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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가의 사람들, 그리고 수달(글/이동수)

‘그들, 강에 살다-낙동강 구담습지 생태보고서’라는 자연다큐를 11월부터 찍기 시작한지 3-4개월쯤 지나서부터였다. 안동시에서는 공공근로자들을 동원해서 구담습지의 풀들과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유는 그 식물들로 인해 장마 때 낙동강 물이 범람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98-99년에는 구담마을 앞 낙동강 물이 넘쳐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 습지를 계속 오가며 촬영을 하는 우리들이 곱게 보일 리도 없었다.

습지때문에 농사를 망친다고,

나로서는 난감했다. 안동댐이 생긴 후 물 조절을 하면서 낙동강엔 갑작스런 급류나 범람이 적어져 습지가 생기는 등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고, 그로 인해 철새의 보금자리가 되는 등의 자연의 복원이 한창인 이때 다시 그 습지를 모두 없애고 강 바닥을 파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물이 넘는 원인이 반드시 습지 때문이라는 결론을 누가 내린다는 말인가! 나로서는 이제 촬영도 중단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주민들로서는 절박한 일이었다. 올 해 농사도 홍수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누구에게 하소연할 것인가. 벌써 낙동강가에는 ‘낙동강 홍수의 주범, 습지 보호 왠말인가’ 등의 구호가 농민들에 의해서 내걸렸다. 급기야 주변 농민들과 자연보호 운동가들간에 첨예한 대립이 예견되고 있었다.

한번은 대대적인 제거작업의 하나인 습지 불태우기가 한창인 때 가까이에서 그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 뭔가 불안한 듯 했는데 작업 반장이 촬영을 저지했고 그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누구 편이냐고. 이 습지를 빨리 파내지 않으면 올해 농사도 다 망친다고. 그들은 강가에서 강과 함께 수백년을 농사지으며 살아온 농민들이었다. 그들의 절규는 어쩌면 잘못된 농정에 대한 오랜 원망이 한꺼번에 표출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생태보호론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습지로 인해 강이 범람하는 것이 아니라 댐 운용의 잘 못 일 수도 있었고, 또 수로를 낸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충분히 범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의 실랑이 속에서 청둥오리, 비오리, 쇠오리, 원앙이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해 허둥댔고, 시커먼 연기는 하늘로 솟아올라 습지의 식물들을 깡그리 태워 없애고 있었다. 주변에는 너구리를 잡아먹고 파 묻은 현장도 발견되었다. 아.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우리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던 거였구나. 그들도 야생동물을 포획하거나 잡아먹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야생동물 보호협회와 대구지방환경청에 연락을 하고 안동시에 습지 제거에 관한 내용을 문의했다.

안동시의 회답은 모호했다. 그냥 공공근로 작업이고 낙동강물이 범람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 전부였다. 자연보호보다는 우선 민원이 골치 아프다는 식이었다. 대구지방환경청에서 현장에 나오고 부터는 왠지 작업이 많이 축소되고 불지르기보다는 풀을 베는 소극적인 작업으로 일관하다가 그것도 며칠 후부터는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공공근로 일정도 끝난 모양이다. 글쎄, 자연보호를 위해서였는지 계획된 일정상 일이 마무리 되었는지, 농민들의 원망이 갑자기 없어졌는지 오히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구담 습지에 찾아든 평화

우리는 수달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 정도의 생태계라면 낙동강에도 수달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수달보호협회 박원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달의 서식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답을 들었다. 며칠 뒤 박원수 회장은 현장을 둘러 본 뒤 수달의 배설물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구담 습지 구역내 적어도 2-3마리의 수달이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낙동강변에 설치된 텐트를 하나 옮겼다. 인근 양수장에서 전기를 끌어 야간 조명을 준비했다. 수달이 좋아하는 물고기를 사서 강물을 웅덩이 만큼 막아 미끼로 던져 두었다.

