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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후 나의 모습 -진정한 여행(글/임민식_안동대 생명과학과 2학년)

진정한 여행(a true travel)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가끔 짧은 문장 하나가 몇 권의 책보다 더 나를 흔들 때가 있다.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이라는 시도 그러하다. 대학생의 신분에서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시를 되뇌이곤 했다. 지금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며.

가끔 몇몇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공유하다보면 정작 본인이 제일 힘들고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들 한다. 그럴 때면 난 입가에 미소를 짓곤 한다. 과거 철없이 누군가에게 나도 내가 제일 힘들다고 불평했던 부끄러운 나를 떠올리면서.

예전의 나에게 취업, 학교 성적, 장학금, 연애와 같은 것들은 정말 크나큰 시련이었고 중요한 일이었다.(물론 지금도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에서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일을 도와달라거나 집안일을 부탁할 때면 무척 대단한 역사를 쓰고 있는 대학생으로 변신해, 큰 소리로 아주 단호히 거절했다. 참 부끄러운 모습을 예전 모습이었다.

교복을 정리할 때쯤 그러니까 막 성인이 되어서야, 나는 부모님 세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삶의 그늘진 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생활에 대한 고민 또한 누군가에게는 겪어보고 싶은 사치스런 시련일지도 모른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캠퍼스의 낭만을 겪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절이 아니었다. 대학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내일 아니 다음끼니의 식사를 걱정하고 몸 하나 뉘일 곳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죄송할 불평이다.

언제나 앞만 보고 가다 보면 몰랐을 많은 사실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 아마 현재 대부분의 대학생들의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 나는 나짐 히크메트와 같이 진정한 여행이 필요함을 느낀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편집실에서 26년 후의 내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26년 후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기나긴 시간 속에 웃는 일도 많겠지만 더 크나큰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왕좌왕 갈 곳 없는 나의 모습도 있을 수 있으며 직장을 두어 번 옮기는 안타까운 나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26년의 세월을 버텨온 사랑방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 긴 시간동안 안동의 크고 작은 역사를 재조명하고 안동시민의 훈훈한 삶을 공유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사랑으로 갚아온 그 삶의 시간.... 나의 26년 후의 모습도 이와 같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여행의 작은 답이다.

그저 소소한 힘으로써 주위사람들에게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 언제든지 도울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싶다. 사고치는 아들 뒷수습하기 바쁜 부모님께, 매번 나를 바로 잡아주신 주변 친척들께,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는 지인들에게 나도 이제는 돌려주기를 희망한다. 내 안에 베풀 수 있는 정과 지혜가 가득 차 있기를 희망한다, 희망한다. 우직하게 자리해 고향을 지켜낸 <향토문화의 사랑방>의 모습이 내 26년 후의 모습이기를 말이다.

26년 후에 어쩌면 나는 한 딸아이의 아버지로, 부모님을 이해하고 섬기는 중년으로, 넥타이를 매고 훈계하는 따분한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여러 문제들 속에 허덕이며 지칠 때도 있지만 그때에도 나는 이 시를 떠올릴 것이다.

비록 내 인생의 여행이 남들에게는 우리 아버지들의 지루하게 무한 반복되는 옛날의 군대이야기나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인기절정의 황금기 같더라도 나는 상관없을 것 같다. 그저 나도 집안 일 도와주지 않는 나의 자녀에게 똑같이 말할 수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것이 특별한 것임을 깨닫는 인생이기를 바란다. 26년 후에도, 내 인생의 어느 마지막의 날에도. -이 글을 쓰는데 크나큰 도움을 주신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이춘자 할머니와 그 6남매(위영, 차영-제일 이쁜 울엄마, 태길, 태성, 갑영, 태주) 그리고 그들의 가족분들께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앞으로도 많은 후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1호>

임민식 군은 군 복무 후 안동대 생명과학과 2학년에 복학한 학생이다. 안동지가 본인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놀라워하며 즐겁게 글쓰기에 임해주었다. 새해 들어서는 집안의 말썽꾸러기에서 든든한 아들이자 외손자, 조카가 되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