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사장 금창태씨(글/박명옥)낙동강을 바라보며 꿈을 키운 유년시절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은 신세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봉화금씨 동래봉파의 30대손으로 3남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며 집은 안동시내에 있었지만 조부는 남선면에 계셨다고 한다.
신세동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안동동부초등학교는 마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집과 샛길 하나를 사이에 둔 학교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성장기를 보냈다. 공이 귀했던 시절이어서 닳고닳아 속에다 솜을 넣은 고무공으로 한 동네축구는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또 한 군데의 놀이터가 있었다면 낙동강이다. 당시에는 수량이 풍부했고 그 시절 낙동강은 청소년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놀이터였다. 여름에는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헤엄치거나 고기잡이를 했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예천까지 이어져 자동차가 다니는 둑방길은 당시 클로버와 들꽃으로 뒤덮여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있었다. 선어대는 절벽 아래로 푸른 물이 흘러 명주실을 풀어내리면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급경사길에 사고가 나기도 했고 저녁이면 귀신이 나온다고 지나기를 꺼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때의 안동이 <물 맑고 조용한 도시>였다는 그는 그런 정겨운 풍경이 사라져 아쉽다고 한다.
그 때도 안동은 교육의 중심지였다. 영주와 의성, 예천, 문경 등지에서 학생들이 유학을 와 안동사범학교 병설중학교를 다닌 중학교 시절부터 타지에서 온 자취생 친구들이 많았다. 안동에서 나서 자란 그는 친구들의 자취방에도 곧잘 놀러가 공부도 하고, 추억도 쌓았다. 언젠가 김장을 담은 겨울에는 어머니 몰래 친구들에게 김장김치를 나누어주며 인심을 쓰기도 했다.
안동고 출신인 그는 고교시절 신세동에서 용상동까지 등하교할 때 지금처럼 법흥교를 지나다녔다. 그러나 나무로 된 목조다리는 장마가 지면 물에 파묻혀 건널 수가 없어, 범람하는 강을 나룻배로 건넜다. 크지도 않은 나룻배에 백여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타고 강을 건넜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고 대형사고 안 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며 무모하지만 다들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강산도 바뀐다는 세월 따라 많은 것이 변했다. 그가 청소년 시절의 꿈을 키운 안동고는 낙동강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갔고 그가 다녔던 교정은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농지 한 가운데 단층목조 건물이었던 교사가 민가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용상동의 풍경은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는지.
한국언론사의 한 축에서 보낸 38년 기자생활
"병설중학교 시절 학급지를 만들면서 나중에 크면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잡지에 실린 만화를 옮겨오고 교내소식을 싣는 정도의 학급지였지만 그 때의 다짐이 계기가 되었는지 실제로 일간신문 기자가 됐습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1965년 당시 창간된 중앙일보에 견습 1기로 입사했지요"
현재 우리나라 언론의 역사는 120년에 이른다. 1883년 한국 근대 신문의 효시인 한성순보가 창간되었고 1896년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됐다. 중앙일보 입사 이후 그가 언론계에 몸담아온 38년은 한국언론 역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이 되는 셈이다.
짧지 않은 세월을 언론계에 몸담아오면서 그가 시도한 가로쓰기, 섹션신문 등은 중앙일보가 국내 3대 일간지로 서는 데 밑거름이 됐다. 기자에서 일간신문 대표이사로, 시사주간지 사장으로 재직하면서는 굴곡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거쳐왔다.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직후의 혼란했던 사회정황 속에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로 옮겨오기까지 그가 기자로 지켜본 현대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격동의 세월이었다.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있었던 현장에는 그가 있었다. 현재까지 방북횟수만 3차례. 중앙일보 편집국장 직무대리였던 1987년 적십자회담 때 기자단 대표로 처음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2000년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또 한번 북한을 찾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분위기 속에 방북이 이루어진 만큼 남북언론교류에 관한 협의가 진행됐고 당시 협상위원장을 맡은 금창태 사장이 김정일과 건배를 나누는 모습이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중국 장택민 총리를 국내 최초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40년 기자생활을 통해 체득한 지식이자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기자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취재원 앞에서 겸손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국가통치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듯 기자도 국민들로부터 알권리를 위임받은 것이죠. 언론의 권리를 기자 개인의 권력으로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취재원은 취재대상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대로 대해야 합니다. 취재원의 사생활과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언론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사회정의 구현에도 기여할 수 없지요. 비리와 부정을 비판하되 권력남용과 언론횡포는 경계하는 인간다운 기자되기를 당부합니다."
