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약속, 물에 가라앉은 별신의 마을 마령동(글/조정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별신의 마을 마령동

안동에서 선어대를 지나 양편으로 산을 끼고 반변천을 따라 가다, 안동대를 지나고 내앞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게 되면 탁 트이는 임하호수를 만나게 된다. 잘 모를 때에는 참 시원하게 물이 들어차 있구나 하면서 그 경관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언덕을 넘어설 때마다 수몰된 이주민이 떠오르고 생으로 산이 깎여 붉은 상처를 드러내는 모습이 참으로 안스럽게 생각된다. 그렇게 쓰린 가슴을 시원한 물바람으로 씻어내며 중평단지를 지나 긴 다리를 하나 건너면 명성쉼터를 만나게 되는데, 그 휴게소를 끼고 좌측으로 조금 들어가면 마령동에 이른다. 자신이 살던 물밑을 바라보며 이주단지에 살고 분들의 아픔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별신굿의 흥겨움은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안동지역은 내륙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을들에서 별신굿을 벌여왔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마령동 별신굿은 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마령동 별신굿에는 허제비 잡기와 범굿이라 불리는 독특한 굿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구체적인 소망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굿놀이는 보다 직접적이고 투박한 소재를 가지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합심으로 기원하여 액을 몰아내는 적극적인 연행양상을 보여준다. 분명한 대상과 그것을 유감주술적으로 해결하는 원초적 신앙의 양식이 잘 전승되어 온 것이다.


마령동은 수몰되기 이전에 행정상 임동면에 속하였고, 마령 1동과 2동 그리고 3동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별신굿과 동제가 벌어지던 마을은 마령 1동이고 가르편, 큰마, 쇠랑실, 우뭇골, 창마 등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령(馬嶺)이라는 명칭은 마을 모습이 우마가 짐을 싣고 가는 형국 또는 말발굽 형상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의 입향조는 약 450년 전에 이곳으로 이주한 밀양 박씨라고 하며, 그 후손이 지금 18대째에 이르고 있다. 또한 마을 뒤쪽에는 입향조를 모신 만취재라는 재사가 있고, 이곳에 선조들의 행적이 기록된 문서들도 보관되어 있다. 밀양 박씨가 가장 많이 살았으며, 경주 이씨, 전주 유씨, 안동 권씨, 그 밖의 각성들이 수몰되기 전 약 90여호를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토지가 비옥해서 무엇이든 재배하면 양질의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으며, 1986년 확장한 도로로 인해 교통이 편리하여 출하도 잘 되었다. 특용작물로는 담배와 고추, 마늘 등을 재배하였으며 개를 많이 키웠다. 마을 사람들은 안동장도 이용했지만 보통은 채거리장을 이용했으며, 동제나 별신굿 때 사용되는 제물도 채거리장에서 구입했다.


마령동의 동제 유래로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첫째, 어느 노승이 마을에서 시주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노승은 목이 말라 샘에서 물을 마시고 지팡이를 짚고 쉬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죽었다. 동민들이 노승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 그 이후부터 마을에 기근이 들고 질병이 돌아 인명 피해가 많았다. 그러던 중 주민들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서 사당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주민들이 그 자리에 중을 위한 당을 지어주니 그로부터 질병도 없고 마을의 농사도 잘 되었다. 당을 옮기기 전(1988) 옆에 있는 당나무는 노승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고 다시 자란 것이며, 이 나무 뿌리에서 다시 자란 것이 하당 나무가 되었다.


둘째, 어느 노승이 박씨 집안에 와서 어린 아이를 시주하라고 하였으나 이 집에서는 거절하여 돌려 보냈다. 노승은 마을에서 쉬다가 갑자기 객사하였다. 그 이후로 좋지 못한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 그러던 중 동민 여럿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사당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동민들이 사당을 세워 모시자 마을이 평안하였다. 사당 옆에는 노승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자라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그 후로 매년 정월 보름에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러한 유래를 가진 동신당을 마을 사람들은 중당이라고도 한다. 즉 스님이 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령동의 동제 제상에는 고기가 올라가지 않는다. 동신이 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제를 지내다가 호식(호환을 당하는 일)되는 사람이 생기자 호랑이굿과 허제비굿을 벌이는 별신굿을 10년마다 벌여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별신굿은 1988년에 수몰지역에 있던 당을 위쪽으로 옮기는 것과 함께 마지막으로 벌어졌다. 마령동은 물에 잠겼지만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물위로 이주해 살고 있기도 하고 외지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였다. 현재는 2-3가구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당제의 전통은 새로운 이주단지 주민들과 함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글에 보이는 별신굿은 주로 1988년의 자료와 제보자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하였다.

