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인 읽기(글/이순구_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I.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아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째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 볼 별 하나 없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 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마종기 詩 ‘파타고니아의 양’ (마종기, 하늘의 맨살, 2010, 문학과지성사;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2009, 현대문학)
이 시가 내 가슴에 맹렬하게 파고들어 왔다. 그리고 나가지 않는다. 마종기(1939- )시인의 시 중에서 이 시는 예외적으로 참혹하고 잔인한 시인 것 같다. 적자생존의 가장 끔찍하고 적나라한 바로 그 현장, 엄청나게 척박한 그 곳,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언제가 TV 영상앨범 ‘산’에서 본 적은 있다. 지구에서 가장 가파른 생존의 땅이 바로 그곳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남극 극지 연구소에 극한 생활 혹은 생존의 생물 연구 혹은 극지 지질 탐사 등을 위해 출장 가는 연구원들은 꼭 남미 칠레를 거쳐서 간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을 사이에 두고 안데스 산맥의 남쪽 끝자락 고원지대가 바로 파타고니아다. 높은 산들이 빙하로 침식되어 그 날카로운 이빨을 한없이 깊게 드러낸, 아주 차가운 바람과 척박하고 빈약한 식생植生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산야山野. 국화과 식물의 원산지다.
“우리는 지프차를 타고 더 남진하여 광활한 아르헨티나 쪽의 파타고니아에 푹 들어섰다. 버려진 것 같은 들판은 하루 종일을 달려도 끝이 없었고, 계속 흐리기만 한 하늘 역시 점점 더 넓어져서 이제까지 이토록 넓고 춥고 어둡고 절망적인 하늘을 본 적 없었던 것처럼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 공포심을 더 옥조이는 것은 땅 위의 짐승을 노리면서 흐린 하늘을 쉼 없이 날고 있는 독수리보다 무섭고 큰 콘도르 떼였다. 우리는 허름한 목장에서 묵었는데, 끼니때마다 콘도르에게 눈알을 빼앗겨 죽은 양고기를 장작불에 구워 먹어야 했다. 나는 그 양고기를 계속 먹어서인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온 몸이 자꾸 아파왔다. 그래서 나는 여행 중 어느 작은 성당에서 읽은 글을 주문처럼 외웠다. 당신이 비록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라고 하는 말, 나는 왠지 평생보다 더 긴 세월을 외로워했을 파타고니아의 그 춥고 흐린 하늘을 계속 올려다보면서 며칠을 보냈다.” (마종기 산문집, 2013, 우리 얼마나 함께, 달, pp99-100)
올 봄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일어난, 온 나라 국민을 비통 모드로 몰고 간 세월호世越號 참사도 마종기 시인의 또 다른 파타고니아가 된다. 그런 정서는 그 분이 아무리 외국에 거주하고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경험으로 시를 썼다고 하지만 한국인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고 우리 정서가 그만큼이나 처참함에 익숙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슬픔을 이기는 것은 집단의 힘, 정치의 힘이 아니라 시
의 힘으로 극복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가 바로 마음의 상처나 아픔을 내밀화한 바로 그것이다. “외로움은 시인이 꼭 먹어야 하는 약이고 아무리 쓰고 떫어도 먹어야만 사는 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예 팔자라고 생각하고 외로움과 차라리 친해져서 형제같이 되는 게 좋다고요. 그리고 외로움의 아픔과 눈물은 자주 시인이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종기-루시드폴 서간문, 2014,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문학동네)
”. 그런 외로움 없는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시인되기를 내 자식 손자에게까지 바랜다. 그런 바램 자체가 아주 잔혹한 것임을 여태 왜 나는 (어리석게도) 몰랐던가. “사는 게 늘 바빠서, 안 보이는 것은커녕, 있는 것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없을 만큼 바쁜 사람일수록 결국 자기가 원치 않는 황폐한 삶을 살게 된다. 바쁘기 때문에 공중도덕에 둔감해지고,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우선시하기에, 이웃이나 사회의 공동선에 대한 개념이 무뎌져 버린다. 그런 사회는 결국 피폐해질 것이다.” (마종기 산문집, 앞의 책, 2013, p123)
시인의 무슨 예감처럼 세월호 참사현장의 모습 그 자체가 우리 삶의 피폐한 모습이며 또 다른 파타고니아 풍경이다. 한국 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 ‘르상티망’(원한)이 깊이 퍼져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강상중. 2012. 살아야 하는 이유. 사계절. 한국어판 서문). 중국, 일본과 한국, 3개국의 경영심리학 비교 연구 중, 시기와 질투심이 특별하게 강한 나라는 단연코 한국이고, 그로부터 자초한 스트레스와 불평, 불만 때문에 자살률도 세 나라 중 으뜸이라고 한다. (마종기-루시드폴, 앞의 책, 2014, p97)
