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동인회(글/백소애_본지 편집실장)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그해에는, MBC문화방송이 개국하고 경부선 동대구역이 개통됐으며 전국 최초의 다목적댐 진주 남강댐이 준공되었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개봉되었다. 그리고 안동에서는 천주교 안동교구가 설립되었고 문예동인지 『글밭』 창간호가 나왔다. 처음에는 ‘청포문학동인회’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시 쓰는 신승박, 김성영, 변호섭, 이홍범, 임병호, 조병국, 소설 쓰는 임명삼, 20대 전후의 문학청년들이 모여 내놓은 동인지다. 창간호를 내놓고 그해 가을호인 2호부터는 동인회 이름을 ‘글밭동인회’로 바꾸고 꾸준히 동인들의 신작을 발표하게 된다. 글을 경작하는 밭이라 하여 『글밭』이라 이름 짓게 된 그들의 47년 행보, 복간한 『안동』지 문화예술모임의 첫 번째 주자로 나서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다.
『글밭』의 탄생
‘글밭동인회’는 지역 문학회를 통해 침체된 향토 문학을 복원하고자 창립되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재 안동에서 활동 중인 가장 오래된 시 동인이며 전국에서 다섯 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장수 동인이다.
우리나라의 첫 문예동인지는 1919년 2월에 창간된 『창조』이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주요한, 편집자는 김동인, 전영택 등이었다. 그들 또한 20대 전후였다. 『창조』는 채 통권10호도 발표하지 못하고 폐간하게 되었는데 김동인은 폐간의 진정한 원인을 ‘무제한한 인비人費와 문학보다도 방탕에 더 고혹을 느끼게 된’데에서 찾았다. 이 동인지에는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전영택의 단편소설과 한국 최초의 근대 자유시인 주요한의 「불놀이」 등이 발표되었다. 국내문학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들이 많이 발표된다 하더라도 한 세기가 흘러도 동인지 내기는 여전히 어렵다.
『글밭』 동인지는 7호까지 출간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의 결성을 위해 1972년 12월 잠시 동인 활동을 중단하고 『안동문학』을 창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85년 5월 속간하여 2015년 6월 현재 38집을 출간했다. 작년부터 연 2회 출간을 하고 있는데 1년에 적어도 시 열편은 써내라는 숙제가 주어졌으니 시를 써도 발표할 지면이 없는 지방 시인들에겐 이렇게 ‘괴로운 호사’가 없다. 글쓰기에 지름길은 없다더니 진득하니 성실한 글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결단이다. ‘방탕보다 문학에 더 고혹을 느낄’ 동인들이 어느 날 덜컥 얻어걸리는 작품이라도 낸다면 1년에 두 번 동인지를 내자고 팔 걷어 부친 보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38집을 내는 동인들의 다짐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공들여 쓴 작품을 글밭에 발표합니다. 여러 가지 색깔과 형태로 자신만의 아우라가 결집된 꽃을 피웁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 위해서 멋진 밭을 일구었습니다. 반년간지로 출간되고 있는 글밭이 다시 한 번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글밭』의 활동
창간호를 발간하던 시절 동인들은 비싼 인쇄비를 절감하기 위해 직접 활자를 뽑고 조판을 짜서 인쇄를 했다고 한다. 창간호 편집 후기에 ‘인쇄에 소비된 시간만도 꼭 한 달하고 보름이 걸렸다’고 밝힌 글에서 당시의 고생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초창기에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수필 등 모든 장르를 함께 수록했다. 김종길, 박두진, 양명문의 원고가 실리고 이오덕, 박시교 등이 합류하면서 한층 동인지가 풍성해졌다. 그러는 한편 1985년 8집 속간 때부터는 시 전문 동인지로 활동에 돌입했다. 이때 참여했던 동인이 권기태, 김성영, 김시박, 김윤한, 김지섭, 변호섭, 이홍범, 임관혁, 임명삼, 임병호, 조용식, 조병국이다.
창간 당시부터 중앙 문단이나 시대적인 평가에는 초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글밭은 지난 37집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는 나의 앞을 쓰는 일이며, 그의 시는 그의 앞뜰을 쓸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눈치 보지 않고 꾸준히 걸어갈 것이라는 자세를 담아내고 있다.
지역문학의 저변 확대와 수준 향상을 위해 문학 제전, 시 창작 워크샵, 시 그림전 등의 문학행사와 시 읽기 운동을 선언하며 故 임병호 시인이 앞장서 이끌었던 「詩를 읽자 미래를 읽자」 소책자 발간 등의 활동을 해왔다. 문화의 거리 신한은행(당시 조흥은행) 앞에서 「詩를 읽자 미래를 읽자」를 나눠주던 임병호 시인의 술로 불콰한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글밭』의 아지트
글밭은 매월 넷째 주 월요일에 월례회를 가진다. 오늘 몇 시에 모임이 있다고 공지만 하면 그만, 장소는 15~6년 전부터 항상 같은 곳, 안동주부문학회 회원인 김연숙 시인이 운영하는 ‘우물가 식당’이다. 그니가 옥정동에서 안동문화원 뒤편, 안동예식장, 음식의 거리 등 장소를 옮길 때마다 같이 따라다녔다. 글밭 회원은 아니지만 월례회 때마다 함께 했으니 객원 회원이나 마찬가지다. 글밭 메뉴도 따로 있는데, 안주는 주인 마음대로 술은 손님 마음대로. 몇 명 왔는지 얼추 보고 얼추 내면 얼추 받았다. 그렇게 엉덩이 지지고 오래 앉아 있어도 가라는 말 안하는 글밭 아지트는 김연숙 시인의 건강 문제로 문을 닫게 돼 이별 아닌 이별을 하고 말았다.
