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성년의 날(글/편집실)
1973년 제정된 ‘성년의 날’이 올해로 43회를 맞이했다. 지난 5월 18일 안동 태사묘에서 제43회 성년의 날 의식인 ‘관례 및 계례’가 치러졌다. ‘성년식’은 세계 여러 민족 사이에서 볼 수 있는 한 풍습으로 예로부터 나라·민족별로 다양한 성인식 행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성년례가 발달해 남자는 갓을 쓰는 관례, 여자는 쪽을 찌는 계례 의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어른이 되었음을 알렸다. 이날 수관자 권도엽, 최영사, 황수민은 성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자字를 받고 가례와 초례를 치렀다.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에서 벗어나 이제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이에게 건전한 사회의 한 개체로서의 긍지와 자각을 심어주는 의식을 치른 세 젊은이를 복간호로 새 발을 내딛는 사랑방에서 만나보았다.
제43회 성년의 날을 맞아 전통성년의식인 관례·계례행사가 안동청년유도회 주관으로 태사묘 숭보당에서 열렸다. 성년의 날은 만 20세가 된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을 일깨워주고,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 격려하는 날로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에 개최한다.
관혼상제의 첫째 관문인 ‘관’이 바로 이 성년례를 말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만 20세가 되면,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어른들을 모셔 놓고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전통 의례를 치르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성년의 날 전통 의식을 태사묘에서 치른 권도엽, 최영사, 황수민은 부모님께 큰절을 하고 성인이 되었음을 공표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최중호 씨와 정근주 씨의 1남 1녀 중 장남인 영사 군. 스스로 ‘반듯하다’고 소개하는 맹랑한 청년이다. 성년의 날 의식을 치르는 내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사진기자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영사 군은 계명대학교 스페인어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스페인어과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재미있는데 장래 희망이 축구감독이기 때문이다. 스페인리그 축구를 챙겨보고 좋아하는 팀은 레알 마드리드, 좋아하는 선수는 박지성이다. 존경하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 이유를 물으니 “저를 이렇게 반듯하게 키워주셔서요.”라고 역시나 신세대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성인이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은 ‘연애’. 그래서 여자 친구가 생겼냐고 하자 줄을 섰다고 농을 친다. 함께 성년의 날 의식을 치른 권도엽 군과는 고등학교 동기다. 둘 다 경안고 출신. 이날 마침 안동청년유도회 회원인 경안고 권석환 선생님을 만나 셋은 사제지간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처음에 ‘성년의 날’ 행사 참여 얘기를 들었을 때는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냥 끌리지 않아서다. 다리도 아프고 힘든데다 처음 치른 의식에 어리둥절했고 심지어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을 본 친구들이 놀려대며 웃었다고 하는데 지나고 보니 성인이라는 실감도 새삼 나고 뿌듯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잘한 것 같다고 한다.
젊음을 만끽하되 앞으로 말썽 안 피우는 자식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힌 영사 군은 부모님께 바라는 점이 있냐고 묻자 달리 없다고 쿨하게 답했다.
엄마 정근주 씨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평소에도 원하는 대로 뭘 하든 즐겁게 행동하는 아들이라 걱정이 없다고 한다. 처음 보는 아들의 진지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의식 내내 대견해 하는 모습이었다. 영사 군이 이날 받은 자字는 ‘문경文卿’이다.
안동농협 서후지점장인 권태형 씨와 김은경 씨의 2남 중 첫째인 권도엽 군. 성년의 날 의식을 치르길 희망하는 아버지 말에 뭐하는 거냐고 여쭤보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해서 별로 안 내켰지만 효도 차원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도엽 군. 평소엔 아버지와 대화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이번 기회를 계기로 좀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고 한다. 역시나 도포 입고 갓 쓴 모습을 본 친구들이 놀려대긴 했지만 언제 이런 의식을 치러보겠냐고 의젓하게 말한다. 존경하는 사람은 할머니. 할머니 손에 많이 커서 애틋함이 남다르다고. 올해 일흔인 할머니 임명순 씨는 이날 성인이 된 손자의 절을 받으며 감격해 했다.
실물보다 사진이 못 나와서 걱정이라고 하자 그런 것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도엽 군은 힘들어 보이긴 해도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인지 안동대 회계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회계학도다. 장래희망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벌써부터 ‘농협’에 취업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회계학을 공부해보니 별 재미가 없어 걱정이라고.
아버지 권태형 씨는 아들의 큰절을 받으며 “성공보다도 인성이 바른 사람이 되길 바라고 어른이 됐으니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사람을 공경할 줄 알고 오늘 받은 ‘자字’의 내용대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행복하고 사랑한다 도엽아. 지금의 갓 쓴 그 느낌 그대로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길 바란다.”는 당부를 남겼다.
부모님께 바라는 점은 통금시간 해제다. 12시 전에 들어와야 하는 신데렐라 신세인 도엽 군을 옆에 있던 영사 군이 놀린다. “그래서 내가 대구 갔잖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자 올곧은 사람, 바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통금 해제 운운하는 도엽 군이 쑥스러운모양으로 웃는다. 도엽 군이 이날 받은 자字는 ‘윤조倫助’다.
사업가 황기철 씨와 이정희 씨가 결혼 7년 만에 얻은 귀한 딸 황수민 양은 2남 1녀 중 장녀다.
장래 희망은 의류사업가, 성인이 되면 꼭 하고 싶은 일은 자취란다. 즉 독립이 하고 싶다고. 그 이유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이라는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이 솔직한 수민 양은 현재 성희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성년의 날 의식이 부담스러웠는지 처음엔 싫은 내색을 하던 수민이도 마지막에 가서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성장한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 이정희 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아이가 의젓하게 한복을 입고 성년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달라서이다. 장녀임에도 막내 같은 딸이 걱정되서인지 아버지 황기철 씨도 딸의 모습에서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수민 양이 이날 받은 ‘자字’는 ‘여옥汝玉’이다.[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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