세종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후학양성에 나서기도 한 그는 8월 정년퇴임 후 겸임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2003년 4월부터 정통시사지인 시사저널의 사장으로 옮겨왔다. 대표이사, 발행인, 편집인으로 여러 직함을 갖고 있지만 편집진과의 회의를 통해 잡지의 논조와 주요 기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을 주로 한다.
시사저널 외에도 우먼센스, 일요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발행하는 독립신문사의 법인명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복합언론사로 국내 최초의 민간언론 독립신문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65년 언론계에 입문해 38년째 현장을 지켜온 금창태 사장에게 지금의 자리는 예정된 항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봉사로 이웃과 함께하는 사회 꿈꾼다
금창태 사장은 지난 12월초 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 한국자원봉사자협의회 공동대표, 세계청소년봉사단 총재, 제17차 자원봉사세계대회(IAVE) 공동조직위원장등을 맡아 자원봉사활동 활성화와 봉사단체 지원을 주도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복지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건전한 시민정신이 중요합니다. 민주시민은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지요. 우리가 계층간 갈등을 극복하고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는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재직하게 된 94년부터 자원봉사를 시민사회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자원봉사 대축제를 주재해왔다. 이후 세계 곳곳에 대학생들을 자원봉사자로 파견하는 세계청소년봉사단을 창설했고 자원봉사 단체 중견간부와 학계인사들로 구성된 한국자원봉사포럼을 통해 자원봉사의 문제점과 이슈를 토론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해왔다. 무의탁 결식노인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도 주도해 만들었다.
자원봉사를 유도하는 단체와 관련정책을 제안하는 기구 등을 수없이 조직하고 진행해오는 동안 국내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국민들의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참여가 늘어난 데 비해 지도층의 자세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책임있는 자들 스스로 그들의 명예와 입지를 세우기 위해 부과한 자율적 도덕률인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우리 지도층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고 특권을 누리려는 의식만 강하죠. 사회는 민주화되었다고 하는데 지도층의 사고는 이조말기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금창태 사장 자신이 자원봉사에 앞장선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그동안 누린 혜택을 사회로 환원하기 위한 차원에서 자원봉사운동을 펼쳐가고 있다. 자원봉사를 ?순수한 동기에서 평생을 두고 꾸준히 하는 것?으로 정의한 그는 앞으로 10년째 국회에 통과되지 못한 자원봉사진흥법의 입법에 매달릴 생각이다.
빈번히 왕래하는 고향 안동을 바라보며
현재 금창태 사장은 재경 출향인사들의 모임인 영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친목단체이지만 단순한 모임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최근에는 <영가문화대상>이라는 제도를 마련했다. 안동이 가진 고유의 문화적 가치를 알고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마련한 상이다.
안동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지내면서 시도한 사업도 비슷하다. 안동사람이자, 안동고를 졸업한 이들이 지역과 학교를 빛낸 흔적을 교정에 남기기로 한 것이다. 지난 10월 고려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인 김동기 박사가 재학시절 전국시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시비를 세운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다.
안동에서 나고 자라 현재까지도 안동을 빈번히 오가는 금창태 사장이 안동과 관련한 단체나 모임을 통해 벌이는 사업들이 모두 기록의 의미를 갖는 듯하다. 영가문화대상과 안동고 졸업생들의 흔적남기기는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그의 기질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금창태 사장이 회상하는 안동의 옛모습을 따라가자니 기자에게도 그 시절 안동의 자연과 인심이 그대로 그려진다. 그것은 그 동안 안동을 거쳐온 이들이 말하는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동사람 모두가 공유해온 안동의 정서는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어서일까. 그 때의 선어대가 깊은 낭떠러지 절벽이었고 댐이 건설되기 이전의 낙동강이 깊은 물줄기였다면 80년대에 안동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무엇으로 안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안동사람>이라고 <나의 안동>을 떠올려보자니 한편으로 지금의 안동은 그때와 많이 달라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번에 안동에 내려갈 때는 지금의 안동이 보여주는 풍경들 위로 금창태 사장이 말하는 그 시절의 안동과 내가 거쳐온 안동이 겹쳐져 보일 듯하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