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안동지방자치연구소(글/이향미)가을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월요일 오전, 목성교의 혼잡한 교통을 몸소 체험하며 안동지방자치연구소로 페달을 밟았다. 벌어진 가위를 연상케하는 목성교 사거리는 안동시의 도로교통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보행자가 다니는 길에 버젓이 승용차가 주차돼 있고 9.9cm 짜리 두발 바퀴가 지날만한 자전거도로 하나 없으니 말이다. 목성교를 오가는 시민들 중에 이런 불편함을 분명 나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지방자치전문연구소 발족
안동지방자치연구소는 목성교 권방사선과 4층에 위치하고 있다. 연구소의 문을 열자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안동지방자치연구소 손중열 사무국장이다. 평소 주민들의 삶과 관련은 있을 법한데 왠지 연구소라는 딱딱한 언어의 위엄에 밀려 생경하게만 느껴지던 지방자치연구소. 과연 어떤 곳인지, 어떤 취지로 만들어진 곳인지부터 궁금했다. 손중열 국장은 "지방자치연구소요?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방자치제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죠."라고 짧게 말을 하고는 잠시후 구체적으로 답변을 이어간다.
"예를 들면 안동지역의 도로교통 문제나 주차문제 등을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를 연구합니다. 단순히 주차난이나 교통문제는 지역행정에서 단순한 문제만은 아닙니다. 전혀 관련 없을 법하지만, 지역 상인들의 이권과도 연관되어 있고 복잡한 실타래와 같습니다. 이런 문제가 바로 지역민들의 삶과 실질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또 우리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방자치 연구가 필요한 것이죠."
실로 명쾌한 대답이었다. 오늘 아침 나의 불편한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것과 나와는 관련 없을 것 같던 지방자치연구소가 나와 연결된 조직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안동지방자치연구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지방자치분야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로 지난 98년 9월에 발족했다. 연구소는 시민과 지방행정부·의회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고 합리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지방정치 연구, 시·의정 활동과 행정개혁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 및 조례연구, ▲행정서비스 개선 및 지역관련 정책연구 등 일상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발전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실천적 정책대안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농어촌 학교 통폐합에 대한 의식조사, 낙동강 수질에 관한 설문조사, 안동권 관광에 대한 의식 및 실태조사 등 각종 여론조사사업을 통해 지역민들의 올바른 여론 수렴은 물론, 이 여론 조사를 기본으로 하여 연구소의 사업 방향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지방자치행정에서 소외되었던 시민들의 의견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추측이나 왜곡된 시민의식의 흐름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지역민들의 생활전반을 이해하려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안동자치나 주간 뉴스레터 등 출판물을 통해 공개됨으로써 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지역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열린 토론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책대안의 제시까지
지방자치연구소는 98년 9월 권영준(안동대 법학과 교수)교수를 주축으로 발기인 대회 및 운영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연구소의 기본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를 꾸렸다. 운영위원회는 지방정치분과, 지방행정분과, 자치법률분과를 두고 있고, 연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연구소에 관심이 있다면 자료회원과 특별회원, 후원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지방자치연구소 회원수는 총 108명으로 이들이 내는 회비로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지방자치연구소와 같이 사회공익적 문제와 영역에 대해 종래 시장기구(기업)와 정치기구(정부)를 보완, 대체하는 제3의 섹터로 민간과 개인에 의한 독자적인 비영리활동을 하는 단체, 즉 NPO(비영리단체 Non Profit Organization)의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재정부분일 것이다.
이는 아직 우리 나라가 행정부 위주의 관료주의적 행정 시스템에 익숙한 나머지 비영리 단체의 역할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비영리단체만의 독특한 틈새 시장을 찾아내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면 결코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지 않을 것임을 연구소원들은 알고 있다.
손국장은 이에 대해 "연구소 사업 결과는 금방 눈에 띄는 것이 아닙니다. 1년동안 열심히 사업을 진행하면 다음해에 비로소 성과들이 보이게 되고, 그 이후로 시민들의 관심이나 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이며, 시민들의 요구 사항을 올바로 인식하고, 정책대안을 생산해 낼 수 있는가가 우리 연구소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이것또한 지금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연구소 같은 비영리단체가 할 수 있는 틈새시장이지요. 연구소도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에 모험을 걸고, 이런걸 보면 우리 연구소도 벤쳐기업이 아닌가 합니다."(웃음)
안동시 조례와 재정공개
지방자치연구소는 지방자치연구소라는 간판이 내걸려있는 목성교에 위치한 사무실이 전부가 아니다. 사무실에서 책자발행 등의 일상적인 주요사업이 이뤄지긴 하지만 연구소라는 하나의 시민단체이기에 바로 연구소의 주인인 연구원들의 연구활동이 쌓여서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매체를 통해 시민들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목성동 사무실에서는 이처럼 연구원들의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그래서 연구소 사무국을 방문한 이래로 연구소 설립에 앞장선 권영준(안동대 법학과 교수)소장을 비롯해 몇몇 연구원들을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연구원들의 연구성과물을 검토해보기도 했다.