MBK 조명이 겨울의 차가운 낙동강변을 밝혔다. 야간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텐트 속에서 나와 카메라맨 임호진(현 제일미디컴 사장), 카메라 보조 안윤식(현 제일미디컴) 세사람의 동거가 다시 시작되었다. 텐트속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니터를 따로 한대 빼놓아 모니터만 감시하면 되도록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전기를 끌어댈 수 있는 곳이어서 전기 장판을 깔았다. 한결 지낼 만 했다.

며칠동안 세 사람은 밤을 샜다. 수달은 사람의 눈을 피해 밤에만 활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수달은 나타나지 않았다. 슬슬 불안과 조급증이 생겼다. 그 사람 혹시 거짓말 한 거 아냐? 좁은 텐트에 쪼그리고 누운 세 사람의 인내심도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최초의 수달

“어! 형! 왔다. 왔어!”

수달이었다. 3월 어느날 밤 10시 50분.

낙동강에서는 최초로 수달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먹이를 갖다 놓은 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수달은 슬슬 웅덩이로 다가와 물고기를 물고는 헤엄쳐서 멀리 모래톱으로 가서 거기서 물고기를 먹었다. 조명이 환한 가운데서도 수달은 천연덕스럽게 우리를 위해 연기를 해 주었다.

다음날부터 수달은 우리와 친해질 요량인지 더 자주 들렀다. 밤 11시 30분에 시작해서 새벽 1시 15분, 3시 45분, 이렇게 2시간 간격으로 세 번을 찾아와 물고기를 먹고 갔다. 그런데 꼭 한 마리가 왔다가 가는 것이었다. 저 녀석이 짝을 찾지 못하면 이 낙동강에도 수달은 영영 사라질 것인가. 낙동강의 마지막 수달이 될 것인가.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5시쯤에 눈을 잠시 붙였다가 다시 아침 8시30분에 일어나 컵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점심땐 또 컵라면+햇반. 낮에는 구담 습지 구석구석을 답사했다.

며칠 후 새벽 5시에 깜박 잠이 들었다가 아침 7시에 일어나 보니 수달은 물고기를 다 먹고 사라졌다. 도대체 녀석은 어디로 어떻게 다녔을까. 궁금했다. 수달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이제 우리도 수달 박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달의 발자국과 너구리의 흔적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까. 수달은 모래밭을 가로질러 산 쪽으로 가서 말조개 서식지에서 잠시 머문 흔적을 남겼다.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아기 두 마리와 엄마가 놀았던 자취가 남아있었다. 이들은 산밑 큰 웅덩이를 지나 다시 우리 텐트 쪽으로 발자국을 남겼다. 아마 새벽쯤이었던 같다. 조명이 있는데도 우리 앞을 세 마리가 유유히 지나간 것이다. 잠시 깜박한 사이에 그걸 놓치다니……

마지막 선물

그 후 수달은 2-3일 간격으로 왔다가 가곤 했다. 수달의 촬영도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수달보호협회 박원수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좀 날 것 같으니 한번 둘러보겠다고 한다. 오후 세 시경 습지 주변 2-3Km를 둘러보고 나서 대충 추정을 했다. 이 근처에 한 마리, 텐트 아래쪽에 두 마리가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회사로 돌아와 이제까지 찍은 그림을 함께 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한 마리로 보았던 녀석을 박회장은 두 마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서로 생김새가 다르다는 거다. 아하 그랬던 거였구나. 똑같이 보여도 얼굴이 다른 놈들이었구나.

박회장은 농을 덧붙였다.

“오늘밤 두 마리가 같이 나타날 겁니다.”

정말이었다. 그 날 밤 우리는 수달 두 마리가 함께 카메라에 잡히는 행운을 맛보았다.

그러나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고 했던가. 수달이 두 마리 함께 왔다간 뒤로 녀석들은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간 것이었다.

수달과 함께 꼬박 밤을 새운 지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였다. 다른 텐트(양수장 근처)에서 며칠 밤을 더 새웠지만 녀석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후에 박원수 회장에게 들은 얘기지만 동생들을 낳기 위해 녀석들은 어딘가 새로운 집을 장만한 것 같았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