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버지, 나의 아버지>(글/임지희_안동대 겸임교수)

'가족'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햇살처럼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 따뜻함 속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족들은 서로 간의 갈등을 겪으면서 싸우기도 하고 또한 화해하면서 더욱 더 단단한 둥지를 만들어 나간다. 경주시립극단에 의해 지난 5월 15일과 16일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가족 이야기이다. 이 연극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그리고 화해를 통해 아버지의 존재가치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와의 단절

연극의 공간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다. 장례식장에는 아버지 박진구의 친구인 허삼룡이 혼자 쓸쓸히 장례준비를 하고 있다. 이때 아들 박명진이 아버지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아들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허삼룡이 아버지 영정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라고 하지만 아들 명진은 마지못해 절을 할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연극은 연극의 공간을 장례식장으로 상정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이 힘들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오해는 소통과 교감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이미 망자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그 아들이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는 없다. 아버지 박진구는 망자로 무대에 등장한다. 망자로 등장하는 아버지는 극의 흐름에 관여하지 않는다. 친구인 삼룡과 명진이 대화를 할 때 추임새 같은 대사를 할 뿐이지 직접적으로 극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망자로 아버지를 등장시켜 가지는 효과는 아버지가 아들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삼룡과 명진이 다툼을 벌일 때 명진을 안타까워하는 행동을 통해 관객들은 아버지가 아들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은 망자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망자에 대한 존재를 관객은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감지하지 못한다는 정보의 차이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직접적인 소통은 이 연극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소통 없이는 관계가 빠르게 회복 될 수 없다. 아들 명진은 장례식장에서 투덜거리기 일쑤이고 오랜 미국유학 생활동안 아버지와 헤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애도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여자 친구에게 매달리며 너무 보고 싶으니 와달라는 전화를 할 뿐이다. 연극의 중반부까지 아들 명진이 아버지에게 가진 반감에 대한 동기를 드러내지 않고 지연시키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불만에 대한 동기를 밝히지 않고 계속해서 유보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여 극에 대한 몰입을 유도하는 효과를 가지게 했다.



아버지와의 교감

이러한 부자지간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간자적 역할을 하는 인물은 아버지 박명진의 친구인 허삼룡과 아버지를 짝사랑했던 여인인 지팔자이다. 지팔자의 등장으로 연극은 다른 상황으로 전환하게 된다. ‘지팔자’라는 비유적 연상체계의 이름을 사용하여 이 여성의 팔자가 뭔가 꼬여있고 이것은 아버지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암시한다. 아버지 박진구는 아내의 불륜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한 박진구의 아내가 불륜으로 나은 여자아이는 지팔자가 입양하여 기르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지팔자는 박진구를 짝사랑하였고 그 사랑이 그녀의 팔자를 뒤헝클어 놓은 것이다.

아버지 박진구는 어머니의 불륜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들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이 상처를 받는 것이 싫기 때문에 진실의 은폐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진실을 모른 체 아들은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현실을 도피하게 된다. 아들의 선택한 현실도피는 유학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고 아버지를 원망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아버지는 힘들게 일하며 아들의 유학생활 뒷바라지를 하였던 것이다. 허삼룡과 지팔자의 대화를 통해 진실을 알아차린 아들 명진은 오열하게 된다. “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원망했는데 그 세월은 어떡하라고요?”

진실을 말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처지와 이를 오해하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아들의 지난 삶이 안타깝게 받아들여진다. 사람사이의 진정한 교감은 소통에서 일어난다. 소통을 통하여 상대를 공감할 때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가족들과 얼마만큼 소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마음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아들을 지켜보았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이혼의 진실을 은폐하여 아들이 상처를 받지 않고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의 바람은 오해와 불만으로 아들에게 다가갔을 뿐이다. 결국 이 연극은 진실을 알게 된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아버지의 핸드폰에서 아들에게 보낸 영상편지를 본 아들의 마음이 무겁다. 아들 명진이 아버지 진구의 영정 앞에서 정성스레 향을 피우고 마음을 다하여 절을 한다. 아버지와 교감하고 있음을 알리는 명진의 태도가 변화된 모습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온 가족이 함께 보아도 될 만큼 무난한 작품이다. 이것은 이 작품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무난함이 관객들에게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서브텍스트로만 깔려 있어서 인물간의 팽팽한 갈등으로 인한 극적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시선이 일방향성을 지닌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둘만의 화해를 위한 시·공간적인 접점이 없다. 아버지 장례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연극의 전사는 아버지의 이혼에 대한 진실 은폐와 아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온 시간이 되는 것이고, 연극의 시간은 아들이 진실을 깨닫고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서로 쌍방향적인 소통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아버지는 자식을 향하여 영원한 사랑을 퍼붓고 자식은 이 사랑에 부합하지 못한 행동을 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는 진부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식상함을 달래주려고 아들이 참회하면서 춤의 퍼포먼스를 관객들에게 선사하지만 이 퍼포먼스는 굉장히 어색하였다. 이 춤의 삽입은 아들의 여자 친구가 장례식장에 와서 아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와 함께 극의 리얼리티를 깨트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극의 마지막에 아들의 여자 친구가 지팔자가 입양한 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지팔자가 박진구 아내가 불륜으로 낳은 딸을 입양하였으니 아들 명진과 그의 여자 친구 소현은 어머니가 같은 남매지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인 사이에 드러나는 출생의 비밀은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주어 극적인 긴장을 불러 오기는커녕 막장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러브라인은 주제와 연결되어 있지 못하고 주된 플롯라인과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 명진과 그의 여자 친구는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 박진구를 저승으로 보내고 난 후 관객들에게 현실의 숙제를 주어 여운을 남기는 미완결의 결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소재적인 차원에서 관객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지만 아버지라는 존재로 깊이 있게 다가갔다고 볼 수는 없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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