우선 권영준소장을 만나 안동시 민선2기에 대한 간략한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지방자치연구소 후반기 사업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비단 안동시 뿐만이아니라 모든 지자체에 한마디 한다면 지자체가 재정적자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동의 경우도 안동시의 재정자립도가 25%밖에 되지않을 뿐아니라 600억의 부채를 안고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이 부채비율은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데 지방정부는 큰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부분입니다"하고 밝혔다.
지방자치연구소가 해온 일 중 99년 11월에 안동시 조례와 재정을 CD에 담아 지역민들에게 공개한 적이 있다. 특히 안동시의 전체 예산을 공개한 것은 우리나라에선 처음있는 일이었다.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당연한 정보공개지만 이런 선례를 만드는 데는 연구소원들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한다.
"일단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검토된 상태였지만 다른 지역에선 그런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그당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고양시 분당구에서 특별회계예산이 공개된 사례가 있다는 것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최근 시의회에서 불거진 시금고 문제 역시,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예산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작은사안부터 참여 필요
지방자치연구소의 연구성과물을 검토하던 중 가장 공감대를 느낀 것은 정책 무크지 창간호 자치논단에 실린 중소도시의 자전거교통 활성화전략이라는 박동균(안동과학대학 도시계획정보과 교수) 연구위원의 글이다. 그동안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타기는 사회의 약자들의 삶을 보는 것 같다" (인물과 사상 10월호 자전거타기로 본 서민의 삶 참조)는 이 논문은 자전거교통의 일반적인 특성과 교통수단적 특성, 자전거교통 활성화의 전제조건, 안동시의 사례도 들고 있어, 그동안 몰랐던 자전거교통에 대한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박동균 연구위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자전거교통에 대한 독자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데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보다 중요하다. 시민 스스로가 자전거타기 운동을 벌이고 학교 체육행사나 지역의 각종 행사때 자전거 대행진과 같은 이벤트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러나 내생각은 좀 다르다. 최근 몇 년동안 안동시는 자전거도로를 설치하고 있는데, 이는 시민들의 자전거이용을 장려하는 정책이겠지만 안동시의 대표적인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시내 자전거도로를 이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전거도로는 시외곽지로만 설치돼있어 자동차가 붐비는 도심속을 자전거로 활보하고 다니기엔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다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자전거타기를 개인이나 시민단체의 캠페인으로 돌리기보다는 공용자전거 3000대를 시에서 시민들을 위해 내놓는 게 100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본다. 일단 자신의 비용을 들여 자전거를 사야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시내 곳곳에 자전거보관소를 설치해두면 용무가 있을 때마다 이용하고 용무가 끝난곳에 세워둬도 전혀 상관없을테니까 말이다. 비단 이건 나의 생각만은 아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불편함을 토로했더니, 자전거교통에 대해 한참의 토론 끝에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출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공용자전거 3000대를 마련한다면 안동시의 행정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선전하는데도 한몫할 것이라 장담한다. 자전거에 새로 만든 안동시 마크를 표시하면 말이다.
어쨌든 박동균 연구위원의 논단은 안동시민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역민들이 지방자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실질적인 해답을 안겨줬다. 그것은 바로 지역민의 일원으로서 지방자치제에 작은 사안부터 하나하나 참여하는 것이다
지방자치연구소에서는 오는 11월 21일, 안동시정평가토론회와 지역공동체와 지역복지과제에 대한 세미나를 준비중이다. 그동안 연구소는 일정수준에 올려 놓기 위해 앞을 보고 전진해 왔다면, 이제는 시민들을 중심에 둔 사업을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11월 경 "지역사회 복지 향상을 위한 지역공동체 역할(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하여, 빈부격차의 고착화로 인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소외계층을 위해 지역 공동체가 나서야 한다는 내용으로 토론회가 개최되며, 실천방안 모색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정책건의 및 조례제정 근거 자료를 제시할 계획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