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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고봉만큼 인심 두둑한 임동식당(글/권태용)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아있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서울역 그 식당 / 함민복>

안동 북문시장의 시퍼렇고 낮게 드리운 천막들 아래로 지나갈 때면 삶은 이렇게 하늘 한 뼘 들어올 여유가 없이 팍팍한 것인가 싶다가도, 너털웃음과 질퍽한 입담들로 흥이 오르고 좌판 앞에서의 실랑이조차 일상사의 재미로 느껴질 때면, 그래도 팍팍하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싶다.

“뭐 훔쳐갈게 있어야지”

북문시장 그 길 끝에서 만나는 ‘임동식당’,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주인은 간 데 없고, 대신, 난로위에 얹어놓은 커다란 국 냄비만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저 혼자 끓고 있었다.
아무리, 탁자가 세 개 뿐인 단촐한 식당이라지만 문도 다 열어놓고 어딜 가셨을까, 이러다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나, 목이 빠져라 기다려보는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다리를 절면서 들어서는 주인 아주머니. 보기에도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

“아니, 문도 열어놓고 어디 다녀오셨어요? 이러다가는 누가 가져가도 모르겠어요.”
“뭐 훔쳐갈게 있어야지. 가지고 갈라면 가지고 가라고 그래..”

안동시내에서 임동식당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던 그 소문 속의 주인공처럼, 과연 통이 큰 아주머니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식당엘 왔으니 음식맛부터 보는 것이 순서일터. 칼칼한 입맛을 축일 칼국수를 시켰는데, 웬걸, 나물 숭숭 썰어놓고 휘휘 저어 끓여내니 한그릇이 가득이요, 밥까지 고봉으로 얹어 내면서도, 모자라면 더 퍼다 먹으라니 그 인심에 배가 먼저 부를 지경이었다.
칼국수를 먹고 있는 중에도 틈틈이 손님들이 드나들었는데, 한결같이, 찬이고 밥이고 그저 내 집에서 먹듯이 냉장고에서 꺼내먹고 퍼다먹고 하는 것이 아닌가…

밥도 편안해야 살이 되고, 사람도 편안해야 정이 붙는 것이 세상이치이고 보면, 임동식당과 임동아지매가 유명해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무뚝뚝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임동 아지매였지만, 정작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자 극구 만류를 하는 것이었다.

무뚝뚝하지만 속내 깊은 임동식당 주인아지매

“여기는 바쁠 때도 없고 사무 놀아. 식당이야기? 딴 집에 가서 물어봐. 말할 것도 없어. 우리는 단골도 없어. 배고프면 한 숟가락 먹고 가고 그러는 거지. 얼른 먹고 가. 고마”

단골이 없다고? 임동식당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단골이고 한솥밥을 먹고 사는 식구들이다. 이어지는 실랑이가 보기에 딱했던지 딴 탁자에서 먹고 있던 손님이 슬그머니 거든다.

“이 아지매 하는 이야기는 반대로 알아들으면 돼요. 단골이 없다고? 마구 다 단골이래요. 이 집은 공짜라도 줘. 아지매가 손이 커요. (제육볶음) 한 접시 해서 4000원 받는 거를 딴 데 가면 8천원 1만원씩 받아요. 그것도 여기는 접시에 가득이래요”

주인보다 오히려 손님이 더 열성적으로 임동식당 자랑을 늘어놓는다.
“첫째, 부담이 없어요. 가격이 저렴하고. 막 꺼내 먹어도 되고, 저기 난로위에 있는 국도, 그냥 퍼먹어요. 공짜로 주는 거래요. 그러니까 여기로 오지요. 음식도 맛있고 미더우니까”
공짜를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속설도 있지만, 그렇다면 여기 오시는 손님들이 다 머리가 벗겨졌느냐하면, 천만의 말씀. 공짜여서가 아니라 그 넉넉한 인심이, 그 무뚝뚝하지만 깊은 속내가 그리워서 자꾸만 임동식당을 드나드는 것이다. 그러나, 손님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우리의 임동아지매는 어서 가라고 손님 내쫓기에 여념이 없다.

