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 초기 토지소유현황을 알려주는 토지조사부(글/김희곤)
1910년에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정책이 토지에 대한 장악이었다. 당시 우리 경제는 농업 위주의 1차 산업에 머물러 있었다. 공장이나 상업보다는 토지에서 생산되는 곡식으로 경제가 움직여지는 단계라는 말이고, 부의 기준이 토지와 그곳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위주였다.
때문에 일제는 토지 장악을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로 삼고, 통감부 시절인 1908년 8월에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공포하였다. 이어서 한국을 강점하자마자 한 달 뒤인 1910년 9월에 바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면서 1912년 ‘토지조사령’으로 본격화시킨 뒤, 1918년 11월에 이를 완료함으로써 토지장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였던 것이다.
토지조사사업의 본래 목적은 많은 토지, 특히 국유지를 총독부 소유로 귀속시키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종래 한국의 전통적인 토지소유관계 대신에 일제 자본이 토지를 장악하기에 알맞은 토지소유 증명제도를 마련하였다. 그 과정에서 탈취된 상당 부분의 토지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일본인 지주가 증가했고, 곳곳에서 영농단을 조직하여 일본 농민의 신천지를 개척하였으며, 식민통치의 앞잡이 구실을 도맡았다.
조선 말기에 이미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래서 토지의 자유로운 매매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등기제도와 같이 사유권을 보장하는 법적인 증명제도가 충분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경작하고 있던 농민들도 토지소유권만이 아닌 경작권이나 도지권(賭地權 ; 토지를 전세로 빌려 쓰는 권리) 같은 권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는 지주의 권리만을 인정하고, 농민의 권리를 모두 무시하였다. 이로써 일본이 우리의 토지를 쉽게 장악하고, 특히 러일전쟁 이후 일제 자본이 조선에 침투하여 장악하고 있던 많은 토지를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이것은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잃었다는 말이다. 결국 토지조사사업은 식민지 지주제의 발전, 농민층의 계층분화와 몰락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으로서는 민족분열정책으로 성과를 거둔 셈이다.
토지조사사업은 또한 조세약탈에도 영향을 주었다. 즉 이 사업은 1914년에 공포된 토지세법인 ‘지세령’과 함께 조세수입을 증가시키는 데에도 작용하였던 것이다. 지세령을 통해 일제는 세율을 40% 인상하고 지세의 납부자를 지주로 확정하였다. 이는 소작 농민과의 직접적 대립을 피하고 지주층을 식민지 지배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천전동 토지조사부
안동지역에도 토지조사사업이 진행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는 대개 1913년에서 1914년에 집중적으로 펼쳐졌는데, 현재 남아있는 <토지조사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안동시가지가 미국 공군기의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대부분의 문서들이 불타버렸지만, 당시 <토지조사부> 일부는 겨우 잔존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만하다.
안동에서 조사되고 작성된 <토지조사부> 가운데 천전동(내앞마을)의 일부를 살펴보려 한다. 표지에 안동군 임현내면(臨縣內面) 천전동, 즉 오늘의 안동시 임하면 천전동(내
앞마을)이라는 주소가 적혀 있는데, 자료가 동 단위로 분류되고 묶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앙에 <土地調査簿>라는 제목이 있고, 왼쪽 아래에 조선총독부임시토지조사국이라는 주관처의 이름이 적혀 있다. 내용을 기록한 용지는 ‘임시토지조사국’의 전용이라는 의미로 용지 끝에, 그리고 책을 묶는 쪽에 ‘(土地調査簿用紙) 乙’이라고 각각 인쇄되어 있다.
<토지조사부>의 내용에는 가로 13칸 세로 8칸으로 표가 그려져 있다. 13필지에 대해 8항목으로 조사하여 기록하였다는 의미이다. 우선 맨 위칸에는 새로 제시된 지번(地番)이 인쇄활자로 찍혀 있다. 즉 전체 토지의 번호를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그 아래 칸에는 역시 지번이 적혀 있는데, 이것은 가지번(暇地番), 즉 임시 지번이다.
그런데 임시 지번에 일본어로 보이는 ?(이) 구口(로) 등이 조그맣게 덧붙여 있다. 아마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 아래에 지목, 즉 땅의 종류가 적혀 있다. 집이 들어서 있던 대(垈)를 비롯하여, 밭 전(田)과 논 답(畓)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네 번째 칸에는 지적(地積), 땅 넓이가 적혀 있다. 단위는 평(坪)인데, 작은 것은 59평에서 큰 것이 1,125평이다. 다시 그 아래, 다섯째 칸에는 신고기일이 기록되어 있다. 내앞마을 토지조사부는 대부분 1913년 4월 8일자로 등록되었다. 여섯째 칸에는 소유자의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일단 내앞마을 거주자의 경우는 주소를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다른 마을 거주자의 경우는 주소를 모두 기록하였다. 동후면 박곡동을 비롯하여 반시동(盤市洞) 사람도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다음 칸에는 소유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마지막 칸 비고란에 ‘협동학교재산(協東學校財産)’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이것은 협동학교 소유라는 말인데, 모두 임동면 박곡동(박실)에 주소를 둔 유동태(柳東泰) 소유로 되어 있다.
협동학교는 안동 동부지역 7개 면(임현내면-임동면-임북면-임서면-길안면-동후면-와룡면)에서 토지를 투자하여 1907년에 설립된 중등학교였다. 이렇게 투자된 토지는 이들 7개 면에 산재하였다. 그런데 1910년에 나라를 잃게 되자 12월말에 그 주역들이 만주로 향하여 망명길에 올랐다. 서간도지역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백하(白下) 김대락(金大洛)과 김동삼(金東三)을 비롯한 내앞마을 의성김씨 문중에서 대거 망명했던 것이다. 그 뒷일을 도맡아 협동학교를 한들로 옮기고 교장을 맡아 이를 유지해 나간 인물이 바로 유동태(柳東泰)였다. <토지조사부>가 만들어진 1913년 당시 협동학교 관련 토지 소유자로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동부지역 7개 면에서 협동학교 재산으로 기록된 재산은 모두 73,000여 평이었다. 이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협동학교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토지조사부>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던 무렵에 안동지역의 토지 소유 정황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토지소유자들의 주거지 분포는 내앞마을과 주변마을의 관계를 알려주고, 특히 만주에 망명하여 사라져간 인물들의 정확한 주소와 위치 및 토지소유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료에 등장하는 김긍식(金肯植)이 바로 만주의 호랑이로 불리던 김동삼이니,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안동에는 한국전쟁 당시 <토지대장>이 불타버려 이후의 소유자의 변화과정에 대해 상당 기간 확인할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자료라도 보존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라 생각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