“세상살이가 갈수록 외롭고 힘들어져서 갈팡질팡 거릴 때, 나는 그나마 세상에서 내가 기댈 수 있고 나를 잡아주는 것은 볼품없는 내 시들인 것을 절절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존재의 의미로 시 쓰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것만이 나를 내 모국에 연결시켜주는 구명 줄이고 탯줄이다.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 2009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에서)”
외롭고 힘든 사람이 시를 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서나 집에서 나는 늘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서 나도 알게 모르게 여태껏 시를 일기장에 썼던 것 같다. 윤동주도 그랬고 또 내가 아는 고등학교 선배님도 그랬다. 그 일기장에 쓴 소중한 시들이 자기 최면을 걸어서 그 문제적 인간 당사자도 힐링할 뿐만 아니라 아무 상관없는 남(타인)까지도 공명시키는 것 같다. 마종기 시인의 시들은 이미 영어로 미국에서 출판되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독일어와 불어(2014)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고 한다.
II.
시인은 무척 건강해 보였다. 벌써 5년이 금방 자나가 버렸다. 딸과 함께 그 분의 자작시 해설 에세이 책(당신을 부르고 살았다, 2010) 사인회(2010년 5월 26일 수요일, 14:00, 서울 북촌 한옥마을 ‘두루 카페’)에 우연히 가게 되어 처음 내가 받은 인상은 의외로 나이에 비해 더 젊으시고 강건한 모습과,나지막하고 젠틀한서울말 목소리였다. 시인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했다. 나하고 똑 같다. 그분은쥴리니 씨가지휘하는 LA 필하모닉 연주반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했다. 나도 그 연주를 FM방송으로 무지하게 많이 들었었다. 요즘 나는 마종기 시인 이야기 원고를 쓰려고 생각하면서, 늘 브람스 교향곡 1번만을 듣고 있다. 마 시인은 내게 일종의 모범답안이다. 시인도 과학자나 의사 같은 전문직 생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늘 순수하고 친절한, 건강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가톨릭 종교를 깊게 믿으며 살아야 한다. 늘 변방에서 외롭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보이고 들리며 글을 쓸 수 있다. 등등이다. 나에게 그 분은 일종의 우상이고 또 다른 스타(공부 잘 하고, 시 잘 쓰고, 자식농사 잘 짓기 등)이기 때문에, 그 분이 무얼 좋아하신다면 무조건 따라 하고 싶은 학생이나 열렬한 팬, 혹은 애독자의 마음을 나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가지고 있다.
“1972년4월17일, 월요일. 독일어 휴강. 오늘 농대 강당에서 서울시향 연주회 있었다.” 그 날의 내 일기장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하여 한 달 보름 여 지났다. 그날은 대학축제 첫 날이었다. 정재동씨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곡목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교향곡1번이었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들었다. 교수들과 학생들 모두, 강당에(엄숙한표정으로)앉아서 그 연주를 보고 들었다. 나는 줄곧오케스트라바이올린 파트의 어느 예쁜 여자바이올린 주자만열렬하게 쳐다보며 그 연주를들었다. 작곡스케치에서 완성까지 무려 21년이나 걸려 1876(작곡가 나이 43세)년에 완성한 작품.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과 같은 c-단조이고, 제4악장 주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환희의 송가’와 그 분위기가 너무나 흡사하다. 어둠(암흑)에서 빛(광명)으로 나아가는 베토벤의 정신적 투쟁의 성격이 진하게 깔려 있다. 그래서 한스 폰 뷜러는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에 이어질 제10번이라고 이 교향곡에 대해서 극찬했다. 투쟁, 번민, 위안에 이어 승리, 기쁨을 구가하는 ‘인간승리의 정신(파우스트적인 투쟁)’. 관현악의 ‘질풍노도(Sturm und Drang)'란 기치를 들고 나타난 최후의 위대한 에세이라고도 하는 바로 그 곡이다. 그 후, 한창 세월이 지나, 박사학위를 1985년 취득한 후 처음으로 조그만 오디오를 장만한 나는 음반 수집벽에 걸려 거의 강박-편집적으로 이 곡의 음반(LP 혹은 CD)을 찾아서 모았다.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이 곡을 듣는다. 내가 더 이상 이 곡을 듣지 않을 때가 바로 내가 죽는 시간이 될 것이다. 거의 서른 장 이상의 연주 음반을 가지고 있지만 대학 1학년 그 때, 농대 강당에서 들었던 그 연주만한 것은 없었다. 그것이 나의 원초적 음악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의 그 유명한 바이올린 주제곡을 브람스가 홀로 사모했던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이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을 기리는 테마”라고도 부르는 분이 있었다. 클라라를 향한 그리움, 노스탤지어를 테마로 하는 곡이라고 그는 아주 강하게 주장한다. 나는 그 주제가 바로 베토벤의 ‘합창 정신(세계동포주의)’을 계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내게 줄기차게 ‘클라라를 향한 개인의 그리움’이라고 내 의견과는 어긋나게 주장했다.