“항상 저래요. 무뚝뚝하고 심사 뒤틀리면 욕 마구 나오고…손님 내쫓는데는 여기 밖에 없을거래요. 내쫓는다고 우리가 가나. 허허허”

“인제는 세도 벌어 내기 힘들다니깐”

원래 임동이 고향이었던 아주머니는 상지전문대학 시절, 큰 애 공부시키러 학교 근처에 왔다가 우연찮게 식당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자리 잡았던 북문시장에 정이 들어 시장안에서만 가게를 이리저리 옮겼을 뿐 내내 북문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식당 일을 하며 삼남매를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냈지만, 임동식당과 북문시장은 임동아지매에게 단순히 밥줄이 아니라 이제는 삶의 터전이요 고향과도 같은 식당이 돼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고향 같던 시장도 이제는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인제는 세도 벌어내기 힘든다니깐. 사람이 없어. 다니지를 않아. 그전에는 밤에 12시, 3, 4시까지도 있었는데, 요새는 8, 9시 되만 기척이 없어. 상권이 죽어버렸어. 안와. IMF 이후부터 더 안돼. 여기가 마구 식당이랬그든? 마구 식당이랬는데 몇 년 안 있으니 시시만큼 다 나가고. 나는 그냥 소일거리로 하는 거지 뭐. 돈벌라고는 이거 못해. 맥주 한 병에 딴 데는 3천원 받는데 나는 2천원 받는데도 안팔리는 걸 어예노.”

“돈 안주면 그만이지뭐. 밥한끼 줬는 냥 치지”

칼국수와 보리밥, 해장국, 도루묵찌개, 제육볶음… 딱히 특징 있어 보이지도 않는 차림표지만, 그릇 가득 정을 퍼주고 있기에 손님들은 임동식당을 잊지 않고 찾는다.

손님이 있건 말건, 돈을 받았건 안받았건 상관없이 수시로 자리를 비우는 임동아지매. 그만큼 손님과 주인 사이에 믿음이 깔려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간혹, 정말 말 그대로 공짜로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돈 안주고 가는 사람?) 왜 없어. 천지래. 그만이지 뭐. 밥 한끼 줬는 양 치지. 막걸리 먹고도 돈 안주고 가고. 밥 먹고도 그냥 가부고. 내일 준다 그래놓고 다음날 되면 또 내일 준다… 뭐하는 사람인 줄도 난 몰래. 안주는 거 어예노. 고함지르고 싸운다고 내놓나. 어예노.”

“여기는 매상 될 것도 없어. 옛날에 밥 한 그릇 딴 데는 2천500원 하는데 나는 1천500원 받았거든. 그러니까 학생들이 많이 왔지. 싸게 파니까 돈도 안 남지 뭐. 거의 집에서 먹는 밥같이 먹는 거지. 그니까 학생들 중에는 결혼 했는 사람들도 안동 오면 더러 지나가다가 여기 찾아 오기도 해.”

그렇다. 밥이 채워주는 것이 어디 한때의 허기뿐이겠는가.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정에 주린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더 큰 위안이요 희망이 될지도 모르는 일.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임동아지매는 다리를 절어가면서도 오늘도 식당문을 열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다리 아픈지가 하마 4년째래. 무릎에 연골이 다 닳았어. 예전에 수술할라고 가게를 내놨는데, 가게도 안 팔리고, 수술비도 많고, 쉬면서 있어보니까 안돼. 장사 안하고 있으니까 돈만 자꾸 쓰고. 또, 있어보니까 다리가 덜 아픈 것 같애. 그래서 장사를 새로 한거래. 하니까 또 다리 아파 못 견뎌.. 이제는 (가게를) 내놓을라고.. 내 놔야지뭐.”

그러나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선뜻 식당을 팔지 못하는 마음.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밥을 짓고 찬을 차리다보면, 임동식당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야박하게 대하질 못한다는데,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이름도 나이도 성도 가르쳐주지 않는 그 뚝심 한번 대단하시다.

옆에서 보기가 그랬던지, 북문시장에서 함께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께서도 힘을 실어주신다.
“아이고…선전할라고 돈 주고도 하는데, 왜 안할라고 그러노.”
“이런데 나오려면 특이한 게 있어야 되는데, 나는 특이한 것도 없는데 뭐하러 취재를 하러 왔노. 빨리 가소 ” 하시며 연신 손사래를 치신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장터 아주머니들 말씀이 더 걸작이다.

“특이하잖아.. 무뚝뚝한 걸로 특이하잖아… 원래 저래 무뚝뚝해요.. 하하하하하...”
배꼽 빠지게 웃어대는 시장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시장을 돌아나오는데, 어느 새 훈훈해진 속과 마음은 아무래도 아까 먹은 칼국수의 온기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