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의 책들을 읽고(글/이순구_안동대 교수)
I.
인생이 가장 망막하고 힘들 때, 창망할 때;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그것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그냥 무기력한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절망적으로 눈 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나의 경우 그것은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였다. 졸업 후 바로 보충역 소집으로 고향에 내려가야 했고 그리고 그 후는 그냥 의문점으로 가득 차 있는, 아무 약속이 되어있지 않은 어두컴컴함뿐이었던, 그런 막막함. 그럴 때 우리에게 아주 큰 구원이나 희망, 용기, 힘을 주는 것은 예술이다. 미술과 음악, 바로 보는 것과 듣는 것으로 다가오는 그 위로와 위안에는 거짓이 없다. 독서도 내게는 그런 역할을 했다. 문학과 예술은 그래서 같은 종류로 다가온다. 미술은 바로 내 눈으로 보는 것이고 음악은 바로 내 귀로 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직접 나의 정신 혹은 영혼에 수용된다. 거기에는 어떤 충고나 멘토도 없다. 책에서는 진실보다 오히려 눈속임이나 거짓과 위선, 현실호도 등이 더 많다. 나 스스로 거기, 예술이나 문학에서 길을 찾고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내 속의 어떤 배터리를 다시 충전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문화적 행동은 생존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인간은 인지 영역(cognitive niche)에 거주하고 예술은 일종의 어떤 유형과의 인지적 놀이이다. 예술 작품은 정신의 운동장(수련장)이다. 예술은 인지적 기술을 축적하고 (인간의 사물과의) 감수성(혹은 감응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놀이는 대부분 사회적이다. 격렬한 놀이일수록 더 사회적이다. 그런데 인간은 또한 초사회적 존재이므로 그런 사회적인 것마저도 어떤 때는 초월할 수도 있어야 한다. 생물학적 인간과 문화적 인간을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1)
2013년 12월 30일, 그날도 나는 서경식 씨가 쓴 <청춘의 사신(2002)>을 열심히 파고들며 읽고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그 책만 보고 있었다. 인간 생존과 진화에, 이야기나 예술 즉 문학과 예술이 참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장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인간은 인간적인 품위와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2014년 1월 1일 새해 벽두에도 나는 여전히 순전히 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서경식 씨의 <나의 서양미술순례(1992년 번역판)>를 다시 또 읽고 있었다. 게리 카가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 소리 무겁게 흘러나오는 오디오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그 책만 읽고 있었다. 서경식 씨는 자기가 가르쳤던 제자 한 사람이 취직이 되어 그의 연구실로 인사하러 왔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낯선 땅에서 대인관계로 신경 쓰느라 피곤해지면 잠시 미술관에 들러보라. 거기 가면 반드시 위안을 얻고 마음이 치유된다는 보장은 없으나 적어도 정신적으로 고양돼, 자신이 사로 잡혀 있는 세계의 협소함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는데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서경식은 “(현대를 살아가려면) 화를 내도 안되고 울어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감동’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 내 눈에는 사람들이 매끈매끈한 아크릴 껍질을 푹 뒤집어 쓴 채 되도록 아무 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사회(일본 사회 혹은 한국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데 불리할 테니 말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대, 이런 속이 느글거리는 사회 풍토와 그 분위기에서 그에게 예술이란 그 숨 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라고 했다. 20세기라는 세계대전, 대량학살, 그리고 난민의 시대, 반투명의 거대한 감옥에서 서서히 질식해가는 우리 모두에게 예술은 둘도 없는 귀중한 ‘창窓’이라고 했다(서경식, 청춘의 사신). 화가가 그림을 보는 이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껏 목소리를 높인 토론이 아니라 침묵하는 경건함이다. 왜냐하면 미술작품에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적은 데다,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단지 쳐다보고 느끼는 것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2)
1) 브라이언 보이드Brian Boyd. 2009. 〈이야기의 기원(On the Origin of Stories)〉. 남경태 옮김(2013), Humanist.