2010년 1월 초 하얗게 눈 덮인 소백산을 단양 천동 계곡 쪽에서 올라가면서 그는 그 곡을 입으로 허밍하면서 등산했다. 내게 브람스를 허밍해 준 그 젊은 교수는 갔다. 내게 아무 말도 않고 자기 혼자 가 버렸다. 자기 혼자 암 말도 않고 그냥 이 세상에서 지구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갔다. 갑자기 그가 작년에 죽었다. 그는 안동대 공과대학 젊은 교수(故 정수鄭樹 교수; 1965-2013년 10월 31일, 갑자기 지병으로 사망하심)였다. 그가 방금 허밍했던 곡이 바로 그 클라라 슈만의 테마라는 것이다. 이 곡에 대한 해설서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글귀가 없다. 그 선생님께 브람스 1번 CD복사한 것 몇 장 주었더니 자기 연구실에서 그걸 듣겠다고 기어코 작은 스테레오 시스템을 하나 구입해서 설치했다고 한다. 내가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젊은 교수님! 그가 작년초에 내게 김기찬 씨의 60-70년대 찍은 서울 골목길 사진이 들어간 시 모음집(안도현 편집)을 한 권 새해 선물로 내게 주었다. 그 시 모음집을 나는 참 좋아한다. 내가 그에게 선물한 음반은 내가 좋아하는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하는 샤르르 뮌시 지휘, 파리 오케스트러 연주반과 카라얀 씨가 지휘하는 브람스 1번 교향곡 연주반이다. 마종기 시인은 쥴리니 씨가 지휘하는 LA필 연주를 가장 좋아하신다고 했다.
III.
소아시아의 터키 땅, 신약성서의 에페소 도시를 여행하면서 초대 교회의 전교와 박해와 지진을 느끼는 발걸음, 완전 폐허가 된 옛날 도시에서 사도 바울의 열띤 음성을 듣다가, 보석상이 많았던 번화가를 지나 창녀 집으로 들어가던 버려진 골목도 기웃거려보고, 한 나절 빈 도시를 가로질러 뒤쪽 성문을 빠져 나오면, 이천 년의 비감하게 웅장한 모습 삽시에 사라지고, 가난한 촌 바닥 싸구려 노점 장터가 줄 서서, 먼지 쌓인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무더기로 몰려오는 호객의 아우성 피해 잠시 혼란해진 내게, 바짝 다가오는 소년, 피난 시절 신문팔이 하던 어린 내가 보였다.
- 유 코리안? 유 자빠니이즈? 내가 코리안이던가, 그래 내가 코리안이다.
- 컴, 마이 머더 코리안! 마이 머더 코리안! 얼결에 따라간 천막 노점상 안 늦삼십대의 초라한 한국 여인이 머리 숙인다.
- 한국 분? - 네.
- 반갑습니다. - 네.
- 여긴 얼마나? - 한 십 오 년…….
- 이 근처엔 딴 한국 분도? - 혼자…….
- 혼자뿐이세요?(이 먼지 속에!)
- 네…….
- 나도 딴 나라에서 산 지가 20년 넘었어요.
