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요(글/월파 계철순)

공주식당 안주인은 나를 만나면 할배요 하고 부른다. 저만치 멀리 가는 것을 보아도 할배요, 어디 가니껴? 하고 소리 쳐 부른다.


할배, 그것은 요즘 내게 걸맞는 호칭이다. 또 아주 소박하고도 정다운 호칭이기도 하다. 공주식당은 지금은 큰 식당을 두개나 가지고 크게 장사를 하고 있지만 77년 내가 처음 안동에 왔을 때만 하여도 조그만 점포에서 국밥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혼자 와 있던 나는 조석을 대부분 그 집에서 하였다. 그래서 친밀해졌고 또 할배로 통하게 되었다.


 


할배는 할아버지의 안동지방 사투리지만 할아버지보다는 훨씬 더 친근감을 주는 말이다. 할아버지가 가지는 위엄같은 것이 할배에는 없다. 그저 평범하고 소탈한 노인을 느낄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유독 나를 할배라고 부르는 그 안주인을 만나면 반갑다.


……(중략)……


과거를 벗어나 순수한 현재의 자기를 인식하고 그 기초위에서 행동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당사자 본인에게 쉽지 않은 것처럼 제3자에게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단골로 다니는 우정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 있는데 박사님 합석 좀 하셔야겠습니다 하고 양해를 구하는 안주인을 따라 팔구명의 손님이 우루루 들어왔다. 일행의 수효가 많으니 아랫목을 일행에게 양보하고 나는 윗목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윗목으로 쫓겨나 혼자 점심을 먹으려니 내가 생각하여도 어쩐지 쓸쓸하고 초라하여 보였다.


 


그러나 안주인이 덤으로 주는 소주 한잔을 반주로 하여 천원짜리 만두국 한사발을 배불리 먹고 나니 이제는 천하가 내 세상이다. 김주헌씨나 오면 바둑이나 한판 두었으면 좋겠는데 오늘따라 안 오니 그도 할 수 없고 하여 그 대로 그 집을 나왔다.



이튿날 또 그 식당에 갔더니 안주인이 박사님 진짜 계철순씨인가 아닌가 잘 보아야 하겠다며 얼굴을 들이대고 나를 살핀다.


나는 기상천외의 농담이라 얼떨떨하여 이 양반 봄이 올려고 하니 광기가 들었나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또 무엇이냐고 물으니 진짜 계철순인가 가짜인가에 관하여 1억원의 내기가 걸려 있는 일대중대사이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내야 한다며 박장대소한다. 그래도 나는 영문을 몰라 캐물은 즉 그 사연을 설명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그 전날 내가 점심을 먹고 나온 뒤에 그 방중에 있던 일행 중 한 사람이 안주인더러 지금 윗목에 잠바차림으로 앉아 점심 먹던 사람이 누구이길래 박사님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어 현재는 변호사이고 과거는 경북대학교 총장도 지낸 계 아무라고 하였더니 그 사람은 믿지 않고 ‘그럴 리가 없다. 대학총장까지 한 사람이 이런 집에 와서 윗목에 앉아 혼자서 초라하게 점심을 먹을 리 없다. 그러니 그 사람은 가짜다’라고 하였다.



자기 음식점을 “이런 집.”이라고 낮추어 말한데 대한 불쾌함도 곁들여 안주인은 한사코 진짜라고 고집하였으나 그 사람은 진짜 계철순은 지금 나이 82세쯤 되었는데 그 윗목의 늙은이는 칠십오륙세 밖에 안 됐다. 뿐만 아니라 진짜는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 오겠는가. 그 늙은이는 가짜가 분명하다고 반박하였다. 이렇게 진짜다, 가짜다의 논쟁이 심하게 벌어졌으나 결말이 나지 않으니 그럼 내기하자고 하고 내기돈은 1억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꺼리가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1억원의 거금을 걸만치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가짜라고 주장한 근거는 내가 천원짜리 점심을 잠바차림으로 초라하게 혼자 앉아서 먹은 점이다. 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데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현직(現職)에 있으면서 그렇게 하였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 직책의 권위를 손상시킬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권위는 어디까지나 그 직책의 권위이지 나 자신의 권위는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직책을 내놓았을 때 그 권위도 직책과 더불어 내게서 떨어져나가고 벌써 내게는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내가 가지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인격뿐이다. 거기는 국가나 사회가 붙여주는 아무 권위도 없다. 있다면 안동시민이라는 권위가 있을 따름이다.


나는 요새도 법정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반드시 고개를 숙여 판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거기 앉아있는 판사는 사법계의 세대(世代)로 보나, 교육계의 세대로 보나, 자연적 세대로 보나 모두 내 손자나 아들 뻘이다.


 


그러나 내가 경의를 표하는 것은 거기 앉아있는 자연인(自然人)인 이모, 김모가 아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재판을 하는 판사라는 직책에 대하여 하는 것이다. 그 직책이 가지는 권위에 대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직책에서 유리(遊離)되었을 때, 이를테면 사석(私席)에서 만났을 때에는 이번에는 그들이 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후배로서 선배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다. 직책과 자연인의 관계가 이러한 것인데 사람들은 흔히 분리되어 사라져 버린 직책의 귄위가 자기에게 또는 어떤 사람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안동>


 


……(후략)……


“계철순 자서전 『사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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