2) 서경식. 2009. 〈고뇌의 원근법〉
II.
나는 서경식이라는 프리즘 혹은 반사 거울을 통해 나 자신과 우리 사회를 본다. 서경식 씨, 서경식 형, 서경식 선생, 서경식 교수,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그분의 책을 읽고 그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그는 아직도 내게 너무나 친숙하면서도 생경하다. 반말로 친숙히 대해도 될 것도 같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그 어떤 당당함 때문에 우선 나는 기가 죽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재일교포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르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때까지 써 왔던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서경식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써 온, 일본 도쿄 게이자이(經濟)대학 교수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의 여러 대학에서 재일조선인과 역사문제에 대한 강의를 해왔고, 2000년부터는 도쿄 게이자이대학에서 전임해 있다. 그는 그 대학에서 교양 과목의 교수다.
그가 말하는 ‘교양 교과’는 ‘전문영역의 벽을 넘는 폭 넓은 교양 교육을 통해 자율적인 시민을 육성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서경식 교수 나름의 어투로 바꿔 말하면, 인간을 ‘기계화’하고, ‘야만화’하는 자본주의와 국가의 힘에 저항하는 교양을 교육하는 것이 바로 그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학과목명도 ‘인권과 마이너러티(Minority; 소수자, 비주류)’이다. 그는 ‘비전문가주의(amateurism)에 입각해서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와 싸워야 한다’, ‘역사 서술이나 문학에서 지배층의 서사(master narrative)에 피지배층의 대항서사(counter narrative)를 대치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교양은 타자他者에 대한 상상력이다. 수준 높은 문학 작품 하나 읽지 않은 채, 미술관이나 극장으로 발길 한번 돌려보지 않은 채 (일본이나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양(Liberal Arts)은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학예學藝이다. ‘노예적’ 또는 ‘기계적 기술’과는 대치되는 것이다. 교양은 바로 타자他者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고 예술을 통해 인간의 죽음과 삶을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미술 음악 영화 연극 등 뛰어난 예술 작품을 접근하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줌으로써 ‘잠자는 감성을 깨우는 것은 무척 보람된 일’이라고 했다.
재작년 겨울 우연히 서경식 교수의 책,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아주 열렬하게 읽었고 그 책을 읽고 나서 바로 〈나의 서양음악순례〉도 읽었다. 앞의 책은 일본에서 먼저 일본어로
출간(1991)된 후 다음 해 우리나라에서 다시 번역되어 출판된 것이고, 뒤의 책은 한국에서 먼저 우리말로 출간(2011)된 후 일본에서 다시 일본어로 출간되었다. 서양미술순례는 1983년 그분의 나이 32세, 직업도 없이 한국에서 감옥 생활을 하는 두 사람의 형(서승, 서준식, 두 사람은 각각 1968년 서울대로 유학 가서 1971년 학원간첩단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사형 및 무기징역형을 언도 받고, 군사정권이 종말을 고한 1980년대 말까지 한국의 교도소에서 옥중생활을 보내었음)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부모님마저 이승을 떠나는 그 망망함을 겪고 처음으로 여동생과 함께, 30대의 절망한 청년이 네덜란드, 스위스, 이태리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가지는 인생 청년기에 겪은 것을 썼다면, 그의 서양음악순례는 60대 접어든 늙은 순례자가 겪는 노숙한 경지의 음악회 방문 참관기 내용이 대부분이다.
1983년의 그 첫 여행에서부터 1년에 한두 번씩 (고야,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고흐 등의 작품이 있는) 서양의 미술관을 찾아다니게 되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쓴 견문기를 모아서 쓴 것이 바로 그 책 나의 서양미술순례(1991)이다. ‘무척 쉽게 쓰여있어 전문적인 미술비평서를 읽을 때의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림을 느끼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림을 보고 있다는 강력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현역 일본화가(矢野 靜明; 야노 시즈아키, 1955년생)의 평이다. 1990년대는 주로 독일을 여행하여 케테 콜비츠, 로비스 코린트, 에밀 놀데, 펙릭스 누스바움 등 20세기의 악몽과 온 몸으로 싸운 미술가들 작품에 대한 얘기를 <청춘의 사신(2001)>에 써놓았다.
