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틈새를 메워주며 대중화를 겨냥한 작업(글/조정현)“선비와 피어싱? 피어싱이 뭐로?”
민속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동학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하는 가운데 30대 후반인 한 선배에게서 나온 첫마디다. 피어싱(piercing)이란 용어가 도심지에서는 상당히 유행한다고 하지만 안동에서는 좀처럼 듣기도, 실제로 보기도 어려운 풍경이기 때문에 나온 말이리라. 다소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나온 “조희진의 우리옷 문화읽기”는 우리가 입어왔던 옷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저 호기심거리로 스쳐가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옷과 관련하여 궁금해하던 사항들을 문헌자료, 구술자료, 유물자료, 사진자료, 신문과 잡지 기사 등까지 총동원하여 속시원하게 논리적으로 풀어주고 있다. 옷에 접근하는 저자의 시각은 다음과 같은 언술에서도 잘 드러난다.
“끊임없이 할매들을 찾아다닌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옷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옷을 만들고 입고 손질했던 할매들의 경험과 삶을 이해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옷에 관해 정통한 지식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당대의 문화와 변화되는 모습까지 포착할 수 있는 민속학적 눈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속학은 민중의 생활문화를 조사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민속학은 사실 금방 눈에 띄고 특이하고 일반 대중들이 신기해마지 않는 소재들을 주로 많이 다루어왔다. 또한 구비문학과 탈춤, 풍물, 민속신앙 등이 주요 소재로 채택되면서 실제적인 생활문화의 측면에 대해서는 연구성과가 미진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선시대의 생활상, 일제강점기의 생활상,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생활문화의 전통 등이 조망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전통시대의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연구사적 지점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학부에서 의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선택함으로써 학제적 연구의 모범을 보인 젊은 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유물을 발굴하는 현장과 함께 시골 할매들의 평범한 생활까지도 함께 조사 연구함으로써 유물자료와 문헌자료, 그리고 구술자료를 입체적으로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다는 점 역시 이 저서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주로 옷을 둘러싼 얘기들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용어도 생경한 개짐(서답, 월경포), 살창고쟁이, 가슴을 가리는 헐띠, 상복, 귀고리, 가체, 돌복, 비녀, 몸뻬, 수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옷문화의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는 현대인들의 상식과는 달리 다양한 종류의 개짐도 있었고, 우리의 남자 선조들도 귀고리를 했으며, 머리카락을 섞어서 만든 짚신 등도 언급되고 있다. 특히 옷과 관련된 문화, 즉 빨래, 색깔, 의례복,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 일옷인 몸뻬 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옷문화를 포괄하고 있음이 큰 미덕으로 꼽힌다.
결국 이 책은 저자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옷․문화․사람․생활, 이 모든 재료를 버무려서 글을 써내려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각 꼭지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옷문화에 대한 전체적인 큰 짜임새를 제시하지 않은 채 흥밋거리가 되는 꼭지들을 나열하고 있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몇몇 글만 읽고 저자가 진실로 의도하고 있는 옷문화에 대한 통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례도 접하게 된다.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이 책은 출판사의 열의와 저자의 우리옷에 대한 관심이 만난 결과이다. 하지만 ‘선비와 피어싱’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업적인 전략이 상당부분 담겨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의 실제내용은 주로 여성들의 옷과 의례복, 그리고 장신구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15개의 꼭지 중 한 부분을 제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즉 “지금껏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옷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비밀스러운 이야기만이 아닌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고 그들 역시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저서가 그동안 하찮게만 여겼던 선조들의,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을 여러 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틈새연구를 촉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