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면 서부리 이발사 강석수(글/이미홍_객원기자)

서부리의 유일한 이발관
“어머니, 이발관에 갔더니 어릴 때 머리 깎아주던 석수 아저씨가 아직도 이발을 하고 있더라고요.”
고향 마을 서부리에 전원주택을 짓고 정착한 수필가 지유숙 선생에게 어느 날 집에 들른 대학 교수 아들이 한 말이다.
“엄마, 엄마, 석수 아저씨 없으면 어쩔 뻔 했어? 석수 아저씨는 우리한테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치?”
집 지키는 커다란 개가 어느 날 줄이 풀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문득 석수씨가 생각나 전화했더니 금방 달려와 개줄을 묶어줬다는 이야기며 전등도 갈아주고 힘든 일 있을까봐 가끔 들여다보고 안부도 챙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 사는 딸이 하는 말이다. 지유숙 선생의 작고한 남편 이동욱 선생님의 예안초등학교 제자였던 석수씨는 지금은 서울대 교수로 있는 이효원 교수가 서너 살 어릴 때부터 선생님 집에 가서 같이 놀아주곤 했다. 그러다가 커서는 이발사로 있으면서 아버지 따라 가끔 들르는 효원씨 머리를 깎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혼자 고향에 정착한 지유숙 선생을 챙기는 건 석수씨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고 기꺼이 한 일이었다는데, 지유숙 선생님 안부 끝에 석수씨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 인연이 돌고 돌아 사랑방 이웃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무더운 여름날 서부리로 이발관을 찾아나서야 했다.

숨이 막히도록 무덥던 날들이 며칠간 지속되다가 더위가 조금 수그러든 날, 수그러들었다곤 해도 여전히 따가운 여름 한낮의 햇볕을 친구 삼아 서부리로 갔다. 청량산을 가느라, 국학진흥원을 가느
라 지나쳐 가곤 했던 마을 서부리, 그곳에 들어섰는가 했는데 어느새 이발관 앞이다. 이발관 앞에서 서부리에 하나 밖에 없는 이발관의 공식 이발사 강석수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강석수라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문을 열고 이발사를 따라 들어갔고, 그곳에서 우리는 이발사 석수씨와 이발관의 오래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청량리행 밤기차, 페인트공이 되었지
석수씨 나이 스무 살 무렵에 처음 가위를 잡았다. 물이 들기 전 아랫마을에서였다. 2남2녀의 장남이었던 석수씨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다시피 했는데 열일곱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형편이 어렵다 보니 자연 머리가 굵으면서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을 찾다가 아는 어른이 하는 동네 이발관에 취직을 한 거였다. 그런데 피 끓는 청춘이었던 스물의 석수씨에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쓸고 손님들 머리 감기고 하는 일은 재미가 없었고, 나고 자란 서부리는 너무 작고 답답했다. 대처로 나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새벽 석수씨는 안동역으로 가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집안의 아는 이가 부산에 있었는데 거기로 가서 공장에 취직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대처살이는 쉽지 않았고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은 작았다. 그래서 고향으로 왔다가 이번에는 친구들과 같이 청량리행 기차를 탔다.

“그때 부산에 갈 때는 거기 아는 사람이 있어서 갔고, 서울은 동네 친구 셋이서 같이 갔지요. 서울 올라가서 하나는 신촌에서 양복장사 하고, 하나는 중앙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나는 처음에 페인트 칠 하는 일을 했어요. 그때는 페인트 공이 벌이가 좋았거든.”

