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글/김윤한)문학과 막걸리
부산행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부산의 동인들과 이곳에 도착한 것은 오늘 아침, 함께 문학활동을 하는 김해의 동인 김지선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함께 글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동인활동을 한 것도 벌써 5년째, 대부분의 동인들은 부산에 살고 있지만 유독 김지선만은 이 김해에 살고 있다.
모두들 20대의 젊은 나이들이라 모든 것이 의욕에 넘쳐 있었다. 동인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진역에 내린 것은 어제 저녁 아홉 시, 제법 늦은 시간이었지만 부산에 사는 다섯 명의 동인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자갈치 앞으로 모였다. 그리고 우리는 새벽이 이슥토록 술을 마셨다.
"김형. 이까지 와서 김지선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 않겠는교?"
새벽 네 시나 되었을까, 동인 최삼철의 제안에 우리는 모두 동의를 했다. 부산과 김해,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이지만 전체 모임이 아니면 김지선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까닭에 모두가 좋다는 동의를 했다. 그날 밤은 여섯 명의 동인들이 최삼철의 단칸방에 얼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음 날 새벽이 밝기가 무섭게 김해로 향했다.
김지선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 바람에 휘날리는 길고 검게 빛나는 머리칼, 눈부시도록 하얀 피부에 조금만 웃어도 살포시 생겨나는 보조개. 우리가 김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우리를 향해 달려 왔었다.
우리는 모두 반가워 껴안을 듯이 김지선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날 낮 우리는 구지봉과 김해 시가지를 둘러보고 점심을 마친 후에 우리가 항상 그래 왔듯이 일찌감치 김해 버스터미널 근처 주점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오십은 넘었을 듯한 늙으막한 주모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막걸리 단지를 휘휘 저어 막걸리 한 주전자를 주탁을 향해 내밀었다.
아직 아무도 등단은 하지 못했지만 동인들 모두 문학, 시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가을 공기를 가르며 구지봉을 오를 때도 시가지를 거닐 때도 시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는 우리 동인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하기사 이러한 논쟁은 1920년대 프로문학의 내용과 형식 논쟁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럼. 뭐 땜에 시를 써? 사회적 역할이 없다면 그건 바로 마스터베이션이여"
언제나 다혈질인 조성태가 검은 뿔테 안경 사이로 그 큰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는 스텐 사발에 부어 놓은 막걸리를 철철 흘려가며 벌컥벌컥 마셔댔다. 최삼철도 여기에 질 새라 언성을 높였다.
"기능만 중요하다면 시를 쓰지 말고 차라리 군바리들을 향해 돌 하나라도 던져. 그럼 조형 시가 사회적으로 뭘 기여했는데?"
이런 류의 논쟁은 우리들에게 막걸리 맛을 더욱 높여 주었다. 어느 새 막걸리 주전자가 비어 있었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고 결론도 나지 않을 이야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열을 올렸고 그 덕분에 모두들 한껏 취기가 올라 있었다. 가끔씩 마주 않은 김지선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얼굴에 어느덧 예쁘게 홍조가 들고 있었다.
밖에는 어느새 어둑살이 끼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도 거른 채 논쟁에 열을 올렸다. 입으로는 막걸리를 마시고 떠들며 문학이야기를 하고 그리고는 연신 뒤꼍에 있는 화장실을 교대로 들락거렸다. 남자 화장실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소변 찌꺼기가 덕지덕지 불그스레하게 굳어 붙어 있었다.
"막차 시간 다 됐는데예."
여자인지라 그 중에서도 가장 술을 적게 마신 김지선이 차표를 꺼내며 우리 좌중을 한 바퀴 휘이 둘러보았다. 모두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눈동자는 졸리운 강아지 눈처럼 힘없이 풀어져 있었다. 최삼철이 먼저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나머지 일행들도 뒤따라 일어섰다. 조성태가 나무로 대충 짜 만든 주탁에 걸려 콰당 넘어졌다. 취한 눈을 부비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시계바늘이 아홉 시 오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버스 시간은 오 분밖에 남지 않았다. 넘어진 조성태를 일으켜 세우고는 급히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가 출발하기 위해서 마악 후진을 하려는 찰나 김지선을 제외한 우리 일행은 가까스로 막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아랫도리의 카타르시스
마지막 버스인지라 시외버스 안내양이 일찌감치 버스표를 걷고 있었다. 짤달막한 키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덕지적지 묻어 있다. "표 주이소" 친절하지도 불친절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어투로 안내양은 승객들의 표를 걷은 다음 운전기사 옆 좌석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승객은 채 십오 명이 되지 않았다. 우리 일행 다섯 명을 제외하면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은 불과 십여 명, 대부분 사람들은 늦은 시각이라 모두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졸음을 즐기고 있었다. 한 십여 분을 달렸을까? 거의 모든 승객들이 졸고 있음을 알았는지 버스 뒷 쪽의 실내등을 모두 끈 채 가운데 통로쪽 누런 빛깔의 미등만이 흔들리는 버스와 함께 좌우로 가벼이 움직거리고 있었다.