10년을 마다 않고 기다리던 별신굿의 주재자들

마령동의 별신굿에서는 영해와 영덕지역 및 인근 내륙지역에서 무당들을 불러와 굿을 벌였다. 이러한 동해안 지역 무당의 유입은 바로 이 마을의 별신굿이 동해안에서 벌어지는 별신굿과 유사한 점을 가지는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범굿은 강원도와 경상도의 동해안별신굿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굿으로서 해안지역과 내륙지역이 무당의 단골판으로 연결되고 있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마령동의 별신굿은 10년마다 거행된다. 해마다 지내는 당제와는 별도로 "당기는 것도 늦추는 것도 없이 꼭 10년만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매년 정월 보름에 행하는 동제를 통해서는 마을신으로부터 복을 기원하고, 10년을 주기로 행해지는 별신굿을 통해서는 잡귀와 호랑이를 적극적으로 퇴치하는 것이다.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마을신으로부터 복을 얻어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을에 액운을 가져온다고 믿어지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퇴치하여 마을을 보호하는 일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강점기 때 별신굿을 한 해 미루어 지낸 적이 있는데 그 후로 마을이 매년 흉년이 들고 여우가 아이를 잡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마령 마을 사람들은 별신굿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이러한 믿음이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70년대의 미신타파 압력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별신굿은 10년마다 술자(戌字)가 든 해의 정월 보름날 낮에 하는데, 마을 풍물잽이들과 제관이 주관을 하되 무당을 불러서 내림도 받고 당제도 올린다. 특히 무당 중심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호랑이 잡기와 허제비 잡기라는 굿놀이를 벌임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액을 상징하는 허제비와 마을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호랑이를 모의적으로 퇴치함으로써 앞으로의 행복한 10년을 약속 받아내는 것이다. 잡귀는 개인과 마을공동체에 재앙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마을사람들은 이러한 잡귀를 퇴치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잡귀는 추상적 관념의 존재이므로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잡귀를 뜻하는 구체적인 형상물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마령동 별신굿은 무당과 주민들이 함께 진행한다. 무당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마을 풍물잽이들이 꼬깔을 쓰고 함께 참여해 가락을 이끌어가고, 범굿이나 허제비굿에서도 마을 사람 중의 대표가 포수로 나서서 호랑이와 허제비를 잡는다. 무당들은 10년마다 찾아와서 마을사람들의 기량을 키워주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10년을 기다리며 지난번의 신명을 다시 찾고자 노력하여 이전보다 나은 굿을 할 수 있게 된다. 무당들과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상호작용하면서 굿을 지속시키고 발전시켜온 것이다.

산촌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마령동 별신굿의 범굿

마령동은 교통의 요지에 있는 임동 채거리와 인접해 있어 예안, 봉화 등지로부터 어물장 등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길목이었다. 따라서 험악한 산악지형으로 인해 호환의 피해가 계속되자 특별한 별신굿의 범굿을 통해 호환을 예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범굿은 전국적으로 호환을 피해가 있던 곳에서는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굿이다.


범굿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놀이과정에서 호랑이와 허제비를 잡는 사람은 포수처럼 차려 입고 망태를 메고 사냥총을 손에 들었다. 무당과 마을 풍물패들이 내림대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는 가운데 포수는 먼저 호랑이를 잡는다. 총을 쏘는 시늉을 내기도 하면서 호랑이에 접근해서는 총끝으로 호랑이를 찍어올려 어깨에 둘러멘다. 풍물잡이들을 더욱 신명을 높여 호랑이를 잡은 포수를 격려하고, 포수는 호랑이를 어깨에 메고는 거의 춤을 추다시피 한다.


별신굿을 할 때 범굿을 하는 마을은 과거에 범이 출현하여 인명피해를 겪은 마을에 한정된다. 강원도와 경상도 산간지역 및 해안 지역에서도 호랑이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고자 범굿을 행하였다. 이 굿에서는 한지에다 호랑이의 얼굴과 몸뚱이를 그린 호탈을 쓴 사람이 호랑이의 역할을 하면서 굿 의식을 행한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여러 과정을 거친 후 마지막에는 호랑이가 사람의 손에 죽고 가죽까지 벗겨지게 된다.