그 말을 듣는데 문득 안성기와 박중훈이 나왔던 80년대 영화 ‘칠수와 만수’가 생각난다. 농촌에서 상경한 만수와 동두천 기지촌 출신임을 숨기고 미대생이었던 척하던 칠수가 페인트 통을 들고 옥상 간판에 페인트를 칠하면서 티격태격 하던 장면들, 알고 보면 석수씨와 친구들의 이야기도 그 시대 그 모습들 속에 같이 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이발관으로 갔다. 페인트 일이 힘들기도 했고 배운 가락이라고 이왕이면 서울에서 이발 기술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기도 했다. 실제로 그때 배운 이발 기술이 나중에 이발사로 살아오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발 보조를 하면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다 보니 힘도 들고 벌이도 시원찮았다. 그래서 빨리 돈을 벌려고 채소장사를 하던 고종 사촌 형을 따라 다니며 성남시장에서 한 2년 채소장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72년도에 영장이 나왔어요. 군에 가려고 고향으로 와서 이발관에서 일을 하다가 군대를 갔어요. 그리고는 75년도에 제대를 하고 와서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발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지요.”

75년도엔 제대를 하고 지금의 자리로 이발관을 옮기고, 그리고 그 다음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예안 서부리에서의 석수씨의 이발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수몰되고 농사 지어먹고 살던 마을 사람들이 농사 일이 많이 없으니까 일부는 타지로 떠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수몰민을 상대로 내주는 조업허가를 내서 다들 안동댐의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았어요. 저도 한창 때는 이발도 하고 고기도 잡았어요. 정치망 허가를 받아서 이발을 하면서 시간 나면 고기를 잡아서 작업을 해서 업자들에게 넘기고 했어요. 초창기에만 해도 전국적으로 매운탕 식당이 많았는데 안동댐 고기가 질 좋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상인들이 왔는데 주로 대구 쪽 식당 업자들과 1년 계약을 해서 일을 했어요. 고기 잡을 때 되면 그 사람들이 와서 여기서 방 잡아놓고 자면서 동네 사람들이 고기 잡아서 작업 다 하면 싣고 가고 그랬지요.”


6.25때 이불로 방문 막고 저를 낳았죠 

예안면 서부리 강석수씨의 예안 이발관에는 안동댐에 수몰되기 전 옛 예안면 일대를 찍은 사진이 크게 확대해서 걸려 있다. 건축업을 하는 초등동창 친구가 구해서 보내준 것을 확대한 것이다. 거기에는 어릴 적 뛰놀던 고향 동네의 추억부터 6.25의 아픈 역사와 수몰의 역사가 함께 들어있다. 석수씨는 지금도 가끔 그 사진을 들여다보노라면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옛날 마을에서의 기억들이 생생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저 한 장의 사진 속에 마을 사람들 수만큼의 기억들과 이야기들이 들어있을 것만 같아 빛바랜 흑백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석수씨는 6.25가 일어나던 해에 태어났다. 그의 나이 65세는 그러므로 곧 6.25 발발 65주년을 의미한다. 

“제가 50년생인데 6.25가 터지고 그 해 11월에 여기 이 집에서 태어났어요. 제가 2남2녀 장남인데, 그때 어머니가 저를 뱃속에 가지고 있다 보니까 먼 길 나서기가 힘들어 식구들이 피난도 못 가고 집에 있었는데,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고 집안 곳곳 창문이고 문이고 이불로 두 겹 세 겹 막고 생활하면서 저를 낳았다고 해요.” 

당시 예안면 도산면 일대는 북한군들이 거치고 지나가면서 인근 마을들을 한바탕 휩쓸고 가는 바람에 그때 피난을 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이나 인근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저기 사진에도 보이듯이 지금 마을 이 자리에서 내려다보이는 물 속, 사진 속 백사장이 있는 저 자리가 섬처럼 되어 있어서 우리도 그렇고 주민들이 땅콩 농사를 지어 먹었는데 비가 와서 물이 차면 추수를 못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전쟁통에 그 백사장에 마을 주민들을 세워놓고 군인들이 총살을 했다고 해요. 북한군들은 북한군들대로 지주라고 반동이라고 총살하고, 나중에는 군인들이 북한군들에게 협조를 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총살을 했다고 그래 들었어요.”



