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진경전신을 찾아서 신태수 화백(글/임종교)

풍성하던 가을 들판이 조금씩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추수된 볏단들은 인공적인 설치예술작품처럼 오가는 길손들의 시선을 오래 붙들어둔다. 이하역을 지나쳐 은자처럼 산골 깊숙이 숨어있는 문천초등학교, 오늘은 그곳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함께 가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지 맘이 든든하다. 평소 신태수씨(38)와 친분이 있는 권세홍 원장과 안상학 시인, 그리고 객원기자 노영옥씨와 함께 그의 작업실을 구경차 나섰다.



신화백은 폐교된 학교를 빌려서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2층 그의 작업실로 들어가니 우선은 코 끝으로 전해오는 묵향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빛의 따스함, 그리고 화폭에 오롯이 담겨져 있는 절경들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고,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길손의 정겨움까지…이정도면 가을 추억 하나쯤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겠는가.


램브란트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어린시절

그는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에 관한 첫인상은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억지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낼려고 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 것 같았다. 서양화에는 밝고 어두운 명암이 있듯이, 동양화에는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는 음양이 있다는데 그는 확실히 후자의 성향을 가진 듯 하다.



우선 그의 드러난 부분을 소개해보자. 안동대학교 미술학과와 영남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으며 1997년과 2000년, 두 번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단체전, 초대전 등 100여회 작품을 발표해왔다. 현재는 안동대학교, 영남대학교 동양화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경북미술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의성이 고향이다.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가 미술과 접했던 건 미술교과서를 통해서였다.
"램브란트 그림이 굉장히 강렬하고 사실적인데 그때 당시엔 저한테 인상에 깊게 남았어요. 초등학교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다가 중학교때 예고를 갈려고 잠시동안 그림을 했었지요. 그러다 형편이 허락질 않아 진학을 못하고 고등학교 와서 뒤늦게 기회가 돼서 미대를 진학하게 됐지요."


빛의 미술가라고 하는 램브란트 그림에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았던 어린 학생이 그 이후 동양화에 젖어든 이유는 뭘까.


"그림을 좋아는 했었지만 미대를 갈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미대 갈려고 학원다니면서 동양화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그거 보니까 그럴 듯하고, 저도 혼자 그려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대학 2학년때 전공을 선택하는데 그냥 동양화가 하고 싶단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선택은 뭐 별 대수롭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뭔가 독특한 계기를 찾아내려는 필자의 의도를 여지없이 깨쳐주고는 그 이후부터 풀어놓는 이야기는 그 선택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양이다.


진경정신 화폭에 담아

동양화,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진경정신이니, 진경산수화니 하는 말들이다. 동양화를 하는 예술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경산수화에 대한 이해가 간단하게라도 앞서야할 것 같다. 진경산수화는 18세기 이전까지 중국의 산수화, 즉 관념적으로 산은 어떠어떠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능하면 눈에 보이는 산수를 화폭에 옮기자는 정신이 그 당시 실학사상과 맞물려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신태수씨또한 이 진경정신이란 단어에 그리 자유스롭진 못한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동양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거쳐가야할 홍역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시대적 사실성, 그것을 진경정신이라고 해석한다면 우리의 산천을 그러한 실학사상 위에서 드러낼 때 그걸 진경산수라고 했지 않나 싶어요. 크루베의 그림을 본 적이 있을꺼예요. 그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런 것을 뛰어넘었다는 걸 볼 수 있는 건 그가 주된 소재로 삼고 있는 자연대상을 보더라도 단순한 사회이념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 상황과 결부해서 그 시대상황을 적절히 반영해고 있거든요. 제 그림에서도 그러한 부분들을 표현해내고 싶은데 아직은 사회인식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 같고, 부족하지요,"


그는 진경정신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럼 그는 지금 그 스스로 말하는 시대정신을 화폭위에서 어떻게 펼쳐내고 있는 것일까? 그가 그림에 불어넣고자 하는 정신과 방향성에 대해선 좀더 들어봐야겠다.


"그림의 양식을 떠나서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작가의 내면세계와 더불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 있쟎아요. 그건 산수든, 인물이든, 정물이든 마찬가지지요. 그것이 자연스럽게 그림에 녹아났을 때 제대로 시대정신을 드러낼 수 있는 거지요. 물론 기법도 중요할테고, 제가 지금 활용하고 있는 기법들이 주로 진경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기법을 많이 차용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으로 가능할것인가 하는 부분들도 고민하고 있고요……"


이러한 고민을 아무래도 곁에서 그를 지켜봤던 스승 안동대 만청 권기윤 선생이 제일 잘 알고 있을 듯 하다. 그래서인지 만청 선생은 그의 두 번째 개인전에 부쳐 이런 말을 했다.


