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최초의 실버극단 ′왔니껴′(글/이희수_객원기자)
협동조합; 경제적으로 약소한 처지에 있는 소비자, 농민, 중소기업자 등이 사업의 개선 및 권익 옹호를 위하여 협력한 조직 단체.
17만 5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공동 소유한 세계적인 축구팀이 있다. 바로 리오넬 메시가 소속되어있는 스페인리그 축구단 ‘FC 바르셀로나’다. 1899년 호안 감퍼라는 한 축구 팬이 축구 클럽을 만들고 싶다는 광고를 신문에 실으면서 ‘FC 바르셀로나’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 축구 클럽은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팬들이 조합원이 되어 행정과 관리에까지 모두 관여하는 협동조합이다. 아무래도 서로가 좋아하는 공통의 관심을 위해 이익을 도모한다는 데서 어느 정도의 강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협동조합의 대부분이 농민이나 권익을 위한 소비자 단체로 구성되어 약소자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조직된 단체라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있어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썬키스트나 서울우유와 같은 농식품 생산 유통은 물론 AP 통신과 같은 언론과 축구까지, 협동조합 조직이 보다 다양한 분야에 펼쳐져 있다. 특히 우리 지역 안동에서도 FC 바르셀로나처럼 공통의 관심사를 위한 협동조합 조직이 늘고 있는데 ‘놀몸협동조합’도 바로 그것이다.
놀몸은 즐겁게 꿈틀거리며 쉴 수 있는 몸이나 공동체라는 의미로 진실한 배움과 순수한 나눔, 행복한 어울림이라는 모토로 교육과 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열고 있는 단체이다. 그 중에 주목할 것은 문화예술사업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는 실버 문화예술의 활성화다.
2015년 초여름을 여는 사랑방의 ‘이달에 만난 인물’은 바로 고령화 시대, 노인들의 보다 다양한 사회적 참여를 위해 올 2월 창단된 실버극단 ‘왔니껴’다.
가장 안동다운 반가운 인사말 “왔니껴”
안동 사투리 ‘왔니껴’로 작명한 극단의 이름과 구성이 꽤 친근하다. 그 어떤 수식어보다 극단 명 하나만으로도 ‘실버’라는 연륜과 ‘안동’이라는 지역색까지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이름이 아닌가.
현재 놀몸협동조합을 창립한 강준용 이사장이 극단의 여러 가지 사무며 기타 잡다한 ‘몸 쓸 일’ 까지도 담당하고 있고 단장으로는 권영숙 씨가 극단을 이끌고 있다. 평소 재주도 많고 두루두루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인맥을 다졌던 권영숙 씨는 8년 전 안동농협 여성대학으로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과 함께 우연히 실버극단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모이게 되었다. 현재 극단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10명의 단원인데 조합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회원까지 모두 합하면 23명의 단원들이 있는 셈이다. 특히 여성 단원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안연호, 안상명 두 명의 남성 단원이 눈에 띈다.
극단 ‘왔니껴’는 지난 5월 8일 첫 창단공연을 가졌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 백조홀 좌석을 꽉 채운 관객 앞에서 말이다. 아마추어지만 정식 데뷔인 셈이다. 창단극은 <월곡빵집>. 극단 ‘꿈꾸는 하늘’의 이철진 대표가 연출과 극본을 맡아 두 달 간의 짧고도 긴(?) 대장정 끝에 무대에 올려진, 임동 챗거리 장터 수몰민들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저마다의 나이와 하는 일을 고려해 매일같이 모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만나고, 소문을 듣고, 그렇게 여러 이유로 모여들었지만 이렇게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설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물론 언젠가는 무대에 섰을 일이지만, 아마추어가 그것도 실버가! 40분간의 러닝타임 공연을 라이브로 했다는 사실에 실상 연극이 어떠했을까라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수몰민의 애환을 다룬 연극 <월곡빵집>
극단 ‘왔니껴’의 이번 창단극 주요 멤버는 월곡네 역의 김혜숙 씨, 고등어 역의 안연호 씨, 난닝구 역의 정점수 씨, 봉숙이 역의 장경자 씨, 이발소 역의 안상명 씨로 창단공연에 배우로 무대에 오른 전 출연진이다. 그리고 극단의 숨은 조력자 바로 스태프도 있다. 기획에 이명자 씨, 분장에 이재옥 씨, 의상에 권태랑 씨, 소품에 신현정 씨, 조명은 이사장 강준용 씨의 몫이었다.