 


이발사 네 명 두고 점심도 거르던 호시절

“제가 이 동네서 이발관 한 지가 38년인데 한 20년 정도는 정말 잘 나갔어요. 처음에는 동네에 이발관이 다 합해 네 군데가 있었어요. 7~80년대만 해도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도 있었고 우체국도 있고 학생들도 많고 예안면 소재지다 보니까 인근 도산, 녹전, 온혜 사람들이 장날이면 다 이 동네로 왔으니까요. 제가 이발사를 네 명이나 두고 일을 했으니까요. 장날이면 의자가 넷에 이발사 네 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칠, 팔십 명을 이발했어요. 직원들은 돌아가며 점심을 먹어도 저는 점심도 거르는 일이 많았어요. 그때는 서로 경쟁이 돼서 요금을 조금 할인해서 손님들을 끄는 데도 있고,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의 유행 스타일을 그때그때 빨리 배워서 손님들을 끌기도 하고, 서비스로 승부하는 데도 있고 하죠. 하지만 결국은 이발 기술로 살아남는 거죠. 그 당시 요금이 6-700원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시내와 요금을 같이 받아요. 지금도 저는 이발료가 만원인데 이 인근에서는 제가 제일 비싸게 받아요. 그런데 저는 이발 기술도 저만의 노하우가 있고 자신이 있으니까 시내랑 같은 요금을 받아요. 오래 전부터 저한테 이발을 하러 오시는 단골 분들이 많은데 손님들도 저를 믿고 일부러 먼 데서도 찾아주시고요. 사람이 많을 때는 이발관이 네 군데가 있어도 다 잘 됐어요. 그런데 댐 생기고 농토가 수몰되고 먹고 살 일거리가 자연 줄어들게 되니까 사람들이 자연스레 떠나고 이발관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우체국도, 세 군데나 되던 다방도 다 떠났지요.” 



이발사들도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났는데 그 밑에 있다가 다들 독립을 해 나간 그 중 한 사람이 지금 온혜에서 이발관을 하고 있는 이다. 다들 떠났지만 그는 남았고, 손님이 많든 적든 그는 여기가 우리 집이고 내가 살 내 고향 터전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도 이발관 문을 닫지 않았다. 

이 이발관 하나로 그는 네 딸을 대학 교육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이발관 문을 한 번도 닫지 않았던 것, 언제나 이발관 문을 열어두고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이라도 언제든 연락만 하면 이발을 해 주는 이발사가 있는 곳,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석수씨의 예안이발관이 지금도 건재한 비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자식들 앞 부끄러운 일 하지말자

80년대 후반 당시 이발관에 면도사, 마사지사를 두고 영업을 하는 일종의 변태 영업이 유행했는데, 87년도부터 89년도 무렵 되면서 그 정도가 더 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 이발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발관이 아이들 데리고 이발해 주러 가기에 어쩐지 꺼려지는 장소가 되다 보니까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용실을 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미용실이 대세가 되고 이발관은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쇠퇴하다 보니까 자연 이발 기술도 미용 기술을 따라잡기 힘들게 되고요. 이발사들이 한때 잘못 생각한 대가가 요즘처럼 이발업계의 쇠퇴를 가져오는 데 한몫을 했다고 봐야지요. 친구가 장에 가면 거름지고 따라간다고 사실 저도 그때 젊다 보니 이곳 이발관은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안동 시내에 이발관을 새로 크게 내고 영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전국적으로 변칙 영업을 하는 이발관에 대한 여론이 안 좋다 보니까 노태우 정부에서 그런 걸 뿌리 뽑기 위해 대대적인 합동단속이 시작됐어요. 그때 투자한 돈을 날리고 가게를 정리하면서 깨달았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애들 앞에 적어도 부끄럽게 돈을 벌어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돈을 벌어도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았어요. 마음 편하게 떳떳하게 살아야겠다 결심했죠. 요즘 교회 다니면서 종교 생활을 성실하게 하면서 다시 되돌아보면 그 시절이 스스로 부끄럽죠. 그래서 부족하지만 봉사하면서 살려고 많이 노력도 하고요.”



