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적 연구역량이 뒷받침된 작지만 큰 박물관(글/권두현)박물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박물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언제나 박물관을 찾으면서 박물관은 어떤 모습으로 사람을 맞이하여야 하는가에 관심을 둔다. 박물관에 대한 많은 이론이 있지만 박물관 역시 당대 문화의 한 흐름을 차지하고 있기에 어쩌면 박물관이야 말로 현재 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그렇다.
안동시에만 박물관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 안동민속박물관, 안동대박물관, 도산서원 옥진각, 안동소주전승관, 하회마을내 영모각, 숭원각, 안동교육청내 자료실, 운장각, 한지 자료관, 태사묘 내 보물각, 탈박물관 등이다. 대부분의 이러한 건물들은 전시위주이고 보관과 판매, 체험을 목적으로 한 것들이지만 안동시의 인구규모로 보아 매우 많은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박물관이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접근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필자는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 박물관도 하나의 운영체이기에 경비와 인력, 그리고 이에 합당한 주변장치를 갖추었을 때 힘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박물관 그 자체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박물관에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박물관은 생동할 수 있다. 박제화된 전시물처럼 박물관을 바라보는 것은 자신과 당 시대 사람의 삶을 다시 한번 박제화시킨다는 점을 자각할 때 박물관의 기능을 다시한번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박물관의 규모가 크고 작거나 전시물의 많고 적음은 문제되지 않는다. 클 필요가 있으면 큰 박물관이 좋은 것이며 작아도 되는 박물관을 크게 짓는 것은 오히려 허한 마음이 생겨 박물관의 본래 맛을 살리지 못한다.
작은 박물관, 그러나 큰 활동
안동대 박물관은 안동대학교 본관건물 3층에 있다. 한쪽 켠에는 전시실이 있고, 수장고와 사무실이 있다. 일견 보면 작은 건물의 한 부속품으로 격식을 차리고 있는 듯 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독립적인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며 전시실 역시 초라한 전시대가 이어져 있다.
그러나 안동대 박물관은 안동지역 그 어느 박물관보다 활발한 기운이 생동하는 곳이다. 우선 이곳을 지키는 연구진이 안동문화권을 매우 성실하게 답사하여 연구자료를 모으고 있다. 무릇 모든 문화는 사람의 활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안동대 박물관은 중요한 점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안동대 박물관의 연구총서는 안동지역의 맥을 짚어 환기시키는 역작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서삼동 벽화고분", "임하댐 수몰지구 문화재 지표조사", "임하사 전탑지", "안동 안막동 고분", "임하댐 수몰지역내 임하·사의 지구 발굴조사보고서", "문경시 유곡동 지표조사 보고서 유곡역", "안동 정상동 택지개발예정지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안동지역 전통복식", "영주 가흥1,2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예정지역내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유곡역 관련 고문서집", "사진으로 보는 조선", "예천 어림산성 지표조사보고서" 등이 있다.
이외에도 특별전을 개최하여 학계와 지역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안동의 옷", "유곡역 관련 고문서전", "사진으로 보는 조선", "450년만의 외출" 그리고 지금 열리고 있는 "안동삼베의 얼과 멋" 등이 그것이다.
특별전은 개최될 때마다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별전 "안동의 옷"은 전통유학의 기풍을 유지해 온 안동사람들의 옷에 대한 관념과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게 하였다. 이제까지 성리학적 맥락이 어떻게 일상생활에 이어졌는가에 대한 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였으며 일상에서 얻어지는 의복에 일상의 정신이 어떻게 배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유곡역 관련 고문서전"은 전국에서 가장 큰 역이었던 유곡역의 고문서를 검토하여 과거 역의 기능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과 아울러 감찰기능과 신앙형태, 그리고 당시 역원들의 삶과 행정업무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알려주었다. 사실 역은 지방 집권층과 다른 성격을 가지기에 이에 대한 고찰은 과거 중앙통치의 방법과 지방토호집단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여 준다. 그리고 사방과 중앙의 방위개념으로 의례가 진행되는 신앙형태는 특이하여 전통신앙의 맥락을 파악하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안동사람들의 얼과 멋
안동대박물관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면 "450년만의 외출" 특별전이다. 안동시 정상동에서 발견된 450년 전의 분묘에서 나온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의 삶이란 언제나 애틋함이 있고 언제나 절절하다는 것을 증명한 세상살이의 이야기였다. 아이를 가진 부인이 남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쓴 편지에서 450년 후의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동일한 고민과 인생에 대한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 것이다.
