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시, 이대로 좋은가?(글/이정희)올해도 어김없이 입시철이 돌아왔다.
지난해 이맘때쯤, 이제는 교육적인 도를 넘어선, 막가는 대학 입시전을 취재한 기억이 난다. 금품과 향응이 오가고 돈으로 학생을 사는, 너무도 심각한 비교육적인 행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교육부도 어찌할 수 없는 입시전쟁 말이다.
학생은 부족하고 대학은 많고.. 대학의 모집정원보다 수험생이 적은 대입정원 역전시대,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었다.
기형적이고 비교육적인 입시행태
그런데 사활을 건 비교육적인 입시전쟁이 고등학교 입시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드디어, 고등학교 모집정원보다 중학교 졸업생 수가 적은 고입정원 역전시대까지 개막된 것이다. 그릇된 대학 입시전의 축소판은 안동과 영주등 선발제로 학생을 뽑는 중소도시 고등학교마다 비슷한 양상이다.
12월 중순, 일반고 원서접수가 다가오면서 고등학교 교사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예비 신입생인 중3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중학교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학생들조차 선생님의 얼굴을 여유있게 보기가 쉽지 않다. 수업에 지장을 줄 수 밖에 없다. 교사들 조차 수업 부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털어놓고 있다.
신입생 유치에는 교사 뿐 아니라 재학생까지 동원된다. 특히 여자고등학교는 각 출신 학교별로 조를 짜서 모교 후배들을 맨투맨식으로 쫓아다니며 지원을 설득하고 있다.
유치활동은 중학교 교사들에게 술접대로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밖으로 드러나는 술자리는 이래저래 부담이 있기 때문에 회식비를 현금으로 주거나 선물을 준다고 한다.
중소도시 고등학교의 현행 입시제도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런 풍경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지극히도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시에서까지 이 같은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가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화 돼 있으니 1등학교엔 지원자가 넘쳐나고 성적이 낮은 학교엔 지원자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이런 지원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든 부분이 크다는 것이다. 지원 학생 가운데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성적 인지도는 좀 못하지만 장학금을 주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내신성적으로 신입생을 뽑는 수시모집에 응시해 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은 내신등급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A고등학교 꼴찌보다는 B고등학교 1등을 원할 것이다. 혹은 학교 시설이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선생님들이 좋아서, 학교의 교육적 특성이 좋아서,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따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런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고등학교의 커트라인이 전형을 하기도 전에 미리 정해지고 그 점수에 의해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A학교에는 몇 등부터 몇 등까지, 다음 B학교는 몇 등까지..이런 식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선발제의 가장 큰 장점인 학생의 선택권은 교사나 부모에 의해 무시되기 십상이다.
구조적인 문제는 학생부족이다. 출산율 감소로 고등학교에 들어갈 학생 자체가 해마다 크게 줄어들고 있다. 올해 안동지역 13개 전체 고등학교의 입학정원은 2천5백명 선으로 지난해보다 10%나 감소했다. 학생이 모자라 학급당 학생수를 전국 최저수준인 30명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학교 졸업생은 2천백여명에 불과해 입학정원에 턱없이 모자란다. 단순 계산으로도 4백명이 모자라고 외지에서 들어오는 인원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2백명 이상은 미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사정은 선발제로 학생을 뽑는 영주지역도 마찬가지다. 전체 고등학교 모집정원은 천7백명인데 중3중학교 졸업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기형적이고 비교육적인 입시행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일부에서는 평준화 도입을 대안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평준화가 최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공교육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교육당국의 묘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졸업예정자는 천5백명, 150명이나 모자란다.
아무리 학교홍보를 열심히 해도 구조적으로 미달을 피할 수가 없게 돼 있다. 누가 더 학생을 많이 빼앗느냐.. 어느 학교에 미달인원을 더 많이 내게 하느냐를 두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11월) 마감된 실업계 고등학교의 원서접수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지역 실업계 고등학교는 최고 20%에 가까운 사상 최악의 미달사태를 빚었다.
고등학교도 어떤 식으로든 몸집을 줄여야 하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가장 쉽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정원감축이다. 사립학교가 대부분인 지역 고등학교는 의외로 정원감축에는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뜻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데는 나름대로 말 못할 이유가 있다. 남아도는 교사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민감한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학재단에서는 남는 교사들을 공립에서 받아주면 얼마든지 정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립 교사들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공립에서도 교사가 넘쳐나는 판에 형식적인 시험만으로 사립교사들이 해마다 공립으로 대거 전환되고 있고 경력까지 그대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범대 출신자들도 신규임용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공립교사로 발령받기가 쉽지 않은데 임용고사도 치르지 않은 사립 교사들의 거져 먹기는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교육당국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을 놓는다면 중학교 졸업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기형적이고 비교육적인 입시행태는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평준화 도입을 대안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평준화가 최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공교육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교육당국의 묘안이 절실한 상황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