그렇게 다시 컴백 홈을 한 이래로 분수에 넘치는 욕심은 부리지 말고 그저 열심히 살자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늘 같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는 변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는 10년 조금 넘었는데 그 결정적 계기는 둘째 딸을 결혼시키게 됐는데 사돈될 이가 목사님이라 자연 교회와의 인연이 깊어지게 된 것이었다. 누구 말마따나 군대에 있을 때 초코파이 때문에 나가기 시작했던 교회와의 인연은 지금은 목회자가 되어 봉화에서 목사로 재직 중인, 고향 초등학교 친구를 그때 군대에서 우연히 만난 덕에 간신히 이어지다가 절에 다니시며 불공을 드리던 어머니가 싫어하시는데다가 사회에 나와 한창 생업에 몰두하면서 자연 소원해졌는데, 석수씨와 하나님과의 인연은 원래 그렇게 예비 되어 있었던 건지 둘째 사돈과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지니, 이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온 식구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에서 교회 일도 마을 일도 제일 열심히 하는 안수 집사님이다. 



 



전구갈기부터 보일러수리까지, 마을의 맥가이버



“봉사로 말하자면 우리교회에서 사랑봉사대라고 지역민들을 위해 장수대학을 열어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어르신을 위해 행사도 하고, 반찬 봉사도 하고, 저는 그중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한 일이나 힘든 일은 없는지 살피는 게 담당이에요. 아무래도 동네에 혼자 사시거나 고령인 노인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전구 하나가 나가도 쉽게 갈아 끼우지 못하고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같은 전기 제품이 고장 나도 방법을 몰라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일이 있으면 이발관에 일이 없을 때 제가 가서 전구도 갈아드리고 문도 고치고 사소한 고장은 직접 고쳐주기도 하고 큰 고장은 AS기사를 불러주기도 하고 그래요. 다들 오래된 이웃들이고 대부분 친구 부모님들이다 보니까 전화 오면 가서 이런저런 하소연도 듣고 불편한 곳도 살피고 그렇게 힘닿는 대로 도와드리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요. 제가 항상 여기 이발관에 있다 보니까 다른 분들보다 저한테 부탁하는 마을 어르신들이 또 많고요. 친구 아들이고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제가 조금 더 편하신가 봐요.” 시작은 어땠는지 몰라도 이제는 굳이 교회에서 하는 사랑봉사대 사업이 아니더라도 석수씨의 마음은 어려운 동네 어른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간혹 추운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연세 드신 분들이 몇 며칠 냉방에서 지내고 계시는 거 가서 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 그럴 때 우리가 가서 보일러를 고쳐 드리면 멀리 있는 자식보다 낫다며 정말 고마워하세요. 요즘은 자식들이 다 멀리 객지에 나가 있다 보니까 아프거나 외롭고 힘들 때 이웃이 한 번씩 들여다보는 그런 것들이 정말 필요하구나 하는 걸 저도 사랑봉사대를 하면서 많이 깨닫죠. 우리도 조금 있으면 그분들만큼 나이를 먹잖아요. 십년 후에는 나도 칠십 다섯인데 저게 십년 후의 우리 모습이구나 싶어 마음이 더 애잔해요. 그래서 제가 요즘 우리 집사람한테도 더 잘하려고 해요. 늙으면 우리 두 사람 밖에 없잖아요. 서로 건강하게 친구 삼아 의지하며 살아가야지요.”

때로 남들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별 거 아니라고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삶의 보석 같은 순간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타인을 위해 무심히 건넨 한 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

은 작은 미소 속에 그런 특별한 순간들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발사 석수씨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 건 아닐까? 아무튼 사랑봉사대를 하면서 하루하루 자꾸만 더 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석수씨다.