필자가 처음 450년만에 세상에 드러난 편지를 보면서 두가지 회한이 떠올랐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인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픈가 하는 것과, 세상 살아가는 맛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요즘에 특히 사는 것에 대한 의문이 많아지는데 그 의문이 해갈되지 않을 때가 많다. 무엇에 대하여 헤메고 있는지도 모른체 의문만 잔뜩 가지고 있는 것이다. 블랙홀에 빠진 것인지! 모를일이다.
올해 안동대박물관의 특별전은 "안동삼베 그 얼과 멋"이다. 안동지역은 예로부터 삼베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하기사 삼베가 한국옷감의 주원료였기에 한국 어디나 삼베가 안나는 곳이 없었지만 안동은 땅의 지질과 안동여인네들의 삼베짜는 손맵시로 인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안동지역의 전통을 잇고 이 시대의 미감으로 재조명하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전시가 바로 이번 특별전이다. 작은 전시공간이지만 삼베의 다양한 특징을 보이기 위한 오밀조밀한 전시, 그 자체에 삼베를 삼는 옛 안동여인들의 짜임새 있는 손맵시가 느껴진다. 삼베에 천연색감을 넣어 갖가지 문양을 넣은 것, 그 차롬한 색감의 결들에 의하여 느껴지는 질서와 삼베의 질긴 생동감의 조화, 차가운 조각을 걸기 걸기 묶은 것에서 느껴지는 시원함과 따스함, 옛 삼베옷을 다시 복원하고 그 생활화를 모색한 것들, 아마도 옷감이나 색감에 대하여 고민한 사람이나 안동지역 문화에 대한 고민의 끝을 잡고 있는 사람은 이 전시에서 그 공과 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동대에서 삼베를 주제로 잡은 것 자체가 안동대박물관에서만 할 수 있는 전시장르이다. 삼베에 대한 문화적 접근과, 삼베 그 자체의 연구, 디자인과 생활용품으로서의 기능성 등은 안동대 박물관이 가진 종합적 연구역량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연구 중심보다 대중적 관심을 끌고자 하는 등에서 안동대 박물관의 특별전의 취지를 파악할 수 있다. "450만의 외출"이나 "사진으로 보는 조선"등의 전시 표제에서 보이는 것처럼 정서적 이해를 통하여 본질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삼베전이 안동삼베에 대한 고른 이해와 삼베와 관련된 다단한 아이디어가 표출되어 상품으로 연결되는 등 삼베문화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중요한 장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흥미있고 쉬운 이해, 깊이있는 연구, 본질에 대한 관심, 그리고 현실성이 고려되어 안동삼베의 얼이 지켜지고 이어지고 그 멋이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외 다양한 안동문화권의 소재들로 이러한 맥락의 작업들이 안동대 박물관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알지만
현실적인 일이나 자본주의가 만든 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힘겨운 일인데 소위 문화적 가치 운운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 분명하다. 현실에 지쳐 그 길에 대한 막연한 의무감만 가지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삶에 정감이 가지 않으면 소위 문화적 가치를 찾아가는 길이 더디어진다.
당면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길처럼 이어져 있고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의 조응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길을 가는 나의 걸음의 끝이 확연히 떠올려 지기에 더욱 마음 답답하다. 마음만은 현실에서 벗어나 있고자 하지만 그 양의심공(兩意心功)은 나에게 없다.
어떻게 보고, 어디를 보는가가 문화를 찾는 사람의 감동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것을 나는 알지만, 지친 마음으로 삭막한 정서를 가지고 박물관 혹은 문화재를 찾아가는 것은 이러한 정서적 위안의 한 부분이리라. 그리고 이러한 정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애써 마음속에 있는 지적 호기심이나 내용물로 글을 채우는 것에 다름 아님을 안다. 그렇다. 준비되지 않고 박물관을 찾아 옛날에 아는 것을 끌쩍일 따름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