2009년에 출간된 <고뇌의 원근법>은 먼저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후 일본어로 다시 출판된 책인데, 1991년의 통일된 독일 여행과 2003년 여름 일본 NHK방송 <신일요 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송스텝들과 함께 촬영차 찾아간 드레스덴 등의 미술관 견문기들과 오토 딕스(1891- 1969), 펙릭스 누스바움(1904-1944), 일본 현역 화가인 야노 시즈아키(矢野 靜明)와의 고흐에 관한 대담(2001년 5월 12일 도쿄 화랑 세션하우스에서 ‘지금 고흐를 말하다’) 내용을 같이 덧붙여서 만든 책이다. 그는 고흐의 그림에서 (풍경 속의) 저 멀리로 멀어져 가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끝 간 데 없이 멀어져 가는 그 감각은 원근법을 뚫고 나가 저편 너머로 가버린 시선이 신체화된 듯한 삶의 방식, 더럽고 가혹한 자유 쪽으로 기울어가는 삶의 방식이 투영된 그림이라고 했다. 그 그림은 현실 속의 자신이 정착할 곳을 가진 사람의 그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세계를 그리는 사람은) 세계 속에 자신이 안심하고 머물 장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전체를 남김 없이 태양 빛에 그을리게 하는 감각은 그 장소에 없는 사람의 감각이라고 했다(서경식. 2009. 고뇌의 원근법). 고흐 형제의 그 치열한 생애를 ‘아름다운 형제애’라는 얄팍한 미담으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바로 한국에서 출판된 서간집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고도 말했다. —당신들은 타인의 고뇌에 흥미를 보내지만 자기 스스로 고뇌를 감내하려고 하진 않는다(장 콕도, 미국인에게). —고흐의 색채에 마음을 빼앗겨 이윽고 거기에 응축돼 있는 고뇌에 공감할 게 분명하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다(서경식. 디아스포라의 눈, 한겨레출판 2012).
Ⅲ.
서경식의 책들을 읽으면서 은근히 내 자신을 그분과 비교해 본다. 나이도 별로 차이가 안 나고 살았
던 시절도 동시대였지만 단지 사는 곳만 서로 달랐던 것뿐이니, 서로 (독서 혹은 정신적인, 생각과 말로써) 팔씨름이라도 한번 붙어봤으면 했다. 내가 그분에게 질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한번 힘겨루기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봤다. 그는 이미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작가로 인터넷서점에 등록되어 있지만 나는 아직도 무명이다. 일본에서 그는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지적 성장기 혹은 일종의 독서편력기인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1995년)까지 탄 저명한 작가 반열에 서 있지만 나는 겨우 안동 잡지에 독후감 잡문이나 쓰는 것을 세상에 태어나서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 처지다. 일본어로 쓴 글 중 가장 아름다운 글(소년의 눈물)이라는 그이의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는데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는다. 서경식 교수는 언제나 음악회에 갈 때면 30분 전부터 객석에 앉아 공연 시작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 글을 읽고 나도 그 흉내를 내어보다가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2014년 1월 25일 평소 좋아했던 신영옥씨의 신년음악회가 안동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을 때 그 분처럼 나도 30분전에 예약석에 가 앉았다가 안내하는 분에게 도로 연주회 홀 바깥 로비로 내쫓겨났다. 아무나 그 분처럼 행동하면 안 되는 것도 그때 배웠다.
