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전의 안동청년과 소년들(글/김희곤)
지난 번 신간회안동지회 사진에 이어 이번 호에도 같은 시기인 1928년의 사진을 감상하기로 한다. 역시 예천 상동교회 담임목사(이교남)의 부인이자 선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덕순 선생이 수집한 것인데, 귀한 자료를 선뜻 제공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기에 소개할 안동청년동맹과 안동소년회 사진은 작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안동청년동맹 제2회 정기대회’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것이다. 당시 안동면 서부동에 있던 이 건물의 정확한 주소를 알 길이 없지만, 지난 호에 신간회안동지회가 보광학교, 즉 권택근성형외과(구 안동교육청) 자리에 있었으므로 두 건물이 그리 멀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석 장의 사진은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 사진 두 장과 안동소년회 한 장이다. 안동에서 1925년에 안동청년연맹이 결성되었다가, 사회주의적인 투쟁성향을 강하게 지니게 되면서 안동청년동맹이 1927년에 결성되었다. 그리고 안동소년회도 이 무렵에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동청년동맹 안동면지부 설립모임
먼저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 사진을 살펴보자. 그 가운데서도 우선 회관 앞에 회원들이 앉아 촬영한 것을 본다. 먼저 중앙에 행사 주제를 알리는 제목이 붙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선지로 보이는 종이에 붓으로 쓴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설립대회”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이 날의 행사내용이 안동청년동맹의 안동면 지부를 설립하는 모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오른쪽 기둥에 안동청년동맹이라는 현판은 안동청년동맹이 만들어진 뒤에 안동면지부가 결성되었다는 선후관계를 알려준다. 즉 안동청년동맹이 이 건물에 사무실을 두었고, 그것이 결성된 이후에 안동면지부가 결성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촬영 시기를 알려주는 정보가 사진 위쪽에 쓰여져 “1928. 1. 26”이라고 적혀있다. 필기구는 아마도 만년필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침 지난 호에 소개했듯이 이 날짜와 가까운 날에 신간회안동지회가 열렸으니, 그것과 비교해보자. 신간회안동지회 제2회 정기총회가 열린 날이 1월 28일과 29일이었으므로, 그렇다면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는 바로 그 이틀 전(음력 1월 4일)에 결성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대로 신간회안동지회에도 참석했을 것이고, 실제 사진을 비교해보면 여러 명 확인되기도 한다.
사진 내용을 정리하자면, 설날을 갓 지난 정초에 35명의 안동면의 청년들이 모여 안동청년동맹 안동면지부의 설립대회를 치르고 그를 기념하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16명이 검은 두루마기를, 19명이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또 모자를 쓴 11명 가운데 학교 모자를 쓴 한 명을 제외하면, 중절모와 ‘도리우찌’가 각각 반을 차지한다. 한 가지 이채로운 점은 왼쪽 기둥에 걸린 “안동소년회”라는 짤막한 현판이다.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 결성 이전에 이미 안동소년회가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데, 다음에 소개할 세 번째 사진이 바로 그 안동소년회를 촬영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안동청년동맹지부 기념촬영
두 번째 사진은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를 설립한 직후 낙동강변으로 나가 기념으로 촬영한 것이다. 우선 양쪽으로 서 있는 사람들을 헤아려보면 대개 34～35명 정도인데, 얼굴들이 모두 회관 앞에서 찍은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서부동에 자리잡은 안동청년동맹회관에서 창립회의와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에 자리를 옮겨 다시 사진을 찍은 것이다.
배경을 보면, 왼쪽 뒤편으로 용상동의 산자락이 보인다. 그러므로 장소가 오늘날의 법흥교 바로 옆에 있던 개목(포항浦項)나루 부근으로 여겨진다. 안동에서 임하와 영양으로 갈 때에 이 곳 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넜다. 그래서 일제경찰도 항상 이곳을 주시했다.
내왕도 내왕이려니와 시민들이 이곳은 시민들이 즐겨 유람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곳에는 매운탕 집이나 주점들도 자리잡았다. 왼쪽 모서리에 처마 끝이 살짝 담겨있고, 오른쪽 나무 뒤로 건물이 한 채 보이는데, 그것도 그러한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변 나루터 근처의 어느 식당에서 회식을 가지기 직전이나 직후에 기념으로 찍은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두 줄로 마주서서 도열한 것이 마치 무슨 경기를 치르기 위해 두 편으로 나누어 서 있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막상 눈여겨보면, 어떤 운동경기를 벌일 차림도 아니고 아무런 도구도 없다. 일단 뒤쪽 배경에 용상동과 낙동강물을 담아내기 위해 구도를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하다가, 그럴 경우 ‘두 줄로 앉으면 될텐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뒤로 흐르는 강물을 보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소년회 사진
세 번째 사진은 안동소년회를 담아낸 사진으로 추정된다. 물론 사진 그 어디에도 안동소년회라는 증거가 없다. 그러나 일단 44명의 소년과 8명의 어른으로 구성된 이 사진에서 안동소년회라고 추정할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앞줄 4명을 제외하면 뒤쪽의 아이들은 모두 소년들이다.
이제 현판을 주시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보자. 오른쪽 기둥에는 역시 안동청년동맹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왼쪽 기둥에는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 현판이 걸려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로 본 사진, 즉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 설립기념에 보면 “안동소년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라는 새 간판이 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이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가 결성된 1928년 1월 26일 직후의 어느 날이라 생각된다.
안동소년회 간판은 어디로 갔을까? 작년에 소개한 ‘안동청년동맹 제2회정기대회’ 사진을 보면 일단 현판이 네 개 확인되는데, 왼쪽 끝의 현판이 확인되지 않았다. 맨 왼쪽 기둥에도 간판이 있어야 균형이 잡히는데, 그렇다면 바로 그 끝에 안동소년회 간판이 붙어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안동소년회가 먼저 조직되어 간판이 붙어 있었는데,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가 설립되어 현판을 바꿔 달았고, 안동소년회 간판은 끝으로 밀려났다고 정리된다. 그리고 그 직후에 안동소년회가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소집되어 사진을 찍은 것이다.
모두 다섯 줄로 서거나 앉아 있다. 첫줄은 비교적 나이가 든 학생들이어서 성격이 확연하지 않다. 둘째 줄의 의자에 앉은 8명의 어른들은 아마도 교사 역할을 맡은 지도자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 가운데 반 수 정도는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 인물과 모습이 같다. 셋째 줄은 지도자들이 앉은 의자 바로 뒤에 학생들이 서 있고, 넷째 줄은 섬돌 위에 섰다. 그리고 맨 뒷줄은 긴 의자를 놓고 모두 일어서서 포즈를 취했다.
아이들은 모두 상고머리에다가 한복차림인데,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입은 경우가 3분의 1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개 저고리에 두툼한 조끼 차림이다. 어른들은 모두 의자에 앉았다. 맨 왼쪽 사람은 철제의자에 앉은 것 같은데, 오른쪽 아이가 앉은 의자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2명이 함께 사용하는 길쭉한 것이다.
안동청년동맹안동지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920년대부터 해방 후,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대까지 이 지역의 주역으로 활동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안동소년회 사진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지도자들의 뒤를 쫓아 해방을 전후하여 주역으로 떠오른 뒤 1960～80년대를 역사의 중심에서 살았으리라. 앳된 모습들은 그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들이 살다간 시대만은 참으로 인고의 세월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