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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어울리는 표구만들기, 경안표구사(글/서지연)

휘호한 작품, 즉 서(書)나 화(畵)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배접(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종이를 붙이는 것)을 하고, 또 가장자리에 비단을 붙여 그 작품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작업을 일컬어 '표구' 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구는 서예나 묵화 등을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노력이 들어간 그림과 글씨를 되도록 훼손되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 표구를 한다. 표구는 작품을 오래 보관하게 할뿐만 아니라 훼손된 작품을 재생시켜 주기도 한다. 참 따뜻하고 인간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다.

27년 경안표구사

경안 표구사 사장 신승인(55)씨는 올해로 27년째 표구사를 운영해 오고 있다. 1973년 지금의 구 교육청 앞 삼거리에서 하다가 지금은 그곳에서 구시장 가는 큰길 덜 가서 오른쪽으로 보문장여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쉽게 눈에 띄지 않은 곳이라 한참을 헤맸다.

12년쯤 전 그는 초등학교(당시의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표구 기술을 배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구를 배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동양화를 배울 심산이었던 게다. 그래서 동네의 동양화를 가르치는 화가에게 들락거렸었는데 마침 그 화가의 동생이 표구를 잘했다고 한다. 표구를 배울 운명이었던 모양인지 희한하게도 동양화보다 표구에 관심이 자꾸 쏠렸다.

결국은 표구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고 대구로, 부산으로, 진주로 오직 표구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돌아다닐 만큼 그의 열의는 대단했다. 그러다가 72년에 군을 제대하고 바로 안동에서 자리를 잡았고 표구사에 점원으로 일하다가 경안 표구사를 차리게 되었다.

신씨가 표구사를 시작할 쯤에는 안동에 표구사가 두 군데정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열 개가 넘는 표구사가 있는데 동양화 등의 예술작품의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은 안동과 같은 지방 중소도시로는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판매는 드물고 오래된 가게의 명성에 힘입은 외지 청탁이 더 많다. 대부분의 상업이 그러했듯 표구사도 70, 80년대에 가장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표구하는 작품은 묵화나 서예 등에서 거의 벗어난 것이 없다고 한다.

표구의 기본은 배접

나무를 짜고 배접하고(작품에 종이를 덧붙이는 것), 재단하고, 마무리 하는 등의 표구에서 신씨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단연 배접이다. 작품지는 표구하는데 기본적인 얼굴이어서 작품지가 배접의 실수로 먹이나 채색이 번지게 되면 그 작품은 아무리 잘 표장되어도 생명을 잃어버린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접을 하려할 때는 상당히 신중해야 하고, 배접지를 잘 선택해야 하며, 접착되는 풀 또한 잘 써야한다.

표구에 있어서 풀은 필수적이지만 풀의 과다한 사용은 작품지에 절대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풀을 잘 고르고(채내림), 풀의 농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풀의 액체 농도가 최고로 된 상태를 100으로 하였을 때, 배접되어야 할 풀의 농도는 25∼35%정도가 가장 적합하다. 풀의 농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계가 없었을때는 풀의 농도를 맞추는 기술은 오로지 기술자의 오랜 경험에 의존한다. 그만큼 많은 숙련을 요구하는 것이다.

25∼35%정도는 작업자가 풀어진 풀의 액체에서 손을 담가 약간의 미끄러움을 느낄 때라 생각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는 공장에서 생산되어진 풀을 사서 농도를 맞추지만 밀가루와 소금을 넣어 직접 풀을 끓이고 베에 짜서 농도를 맞추어야 했던 그 공을 예전에 비할까.

또, 배접에서 중요한 것은 풀칠인데, 배접하기 전에 종이를 잘 관찰해서 티나 이상한 부분이 없나 자세히 검사해야 한다. 배접지의 티를 골라내고 나면 배접하려는 작품지 위치에 갱지를 깔고 물을 분무하고 편다. 이것은 작품지에 배어지려는 먹물이나 채색을 억제시키기도 하고 고르지 못한 작업 판의 경우 판 위의 틈새에 끼인 때가 올라오는 경우를 방지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한바탕 풀질이 시작되는데 풀을 많이 묻혀 칠할 경우 배접지가 찢어지는 예가 많으므로 적당한 풀을 묻혀 칠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그리고 솔로 작품지를 살살 펴 줘야 하는데 이것 역시 상당한 주의력이 요구된다. 이제 풀칠되어진 배접지를 잘 들어 물을 살포하여 편 작품지 위에 잘 맞추어 붙이고 걸어 말리면 일차 배접이 끝나게 된다.