“어린 시절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어도 학과로 정해진 공부는 너무도 싫어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서경식 1995. 소년의 눈물, 2004년 이목 옮김).” 나도 그분과 똑같았다. 중고등학교 및 대학 졸업장에 우등 도장이 찍혀 있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푸욱 수그려진다. 더군다나 서경식은 교토 출생이 아닌가. 내가 일본에서 가장 많이 가보았던 도시가 바로 그 교토이다. 가장 일본적인 도시, 도시 인구 비율로 가장 대학생 수가 많은 도시, 현대와 고대가 같이 있는 문화재 도시, 가장 수구적이면서도 가장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도시가 바로 그곳이 아닌가. 일본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도 거기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1988년 8월말-9월초, 나는 열흘간 난생 처음으로 외국 땅을 비행기 타고 가서 그곳에서 보냈다. 제5회 국제식물병리학대회(ICPP)가 교토 국제회관에서 1주일간 열렸던 것이고 나는 그때 ICPP 토양병 분과의 간사를 맡았던 오사카부립대학 이치다니(一谷多喜郞) 교수의 초청을 받아서 바로 1985년에 취득한 학위논문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당시 나는 교토 대학과 정지용과 윤동주가 다녔던 도시샤 대학도 둘러보았으며, 교토 중심가인 가와라마치(河原町)라는 번화가에 있던 시미즈야(淸水屋)라는 레코드점에도 가보았었다(서경식 씨도 20대 무렵, 그 레코드 집에서 마음에 드는 레코드를 사려고 끙끙거리며 고르고 있었다고, 그의 <나의 서양음악순례>에 써 놓았다). 그 당시 그 집에서 산 레나드 번스타인 지휘의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일본 도쿄 문화회관 실황연주판(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 LP와 쥴리니 지휘의 빈 필 연주의 브르크너 교향곡 8번 LP(바로 그 유명한 무직페라인 그로스 잘[‘빈 악우협회(樂友協會; Gesellschaft der Musikverein in Wien)의 ‘큰 연주홀’]에서 연주 녹음)는 지금도 내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명반이다. 쇼스타코비치 5번 교향곡 레코드 자켓의 그림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머리와 팔 다리가 다 잘려 버린 채 등을 돌린 모습의 석고 흉상이 화염에 휩싸여 있는 처절한 모습이다. 그때 그 학회에 동행해서 같이 갔던 대학 학과 동기생 L군이 나의 호텔 숙박비도 다 지불해 주는 바람에 그 비싼 레코드를 있는 돈 거의 다 털어서 사 올 수 있었다. 지금도 그 L군에게 그때 진 그 빚을 다 못 갚고 살아온 셈이다.
IV.
서경식의 문장은 힘이 있다. 그 문장 속에는 슬픔과 노스탤지어가 있지만 그것을 절대로 가냘프게 헤프게 혹은 약하게 말하지 않고 아주 짧고 간단하게, 스타카토로 그리고 묵묵하게 말하여 읽는 사람의 가슴 속 깊은 마음을 아주 아프게 한다. 그 문장은 수많은 독서와 고민과 고통, 아픔을 몸소 겪은 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의 글은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울림이 있으나 현학적이지 않다.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비명이나 신음을 전달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어렵고 현학적일 수 없다. 평론은 너무 어려웠고 예술이론이나 사회이론은 ‘리론가’들끼리의 암호였다. 서경식은 전공이 없다. 그는 비전문가이고 그가 가르치는 것은 교양이다. 교양은 없고 전공만 있는 시대에, 인문학적
기초는 없고 붓질만 남은 시대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관심은 없고 나만 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시대에, 때로는 타인의 고통마저 우아하게 소비하는 시대에 서경식은 고통과 기억의 감수성이라는 신발을 신고 역사의 보고로 가는 길을 내고 있다.3)
그의 글을 우리말로 많이 번역했던 한승동 씨는 “서 교수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슬픔이 힘이 된다는 역설을 체험한다”고 한다. 슬픔은 암흑을 보는 눈을 씻어준다. 그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정의한 교양도 슬퍼할 수 있는 능력과 상통하지 않을까. ‘볼 수 있는 암흑이 짙을수록 더 깊숙이 들어 갈 수 있다(한승동 2007)’고 한다.