<월곡빵집>은 안동댐과 임하댐 수몰민의 수몰사를 유쾌하고 명쾌하게 또 슬프지만 희망적이게 그려낸 극이다. 특히 안동 고유의 콘텐츠를 스토리로 발굴해 새롭게 창작했다는 데 그 의의도 있다. 지금은 수몰된 안동 월곡리의 월곡네와 이발사, 난닝구, 봉숙이 등 수몰민들의 살아있는 우리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월곡빵집의 시작은 봉숙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다.
안동댐 수몰로 어린 딸 봉숙이와 함께 임동 챗거리 장터로 이사 와 월곡빵집을 차려 장사를 하고 있던 춘자네. 살던 집이 또 다시 임하댐으로 수몰되자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정리하고 시집간 딸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를 가려고 마음먹는다. 내일이면 서울로 떠나는 춘자네와 마지막 이별 파티를 위해 고등어 오빠, 이발사 오빠, 난닝구 동생이 찾아와 이별주를 마시며 지난 추억을 달래는 늦은 밤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앞으로 내몰린 수몰민들의 설움과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 교차된다. 술에 취한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춘자네의 이사를 말리는 이발사 오빠의 소소한 러브라인이 극의 흐름을 끝까지 놓지 않게 한다.
배우와 스태프의 구분은 따로 없다. 각자의 스케줄에 맞게, 하고 싶은 역할에 맞게 서로의 뜻을 존중해서 자연스레 결정된 일이다. 스태프로 한 발 물러선 단원들의 경우에 각자의 포지션을 정한 것도 어떠한 이력으로 결정되었기보다 화장을 잘하면 분장으로, 평소에 옷을 잘 입으면 의상으로, 그렇게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실버들이기에 자연스레 정해진 자리였다.
무대 울렁증에 우황청심환, 배우 되기 힘드네
‘이발사’ 역의 안상명 씨는 젊었을 적 연극을 해보고 싶었던 한을 풀었을 것이고 안연호 씨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해 새로운 경험으로 제 2의 인생을 열고 있다. ‘봉숙이’ 역의 장경자 씨는 하도 대사를 잘 잊어버려서 단원들의 애를 많이 먹였다고 하는데, 무대에 오르기 직전 우황청심환을 입에 털어넣는 걸로 무대 울렁증에 대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창단 공연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도 상대 배우가 그저 잘 넘겨줬다니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연습기간에 반해 ‘왔니껴’ 단원들의 찰떡같은 궁합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기획을 맡았던 이명자 씨는 연극을 하는 데 있어 단원들의 작은 부분까지도 살뜰히 챙겨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봉숙이’ 역의 장경자 씨가 공연 당일 아침 긴장감에 어쩔 줄 몰라 할 때도 이른 아침 민낯으로 집을 찾아와 상대역할을 해주며 끝까지 용기를 줘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장경자 씨는 이 연극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삶을 찾은 듯 시종일관 행복해 보였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짧았던 연습 기간 동안 나름의 특훈을 위해 일상에서 대사를 외우기 위해 노력했던 ‘난닝구’ 역의 정점수 씨는 남편과 함께 운동을 하려고 저녁 산책을 하다 그만 속으로 외우고 있던 대사가 입 밖으로 툭 튀어 나와 남편을 놀라게 했단다. 그 대사는 바로 “아이고 보상도 안 해주면서 무조건 집부터 비우라카나. 내가 여서 빤스 브라자나 파니까 우습게 보이나.”이다. 웃기도 웃었지만 진정 배우의 노력이 아닌가 싶은, 그들만의 진지함이 묻어 나왔다.
사실 단원 중에는 예전부터 몇 번 무대에 섰던 나름 베테랑 단원도 있다. 그 중 월곡네 역의 김혜숙 씨는 ‘안동포 천년의 손길’과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이라는 연극으로 몇 번의 무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장 대사를 맛깔스럽게 잘 소화해내었다며 단원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꿈꾸는 실버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실버라 하면 60대 이상을 보통 칭하지만 극단 ‘왔니껴’ 에서는 다소 예외가 있다. 본래는 나이 제한에 걸려 못 들어올 뻔했던 50대 단원도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으로 극단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나이 제한을 55세로 낮췄다는 강준용 이사장의 덧붙임이 있었다.
