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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 짧은 만남,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글/이미홍)

북에 살아 있다니!

올해 일흔 네 살의 이끝남 할머니. 할머니는 지금도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잠시나마 다시 만났던 몇 달 전의 그 일이 꼭 하룻밤 아득한 꿈만 같다. 할머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그때 남편과 찍었던 사진이나 방송국에서 준 비디오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할머니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꾸었던 그 숱한 부질없던 꿈들처럼 가슴 속에 혼자 한으로 삭여야만 할 또 하나의 허망한 꿈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 거짓말처럼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51년이 지난 어느날 생각지도 못한 북쪽에서 남편(리복연·76)이 내려온 것이다. 남북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통해 아내 이춘자(이끝남 할머니의 일제시대 이름)와 아들 지걸(56)이와 호걸(53)이를 찾아서 말이다.

작년, 여름 초입의 어느 날이었나보다. 큰 아들 지걸씨가 힘겹게 말을 꺼낸 것이.

"어무이, 놀라지 마십시오. 아부지가 살아계시다니더! 북쪽에 살아계시다니더! 이번에 북쪽에서 보내온 상봉 희망자 명단에 어무이와 저하고 호걸이가 있다고 합니다."

"……!"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사실이었다. TV에서 연일 분단 이후 첫 만남인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 떠들석하게 보도를 하고 남쪽 생존자 명단이 어떻고 북쪽 생존자 명단이 어떻고 해도 그건 남의 일일뿐, 남편이 일본에서 살고 있거나 죽어 벌써 이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할머니로서는 그 일이 자신하고 상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터였다.

그런데 일본에서 살고 있으려니 했던(7년째인가 되던 해 일본에서 큰 아들 지걸이 앞으로 밥은 굶더라도 공부는 게을리하지 말라고 보낸 편지가 51년 동안의 남편의 유일한 흔적이었었다), 가슴 속에 한으로만 묻어 두고 한 번 꺼내 보기조차 두려웠던 그 남편이 북쪽에 살아 있었다니, 할머니는 그날 밤 한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제 가슴 속을 열어 마음을 가다듬어 볼 새도 없이, 미처 그러기도 전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방송국에서, 잡지사에서 앞다투어 기자들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싫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내 집에 온 손님인 그네들을 맞았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할머니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속절없이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서 할머니는 남편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무얼 준비할까 망설이다 먼저 금방엘 가 닷 돈짜리 금반지를 맞추고, 베전 골목에 가서 빛 고운 삼베로 남편의 한복도 한 벌 지었다.

그리고 남편이 북쪽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귀뜸을 생각하고는 저쪽 아내를 위해 두 양주의 시계도 똑같은 걸로 마련했다. 그렇게 선물을 준비해 놓고도 할머니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람이 일었다 잦았다 했다. 아들들도 마음이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은 뻔한 이치였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전날까지도 아들들은 마음이 어수선한 지,

"어무이, 저는 고만 가지 말까 하니더?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아버지를 지금 새삼스럽게 만나서 뭐 하겠니껴?" 하며 속절없이 마음을 태웠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꼭꼭 묻어 두었던 긴긴 세월의 한서린 기억들이 비오기 전 바람이 일 듯 그렇게 할머니 속을 휘저으며 우수수 일어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자전거 소리만 들려도 가슴졸이며 살았던 50여년