 


76년 12월 27일 새벽 4시에 올린 결혼식

두 살 아래인 지금의 아내 엄영자씨와 처음 만난 게 스무 살 무렵이었다고 한다. 고종사촌 여동생의 친구였는데 예천이 고향인 영자씨가 친구네 집에 놀러오고 하다 보니까 서로 좋아지내게 되었는데, 요즘처럼 대놓고 연애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가 군대에 있을 때는 위문편지 겸 연애편지를 주고받고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석수씨와 영자씨는 76년 12월 27일 한참 추운 겨울, 새벽 네 시에 결혼식을 했다. 어른들이 날 받는 곳에 가서 시를 받은 게 그 시간이었다. 새벽 네 시에 집 마당에서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할 때 전통혼례를 올렸다고 한다. 

“양가 손님들을 모시고 그 새벽에 식을 하는데 그때는 어른이 그래야 한다고 하니까 당연히 그리해야 되는 줄 알았지요. 온 몸이 꽁꽁 얼다시피 하며 혼례를 올렸지요. 당시 음식을 했는데 음식이 다 얼어서 별빛에 반짝반짝 거렸어요. 지금 이발관 바로 앞 복복식당 하는 친구가 함지기를 했었는데 너무 추우니까 지고 나와서는 함이고 뭐고 실랑이고 장난이고 얼른 벗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 한겨울 새벽에 신랑신부가 사모관대에 족두리에 홍삼치마저고리 입고 식을 올렸는데, 추워서 혼배주가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 지 정신없는 와중에 그래도 활동사진은 기념으로 빠뜨리지 않고 박아놓은 게 용하다. 그렇게 잊지 못할 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어 딸 넷을 낳고 살았다. 



“우리 어머니가 옛날 분이다 보니까 생전에 손자 타령을 많이 하셔서 사실 우리 집사람이 맘고생을 많이 했어요. 중간에서 저도 애를 먹었고요. 어머니 앞에 가서는 어머니 말 들어드리고 둘만 있을 때는 또 집사람 달래주고 그렇게 살았지요 뭐. 사실 어머니 등쌀에 아들 낳으려고 하다 보니까 넷이나 낳게 된 것도 있어요. 그런데 격세지감이라고 우리 딸들은 다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 사위들은 또 딸이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부인이 아들 못 낳는 죄로 어머니 시집살이를 적지 않게 했다는 말이다. 그 어머니 생전에 제삿밥 차려줄 손주 타령에 손녀들 섭섭하게 한 적도 많았는데, 그래도 딸들은 한창 멋 부리고 싶은 여고 때도 졸업할 때까지 이발사인 아버지에게 머리를 맡길 만큼 다들 착하고 참하게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그 딸들 덕에 매년 가족 여행도 다니고 아들들 하고 다르게 부부 결혼기념일부터 소소한 것까지 엄마 아부지 챙겨주고 하니 너무 좋다는 석수씨다.

한 가지, 밑으로 동생 셋은 다들 결혼을 해서 자기 가정들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대구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맏이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 거 같아, 정작 본인은 너무 씩씩하게 잘 살고 있지만 그래도 늘 안쓰럽고 마음이 쓰이는 아버지 마음이다.



 


동네 사랑방, 예안이발관

석수씨네 이발관에는 단골손님들 말고도 바둑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드나든다. 석수씨가 안동시장배 생활체육 바둑대회에 출전해 3등을 한 전적도 있을 만치 바둑 실력이 만만찮은 데다 예안 바둑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보니 바둑을 배우려는 이들이나 대국 한 판 하려고 오는 이들도 많다. 한창 바둑에 빠져 있을 때는 안동 기원에 바둑 두러 시도 때도 없이 진출하고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가는 데도 대국을 하느라 모르고 있다가 손님을 놓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자고로 어느 동네를 가든 이발관이나 미용실은 동네사랑방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다 주인장이 바둑광에다가 마당발인 예안토박이 석수씨네 이발관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선성발전추진위원회라고 동네 발전을 위한 모임이 있는데 석수씨가 또 그 모임 부회장이다. 추진위원회 사무실이 있지만 석수씨네 이발관에 모여 회의 겸 마을 일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 한 도막, 몇 개나 되던 주점과 우체국도 나가고 무엇보다 세 개나 되던 다방이 마지막 하나까지 문을 닫고 다 없어져 동네 남정네들이 갈 데가 없어졌다는 안타까운 현실, 아마도 마을 아낙네들은 다행이라고 속으로 안도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추진위원회 사무실 자리가 호수다방 자리라는 것이 더 재미있는 지점이다. 