무엇보다 강준용 이사장은 단원들의 열정과 즐거이 참여하는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연극을 올리기 전 불과 한 달 남짓이 연습기간의 전부였기에 밤이고 낮이고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연습을 해야만 했다. 그 속에서 또 다른 용기와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은 단원도 있고 개인사의 아픔을 치유한 경우도 있다. 강준용 이사장은 이를 보고 놀몸 협동조합의 실버극단이 창단의 본래 취지대로 흘러가고 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연기라고는 맹탕인 아마추어들이 떴다!”
사실 필자는 창단 공연의 초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벌써 놀몸협동조합의 실버극단 ‘왔니껴’가 유명세를 탔는지 안동을 방문한 울산 사회적 지원센터의 요청으로 지난 5월 28일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열린 앵콜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 날의 백미는 단연 성황리에 마친 공연이었고 또 그 무대 위의 단원들이었다. 하지만 유독 그날 필자에 눈에 띤 것은 실버극단 ‘왔니껴’ 단원들을 찾아온, 객석을 꽉 채운 그들의 손님들이었다. 옆집 이웃지기, 교회 친구, 자식들 그리고 남편. 60평생 주인공 역은 처음이라는, 만취 연기의 꽃을 피웠던, 호탕하게 웃는 연기가 매력적이었던 그들의 이웃과 가족들이 실버 극단의 ‘배우’라는 또 다른 이름의 자신들을 찾아온 것이다.
왜 그들이 그토록 첫 공연을 치르고 나서 ‘또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다는 표현을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특히 봉숙이 장경자 씨는 두 번째 공연에서도 가족들이 챙겨 준 청심환을 다시 원샷하고 무대에 오를 만큼 여전히 무대 울렁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대에 오른 그 모습만큼은 긴장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실버극단 ‘왔니껴’ 단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전에는 뭐라도 배우거나 모임을 하러 나가려하면 잔소리부터 들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단다. 극단에 참여해 첫 공연의 막을 올리고, 웬만하면 잘 했다는 얘기를 잘 안한다던 난닝구 정점수 씨도 남편에게 “거 잘했다”라는 얘기를 난생 처음 들었다며, 가족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그 누구의 조력과 칭찬보다도 기뻐하는 단원들의 모습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나도 한 번 해볼까”라며 아내의 모습에 은근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남편도 있었단다.
아내의 모습, 친구의 모습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핸드폰으로 러닝타임 내내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하던 지인과 난생 처음 꽃다발을 사서 안고 온 아내.
실버극단 ‘왔니껴’가 이루어낸 것은 단지 단원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간 실버세대와 지역사회에 소외되어 있던 문화예술에 보다 쉽게 다가서는 데에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실버’들이 이루어낸 것만으로 가치가 있기에, 연극을 볼 때까지는 예의 생각 하지도 않았던 연극 <월곡빵집>의 리플릿 앞장에 쓰여 있는 시크한 문구에 눈길이 간다.
“연기라고는 맹탕인 아마추어들이 떴다!”
맹탕 아닌 진국, 연기 아닌 진심. 실버극단 ‘왔니껴’의 다음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놀몸협동조합은?
2015년 1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예술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협동모임이다. 지역 사회 전반에 걸쳐 교육,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와 그 내용을 교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올해 창단한 실버극단 ‘왔니껴’는 그 첫 성과를 성공리에 장식한 사례가 되었다. 앞으로 지역 곳곳에 숨은 스토리를 찾아 ‘왔니껴’의 새로운 극을 모색하고 더불어 올 하반기에 두 번째 공연을 기획할 계획이다.
아울러 놀몸협동조합은 지역은 물론 각각의 소외된 많은 계층을 함께 아울러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또한 실버극단 외에 <생애콘서트>, <실버놀이단>,<실버 이야기보따리>를 진행하면서 <꿈꾸는 실버 문화예술단>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이다.(실버극단 단원가입문의:843-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