누이는 어머니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아직 건강하셔서 누이와 함께 한국으로 형들의 옥바라지를 다니던 무렵, 두 형 중 하나가 대구라는 지방 도시의 교외에 있었다(아마도 정치범이 많이 있었던 안동 교도소 같다). 서울에서 기차로 5,6시간 걸리는데, 그 무렵엔 차표 사는 일이 대단히 번거러웠다. 그런데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고향을 어릴 적 등져야 했던 운명을 살아온 어머니는 모국어를 할 수는 있었으되, 읽고 쓰는 일이 되지 않아 그로 인한 불편이 늘 따라 다녔다. 일본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지방 도시(대구)로, 거기서 또 교외(안동)로, 먼 길이었다. 게다가 그 여행은 감옥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가슴 아픈 여행인 것이다. 어느 추운 날, 면회를 마치고 지쳐빠진 어머니와 누이는 어둠이 깔린 대구역의 혼잡 속에서 서울행 열차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영락없는 대학생 차림의 사나이가 다가 와서 생글생글 하며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아주머닌 어딜 가시죠? 아, 서울. 일본서 오셨나요? 아유 그러세요?
어디 차표 좀 보여주실까요?”
교육을 받아 본 일이 없는 어머니는 학생이라면 무조건 좋아하셨다. 아무른 의심도 없이 어머니는 두 사람의 차표를 내밀었고 그것을 받아 쥔 사나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꼭 자전거 도둑 같았어, 하고 누이가 말한 것은 데 시까(Vittorio De Sica)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얘기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누구나 암표라도 사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아마도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기 같다). 어떻게 할 도리도 없어서 어머니와 누이는 두 시간 뒤에 있을 열차를 타기 위해 다시 긴 줄서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고 누이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를 여의고 그 몇 년후 다시 아버지도 여인 채) 이렇게 유람하며 다니는 외국 여행에서 당하는 얼마간의 고생 따위는 어머니가 겪은 회한과 슬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그 일생에 겪었던 온갖 신고를 생각하면...[<나의 서양미술순례>에서 인용(pages 50-52)]. 그의 모친이 한국 대구 기차역(아마도 그것은 동대구역일 것이고, 구정 무렵쯤 될 것 같다)에서 차표 도둑맞은 일을 쓴 이야기지만 정말 서글펐다. 그를 통해 다시 일상적으로 보는 지난날의 우리들의 풍경이다.
얼마나 긴 세월을 그대는 그렇게 웃어 왔는가
제대로 된 논밭도 없는 산악 경상북도
가난하고 시커먼 백성들에게 그대는 그렇게 미소로 건네왔다
하지만 세월의 태풍은 그대의 강건하고도 부드러웠던 몸을 앗아가고
코조차 떨어져나가 여기저기 이끼가 돋기도 하였건만(……)
시커먼 세월의 흔적, 돌로 된 그대
그대를 금이나 동 같은 것이 아닌
돌로 만든 조상의 그 지혜가
얼마나 애틋한지
나는 그대 앞에서 무심 결에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대의 그 풍요로운 입가
어째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뒤틀리지 않을까
그대의 그 부드러운 눈의 윤곽
어째서 피눈물이 흘러 넘치지 않을까(……)
1966년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재일교포 학생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처음으로 한국 경주에 와서 박물관에서 머리만 남은 석불을 보고 느낀 것을 일기장에 시로 쓴 것이라고 했다. 당시 경주거리에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파는 여성들의 모습이 난생 처음 조국 땅에 밟고 있는 그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둘러 싸였다고 했다(서경식 2007. <시대를 건너는 법>.
한겨레출판). 나는 윤동주를 아주 좋아해서 지난번에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서경식의 글에서 다시 그 윤동주를 만난다.