- 아, 네. 20년…….피곤한 당신 눈 속에 쌓인 딴 나라의 먼지.
근처를 빙빙 도는 터키인 남편에게 눈치 보여, 만국기 가슴판에 붙여놓은 싸구려 셔츠 한 뭉치 사고, 득의만면 나를 올려보는 소년에게서도, 뿔피리 몇 개 사주고 황망히 떠날 준비를 한다. 잘 사세요. - 네, 안녕히 가세요. 터키 땅에까지 와서도 우리들의 인사는 안녕히 가라는 것이구나. 보퉁이를 들고 관광버스에 올라탄다. 백인들 판에 노란 한 점. 맨발의 소년이 길거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며 웃는다. 다시 창 밖을 본다. 소년은 그새 없어지고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기 시작한다. 혼자뿐이라고? 바보! 혼자…… 문득 무진한 갈대밭이 된 에페소의 성 밖으로, 가는 비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내가 좋아하는 하느님.
-마종기 詩 ‘혼자’ (이슬의 눈, 1997. 문학과지성사)
나는 마종기 시인의 이 시를 아주 좋아한다. 일종의 산문 에세이 같은 여운이지만 그 그림자가 너무 짙어서 잊을 수 없다. 1993년도 내가 태국의 그 방프라(RIT) 농과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때 오스트리아 비인 대학에서 원예학으로 학위를 한 젊은 교수가 내게 얘기했다. 유럽에 왜 그렇게도 한국의 미스 킴들이 (유학 와서) 많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그 미스 킴들이 한국에 되돌아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독일, 오스트리아에 많이 사는 터키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여자들의 삶이 가장 나쁜 지옥이 바로 한국-일본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고 내게 말했다. 마종기 시인의 이 시를 읽고 하느님을 보았다고 내 딸은 말했다.
어떤 시인의 시詩에서는 소주 냄새가 난다. 고은 시의 경우, 나는 그런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러나 윤동주나 마종기 시인에게서는 깨끗하고 맑은 인간성, 그리고 소박한 느낌이 난다. 어떤 시인의 시에서는 비꼼, 뒤틀림, 억지, 과장이 느껴지지만 마종기 시인에게서는 그런 억지, 심술이 읽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전에 김수영의 시를 좋아해서 그의 시들을 많이 외우기도 하며 흉내도 내었었는데, 그는 시를 잡지에 게재한 후 그 원고료를 받으면 꼭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종로3가의 그 유명한 사창가를 들락거렸다는 고백을 한 글을 읽고 나서는 정나미가 떨어진 적도 있다.
50년대나 60년대의 시인들이나 문인들의 습관인지 버릇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문인이나 시인은 그런 어긋나는 것과는 상관없다.
심지어는 백석의 시에서도 그런 방종이 간간히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의 시에서는 육체의 살 냄새가 느껴지는 것도 있다. 다른 어떤 시들과도 다른 마종기 시인이 시는 그 성격 자체가 브람스적이다. 특히나 브람스의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들과 그 분위기가 아주 흡사하다. 그 분이 브람스, 그 중에서도 교향곡 1번을 좋아하는 것도 그 분의 시에서 그대로 우러난다.
내가 그 분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그 시가 비교적 다른 시인들의 그것보다 내게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황동규, 마종기, 김영태 삼인三人의 ‘평균율’ 시집을 읽고 그들의 시를 흉내 내려고 무지 애를 썼다. 마치 문학의 염탐꾼처럼. 풍장風葬의 시인이자 친구인 황동규는 마종기 시인을, “일류 시인, 일류 의사인 그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마음 쓰는 것을 보면 때로 머리가 숙여진다. 나처럼 좁은 마음을 가진 자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면서 미국서 살고 있는 문학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을 방문하는 우리나라 문학인들의 메카로 되어 있는 마종기 시인의 오하이오주 톨레도 시의 그 분의 집 이야기를 한다.
마종기 시인은 말한다. “나는 적어도 문학의 염탐꾼은 아니었다(아, 이 말이 마음을 푹 찌른다. 마치 내가 그 염탐꾼 같다). 내 문학을 누구의 무엇과 비교하지 않았고 눈치 보지도 않았다.”
