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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에서 보낸 240일의 기록과 아쉬움 그리고 그 후(글/이동수)

새끼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낙동강

원앙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고목나무 둥지를 떠난 후 며칠 지나서 고목나무에 다시 가 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는 또 다시 열 대여섯개의 원앙이 알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가끔씩 원앙이가 알을 품다가 가곤 했다. 아마도 적당한 둥지를 찾지 못한 어미가 늦게 둥지를 발견하고 새롭게 포란을 시작한 것 같았다.

자연이란 정말 놀라울 때가 많다. 그리고 번식에 대한 어미의 눈물겨운 노력.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원앙이가 새끼들과 언젠가 강변으로 가도록 기도해 주었다.
황조롱이는 알에서 깨어난 지 한달이 넘도록 날지 못했다. 털이 나는 것도 무척 더디었다. 그동안 암수 황조롱이는 번갈아 가며 도마뱀, 작은 쥐 등을 잡아서 새끼들에게 먹였다.

6월 어느 날. 황조롱이 한 마리가 암벽 가운데 마련된 집 밖을 슬슬 나와서는 옆 바위를 향해 날아올랐다. 우리들은 한번에 날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새들의 비상(飛翔)도 부단한 연습 뒤에 이루어 지는 법. 2-3미터도 못 날아간 황조롱이 새끼는 그만 나뭇가지에 걸렸다. 그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로 새끼들은 몇 미터씩 날아갔다가 둥지로 돌아오기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훈련을 거듭했다. 집밖을 못 나오는 녀석들을 위해 어미는 멀리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먹이로 유인해서 훈련을 시켰다.

한 달 후 새끼들은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어미만 집에 날아왔다가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 볼 뿐이었다. 모두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산과 들판은 모두 파란색으로 바뀌어 여름이 시작되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2000년 7월. 자연다큐멘터리 “그들 , 강에 살다” 방송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 창사 기념일인 9월 12일에 방송예정으로 촬영을 해 오던 터였다. 8월말까지 끝내야 방송시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앙이와 황조롱이가 집을 떠난 이후에는 이제 별로 촬영할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연다큐멘터리 촬영은 특히 겨울철에 집중되었다. 왜냐하면 여름에는 풀들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짐승들과 새들 촬영하기에 부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촬영한 테이프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30분짜리 테이프 300개가 넘었다. 모두 한번씩만 본다고 해도 150시간이 넘는 분량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우린 너무 열심히 촬영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테이프를 몇 번씩 보고, 좋은 그림을 골라내고 구성과 편집을 해야 한다. 남은 시간은 두달.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물고기도 별로 찍지 못했고, 곤충도, 식물도 많이 찍지 못했는데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항상 그런 것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이 모자라고, 제작비가 모자라고, 장비가 모자란다. 자연다큐는 더욱더 그러하다.

하지만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프로그램 정리에 들어갔다. 서울서 주로 다큐멘터리만 쓰던 작가 정수경씨와 연락을 취했다. 이제 거의 마무리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알렸다. 며칠후 정작가가 내려왔다. 그녀는 사나흘을 밤잠 자지 않고 그림 보기에 매달렸다.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그리고 구성안을 내 놓았다. 모든 프로그램은 구성이 중요하다. 자연다큐멘터리에 무슨 구성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다소 의인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황조롱이가 먹이를 물고 날아와 새끼들이 모두 날아간 집에서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그들은 그냥 그러할 뿐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냥 그러한 것(自然)”이다. 구성안을 보면서 편집을 할 때도 이 부분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원앙이와 황조롱이, 그리고 수달들을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지, 그들의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 그렇다면 그들의 관점은 과연 무엇인지. 자연다큐란 어떻게 편집을 해야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 되는지. 어떻게 해야 가장 자연스럽게, 자연에 다가갈 것인지. 과연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편집 내내 편집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묻고 또 물었다.