예전에 나(서경식)는 <소년의 눈물>이라는 작품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는 적(1995년)이 있다. 이 상은 ‘뛰어난 일본어 표현’에 주어지는 상인데, 수상 통지를 받았을 때 내 마음에 떠 오른 것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조선을 식민지 지배한 나라인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본래라면 자신의 모어(母語)였을 언어(조선어)를 사전에 박탈당하고, 예전 지배자의 언어(일본어)를 모어로 자랐다. 일본어 표현이 훌륭하다는 것은 뼛속까지 일본어가 침투해버렸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무엇을 생각하든 일본어로 생각하고, 어떤 표현이든 일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감옥’의 수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수인인 나는 어떻게든 더욱 넓은 장소에 나가 일찍이 식민지 지배나 민족분단 때문에 찢겨나간 겨레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전세계 사람들과 일본어를 매개로 삼지 않고 의사소통을 해 보고 싶었다.
— 윤동주의 <서시>는 일본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으나 그 일본어 역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원문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부분 중 ‘모든 죽어가는 것을’을 역자인 이부키 고(伊吹 鄕)는 ‘모든 살아있는 것(生きとし生けるもの)으로 번역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일본의 대표적인 조선문학 연구자인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와세다 대학 교수, 1980년대 연변대학 체류, 윤동주 묘 재발견, 서경식 교수는 1992년 여름과 2007년 2월에 걸쳐 두 번이나 윤동주 묘 다녀갔다고 함, 오무라 교수는 처음으로 윤동주 시의 원본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적어 놓은 자필 노오트 원본을 직접 확인하고서 논문을 썼다고 함)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윤동주는 ‘죽어가는 것’을 모두 사랑했다는 것이지, 무한정하게 생명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 건 아니다. 일본군국주의 때문에 많은 조선인이 죽어가고, 조선인의 언어와 이름과 민족문화의 모든 것이 죽어가는 시대였다. 윤동주에게는 그런 ‘죽어가는 것’에 대한 사랑과 함께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있었다. 그러나 이부키는 “모든 죽어가는 것(すべての死にゆくもの)이란 살아있는 것이므로,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얘기할 순 없다. ‘모든 죽어가는 것’과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동의어”라고 반론하고 “이 실존응시의 사랑의 표출은 군국주의 일본인에 대한 증오 따위와는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내(서경식) 생각에 여기에는 단지 번역어의 적절성 수준을 넘는 심각한 문제가 내포돼 있다. 오무라는 윤동주의 ‘저항’정신을 강조하고, 이부키는 보편적인 ‘실존 응시의 사랑’을 보려 한다. 이것은 윤동주의 생애나 작품에 관한 해석의 어긋남(차이)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 지배하는 현실 그 자체에 대한 감성의 어긋남이 존재한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원문을 그대로 읽으면서 굳이 ‘살아 있는 모든 것’ 따위의 번역어로 거드름 피울 이유를 찾기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이부키 고의 번역이 정역본으로 보급돼 있다.
