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남긴 상처는 계속되고...(글/이정희)태풍 매미가 언제 왔다 갔냐는 듯 가을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새파랗기만 하다.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고 지역마다 풍성한 축제가 이어져 모두들 즐거운 분위기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지난 여름 끝자락, 태풍 매미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가시지 않고 피해 농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가다
민족 최대명절인 9월 11일 추석날 밤, 둥근 보름달 대신 불청객 태풍 매미가 찾아왔다. 매미가 빠르게 한반도로 북상하면서 경북 북부지역에도 무서운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안동댐과 임하댐은 수문을 열고 초당 2천 여톤의 물을 낙동강 하류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폭풍우는 밤새 계속됐다. 아침이 밝아온 뒤에서야 태풍이 휩쓸고 간 잔혹상이 드러났다.
산간지역은 그동안 내렸던 비에 지반이 약해진데다 한꺼번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서 계곡물은 조용하던 산간지대를 뒤덮었고, 강물은 제방을 무너뜨리고 낮은 지대의 마을과 논밭을 여지없이 훑고 지나갔다.
영양에서는 70대 할머니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이웃집에 대피했다. 그런데 바로 그 집이 토사에 뒤덮히면서 숨졌고 혼자 살던 60대 장애인이 흙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봉화에서도 산사태로 할머니와 40대 아들,어린 손자가 동시에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아들의 시신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아 가족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명피해는 사망과 실종만 해도 8명이나 됐다.
절개지에서 토사나 낙석이 굴러 떨어지고 급물살이 지반을 깍아 내려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 등 크고 작은 도로가 끊겼다. 큰비만 오면 운행이 중단되곤 했던 영동선 철도도 또 철로가 유실되면서 운행이 중단됐다.
수확을 앞둔 농작물의 피해는 심각했다. 수십년 된 사과나무가 뿌리 채 뽑혀 나갔으니 일부 과수원은 달려 있는 열매가 몇 안됐다. 경상북도 전체의 과수 피해면적은 1천ha가 넘었다. 전국 최대의 사과 주산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추수를 앞두고 황금빛을 띠어야 할 들녘은 온통 진흙과 자갈 투성이었다. 가뜩이나 잦은 비로 작황이 좋지 않던 터에 태풍 피해까지 농민들은 망연자실했다.
학교도 침수되고 축대와 담장이 무너져 산간오지의 분교 학생들은 학교를 가지 못했다. 전기와 전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도로가 끊겨 복구작업을 하기 위한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복구는 시작되고…
그래도 복구는 시작됐다. 공무원, 군인, 경찰, 중? 고?대학생,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잇따랐다. 조금씩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갔지만 워낙 피해지역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피해규모도 커 제모습은 되찾기 어려웠다.
장비도 인력도 턱없이 모자랐다. 시설물 복구에 집중하다 보니 농작물은 논밭에서 썩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경북지역의 피해액은 7천억원에 달했다. 정부의 생계구호비를 비롯해 금융기관의 특별자금 지원, 농업관련 기관과 단체의 지원책, 낙과 팔아주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구호책이 잇따라 쏟아져 나왔다.
생색내기용 구호비에 수재민들 분통
이런 지원책 가운데 상당수는 수재민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정부가 지급하는 응급생계구호비의 경우 집이 침수돼 외부에서 생활하는 이재민 한사람 앞으로 하루에 고작 4천원이 나온다. 식당의 밥 한끼가 4천원인데 그 4천원으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
가옥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음날부터 지급이 중단된다. 그나마 지난해 2천3백원에서 많이 오른 금액이다. 집이 파손됐을 때 지원되는 주택복구비도 마찬가지다.
반파의 경우 7천6백만원이 지원되는데 반 이상은 융자여서 4천만원은 보증을 세우고 다른데서 꿔야 한다. 농민들은 이미 신용불량자나 다름없는데 돈 빌릴 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경북에서만 4천명에 가까운 이재민들이 생색내기용 구호비에 분통을 터트렸다. 도내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영양지역은 지난해는 태풍 루사,올해는 매미로 연거푸 난리를 겪었다. 한 아주머니의 하소연은 지금도 생생하다.
"보증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이렇게 수해를 당하겠어요?", "정말 너무합니다", "농촌에 살지 말라는 소리지 여기에서 살 수가 없어요."
품이라도 팔러 나가야 한다며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다행히 태풍피해 전역이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돼 우리 지역도 통상적인 지원보다 50～150%를 추가로 더 지원받게 됐다. 하지만 집을 짓지 못한 일부 수재민들은 지금도 비닐하우스나 천막,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제 곧 겨울인데 너무도 딱하다.
벌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태풍으로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은 잊혀지는 듯 하다. 매미의 상처는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겨울이 오기 전, 한 번쯤 옆에 사는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