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로체를 가다 안동대산악부 강기석씨(글/이미홍)기다린 지 한 시간여쯤 지났을까, 강기석(자동차공학 4년, 26세)은 급히 다녀올 데가 있어서 늦었다며 손에 맥킨리 원정 계획서를 들고 나타났다. 마치 그 급히 다녀올 데가 그가 우리 앞에 내민 ‘맥킨리 원정 계획서’와 관계가 있다는 듯. 그 바람에 왜 늦었는지 묻는 걸 깜박 잊고 말았다. 우리는 그가 던진 ‘맥킨리’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는 우리는 지금, 이제서야 ‘로체’를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그는 어느새 로체를 뒤로 하고 ‘맥킨리’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를 이제야 찾은 나의 게으름 탓이었다. 그리고 늘 산자락을 헤매느라 바쁜 그의 탓이기도 했다. 내가 그를 만나고자 했던 7월의 어느 날, 그는 설악산에서 바위를 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잠시 산에서 집에 다녀간 날, 나는 코앞에 닥친 마감일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만났을 때 그는 로체에서 얻은 힘으로 맥킨리를 오르려 하고 있었다.
가기 전에는 설원에 둘러싸인 만년설의 히말라야를 꿈꿨죠
그도 로체가 있었기에 지금 맥킨리를 이야기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로체를 간 취지가 U대회 성공기원이었거든요. 그래서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소속 산악회원들 가운데 희망자를 받아서 훈련과 테스트를 통해서 그중에 선발해서 간 거죠. 물론 저로서는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운도 좋았죠. 갔다 와서 자신감이 생긴 것도 맞고요. 자신감이라기보다 배운 게 많다고 해야 하나요?”
“원래는 에베레스트를 오르기로 했었는데, 자금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 등반대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히말라야 14좌 중에서 네 번째로 높은 로체를 등반하기로 한 거죠. 카라반에 도착해 보니까 올해가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이 되는 해라 각국에서 많은 등정대가 와 있었어요. 제4 캠프까지 에베레스트나 로체나 같은 등반로로 오르기 때문에 에베레스트와의 갈림길까지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른 셈이죠.”
“가기 전에는 기대가 엄청 컸죠. 특히 눈 덮인 설원에 둘러싸인 만년설의 히말라야를 꿈꿨죠.”
그랬을 것 같다.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꿈속의 일일 뿐인 내가 그렇듯 그도 만년설 속에 우뚝 솟아 있을 거대한 히말라야를, 로체를 당연히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을 때 그가 본 것은 설원에 덮인 산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곳은 건조하고 더웠다. 그리고 길고 긴 카라반 구간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그렇게 진짜 히말라야를, 로체를 만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로체에 강기석이라는 이름 석자를 올리다
카트만두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카라반이 시작되었다. 카트만두에서 팍딩을 거쳐 남체까지,
고도 3,400m의 남체에서 1차로 고소 적응을 하고 다시 남체에서 텡보체, 페리제(4,000m)까지, 페리제에서 설원이 눈부셨던 로부제(4,940m)까지, 그리고 카라반 8일째 되던 날, 드디어 5,400m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8일간의 긴 카라반이 끝났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처음에 적응하는 걸 천천히 하고 해야 하는데, 드디어, 히말라야에 왔다는 사실에 너무 좋아서 그걸 잘 조절을 못했어요. 그래도 의외로 제 생각보다는 힘들지는 않았어요. 힘들었다는 생각보다는 벅찼던 감정들이 더 남아 있죠.”
베이스캠프를 세우고 짐을 푼 대원들은 2003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성공 기원 및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지냈다. 히말라야의 전통에 따라 셀파들과 함께 신의 영역이라는 히말라야에 무사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도 지냈다. 그리고 곧바로 전진캠프 설치에 들어갔다. 제1캠프(6,000m), 제2캠프(6,400m), 제3캠프(7,200m), 그리고 7,800m의 제4캠프까지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정상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5월 12일 드디어 1차 공격조 세 사람이 출발했고 7시간여 만에 마침내 등정에 성공했다. 그 가운데 대구산악연맹 소속의 박무택 선배는 무산소 등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음 날 있을 2차 공격조에 속한 그는 그날 밤 쉽게 잠 들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 , 캠프 3에 랜턴을 놓고 오는 바람에 그는 새벽 세 시에 출발한 같은 조의 두 형들보다 출발이 늦었다. 랜턴이 없었으므로 어느 정도 날이 밝은 새벽 여섯 시가 되어서 출발했다. 출발이 늦어져 혼자 올라야 했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두려움보다 갈 수 있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그는 8000미터 고도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정상이 보일 때까지.
“제가 속한 게 2차 공격조였어요. 1차 공격조가 출발한 지 세 시간 후에 저희 2차 공격조가 출발했죠.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7시간 정도 걸렸어요.”