앞으로 마을복원사업인 스토리빌리지 프로젝트나 선성현복원사업 같은 서부리 마을가꾸기 사업들이 성과를 거두고 마을에 사람들이 늘어나면 인근에 하나밖에 없는 석수씨의 이발관도 손님으로 북적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여기 지금 세대 수가 210세대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집집마다 많아봐야 한두 명씩만 살고 있어요. 그때 지어진 집들은 그대로인데 사람들만 자꾸 줄어 지금도 더러 빈 집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 서부리를 문화예술마을로 되살리는 사업이 정부 지원을 받아 정식으로 시작이 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조금씩 다시 마을로 들어오고 문의도 많아지는 게 뭔가 희망이 보이기도 하는 거 같아 기대가 커요 주민들 모두.”



그리고 매일 매출을 장부에 기록하는 석수씨에 따르면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매출이 전보다는 확실히 매달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찌됐든 이제 마을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체가 선정이 돼서 좀 있으면 사람들이 마을에 와서 묵으면서 일을 할 예정이라니 석수씨는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 마음도 괜시리 바빠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원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일요일에는 예배 보고 일을 안 하잖아요. 그런데 시골에서는 그게 잘 안 돼요. 특히 시골 사람들은 바빠서 장날이나 일요일에 볼일이 많거든요. 결혼식이라던가 누구 환갑이라던가 시골에서 일요일에 급하게 어디 가야 되면 이발하러 오잖아요. 일요일에 예배보다 보면 전화가 바리바리 와요. 그러면 문자로 언제까지 기다려라 하고는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 내서 와서 이발해주고 그래요.”

때로는 새벽 첫차로 어디 가야 된다 하면 새벽 다섯 시에도 문 열고 이발해줄 줄 알아야 하는 게 시골 이발관이라고 한다. 농사가 바쁜 철에는 약속을 미리 하고 밤 9시 넘은 시각에 와서 이발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따로 문 열고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한다. 지금은 다들 그가 일요일 예배 보는 것도 알고, 이발관 싸인볼이 돌아가고 석수씨 차가 이발관 앞에 세워져 있지 않으면 다른 볼 일 먼저 보고 다시 오기도 한다. 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으면 근처 가까운 곳에 있는 거니까 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어디 있냐고 전화가 온다. 싸인볼이 꺼져 있으면 석수씨가 멀리 출타했다는 이야기라 훗날로 예약을 해야 한다. 한 자리서 오래한 터줏대감에다가 다들 잘 아는 시골이발관 단골들이다 보니 가능한 이야기다.

 


귀향하고 싶다는 친구들, 언제든 고향으로 온나

“이발관은 그런 단골손님들 덕분에 먹고 살아요. 손님들이 대전서도 오시고, 서울서도 오시고, 영양에서도 오시고 그래요. 봉화서 목회하는 친구도 꼭 내한테로 오고. 여자들도 그렇지만 남자들도 이발을 했는데 커트라든가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면 한 달 내내 찝찝한 게 걸리는 법이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오랫동안 저한테 이발을 하시는 분들은 시내에서도 일부러 오기도 하고 타지에서도 안동에 들르실 일이 있으면 일부러 들러 이발 새로 하고 가시기도 하고 그러죠. 손님도 저도 그렇게 몇 십 년을 보는 분들도 많아요. 간혹 오랫동안 안 보이는 분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되고 궁금하고요. 실제로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멀리 떠난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손님들이 계속 찾아주는 한 저는 이 자리에서 이발을 하고 있겠지요.”  

요즘 타지에 나가 있는 친구들한테서 나도 고향 가서 살고 싶다고 심심찮게 전화가 온다. 그러면 니들 올 때까지 내가 이발관에서 고향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 언제든지 내려오라 한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마을 자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석수씨네 이발관이 있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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