— 일본의 많은 독자들은 (결코 모든 독자는 아니지만)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조선민족에게 해를 가한 사실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꺼림칙한 과거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의 시도 가능한 한 일본을 향한 고발로서가 아니라 매우 일반적인 ‘실존적 사랑의 표출’로 읽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부키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번역이라는 행위가 타자 간의 이해를 증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오해와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실례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일본어를 모어로 삼고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은 자신들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할 때조차 일본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다른 재일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윤동주를 이부키 역으로 읽었다. 여기에 재일 조선인이라는 존재가 안고 있는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 모어를 바꿀 수 있다면 간단하지만 그것은 태어난 뒤의 인생 자체를 몽땅 바꾸는 것과 같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모어를 교환할 수 없다면 모든 인간은 모어母語라는 감옥의 수인囚人이다.4)
2003년에 세상을 떠난 팔레스타인 영문학자이며 사상가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2000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래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점령은) 20세기와 21세기에 가장 긴 식민 지배, 군사점령입니다. 그 이전에 최장이었던 것은 1910년부터 1945년에 걸친 일본의 조선반도 점령입니다. 이스라엘 점령은 마침내 최장 기록을 달성해 가고 있습니다.”(문화와 저항). 사이드의 시야에는 조선이 들어와 있었다(디아스포라의 눈, 2012). 사이드는 아마튜어 피아니스트이며, 이집트 카이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푸르트뱅걸러의 베를린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었다고 한다. 그가 다니엘 바렌보임(그는 유태인이다)씨와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소년 교향악단(동서 교향악단)을 만들어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직접 지도 지휘하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및 가자지구에서 연주회를 개최했었고 또한 그 음반도 발매하여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서경식은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에 대해 쓴 글에서 말한다. “빈곤은 고독, 슬픔, 무명無名을 의미한다. 오케스트라는 기쁨, 의욕, 팀워크, 성공을 향한 열망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모니에 바친 하나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가슴이 확 뚫리는 그의 문장이다. ‘기악클럽은 음악 교육인 동시에 가난 때문에 거칠어지기 쉬운 아이들을 위한 정서 교육’이기도 하다. 비로 베네수엘라의 그 실험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취지를 살리는 운동이 부산소년의 집에서 시작되고 있다.
재일 조선인 가정을 살펴보면 많든 적든 공통점이 있는데, 가령 우리(서경식) 부모님처럼 자식들이 책만 읽고 있으면 기뻐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책을 사야 한다는 말을 꺼내면 부모님은 조건 없이 용돈을 주셨다. 아버지는 당신 말로 고등 소학교를 중퇴하셨다고 했고 어머니는 평생 학교 문턱에 발도 들여놓지 못해 일자무식이라 할 형편이었지만, 그런 만큼 자식들을 향한 기대가 유달리 강하셨다. 이런 나의 어머니는 50줄을 넘겨 읽기와 쓰기를 익히시고 어린 시절 내가 즐겨 읽던 ‘쑨원 전기(孫文傳) 등을 읽어내 나를 놀래주셨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가뜩이나 무(武)보다 문(文)을 숭상하는 전통적 가치관을 지닌 조선인들에게 ‘독서’나 지식이라는 말이 지닌 가치는 단연 막중한 것이었다. “아무개는 지식인이다”라는 평판은 최상의 찬사였고 동시에 ‘무식한 놈’이라는 말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최악의 모욕이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지금도 여전히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 받고 있는데 그가 뤼순(여순)감옥에서 남긴 글 중 저 유명한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라는 말이 있다. 형 집행을 기다리면서도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것 같아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는 단순히 만용을 부린 사람이 아니라 지성인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그의 모습이 조선 민중의 심금을 울렸으리라(소년의 눈물, 이목 옮김 2004). 서경식의 이 글을 읽고 새삼 느낀다. 한국인들은 정말 똑같다. 일본에 가서 살아도, 중국에서 혹은 러시아에서, 아니면 브라질, 미국에 가서 살아도 공부(독서, 연구)만 잘하면 무조건 좋아한다.
V.
2006년 4월 1일부터 연구년으로 서울에서 한국 생활로 만 2년을 보내었던 그이가 처음 서울에서 에프게니 키신의 피아노 연주회를 1장에 16만원이나 하는, 그리고 딱 두 2장만 남은 티켓을(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서점에서) 두 장 샀을 때의 에피소드이다. 그 연주회장이 ‘예술의 전당’이라는 말을 듣고, “예술의 전당이라니? 당혹스러웠다. 그건 일반명사가 아닌가. ‘빈 악우협회의 ‘큰 연주홀’은 예술의 전당이다’라거나 일본 클라식 음악의 전당은 우에노의 ‘도쿄 문화회관’이다’라고 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 (그 이름에 당황하여)…. 어쨌든 ‘예술의 전당’은 고유명사인 듯했다. 너무 직설적이지 않나. 내겐 좀 어색한 작명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국인의 기질을 표현한 것이라 걸 나중에야 조금씩 깨달았다. 하여간 (한국인은) 만사 직설적이었다.”라고 서경식은 썼다(나의 서양음악순례).