그는 늘 혼자였다. 외로움은 시인의 첫째 필요조건이다. “가슴에 큰 구멍을 가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추위를 느끼지 못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다”고 그가 평생 좋아했다는 윌리
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말했다. 그러면서 마종기 시인은 조주를 인용한다. 조주가 스승 남전에게 물었다. “도道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스승 남전이 답했다. “도란 알고 모르는 지식에 속하지 않는다. 도를 안다는 것은 미망에 지나지 않으며 모른다는 것은 또 단순한 혼란일 뿐이다. 어찌 도를 시시비비是是非非 따지 듯 외적인 것에 의해 인위적으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마종기 산문집, 앞의 책, 2013.)
그의 후배이자 친구인 정현종 시인은 말한다. “나는 그의 동생을 애도하는 시 중의 하나인 ‘묘지에서’에 있는 구절이 보여주는 그의 감각을 좋아한다. - 묘지 근처의 공기는 언제나 생각에 잠겨 있다. 묘지 근처의 공기는 언제나 먼 곳을 보고 있다. - 그렇다. 부재와 죽음이 만드는 공기는 언제나 먼 곳을 보고 있으며, 그러한 표현은 존재와 삶을 깊게 한다. 사실 부재가 마련하는 공기만큼 감각을 깊게 하는 것도 없을 터이고 그리고 정신이란 깊어진 감각이 아니고 무엇이랴. 공연히 폼을 잡는다든지 자기 과시적 흥분이나 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시의 값을 따지는 아주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마종기 형의 시에는 적어도 그런 건 없으며 그만큼 그는 자기 안팎을 보는 냉정한 눈을 갖고 있다. 시라는 건 끊임없이 자기를 넘어서는 뜀틀이지 자기 과시나 하는 우스꽝스런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재능은, 체질과 같이, 날 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니,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가 의사이기도 하니까 말이지만, 그리고 그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시 또한 인술仁術인 것이다. (마종기 깊이 읽기, 1999, 문학과지성사)
“이만큼 살아보니까 아름다운 것은 대개 외롭거나 혼자였고, 옳다는 것은 대부분 외톨이였다. 가끔은 시작과 끝이 여일如一하게 정확한 기승전결을 원하지만 살아 있는 실체가 그렇지는 못하다. 도대체 이 ‘그렇지 못하다’는 말도 살아 있기 때문에 곧 사라진다. 군중 속에서의 말이 조용한 곳에서의 말과 다른 것 같이, 흥분하거나 행복해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담겨 있어야 살아있는 말이고, 살아 있어야 말에 힘이 있고 사람의 말이라고 믿을 수 있다. 수학적이거나 물리학적으로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굴곡이 아름다워지고, 모호함이 가끔 빛과 광채를 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살아 있는 말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마종기 산문집, 앞의 책, 2013)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눈” 시를 15~6여 년 전에 무척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한 동안 잊고 지내던 이 시를 다시 생각해서 마종기 시인의 책(시작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에서 다시 베껴 보는 것은, 전날 내가 영덕과 청송 사이에 있는 달산 옥계 팔각산에 다녀와서 인가 보다. 그 산 위에서 영덕 앞 바다,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았다. 산 위에서 멀리 바라 본, 그 푸른 바다와 바로 눈앞에서 영롱이는 한 방울의 이슬이, 이슬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시인의 시작 에세이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나는 (친구와 산에 가서 하룻밤 묵고 새벽에 깨어), 내 주위를 둘러보면서 반짝이며 영롱한 눈으로 내게 말하는 이슬들을 보았다. 천상의 눈같이 맑고 조용한 이슬의 눈, 이슬은 내게 두 눈을 뜨고, 영혼의 두 눈을 뜨고, 세상 전체를 아우르며 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앤서니 드 멜로’라는 수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착하고 고상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착한 이를 만들려는 종교나 철학은 사람을 자주 결박해서 나쁘게도 만들지만 자유로움으로 초대하는 것은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 그것은 자유가 사람의 내적 갈등을 부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착한 이가 되려 하지 말고, 그보다는 자유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로는 수도 없이 마음을 비운다느니 욕심을 버린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 아닌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려고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게걸스러운 탐욕의 장님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욕심을 버리고 나는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자유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4호>
2012년 12월에 발간된 143호의 <나의 서재>를 시작으로 이순구 교수의 독서편력 막을 내립니다.
이후에는 http://blog.daum.net/soonguandong/ 제비 블로그의 제비통신에서 글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그간 깊이 있는 서평을 게재해주신 이순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