1950년, 6·25가 터졌을 때 그녀는 스물 셋의 앳된 새댁이었다. 열 일곱에 식을 올린 두 살 위의 남편은 스물 다섯의 잘생긴 인텔리 청년이었고, 두 사람에게는 다섯 살, 두 살의 지걸이 호걸이 두 아들이 있었다.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전쟁은, 6·25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피난 행렬이 시작되었고 자전거를 사서 금방 뒤따라 오마는 남편을 뒤로 두고 서울을 떠나 두 아들을 데리고 시숙네를 따라 남편의 고향인 풍산 매곡으로 향했다. 그러나 뒤따라 오마던 남편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스치는 바람 소리에도 지나가는 강아지 발자국 소리에도 무심하지 못했고, 특히나 골목 어귀에서 자전거 소리라도 날라치면 맨발로 뛰어나가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편을 기다리기를 그만 둔 후로도 오랫동안 그녀는 지나가는 자전거 소리에 가슴을 절여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선 두 아들과 함께 먹고 살아야 했다. 아들의 행방도 모른 채 문간방에 기대 사는 젊은 며느리와 어린 손자를 무척이나 애잔해하는 시부모님들이었지만 넉넉지 못한 시골 살림에 그녀가 언제까지나 시부모만 믿고 쳐다보고 있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녀가 제일 처음 한 일은 과수원에 가서 낙과를 받아 와서 파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는 과일이 귀한 편이라서 낙과를 가져다가 파는 일은 그런대로 할 만 했다. 돈 대신 쌀이나 보리 등의 곡식으로 대신 받기도 했는데, 다들 넉넉지 못한 살림들이었는지라 간혹 사과를 먹고 싶은 아이들이 부모 몰래 쌀이나 보리 등을 축내는 일도 더러 있어 동네에서 싫은 소리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일들에 연연할 틈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다. 개고기를 팔기도 했고 오징어 장사도 했고 심지어는 남의 오줌통을 지는 일도 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서울 새댁은 그렇게 억척이 되어갔다.

그 무렵 서울에서 언니가 친정 어머니와 함께 2차 피난행렬을 따라 안동으로 내려왔다. 언니네는 안동 버스정류장 근처에 당시 판자로 하꼬방을 짓고 버스 승객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를 시작했다. 언니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고생하는 동생이 늘 안쓰러워 안동으로 불러 옆에서 함께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비록 퇴락해가는 살림살이기는 했지만 친정(선성 이씨)이나 시댁(진성 이씨) 모두 법도를 따지는 집안이었는지라 남편도 없이 젊은 새댁이 대처에 나가 생활한다는 것이 쉽게 용납될 리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서울이 수복됐고 언니네는 다시 서울로 가게 됐다. 언니는 동생을 위해서 친정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매, 이실이를 데려다 이 장사라도 하게 해 줍시다. 애들하고 우선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니껴?"

그렇게 해서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안동으로 오게 됐다. 언니가 하던 가게를 물려받아 아이를 업고 끼고 열심히 장사를 했다. 젊은 여자 혼자 몸으로 장사를 하는 딸이 걱정이었던 친정 어머니는 아예 그녀네로 옮겨와서 아이들을 봐 주며 옆에서 늘 그녀를 지켜주었었다.

젊고 고운 그녀에게 왜 재가하라는 주위의 유혹이 없었겠나만 그런 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 아들들을 두고 다른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열심히 장사해서 돈 벌어서 먹이고 입히고 그리고 아들들 공부 뒷바라지하며 사는 사이에 모진 세월이 흘러갔다.

그렇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던 옛날의 그 가게 터에 3층짜리 건물을 지을 만큼 생활도 점차 안정이 되어 갔고 두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이루어 자리를 잡았다. 통신회사 사장으로, 큰 음식점 사장으로 제법 성공한 자식들 덕에 이테 전에는 칠순 잔치도 남부럽지 않게 치루었다. 이제 저승 갈 일 말고는 여한이 없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녀였다.

가슴 한 켠에 가시처럼 박힌 한이야 그녀가 갖고 가면 그뿐이었기에 남은 바램이래야 자식들 모두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주는 일이 전부인 그녀였었다. 그런데 그 긴 50여년의 세월을 넘어 느닷없이 남편이 그녀 앞에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녀가 남편을 만나러 가는 일 말고 달리 무얼 더 어쩌겠는가. 그녀는 남편을 만나러 갈 터였다.

눈물만을 뒤로 두고

광복절 하루 전날인 14일 저녁, 할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온 큰 며느리의 차를 타고 조용히 서울로 향했다. 그동안 언론과 사람들에 시달리느라 한차례 몸살을 치룬 할머니의 건강을 염려한 큰 아들의 배려였다. 그날 밤 할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마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잠을 청하는 대신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줄 선물 보따리와 함께 사진첩에서 챙겨 온 그 옛날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사진 속에서 잘생긴 동안의 남편은 웃고 있었다.

