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그 엇갈리는 명암(글/류선경)

고속도로와 우회도로는 늘 지역개발의 통로로 인식되고 있다. 자동차 운행시간의 단축과 물류비용 절감 등 편의성과 경제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도로가 이러한 순기능만 가졌는가? 넓고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와 우회도로, 사람들의 생각처럼 발전을 향한 지름길인지 도로개설에 따른 변화를 통해 그 역기능을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영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씨와 가족들.
봄방학을 맞은 3월초. 올해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두 아들의 등살에 못 이겨 가족나들이에 나섰다. 김씨 부부 역시 바람도 쐴 겸 쇼핑도 할 겸 대구로 향했다.



김씨 부부가 선뜻 대구길에 나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구가 나들이겸 쇼핑을 할 수 있는 적지라는 것과 쇼핑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앙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쉽게 갈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김씨는 아이들의 봄옷을 산 뒤 자신의 등산화도 한 켤레 구입했다. 가격은 영주와 별 차이가 없지만 물건이 많으니까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이 김씨 가족에게 돌아온 즐거움이다. 김씨 가족이 백화점을 나와 다시 들른 곳은 대형할인매장. 아이들은 새학기 학용품을 골랐고, 부인은 식기와 전자렌지 등을 샀다. 멀리 여행을 갈 형편도 못되던 터라 사야 할 물건도 사면서 바람도 쐴 수 있었던 대구나들이. 하루가 금새 흘러버렸다.


 


안동에 사는 주부 이모씨
이씨는 한달에 한번 가량 대구로 쇼핑을 간다. 늦게 얻은 아들과 함께 아들의 장남감과 옷을 사고 역시 아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먹으며 외출의 즐거움을 맛본다. 이씨에게는 동행하는 주부들이 세 명 더 있다.


친목모임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대구나들이는 모임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필요한 생필품마저 미리 적어놓았다가 대단위 용량만 파는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싸게 사서 나눠 쓴다.


 


중앙고속도로 안동-대구 구간에 이어 지난해 6월 안동-풍기구간이 추가로 개통되면서 종전 3시간이나 걸리던 대구-풍기간 자동차 운행시간이 1시간 20분으로 단축됐다. 중앙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시공간상의 변화는 북부지역민들의 일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민들의 소비생활에 두드러진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실제로 대구지역 두 곳의 백화점 구매카드를 발급받은 북부지역 주민은 모두 1만 5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백화점측은 지난해 휘발유 값이 급상승하면서 이들 중 10%정도만이 백화점카드로 물품을 구입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백화점의 카드매출액은 30억원이 넘었다.


북부지역주민의 구매가 이처럼 늘어나자 대구지역 백화점들은 북부지역 고객을 별도로 관리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북부지역민이 모두 승용차를 타고 온다는 점을 고려해 주차장을 늘리거나  할인행사 때는 북부지역에 들어오는 신문에 간지를 넣기도 하고, 고객자료를 확보해 행사내용을 일일이 각 가정에 송달한다. 북부지역 고객이 많은 아동복 매장의 경우에는 매장별로 고객명단과 연락처를 작성해 별도로 관리하기까지 한다


 


악화된 경제사정으로 지역소비가 줄어들면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상인들은 중앙고속도로가 반갑지만은 않은 게 당연하다.
중앙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손님이 대구로 나가는 것을 뻔히 보고도 마땅한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상인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영주지역 상인들은 대구는 물론이고 서울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쇼핑객들도 많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더구나 죽령터널 구간이 포함된 풍기에서 충북 제천 구간이 올해 말에 개통되면 북부지역주민의 쇼핑형태에는 더욱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더 큰 걱정이다.


 


도로의 변화는 농산물판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풍기 시가지 우회도로가 개설되자 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인 풍기읍 백리에는 백여군데의 사과 가판점이 생겼다. 풍기읍내에 있던 사과 판매상들이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외지사람들이 더이상 시가지로 들어오지 않자 소비자를 찾아 이곳으로 판매점을 옮긴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서울방면으로 오가는 운전자들이 많아서 매출이 일고 있지만, 내년에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이 개통되면 이들 가판점들은 또다시 다른 소비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넓고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와 우회도로는 개설당시만 해도 낙후된 북부지역을 발전시켜줄 희망의 통로였다. 물류비용이 줄어들면 공장유치가 쉬워질 것이고, 또한 관광객도 증가하면서 지역발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희망의 통로, 고속도로가 개설된 이후 북부지역에 과연 큰 변화가 있었던가?
공장유치가 단기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굴뚝없는 산업이라는 관광산업 역시 관광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가까운 시기에 변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북부지역에 개설된 고속도로와 우회도로는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돈이 대도시로 유출되는 통로가 되버린 셈이다. 도로개설과 함께 지역상권이 대도시 상권으로 흡수되고 있는데 외지업체가 주인인 대형 판매장마저 속속 들어서고 이제는 홈쇼핑채널까지 지역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재래시장이 무너지면서 그 시장안에서 수십년동안 생계를 이어왔던 상인들은 이제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북부지역의 소비주체인 월급가계가 지역상권을 외면하고 대도시로 유출되면 자금의 역외유출과 함께 지역상권이 급속도로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지역상권의 위축은 금융권의 예금감소로 이어지고 예금감소는 또한 대출감소로 연결되면서 이른바 지역경제의 동맥경화현상이 초래될 수도 있다.


 


북부지역 자치단체들은 그동안 낙후된 도로여건이 지역경제발전을 방해했다는 논리로 앞다투어 도로개설에 주력해왔다. 물론 도로개설에 따른 이점과 순기능도 많지만, 이제는 도로개설에 따른 역기능과 부작용도 진지하게 검토해야한다.


지역상권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그리고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지, 그래서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지역경제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도로개설에 따른 이득은 아직도 요원하고 단기적인 부작용은 너무 빨리, 그리고 강력하게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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