"수학과정이 여러해 걸친 것으로 보아 예술의 태도와 목표를 정하는데 적지 않은 갈등과 단련을 거쳤을 것으로 본다. 이른바 전통성과 현대감각 사이의 몸살나는 훈련 같은 것인데 무엇보다 예술주변의 시대적 상황이 토해내는 욕심과 유혹을 견디고 자각의 계기로 삼을 만큼의 자제력과 신중함을 보였던 것이 아닌가한다."


영향을 받는 사람들

만청 권기윤 선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신태수씨의 작품이 그 스승인 만청의 그림과 닮아있다는 지적을 적쟎이 받아왔다. 이번 서울에서 연 두 번째 개인전에서 비슷하지만 신태수만의 개성이 있다는 평을 받긴 했지만 그러한 부분을 완전하게 불식시키기에는 아직 미진함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작품이 비슷하다는 것이 그리 썩 유쾌한 말은 아닐터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져본다.


"저는 제 삶의 경우도 그렇지만 그림에 있어서도 분명한 모범답안을 제시하지 않아요. 저는 선생님과 다르기 위해서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하진 않지요. 지금은 한참 공부해야 할 때고, 어떤 장점이 있다면 과거의 그림이든 동시대의 그림이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려고 노력합니다. 전 꾸준히 저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그림공부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면에서 만청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는 자신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실험을 계속 중이라고 했다. 그건 당장 남과 다르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라 좋은 점들을 받아들이고, 그런 축적을 통한 고민의 덩어리가 언젠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작업실 바닥에 쌓여져 있던 그림들을 하나하나 들쳐 보여준다. 바로 지금까지 그의 작품 경향과는 또다른 실험들을 해온 것들이다. 그의 그림이 우리가 늘 봐왔던 것만은 아니라는 또다른 역설이다. 화선지가 아닌 다른 종이를 써보기도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필법을 구사해보기도 하는 등,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 한단계 나아진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계기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억지로 떨칠 필요는 없고, 고민의 축적을 통해서 나름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그는 만청 선생의 영향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이지만 소산 박대성 선생과의 만남은 작가로서의 자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했고, 미술의 조형성에 관한 문제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만난 김호득 선생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스승 만청선생에게서 易齋(이재)라는 아호를 받았다. "易簡而天下之理得矣" 쉽고 간명한 것으로써 천하의 이치를 얻는다는 뜻이다.


쉽고 간명한 것, 뭐든 이렇게 명쾌해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행했던 권원장님은 "그기 쉽고도 어려운 건데 그게 사물의 본질이지" 그런 말을 넌지시 던지셨다. 얼핏 들으면 정말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려운 말이다. 삶에서도 모든 군더더기없이 이렇게 쉽고 간명해질 수 있다면 무에 그리 시름할 것이 있을까 싶다.


자연스러움의 미학

주로 안동 인근지역의 산수를 많이 만날 수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수련과 매화의 발견은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 그는 홍매화 그림을 개인적으로 아끼는 것 같았다. 천지갑산 휴게소에 들렀다가 우연히 홍매를 조우하고 그 자리에서 그려온 것이다.


그가 작품의 소재들은 자연스러움에서 출발한다.
"주로 산수가 많은데 노자에서 말하는 스스로 그러한 부분…, 그게 산수든 인간의 모습이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땐 저절로 감동을 받지요. 내용적으로도 그렇지만 기법적으로도 화면 전체구성을 편안하게 잡아갈려고 하지요."



그가 자연스러움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그림을 보아주는 사람들또한 자신의 그림을 통해 그런 느낌을 받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제 그림을 통해서 가능하면 제가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삶의 여유와 편안함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것이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겠지요. 그리고 내 나름대로도 성찰해볼 수 있는 시간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림을 선택한 것에 대한 보람이겠지요."


여유와 편안함, 예술하는 사람들에겐 예술작품으로써 위안보다는 스트레스를 더 받을 터, 그 스스로 그림을 즐기고자 하는 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개인적으로 반가웠지만 그가 하고자 예술에 대한 방향성은 언제나 그를 짓누르고 있는 영원한 숙제임이 틀림없다.


"무작정 시대상황을 반영한다고 해서 혼란한 그림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진경산수의 맥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고 진경정신 시대상을 나타내는 리얼리즘의 그림을 하고 싶습니다."


어느 가을날 오후 내 한아름으로는 몇곱을 해도 턱없을 플라타너스가 내다보이는 작업실 2층에서 만난 그는 잎파리 하나하나 조금씩 색을 달리하는 단풍빛마냥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실험을 부단히 하고 있었다. 겸재가 진경산수로 당대의 조선화단에 경각을 주고 자존을 세웠듯이,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진경정신을 그의 붓끝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뿌듯한 기대를 가지고 길게 누운 플라타너스 그림자를 밟으며 돌아왔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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