산 위에는 오직 그 뿐이었다. 그는 그 위에서 이십분쯤 머물렀다. 기록을 위해 셀프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눈이 시리도록 부신 설벽과 하늘 앞에 마주서기도 했다. 로체는 그를 오르도록 허락했지만 그러나 녹록히 그들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그날 로체 정상은 흐렸고 바람이 불었다.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더 위험한 법이었다. 그는 그만 내려가야 했다. 그것도 무사히.
14명의 원정대원 가운데 등정에 성공한 이는 여섯 명. 로체로서는 그것도 축복이라고 할 만큼 많은 숫자를 허락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도 강기석이라는 이름 석 자를 로체에 올렸다.
“학교산악회 자체적으로도 1년에 춘하추동 네 번 이렇게 등반대회가 있고 평소에도 자체적으로 등반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체력하고 현지 적응 문제가 크더라구요. 산악부 자체로 1학년 신입생 때부터 체계적으로 연습을 시키니까 훈련 때문에 어려운 거 보다는 가서 고소 적응같은 게 더 문제가 된다고 봐야죠. 실제 등반에서 생각했던 것하고 다른 점도 있었지만 국내에서보다 기술 등반 같은 것은 오히려 더 쉬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와서 산을 만나다
“산에서는 첫째는 기후 그때 당시의 날씨나 기상 변화 , 두 번째는 자기 몸 상태, 이 두 가지가 모든 걸 결정짓는다고 봐야죠.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가서 고소 적응을 못하면 실력 발휘도 못하고 심한 감기 몸살 걸린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번 저희 원정대원 중에서도 그런 선배가 있었는데 베이스캠프하고 전진 캠프를 왔다갔다 하며 고소 적응을 극복하려고 애를 썼는데, 끝내 정상에는 올라가지 못했어요. 등정에서는 몸이 그 산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죠. 저도 현지에서는 별 무리없이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갔다 오니까 몸이 틀리더라구요. 근육이 흘러내린다고 해야 하나, 갔다 와서 한동안은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살이 엄청 많이 빠졌어요. 회복 기간이 사람마다 다른데, 대략 두 달 가량 걸린대요.”
4월 3일에 출발했던 원정대가 5월 22일에 귀국을 했으니까 두 달하고도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나 한 번 빠진 살은 좀체로 다시 불지 않고 있는 듯 처음에 그가 취재를 위해 들어섰을 때 우리가 사진 속에서 보았던, 로체 정상에 선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살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누가 그를 말리랴. 그는 체력이 채 회복되지도 않았던 7월 초, 여름 방학 기간을 맞아 설악산에서 한 달간 가진 산악회 하계 등반 훈련에 참가했다. 그에게 산을 가르쳐 주고 로체를 오르게 해 준 게 바로 이 대학 산악회이고 등반훈련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산이 좋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타지역 같으면 고등학교에도 산악부가 있지만 안동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그렇지를 못해서 고등학교 때는 매일 학교 뒤 산에 올라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죠. 점심시간이면 도시락 들고 학교 뒷산으로 올라갔고, 야자 시간이나 시간이 날 때면 늘 뒷산을 오르내렸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오면서 산악회를 만나게 됐고 그게 저한테는 좋은 기회가 된 거죠.”
앞으로의 진로나 취업 같은 문제 앞에서도 어느새 산을 빼놓고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된 그다.
“지금은 당연히 그쪽으로 가고 싶죠. 형제가 누나하고 동생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인데요. 제가 등반하고 원정 다니고 하니까 어머니가 걱정을 좀 하시죠. 부모님이 처음에는 가볍게 등산한다고 생각하셔서 그랬는지 말로만 걱정하고 그러시다가 요즘은 정말로 저의 장래라든가 그런 것에 관해 마음 깊이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긴 해요.”
하면서도 부모님이 반대한대도 그 마음이 쉽게 돌아서질 것 같지가 않아 걱정이라고.
아들이 그야말로 작정하고 산에 뛰어들려고 할 때 그 어머니 아버지 된 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러나 어쩌랴.
“지금 4학년인데 이번에 등반 갔다 오면서 수업을 너무 많이 빠져서 학점이 모자라 내년 1학기에 코스모스 졸업을 해야 할 형편이에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또 내년에 맥킨리를 가려면 휴학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그다. 벌써부터 그의 마음이 온통 맥킨리로 달려가고 있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순수 안동대 산악회원들만의 해외원정대 꾸려 맥킨리 등정
“원래 큰 계획은 대학산악연맹에서 이 삼 년 전부터 매년 해외로 원정등반을 가고 있었어요. 주로 이름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등반 가치는 큰 그런 산들을 택해서 등반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마침 지난번에는 U대회를 앞두고 좋은 기회가 마련되어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큰 산을 가게 된 거죠. U대회 조직위에서 자금을 지원해주어서 히말라야 등반이 가능했던 거죠.