또한 편집 내내 그들 출연자들(새,동물,식물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을 생각했다. 촬영시간이 충분했다면 더 좋은 장면을 많이 찍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참 많이 남았다. 촬영감독 임호진(현 제일미디컴 대표)의 아쉬움은 나보다 더 했을 것이다.

편집실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테이프를 보고 있는 동안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수시로 편집실에 드나들었다.(한 프로그램의 촬영이 끝나면 카메라맨은 PD에게 테이프를 모두 넘겨 주고 또 다른 프로그램 촬영에 들어가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만나기 전까지 PD와 카메라맨은 만나기가 어렵다. 그리고 편집은 PD의 몫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왜 그렇게 집착했었던 것일까. 우리들은 아직도 강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도록, 방송이 끝날 때 까지도 강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이런 것 일게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그 전과 같지 않은 것’. 그것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었다.

자연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나서 자연을 보는 눈은 확실히 예전과 다른 것이었다. 새가 날아가면 그 새는 무슨 새이고 언제 새끼를 낳고, 언제 어디서 살고, 어떻게 친해 질 수 있는지 하는 것들.

8월 한달 동안 부지런히 편집을 했다. 여러 가지 액세서리도 갖다 붙였다. 음악도 넣었다. 김병균씨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은 성우 김도현씨에게 맡겨 더빙도 했다. 화면효과도 넣었고, 자막도 인서트 했다. 프로그램은 거의 제 모습을 갖춰갔다. 그리고 방송. 9월 12일 안동MBC TV를 통해 먼저 방송되었다. 그 다음에 전국 방송을 했다. 자연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방송된 것이다. 방송이 끝난 후에는 상도 받았다. 부끄럽긴 하지만 열심히 한 데 대한 격려라고 생각했다.

구담습지 생태공원?

한 동안은 낙동강 구담 습지를 가지 않았다. 바쁜 탓도 있었겠지만 거의 240일간을 텐트 속에서 산 그 곳이 한편으론 질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 대한 기억은 점점 새로워지곤 했다. 몇 달이 지난 후 혼자서 구담 습지를 찾았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숲도 더 많이 우거 졌고, 우리가 늘 다니던 길도 어느 틈엔가 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없었다. 자연은 부지런히 새로운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

촬영감독 임호진(현 제일미디컴 대표), 촬영보 안윤식(현 제일미디컴 실장)도 가끔 만나 얘기를 해보면 구담 습지엔 남다른 애정이 남아 있었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아쉽고 절실하다. 그때 우리는 왜 좀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알 수 있는 것을 그때 왜 우린 그걸 몰랐을까. 각자는 시간이 날 때 마다 낙동강으로 달려가 되묻곤 했던 것이다. 처음 황량한 낙동강을 찾았을 때의 그 기억도 떠올리면서.

안동시에서는 하회마을-구담 습지를 연계해서 자연생태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2003년 초였다. 그리고도 9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언제 만드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구담습지에 대해서, 구담습지의 동식물과 자연에 대해서 알고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덕교가 현재 가설되고 있다. 구담습지 생태공원 계획과는 정말이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물론 주민들의 불편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만약 정말로 자연생태공원을 만들거나 자연생태를 보존하기를 원한다면 처음서부터 그 계획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자연생태공원 계획과 광덕교 가설이 좋은 쪽으로 양립되기를 바란다.
우리 안동사람은 자연에 빚진 게 너무나 많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자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지 못해 그 은혜를 잊고 산다. 자연이 주는 경제적 이익도 아직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 단기적인 편견으로 앞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부를 약속할 자연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쉽게 얘기한다면 관광자원과 문화자원이 가져다 줄 안전하고 깨끗하고 인간적인 산업이 짧은 이해관계로 인해 방치되거나 사라지고 만다. 이런 자원을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아닌지.

“그들, 강에 살다”를 제작한 후 우리는 “아직도 강을 떠나지 못하고 기억의 언저리에 살고 있다.”그래서 이 제작후기의 제목은 이렇게 붙이고 시작했다. “우리들, 아직도 강에 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