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 상서(글/장화익_중앙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까치가 집을 짓는 걸 보니 은행나무가 다 큰 모양이다’. 부산고용노동청장으로 재직하던 4년 전 이맘때 영주 금강錦江마을 고향집에 들렸을 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무심코 넘겼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을 지은 이후에도 나무가 계속 자라면 금방 가지가 벌어져서 둥지가 무너져 내린다. 즉 자라지 않는 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을 이유가 없고 기초가 부실하면 건축물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사상누각). 올해 87세이신 인생학 박사님께서 주신 지혜의 말씀을 새겨 청소년 특강 시 자주 인용하곤 한다.
아버지께서는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도공사를 위한 산판공사에 고생하시고 모친과 돌이 갓 지난 모자를 두고 1950년 9월 자원입대하셨다. 백두대간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하시다가 포위되어 따발총을 2발을 맞고 부산 국군병원에서 명예 전역하셨다. 총상의 후유증에 5남매를 키우기 위해 좁은 땅덩이에 농사일에 평생 고생하셨다. 누구보다도 강직하시고 양심적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늘 주위에 어려운 일 앞에 솔선수범하셔서 지금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작은 체수에 발바닥이 원시인처럼 험하고 무좀으로 쩍쩍 갈라졌던 아버지. 고된 노동에 밤에 끙끙거리시던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드렸던 기억이 오늘도 생생하다. 1991년 봄에 돌아가셨는데 막내를 제외하고 4남매가 취직 결혼하고 살기가 나아져서인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아버지의 빈 자취가 크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가슴을 시리게 한다. 산업화와 고도성장으로 자녀들의 벌이가 커지면서 아버지의 농업노동은 비중이 저절로 작아진 것이다.
그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20년도 더 지난 2013년 묵은 숙제 하나를 풀었다. 대구노동청장 재직 시 대구보훈청장이 돌아가신 분도 참전유공자 인정이 가능하다는 팁을 주었다.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돌아가신 분들까지 유공자로 인정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엄정한 심사 결과 아버지께서 참전 상이 유공자 6급으로 인정되시고 어머니께서 미망인으로 평생 연금을 받으시게 된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공자 인정서를 받은 후 아버지 영전에 큰 절을 드리셨다고 한다. 필자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상이군인이 오면 늘 양식이 부족한데도 쌀을 많이 퍼주라고 하셨다. 상이군경과 의기투합이 되면 막걸리 잔을 들고 그 시절 무용담을 나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고향 금강마을이 영주 댐으로 수몰되게 되자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에 대하여 자녀들 간에 토론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외딴 고향집에서도 20년 이상 혼자 살았는데 어디를 가던 무슨 걱정이 있겠냐고 걱정마라고 하셨다. 사실 필자도 겨울에 고향집에 며칠 머물게 되면 춥고 어설퍼서 떠나고 싶었다. 그런 어설픈 집에서 당당하게 혼자 살아오신 어머니야말로 내공이 막강하신 도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제 영주에 나오셔서 아파트에 사시는데 따르는 동생들이 많은 인기 짱인 할머니이시다. 필자도 동네 어른들에게 동네 사랑방이 된 어머니 집에 자주 들리시라고 당부 드린다.
어머니는 수몰 보상금을 받아 집도 사고 매월 보훈연금도 받으시는 이른 바 골드 실버이시다. 고향 금강마을에서도 하루에 세 가지 남에게 베푸셨는데(1일 삼선) 요즘도 그리 하고 계신다. 주변에 아이를 보면 천 원짜리 하나라도 쥐어주시고 가진 것 중 기왕이면 크고 좋은 것을 남에게 주신다. 마침 자식들에게 저금을 나눠주셨고 결과적으로 장인 중화상 병원비로 부담이 많은 동생에게 좋은 일 하셨다고 즐거워하신다. 좁은 시골집을 생각해보면 지급 사시는 30평대 아파트는 대궐이 아닌가 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신다.
어머니께서는 ‘전기밥솥 코드만 누를 줄 알면 따로 사는 것이 대세’라고 하시면서 건강이 하락하시는 한 자식들과 따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공직생활을 마친 지난 1년간 자주 들려서 다리를 주물러드렸더니 옛날 척추를 다쳐 끌던 다리가 한결 좋아지셨다. 그래서 불편해하시는 허리나 다리 치료 차원에서 찜질과 물리치료를 받으시도록 말씀드린다. 컨디션이 나빠지시거나 피로하시면 수시로 영양제 주사를 맞고 고기를 조금씩이라도 자주 드시라고 권한다. 그리고 늘 따뜻한 음식물을 섭생하시고 적합한 운동으로 체온을 올리도록 말씀드린다. 체온이 1도 떨어지면 암 발병률이 5-6배가 오른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어버이날 전후 오남매가 모두 어머니께 들렀다. 어머니는 간혹 자녀들이 이런저런 푸념을 하여도 거의 내색을 않으시고 들어주신다. 늘 자식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가슴 졸여하시는 어머니! 지금도 자손들을 위하여 물을 떠놓고 조왕신께 빌고 계신다. 더욱 건강하게 아버지 몫까지 오래오래 사시면서 자녀와 주변에 등대가 되고 기쁨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아마 아버지께서도 고된 노동 덜하시고 섭생을 잘 하셨으면 그 고비를 넘겨 아직 살아계실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모시고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들려주셨던 아버지! 병원에 입원한 막내아들을 걱정하는 생애 마지막 전화를 친절하게 들어드리지 못했던 안타까움은 늘 회한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이생에서의 무거운 짐을 다 지고 가셔서인지 자손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공덕으로 아마 저 세상에서는 여유 있고 행복한 생을 누리시리라 믿는다. 세월은 쉬이 가고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1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