8월 15일 아침, 할머니는 정성껏 단장을 하고 두 분 시누님과 두 아들을 앞세워(상봉 인원이 다섯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어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은 멀리서 할아버지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집을 나섰다. 그런데 할머니가 남편을 만나는 일은 그냥 할머니만의 만남이 아니었다.

50년만의 역사적인 첫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온 나라와 전세계가 함께 지켜보는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속에서, 가슴에 서로의 이름을 단 아내 이끝남 할머니와 남편 리복연 할아버지는 그렇게 만났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육신에 아로새겨진 세월의 깊이가 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함께 가신 시누님들은 그동안 살아내 온 이야기들을 동생에게 들려주며 연신 눈물을 훔쳤고 그 옛날부터 마음이 여렸던 남편은 할머니가 아들들 키우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할머니가 여자 혼자 몸으로 재혼도 하지 않고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준 것을 보고는 할아버지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눈치였다.

할머니도 쉬이 말문이 열리지가 않았다. 그동안의 세월이 서러워 애잔한 마음에 한 마디 건넨다는 것이 "그래, 자전거는 사 가지고 왔니껴?"하는 투박스런 한 마디였다. 할머니의 고단한 사연을 담은 이 한 마디가 방송에 나가는 바람에 할머니는 본의 아니게 자전거 할머니로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두 아들 잘 키워준 할머니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할머니가 지어 간 삼베 한복을 입고 눈물 바람을 한 할아버지가 북쪽에서 온 사람들 중에 유난히 카메라에 눈물 훔치는 장면이 많이 잡힌 것처럼 말이다.

남편은 북한에서 대학을 두 군데나 더 나왔다고 했다. 전쟁 전에 일본에서 동경전문대와 한양전문대를 나온 할아버지인지라 할머니는 무슨 공부를 그리 많이 했느냐고 퉁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좋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해서 딸 셋, 아들 둘 5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시집 장가를 들어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잘 살아서, 좋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북한에 있는 자식들 이야기를 하면서 지걸·호걸 두 형제를 건네다 보는 남편의 눈이 어느새 또 젖어 있다.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는 아버지인지라 두 아들의 이름조차 한 번 편하게 불러보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사진속의 얼굴이 전부인 두 아들도 아버지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부자지간을 지켜봐야 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아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건 인력으로 어찌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피붙이였다.

하루 두 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삼박 사일의 짧은 만남 속에서 사람들은 목이 탔지만 그 속에서 그렇게 그들은 한 가족으로 만났다. 비록 수행원과 취재진이 지켜보는 앞에서의 만남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는 너무도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이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그리고 서로의 가슴 속에 서리서리 쌓인 한을 미처 다 풀어내기도 전에 마지막 날이 왔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호텔방에서 남편은 이대로는 갈 수 없다며 수행원과 취재진이 지켜보든 말든 다짜고짜 아내를 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맙다, 미안하다며 늙은 아내를 보듬어 꼬옥 안아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밉다고, 낳아만 주면 아버지냐고 만나러 오기조차 힘들어했던 아들들도 결국에는 아버지를 부르며 오열하고 말았다. "아버지!!", "지걸아! 호걸아!" 그제서야 마음놓고 불러보는 아들의 이름이었다. 끝까지 눈물을 보이고 마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눈물만을 뒤로 두고 리복연 할아버지는 떠나갔다.

그리고 안동 집으로 내려온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서 다리를 헛디뎌 골반 뼈를 다쳐 골반뼈를 인공뼈로 대체하는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할머니 맘에는 아마도 한 번쯤은 치러내야 할 할아버지를 만난 뒤끝에 하는 병치레인 듯 싶기만 하다.

지금도 생각하면 하룻밤 푸지게 꿈을 꾼 것만 같다는 할머니를 보며 그저께 왔다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생각했다. 중국 연변에 사는 조카편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할아버지는 안부 인사와 함께 무엇보다도 지걸네 호걸네가 사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조카편으로 종종 소식을 받아보고 싶다고 조심스레 적고 있었다. 이끝남 할머니와 리복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