그런 그에게 나는 지금 그런 이름의 ‘예술의 전당’이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 서경식 씨는 또 한 번 더 놀랄 것이 틀림없다. 조금 무엇을 알면 잘난체하는 그 성정, 겸손하지 못한 태도, 안하무인적인 태도, 무식을 경멸, 멸시하는 그 방종적인 모습, 졸부의 어긋난 큰 소리, 호통, 뻔뻔스러움 같은 것이 이미 나 자신과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회 집단 혹은 단체 모임과 가정, 그리고 개개인의 생활에 아주 철저하게 베어 들어 있는 것을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서경식이라는 거울을 통해 그것을 우연히 보았을 뿐이다. 그분은 한국에 체재한 그 2년 동안 안동에도 들려 일직에 있는 고 권정생 선생의 생가를 보고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태백에 있는 황재형 화백의 화실도 방문했다고 한다. 안동에 살면서도 권정생 선생을 모르는 이가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
서경식은 ‘한국, 급한 성격 좀 고치세요!’라고 말한다(2007년 11월). 한국의 인상을 그는 ‘대다수 사람들이 항상 앞을 다투며 살고 있다’고 했다. 일찍이 한국에서는 위로부터의 권위주의적인 강제에 의해 경로나 봉사, 도덕이 강요됐다. 위로부터의 강제가 약해질 때 젊은이들이 자기주장을 시작
하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만약 자발적으로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의 강제에 의해서만 그게 가능하다면 스스로 권위주의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간이란 그토록 한심한 존재인가…… (일본의 우경화)같은 길을 향해 한국이라는 버스가 맹렬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경식은 용감하다. 그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속에서 큰소리로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공기에 맞선’ 사람이다. ‘공기에 맞선다’는 것은 ‘기정 사실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권한으로 도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丸山眞男; 마루야마 마사오). “포퓰리스트들은
‘공기를 읽고’, ‘시류에 편승하는데 능하다.”고 한다(디아스포라의 눈, 2012). 이 말이 내 가슴을 푹 찌른다.
나는 서경식의 글을 통해 이우환(1936년 경남 함안 출생,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1956년 도일, 일본에서 다마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 미술 및 비평 문필 활동)이라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미술가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전위 미술의 모노하(物派)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우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정보의 바다에 빠지고, 정보라는 망령한테 홀려서 맥을 쓸 수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 망령이 전세계, 어쩌면 우주론까지 뒤덮으려 하고 있어요. Virtual reality(가상현실)는 신체일 수도 없고, 손에 닿지도 않고,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컴퓨터를 통한 정보 혁명은 인류사에서 겪은 가장 커다란 혁명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철학을 논한다거나 예술, 사회를 논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때때로 회의가 듭니다. 그렇다고 그쪽으로 쏠려서 두 손 들고 죽은 시늉을 할 수도 없으니, 모기같이 조그마한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점이 어디 있다고 지적하거나 뭔가를 허우적거리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 혹은 예술가의 몫인 것 같습니다. 물론 현 상황에서 자신의 깃발을 세워 들고 세일즈맨이 되어서 그쪽으로 작품을 팔아서 더 인기가 높고 유명해지는 큰 길도 있습니다. 반대로 세잔이라든지 일부 미술가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아주 실오라기같이 연약한 것이지만, 감성의 문제를 다루며 세계에 접근하는 좁은 길도 있습니다. 아직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6)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0호>
한홍구 발문, 서경식 2012. <디아스포라의 눈>. 한겨레출판.
서경식. 2007. <시대를 건너는 법>. 한겨레출판. P.190-193.
심은록, 이우환과의 대화 2008-13년 2014년 현대문학 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