운전기사 옆쪽에는 나이 사십은 된 듯한 아주머니가 갓난애기를 안고 있었다. 피부가 검고 거칠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언뜻 보기에는 오히려 그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일까? 아니면 혹시 손자? 그런 부질없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어린아이가 와아- 울음을 터트렸다.
내 속마음을 읽어버린 것일까? 그 어린아이는 거의 발악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좀 달래면 좋으련만 그 늙은 아주머니는 별로 달래려고도 하지 않고 습관처럼 우유병을 연신 아이의 입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더니 지쳤는지 조금 지나자 아이는 조용해졌다.
다시 한 십여 분이 지났다. 다시 차 안은 정적으로 가득 쌓이고 모든 승객들은 깊은 졸음에 빠져들고 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앉은 유달리 뚱뚱한 아주머니는 심지어 가끔씩 코까지 골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하기사 어제 새벽까지 마셔대고 오늘 오후와 저녁 내내 술을 마셔댔으니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버스가 조금씩 요동칠 때마다 좌우로 흔들흔들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였다.
차안의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점퍼를 치켜올리고는 창문에 가만히 기대어 잠을 청했다. 유리창이 볼에 부딪쳤다. 볼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하기사 술 때문에 얼굴에 오른 열기가 확 가라앉는 것 같았다. 버스 차창 밖으로 한 무리의 찬바람이 소리를 치며 지나갔다.
한 오 분여나 잤을까? 하복부 아래 사타구니 쪽의 묵직한 통증 때문에 문득 졸음에서 깨어났다. 이 버스가 부산까지 도착하려면 아직 얼마나 더 걸릴는지 모른다. 하기사 오늘 오후 내내 막걸리를 마셔 댔으니 소식이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옆자리의 최삼철도 앞좌석의 조성태도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무슨 꿈을 꿨는지 오른 쪽 건너편 좌석에 앉은 이충기는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점점 아랫도리의 통증이 더해져 왔다. 때로는 쓰리기도 하다가 때로는 꼭 송곳 같은 무엇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랫배에 힘을 주었지만 그럴수록 아랫도리에는 점점 더 통증이 더해져 왔다.
물론 차를 세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막차에서 내린다면 오늘은 이 산자락 캄캄한 어딘가에서 밤을 세울 수밖에 없다. 운전기사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차를 세운 채 길가에 서서 볼일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뒤통수에 와 꽂힐 나머지 승객들의 그 따가운 시선을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었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갑자기 그런 말이 뇌리를 스쳤다. 복이 있다니?
금새 방광이 터져 버릴 것 같은데 무슨 복을 바라고 이 엄청난 통증을 감당할 것인가? 참으로 팔짝 뛰도록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생리현상이라는 말을 듣고 쓰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차가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상당히 높은 고개인 모양이었다. 버스가 커브를 돌거나 덜컹거릴 적마다 아랫도리는 화끈화끈 쑤셨다. 순간적으로 쏴아 힘차게 오줌을 누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자 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다가왔다. 아마도 여태껏 겪은 고통 중에 이만한 건 없었으리라……
담배를 피우기 위해 어두컴컴한 맨 뒷좌석으로 향했다. 앞만 보고 열심히 운전을 하는 운전기사 외에 그 차에 더 이상 깨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고통을 참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순간 또다시 무서운 고통이 내 방광을 엄습해 왔다. 차는 길고 긴 오르막 고개를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에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도 김지선의 맑은 얼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만일 세종대왕이라면 이 순간 어떻게 대처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맨 뒷좌석 구석으로 가 컴컴함 덕분에 용기를 내어 드디어 지퍼를 내렸다. 혹시 앞좌석의 사람들이 눈치 챌까봐 조금씩 방광의 소문을 열었다. 카타르시스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오랜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한없는 쾌감이 아랫도리로부터 전해져 올라왔다. 방광 속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 하도록 가만가만 다시 앞좌석으로 돌아왔다.
오르막길은 그 이후에도 십여 분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모른 척 눈을 감고 앞쪽으로 다시 와 앉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이대로 오르막이 계속되고 이 오르막의 끝이 종점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분명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그 때는 모든 것이 탄로 나고 말 것이다.
드디어 긴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그 때였다.
"어! 이게 뭐고?"
삼십 대 중반인 듯한 한 사내가 뒤를 돌아다보며 금덩이라도 발견한 듯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 뒤쪽에서는 그 동안 고여 있었던 엄청난 양의 물이 앞쪽을 향해 도랑을 만들며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운전기사를 포함해서, 자고있던 모든 승객들이 일제히 뒤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나 낙동강물처럼 그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리는 뒷 좌석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나도 그 승객들 틈에 끼어서 뒷 좌석을 돌아다보며 한 마디 점잖게 내뱉었다.
"언 눔인지 참 많이도 싸 제켰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