이처럼 호랑이가 죽임을 당해야 마땅한 부정적 존재로 설정된 데에는 산간지역에서의 현실적인 피해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을 주변의 크고 작은 산에 호랑이굴 또는 범무굴이라는 지명과 범바위라는 자연석 이름도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마령동 사람들이 호랑이 잡기를 하는 것도 호식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다른 지역 마을굿에 나타난 범굿과 같다. 전승지역의 상황에 따라 호랑이는 숭배의 대상이면서도 퇴치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굿놀이에 나타난 이러한 호랑이와 허제비의 결합양상은 전승지역이 산간지역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액운을 안고 불태워지는 희생양으로서 허제비

잡귀는 개인과 마을공동체에 재앙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잡귀를 퇴치하여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잡귀는 추상적 관념의 귀신이므로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잡귀를 뜻하는 구체적인 형상물이 필요하였다. 사람들은 잡귀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사람 모습의 형상을 지닌 허제비를 제작하였다. 허제비는 잡귀를 뜻하는 구체적인 상징물이자 마을내의 모든 나쁜 기운을 받아 안고 정화시켜 주는 희생양인 것이다. 즉 허제비는 잡귀 퇴치의 필요성 때문에 제작되었다.


허제비를 만드는 재료로는 막대기와 짚, 창호지가 쓰이며, 이것은 마을에서 제공하고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제작한다. 제작시 특별한 금기사항은 없다. 허제비는 사람 모습으로 2개를 만드는데, 성별은 수염을 그린 점과 성기를 돌출시킨 것으로 보아 남성임을 알 수 있다. 크기는 보통 1m 50cm 정도로 제작하였다.


 


특히 성기를 돌출시킨 부분은 동해안 별신굿의 거리굿 관례거리에서 얼사촌을 꾸미는 방식과 유사하다. 동해안 별신굿의 거리굿 또한 별신굿 기간 동안 모여든 잡귀들을 잘 먹이고 얼래서 보내는 굿이므로, 보다 구체화되고 연행화된 허제비 잡기 종류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허제비를 잡는 인물도 범굿과 마찬가지로 포수로 형상화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포수가 허제비에게 접근하며 싸움을 건다. 허제비를 잡고 있던 사람이 포수를 피하지 않고 더불어 뒹굴며 업치락뒤치락 싸운다. 포수가 간신히 허제비를 쓰러뜨리고 총을 쏘아 잡는다. 포수와 허제비가 싸우는 동안 풍물을 한층 드세게 친다.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 가죽을 사겠다고 포수에게 돈을 주기도 하며 포수가 총알이 떨어졌다고 하면 총알을 사라고 돈을 내기도 한다. 허제비 잡기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내내 즐거운 표정이다. 포수가 잡은 호랑이와 허제비를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태우는 것으로 허제비 잡기 놀이는 끝이 난다.


놀이과정에서의 즐거움은 호랑이와 잡귀퇴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강한 의지의 실현과 제액초복에 대한 새로운 기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자신들의 연행 속에서 이루어냄으로써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유감주술적 인식이 잘 드러난다. 마을 사람들은 "별신굿이나 고사를 올리면 마음이 편한데, 지내지 않으면 뭔가 찝찝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별신을 하고 나면 마을이 깨끗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별신굿을 하고 난 이후의 마을은 별신굿을 하기 이전의 마을과는 다른 새로운 마을이 되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던 호랑이도 이제는 다 잡았고, 마을에 침투해 있던 모든 나쁜 기운들도 허제비가 끌어 앉고 불살라짐으로써 깨끗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별신굿의 부활을 기대하며

마령동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누가, 어떻게, 왜 그렇게 했던지 간에 분명히 마령동은 옛 자취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서 별신굿을 흠향하던 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댐 건설로 인한 피해는 이주민이나 자연물 뿐만 아니라 무형적인 신앙이나 예술 등으로도 이어진다. 주민들이 사라진 물 속에서는 자연히 신도 기거할 수 없고, 그 신명나던 별신굿도 할 수 없다. 이러한 피해는 어떻게 보상되어야 할까. 유형적인 보상은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새삼 거론할 수 없다 하여도 무형적인 신앙과 놀이는 다시 살려낼 수 있다.



현재 마령동 별신굿을 행했던 주민들은 대부분 외지로 흩어져 나가고 몇 가구 안 되는 주민들이 집단 이주단지에 다른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별신굿은 하지 않기로 협의되었고 당제도 순서대로 생기복덕을 맞추어 제관을 정하여 약식으로 지내게 되었다. 동제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전의 동제가 가졌던 굿적인 성격은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마령동 별신굿의 전통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왜냐하면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산촌적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고, 허제비 잡기와 범굿과 같은 원초적인 신앙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연극적 놀이와 신앙이 동해안까지를 잇는 범지역적 연망을 가지고 있기에 현대적인 별신굿 축제로 재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축제를 통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잃어버린 수몰이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몰로 인해 중단했던 별신굿을 벌이면서 다시금 마을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수몰로 인해서 침체된 마령, 임동 등지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동의 채거리장 전통과 마령동의 별신굿 전통이 잘 조화를 이룬다면 수몰이주민의 설움도 달래면서 다시금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을 단위의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관련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논의와 실천을 기대한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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