『글밭』동인들
글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임병호 시인이다. 그는 1947년 길안에서 출생, 1969년부터 글밭 동인으로 시작활동을 시작해 1988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평생 시 창작에만 몰두했다. 2003년 5월 1일 지병으로 타계했으며 안동지역 최초로 문인장으로 영결식을 가졌다. 특히 시인은 1969년 글밭 동인회 창립을 주도했고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시를 읽자 미래를 읽자」 소책자 수만 부 발간, 안동민족문학회 창립과 창간호 발간 등 안동의 현대 시문학 발전과 시의 대중화를 위해 평생을 노력해왔다. 시인이 영면한지 10년 되던 2013년에는 시인이 시의 무게나 시인으로 살아온 이력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점을 안타까워한 동인들이 귀천 10주기를 맞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유고시를 포함해 관련 글들을 묶어 유고문집 『눈물이 나서 자꾸 눈물이 나서』를 발간했다. 또 일찍 타계한 신승박 시인의 시비를 영호루 경내에 건립하기도 했고 2006년 타계한 백승초 시인의 유고집 『이제 바람이 되어』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간 금녀의 밭이었던 글밭에 현재 여성 시인이 발걸음을 내디뎠고 안동대 국문과 문학동아리 출신의 젊은 회원도 가입했다. 각자 가정과 취업, 건강 문제 등으로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지만 워낙에 문학단체의 어려움이 전국적인 현상이라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있다. 현재는 강수완, 강희동, 권기태, 김미현, 김여선, 김윤한, 김지섭, 김진회, 이위발, 임관혁, 임두고, 전대진, 천승현. 가장 원로인 권기태, 김지섭 동인과 가장 어린 전대진까지 총 13명의 동인이 활동 중이며 초창기부터 늘 그래왔든 회장은 없다. 궂은 일 맡아하는 유사有司만 있을 뿐.
김윤한 시인이 힘든 시기 10년 넘게 유사를 맡아왔고 지금은 천승현 시인이 5년째 맡고 있다. 얼결에 몰려서 하게 됐다는 천 시인이 김윤한 시인을 가리켜 말한다.
“이 사람 아니었으면 글밭도 없었지 싶어요. 그간 각종 뒤치다꺼리며 임병호 시인 유고집이며 글밭 일은 뭐든지 다 고군분투, 참말 애썼어요.”
김윤한 시인이 임병호 시인의 유고문집 작업 당시를 회상한다. 미발표작과 발표작 구분을 하려면 글밭 전체 글을 다 뒤져서 대조해보고 다시 또 글을 다 작업해야 했는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임 시인 타계 후 사리 수습하듯 원고를 수습하러 가서는 비치백에 원고를 모아 집 책장 위에 얹어놨는데, 7-8년 지나고나니 그 비치백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묵은 숙제처럼 계속 눈앞에 어른거린 비치백을 풀어헤친 게 10주년 되는 해를 앞두고서였다.
평소 동인들을 만날 때도 글을 하도 안내니까 제일 먼저 한다는 말이 ‘글 좀 주소’였단다. 유사 일을 천 시인에게 맡긴 그는 어쩐지 후련한 얼굴이었다.
처음 출범할 때나 지금이나 욕심 없이 우직하게 글밭을 가꾸어 왔다고 자부하는글밭동인회는 이제 50년의 세월을 맞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문학청년이 없어진 시절, 각 문학단체에 젊은사람도없고인문학이나문학이등한시되는 현상이 심한 현재50년의세월은결코 녹록치 않은 시간이다.여태껏해왔던 것처럼 시류나 평가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시’를 쓰는 일에 몰두할 것이라는 글밭동인은 세상이 변하듯 언젠가는 동인지 시대가 화려하게 부활할 것을 꿈꾼다고 한다. 먼지 쌓인 「시를 읽자 미래를 읽자」 소책자를 한권 뽑아들면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들이 쭉 나온다. 신작시를 발표한 권정생, 이오덕, 임병호 등. 시인은 매번 신작 시를 발표하고 독자는 시인의 ‘신작 시’를 기다리고 읊조리는, 그런 시대의 부활을 기다리는 글밭 동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글밭』 주요 연혁
1969.4.10. 문학동인회 발족 논의.
1969.5.03. ‘청포문학동인회’ 동인 발족.
1969.7.30. ‘글밭동인회’로 변경하여 발간.
1972.3. 동인지 7집까지 발간.
1972.12.31. 문협 안동지부 결성과 활동 위해 발 전적 휴간.
1985.6.06. 『글밭』 8집 속간.
2002. 동인지 콘테스트 2등.
2015.6.현재. 『글밭』 38집 발간.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1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