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6년 회고 -나의 보금자리, 나의 집(글/김연숙_우물가식당 주인장)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그중에서 우리에게 집은 더 특별하다. 어릴 적 시골집은 초가삼간에 아래채가 있고 뒤뜰에는 볏짚도 놓여있고 통시도 있었다. 좁은 방에 옹기종기 대식구가 모여서 살며 비가 오는 날이면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처마 밑에 구멍을 파고 겨울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서 따먹기도 하고 총싸움도 했던 기억이 난다.
초가집에서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나고 가끔씩 뱀이 나타나서 놀라기도 하고 시렁위에 달아놓은 메주를 떼어먹기도 하던 어린 시절, 대문이 달린 기와집을 보면 대궐 같다거나 고래 등 같다고 부러워하곤 했었다.
지금은 집이 부의 축적이기도 하고 두세 사람이 살아도 수십 평의 공간이 필요하지만 아침만 먹으면 밖에서 점심, 저녁은 식당이라는 남의 집에서 해결하기에 복작거리던 시골집과는 달리 집도 좀 외롭게 살아간다.
결혼을 하고 셋방을 전전 하다가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큰방 둘 작은방 하나 마루와 부엌이 딸린 집으로 이마에 땀방울을 맺으며 이사를 가던 게 딱 26년 전이다. 안막동이라 시내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졌지만 그 기쁨을 어디에 비교하며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행복이었다.
이사를 하고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다. 남의 집 살았으면 못 누렸을 호사였다. 쫑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어찌나 애교를 떨고 재롱을 부리는지 아이들과 함께 잘 지내주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욕심이 생겼는지 새끼를 낳아서 팔겠다고 도사 반종 한 쌍을 사왔다. 얼마나 먹어대는지 장난이 아니었다. 먹는 만큼 무럭무럭 크기는 했지만 날마다 주어야할 밥이 문제였다. 시장 생선가게에서 잘려나간 생선대가리를 한보따리씩 얻어 와서 채소와 삶아 죽을 끓였다. 드디어 새끼를 배고 강아지가 태어나던 날, 온 가족이 신기하고 귀여워서 눈을 감고 꼬물거리는 새끼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만 미련한 에미가 한 마리를 깔고 앉아서 죽게 하였다. 새끼를 꺼내 땅에 묻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울었다. 나머지 새끼들은 두어 달쯤 지나자 감당이 안 되었다. 개장사 아저씨를 불러 파는 날, 왜 그렇게 안됐던지 한참을 또 울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학교에 간 뒤에 팔았더니 집에 들어서면서 강아지를 찾는 걸 용돈을 주고 달랬다. 아이들이니 금세 잊어버리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지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아픔이 자라고 있었다. 에미를 볼 때마다 미안했다.
그해 시어머니가 하늘로 가셨다. 중환자실에서 3개월, 하루에도 몇 사람씩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담대해졌나, 금방 죽은 사람을 옮긴 그 침대에서도 잠이 들곤 했었다. 처음에는 밥도 못 먹고 잠도 설쳤지만 시간이 흐르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처럼 병원에서 오늘내일, 희망 없는 일에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이었다.
이사 간 집에 눈에 뜨이는 꽃이란 꽃은 다 옮겨 심었다. 이른 봄 매화부터 늦가을 국화까지 한가득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그 품에 취해서 지냈다. 시내에서 세탁소를 하던 시절이었다.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서 두 아이들을 작은 오토바이에 태우고 다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옷 사이로 물이 스며들고 겨울에는 에이는 듯 추위가 감싸도 웃으면서 살았다.
누구나 첫 것에 대한 애착은 강하다. 첫사랑, 첫아기, 첫키스,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내 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밤이면 나뭇가지 사이에 뜬 달과 반짝이는 별, 가끔씩 날아드는 반딧불이를 보면서 잠 못 들고 서성이던 밤...지금도 시골집의 동경은 있지만 살러 갈 용기는 없다. 26년 전 처음 장만했던 그 집의 추억은 여전하지만 몸도 추억도 같이 늙어가나 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2호>
김연숙 님은 안동주부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내방가사 창작으로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안동의 문화예술인들이 자주 발걸음을 하는 우물가식당을 운영 중이다. 그간 주인 마음대로 나오는 메뉴를 내오곤 했는데 현재는 식이요법 전문 식당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