파에 흐트러진 나의 눈과 마음은 병산과 마당 사이에 있는 만대루를 통해 정제되어 들어오는 자연이 바로 잡아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만대루의 용마루 곡선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병산의 능선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때 병산의 산능선은 낮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때와 밤의 검푸른 밤을 배경을 하고 있을 때는 전혀 다르다. 밤의 산 능선이 낮은 능선보다 더 강렬하게 병산서원 사람들의 심안으로 들어온다. 눈을 처마 밑으로 돌리면 기둥과 기둥의 일곱 간 사이의 풍경화는 마당에 선 병산서원 사람에게 자연의 이치를 일깨울 수 있는 경관을 제공한다. 누군가는 농으로 마당에 서면 만대루 기둥을 통해 풍경화 만점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르고,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 다르고, 화창한 날과 비오는 날, 흐린 날 각기 풍경화가 다르다.
병산서원에 가면 나는 꼭 강당 마루에 오른다. 만대루나 마당은 마음의 느슨한 상태에서 공간을 이용하지만 강당은 강학 공간으로 긴장된 마음 자세로 마루를 오른다. 강당에는 선생님이 있고, 공부를 하는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강당 마루 안쪽에 선생님이 앉았던 자리에 정좌하고 밖으로 보면 마당과 만대루에서 보았던 경관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온다. 강당 정면의 원기둥은 만대루의 원기둥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기둥 사이로 중첩된 하늘, 병산, 강물, 모래, 만대루가 중첩되어 깊이감을 더해준다.
동재와 만대루, 서재는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세 건물이 만나는 지점에 강당의 기둥을 세워 처마가 하나로 연결된 듯 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은 착각으로 마당은 건물로 둘러싸인 듯 한 공간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만대루의 기둥과 기둥 사이가 열려 있어 전혀 답답하지 않다.
주변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찾아 이를 품고자 했던 과거 선조들의 노력을 우리는 병산서원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키웠던 그들의 이상이 얼마나 원대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 선생인 나로서는 이와 같은 좋은 환경 속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학문과 자신을 수양한 과거 선조들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것인가? 만대루의 용마루 넘어 병산 능선에 걸린 달은 눈으로만 보이는 세상보다 어두운 밤에 마음으로 보이는 세상이 크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