그런데 이번 맥킨리 등정의 경우에는 처음으로 순수하게 안동대 산악회원들 만으로 해외원정대를 구성해서 등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히말라야보다 경비도 적게 들고 일반인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산을 택하게 된 거죠. 되도록 셀파나 포터를 안 쓰고 우리 힘으로 등반이 가능한 곳 그런 곳을 고르다 보니 알래스카주에 위치한 6,194m의 북미 최고봉, 맥킨리를 택하게 된 거죠. 일반 사람들도 갈 수 있는 로말 루트가 많거든요.”
대신 무셀파 무포터이기 때문에 대원들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하고 랜딩포인트에서 정상까지 4,000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지만, 등반루트가 다양하기 때문에 등정 가능성 또한 그만큼 크다고.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
산을 오르는 등반에서도 예전에는 어떤 산을, 누가 올랐는가 하는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를 중시하는 등정주의였다면, 요즘은 어떤 루트로 어떻게 올랐는가가 더 중시한다. 좀 더 어려운 루트나 다른 사람이 오르지 않은 루트를 개발한다든지, 셀파나 현지인의 도움 없이 오른다든지, 산소통을 쓰지 않고 자신의 체력만으로 오른다든지 하는,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모든 알피니스트들의 꿈인 히말라야. 히말라야의 14개의 봉우리들, 히말라야 14좌는 단순한 산봉우리가 아닌 지 오래다. 세계의 모든 산악인들이 히말라야를 꿈꾸고 그리고 히말라야를 오른다. 한국 산악인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히말라야에서 한국 원정대를 만나는 일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이번에 갔을 때도 건대팀도 있었고, 서울산악연맹팀도 있었고 또 우리팀 이렇게 원정대가 세 팀이 있었어요. 그리고 솔로로 오신 재미교포 선우중옥 선배님도 만났는데, 개인적으로 우리 산악사에서 유명하신 선우중옥 선배님을 히말라야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처음 인수봉 루트를 개척하신 분인데 산악인으로서 그런 분을 직접 뵐 수 있었다는 건 저로선 큰 영광이죠.”
어리석은 생각임에 틀림없을 테지만 내 맘에는 히말라야를 가기 전과 갔다 온 후는 왠지 뭔가 다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인수봉을 오르는 것과 로체를 오르는 것이 근본이 분명히 다르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뭐 달라진 게 없냐는 우문에 그는 말한다.
“특별히 달라지거나 달리보이는 것 보다 세상과 사람 앞에 겸손해하는 마음 그런 게 든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그랬죠. 주위 사람들에게도 바닥부터 겸손해지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제대로 살고 싶고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그런데 산에 갔다 온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들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라면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려면 그는 천상 산에 가고 또 가야 할 판이다.
히말라야 14좌봉 등정의 꿈
내년 5월로 예정하고 있는 맥킨리 등정의 최소 소요 경비는 7,800만원 정도다. OB산악회 선배님들을 비롯한 선후배들의 지원과 격려가 있다고 해도 자금 확보가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는 것을 그는 안다. 아마도 자금 사정에 따라 원정대원의 수는 줄어들 가능성도 많다. 지금은 희망자는 모두 훈련을 하는 걸로 하고, 나중에 체력 테스트를 해서 최종 인원을 선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람을 줄이더라도 등정은 계획대로 한다는 게 그를 비롯한 원정대원에 지원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만약에 맥킨리를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얼굴이다. 그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한다.
“산악회가 동아리이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비 10만원이 지원비의 다죠. 지난 번에 가기 전에 학생과에서 이십만원 주시더라구요. 고맙죠. 학교에서 그래도 신경을 써 주신 거죠. 그러나 사실 너무 열악하죠. 사립대 같은 경우에는 1년에 500만원씩 산악회 지원비가 나오는 곳도 있거든요. 등정에 성공하면 학교 이름을 알리는 데도 적지 않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우리 현실이 그렇게까지는 힘든 것 같아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우리 힘으로 올라야 하지만요.”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원정대를 조직해서 히말라야의 14좌봉을 가는 게 꿈이라는 그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돈도 벌고 산에도 갈 수 있을까 궁리가 많다. 어느 게 먼저냐는 문제와 맞닥뜨리면 산에 가고픈 마음이 앞서는 거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주위에서 뭐라건 그로서는 벌써 갈 길을 정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산에 오를 때는 먹을 게 제일 많이 생각났는데, 지금은 좋았던 순간들을 많이 생각해요. 그리고 항상 제 자신이 올라온 길에 대해 생각을 해요. 내려가는 길에 대해서도요. 지난 번 설악산 장군봉에서 하산할 때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그 순간 내가 그때 그걸 제대로 못해서 이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살아야겠다. 살아서 다음번에는 이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그 와중에 했어요.”
몸도 마음도 항상, 늘, 언제나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산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언젠가는 꼭 올라야겠다고 생각하는 산이 있냐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건 나머지 13개봉이라고.<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