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거 없는 친구 ′상하와 명하′(글/조정옥)

얼마 전 영화관에서 '친구'란 영화를 봤다. 부산 바다의 짠 내음이 스크린에 물씬 풍겨 나던 영화 '친구'.



장의사집 아들로 건달의 자식으로 밀수꾼의 귀염둥이로, 의사 집 귀공자로 태어난 네 명의 친구들은 매캐한 소독차 뒤꽁무니를 쫓으며 도둑질을 하고, 바닷가에서 패를 나눠 쌈질을 하며 우정을 키운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부산을 떠나고 싶은 욕구와 그렇지 못한 망설임이 만조와 간조처럼 넘실거렸던 사춘기를 지나면서 같이 어른이 되고 우정을 키우던 이들은 결코 '미안한 거 없는 친구'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무척이나 친구들이 그리웠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수다떨던 아이들과 경주를 누비며 스무 살 가슴앓이를 함께 겪어 준 내 친구들. 생각만 해도 가슴 한 구석이 든든해지고, 웃음이 절로 나는 그 친구들도 나처럼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리고 며칠 후 만난 상하 역시, 영화만큼이나 내 친구들을 그립게 만든 장본인이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 상하

"여보세요? 상하네죠? 상하 집에 있나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제가 상하-ㄴ데요."
"아, 그렇구나. 안녕하세요? 이번 달 사랑방 안동지에 상하 학생의 얘기를 좀 소개하려고 하거든요. 고등학교 때 명하라는 친구와 단짝 친구였다면서요?"
"……"
"여보세요? (최대한 친근한 목소리로) 명하가 몸이 불편해서 상하 학생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하던데… 맞아요?"
"(퉁명스럽게)그걸 도와줬다고 해야되나? 그냥 친구니까 친구로 같이 지냈을 뿐이예요"
상하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이 됐다.


친구니까 당연한걸 가지고 뭘 대단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냐는 듯이 얘기하는 상하를 보면서 난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번 호에 상하의 얘기를 굳이 해야하나 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오히려 제가 명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조심스럽게 상하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러면 명하 친구와는 언제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명하에 대한 첫 번째 기억

그러니까 맨 처음 명하를 만날 때부터 얘기를 해야겠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을 한 가득 쑤셔 넣은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 거기다 남들의 두 배는 족히 되는 도시락을 넣은 주머니를 들고서 낑낑거리며 학교로 가고 있던 중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늦잠까지 자는 바람에 평소 등교시 걸음보다 두 배로 빨리 걷고 있는 나. 그렇다고 뭐 내가 흔히들 말하는 농땡이 학생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단 하나 나의 단점이라면 너무나도 낙관적이라는 점. 정확히 말하자면 괜한 걱정은 절대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그날 역시 지각을 하게 된 이유도 어젯밤에 누나를 꼬셔 밤에 라면을 끓여 먹는 바람에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결국 새벽에서야 잠이 들었기 때문인데, 고등학교 입학 후 최초로 지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정신없이 교문을 향해 달려가 던 중, 정문에 다 다를 즈음 내 눈에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한 아이가 들어왔다. 비록 나처럼 가방이 크지도 않고, 거추장스럽게 손에 든 것도 없어 보였지만, 그 아이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힘들어 보였고, 자꾸만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우리가 친구로 만나는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었는가 보다.
그게 맨 처음 명하를 만난 기억이다.


그 녀석에 대한 두 번째 기억

"상하야 인사해라, 명하다. 인자부터 우리랑 한 반 됐으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래이"
"어? 명하? 내 이름하고도 마이 비슷하네. 인자 잘 지내 보제이 명하야."
"그.....래.....방.....갑.....다"



같은 중학교를 다녔지만 한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던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를 잘 몰랐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에 올라와 한 반이 되면서부터 우린 친구가 됐다.
나는 처음에 명하가 건네는 간단한 인사조차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명하의 입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만큼 우린 잘 통한다.



명하는 뇌성마비를 앓아서 몸이 불편했다. 그래서 난 늘 명하의 옆에 앉아서 일주일에 한번씩 바뀌는 분단자리도 내가 옮겨주고, 가끔씩 필기도 도와주곤 했다. 비록 몸은 불편했어도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가 바로 명하였다. 그래서 내가 오히려 명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1, 2학년을 같은 반에서 보냈다. 그래서 방과 후에는 늘 명하네 집에서 컴퓨터 오락을 하면서 놀았었는데, 당시만 해도 컴퓨터가 없었던 나는 명하를 통해 알게된 컴퓨터로, 결국 대학진로까지 결정하게 됐다.



우리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 흔한 노래방이나 볼링장에도 잘 가질 않았다. 왜냐하면 명하가 몸이 불편해서 가기를 꺼려했는데, 철이 없었던 나는 명하를 이끌고 몇 번 간 적도 있다. 그때마다 명하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을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명하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부끄러운 게 있다. 2학년 때였던가? 그래 아마도 2학년 5월쯤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아침부터 담임 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난데없이 모범청소년 선행상을 받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알고 봤더니 평소 명하와 나의 관계를 지켜보시던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받게 된 상이었다. 지금도 왜 상을 받아야 했는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 역시도 왜 주는지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명하랑 나는 한참을 웃고 말았는데,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한가지였다. 앞으로도 더욱 친하게 지내라는 우정의 증서.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는 친구가 되라는 뜻으로 주는 거라고 말이다. 


고등학교 3년이 되면서 우린 처음으로 다른 반이 됐다. 하지만 등하교를 할 때나, 쉬는 시간엔 예전처럼 우리는 늘 같이 다녔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가장 멀리 떨어지게 됐다. 서로 각각 다른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영주에 있는 대학으로 명하는 대구에 있는 대학으로.


어제도 명하와 밤늦게까지 채팅을 했다. 처음에는 대학 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쓰였는데, 이젠 제법 적응을 한 모양이다. 녀석이 과 친구들을 두고 누구는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한참 수다를 떠는 걸 보니 학교 생활에 물이 오른 모양이었다.


"명하야! 니 좋다카는 여학생들은 없나? 아이믄 니가 좋아하는 여학생은?"
"임마! 그건 묻지 마라, 다친다"
"야! 하하하 우짜든지 니 좋아하는 여자 있으면 전화해라. 내 한번 놀러가게"
"그라믄 빨리 생기야 되겠네?"
"당근이지!"
"야! 근데 니는 좋아하는 여자 아 없나?"
"비밀이다"
"비밀? 친구 사이에 비밀이 어딨노?"
"사실은 있는데, 내 담에 말해주께"
정말 명하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기긴 생긴걸까? 어쨌든 명하 곁에 나보다 좋은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말은 별로 없지만, 친하게 되면 장난도 많고 웃음도 많은 상하, 상하 친구 명하 역시도 마음이 밝고 건강한 친구였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둘이서 놀러 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린 기억도,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 하다 집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부모님께 엄청 혼나던 기억도, 두 사람만 간직하고 있는 이 추억들이 너무나도 부러운 건 왜인지. 그리고 멀리 있는 내 친구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건 또 무엇인지.<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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