이것이 완전히 마르게 되면 2차 배접을 해야 하는데 2차 배접은 1차 배접에서의 얇은 상태보다 배접 하기가 수월하지만, 먹의 번짐과 채색의 번짐에 주의해서 배접해야 한다. 물의 분무가 고르지 못하면 1차 배접한 것이 뜨는 현상이 생기게 되므로 1차 배접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설명에서도 이미 배접의 기술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는데, 표구는 여기까지가 다가 아니다.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까지

표구는 그 기능이 훼손을 방지하는 것 뿐 아니라 작품과의 다양한 조화와 벽면에 걸었을 때 주위의 분위기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이러한 디자인의 다양화가 표구 기술의 진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자리에 비단을 붙이는 것이 이런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한 작업이다. 비단 테의 배색을 잘 맞추어야 그림이 더 돋보인다.

"비단 테는 직접 배색을 고르기도 하지만 손님에게 의향을 묻기도 하지요."
작품의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배색과 촌법으로 표구하였을 경우에는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크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가격과 크기에 따라 표구 작품은 많은 차이가 있다. 표장되는 형에 따라, 앞 유리와 작품이 평평하게 붙어 있는 것은 평형, 작품의 가장자리를 나무로 받쳐서 튀어나오게 했기 때문에 유리와 작품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것은 삼정식. 그 외에도 이중액자, 팔각형 등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가지가지이다. 작품과 유리가 붙어있는 평형이 값이 싸지만, 삼정식으로 하면 작품이 훨씬 오래가고 훼손이 적다는 게 신씨의 귀띔이다.

표구는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표구가 훨씬 수월해 졌다. 나무를 직접 짜고 풀도 직접 끓여서 쓰던 일은 옛날 일이 돼버렸다. 이렇게 나무는 나무 짜는 공장에 주문하고, 풀은 만들어진 것을 구입해 쓰기 시작한 지는 약 15년 전이다. 그만큼 옛날에 비해 수월해진 셈이다.

그렇지만 오랜 노력과 숙련에서 나오는 진득한 기술을 터득하려면 요즘처럼 표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면서 그 기술만 천편일률적으로 배워서는 어림도 없다. 요즘 표구사들이 제조된 나무와 풀을 이용해 그저 갖다 붙이는 기술만을 선보이는 것이 못마땅한 그다.

"배우고 많이 경험하고, 그저 다시 배우고 해보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험에서 배울게 많습니다."

한번 붙여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 표구이다. 이 점에서 그는 특별히 자신감을 내보였다. 요즘은 새롭게 배우는 신식 기술이 인기를 끌지만 표구에서만큼은 오래 묵은 기술을 휘두르는 신씨의 자신감을 따를 수 없다.

"기술도 있어야 하고 물론 여러 가지가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인 만족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론 실수도 많이 했다. 배접을 할 때 분무기로 물을 뿌려서 팽팽하게 해 주는 순서가 있는데, 한번은 작품의 붉은 물감이 잘 번지는 성분인 줄 모르고 물을 뿌려서 물감이 사방으로 다 번져 작품이 손상된 적도 있었다. 또 예전에는 작품을 훔쳐 가는 일이 빈번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작품을 배로 물어줘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실수도 10년 전의 일로 이제는 웃음으로 떠올리는 추억이라고.

가게 안을 둘러보니 베접한 다음 건조하기 위해 걸어 놓은 작품이 여럿 보인다. 전시회가 많은 가을이라 그의 표구 작업도 좀 바쁜 철인가 보다. 여름보다는 전시회가 많고 계절이 넉넉한 가을과 초봄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주로 찾는 고객들은 동양화와 전시회를 찾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병풍(屛風)과 집안의 장식에 필요한 액자(額子), 족자(簇子)등의 제작은 표구공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업이지만,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정성을 들여야 하는 고급 기술분야이다. 기술이라고 말하지만 작품과의 조화를 위한 미적·예술적 감각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기술과 예술의 틈새에서 그 조화를 위해 오랜 경험을 발휘해 온 신씨가 경안 표구사 란 이름으로 오래오래 머무르는 모습이길 바란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